권력화된 노조, 개혁 명분삼아 배를 불려온 '가짜진보' : 특권부터 박탈해야 -홍진표

권력화된 노조, 개혁 명분삼아 배를 불려온 '가짜진보'
노조에 힘 실어주는 게 진보라는 편견을 버려
특권부터 박탈해야
[홍진표 / 2005-06-10 11:49] 조회 : 183



며칠 전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서울의 한 대학에서 특강을 하며 “노사정 가운데 노조가 변화와 혁신이 가장 떨어지는 분야”라면서 “이는 ‘진보’를 내세우는 노동운동 주체들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인정하지 않고 명분만 내세우기 때문”이라고 쓴 소리를 했다. 김장관은 '운동가 중심의 노동운동이 되는 과정에서 노동귀족이 탄생했다'며 '이들의 문제가 눈에 띈 것은 올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고 노조를 꼬집었다.

참여연대에 몸을 담았고, 한국노총 전문위원도 맡는 등 이른바 진보계열의 학자인 김장관이 이런 말을 할 정도면, 한국노조운동의 타락이 극에 달했음을 알 수 있다. 노대통령도 대기업노조운동에 대해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 것처럼, 親노동자정권으로 간주되던 현 정부도 더 이상은 '감싸기'를 못 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노총은 전현직 간부들의 비리들이 폭로되면서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고, 민노총계열인 기아차, 현대차의 취업장사는 많은 청년실업자들을 분노로 떨게 했다. 더구나 민노총은 비정규직문제에 대해 정규직인 자신들의 기득권을 조금도 다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겉으로는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기만해오고 있다. 민노총의 대의원대회가 두번이나 폭력사태로 파행을 겪으며, 정상적 회의조차 할 수 없는 비민주적 집단임이 증명되었다.

노조의 타락에 대해 충격이 큰 것은 이들이 이익집단이라는 본질을 감추고 무슨 대단한 이념집단이거나, 공익집단인 것처럼 행세해왔기 때문이다. 그 동안 민노총은 온갖 사회현안에 대해 참견해왔다. <송두율석방대책위>,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이라크파병반대국민연대> 등에 참여하며 이른바 진보경향의 이슈에 목소리를 높여왔다.

약 70만으로 알려진 민노총조합원들이 국가보안법의 개정, 대체입법, 형법보완, 완전폐지 등 매우 다양한 견해에 대해 특별히 '완전폐지'라는 단일입장으로 모아질 수 있는지 무척 의아스럽다. 심지어 열린우리당처럼 정당조직 내에서도 여러 견해가 나오는데 노조라는 대중단체에서 어떻게 쉽게 의견이 단일화될 수 있을까? 이 70만명 중 국가보안법 조항을 한번이라도 정독해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지 궁금하다.

민노총은 결국 지도부가 이끄는 대로 정치적 이슈에 대해 미리 정해진 공식(이른바 '진보'내지 좌파단체들과 공조한다)에 따라 움직인 셈인데, 이익집단과 좌파 이념의 결합이 이뤄지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들 수 있다. 우선, 한국의 주요 이익단체들을 만드는 데 좌파 성향의 운동권 출신들이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80년대에 수천 명의 운동권 대학생이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이들 이익단체 조직자들이 그 내부에서 자신이 신봉하는 이념을 전파하는 데 관심을 갖게 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익집단의 구성원들은 명분을 갖는 것을 선호한다. 이 대목은 지극히 한국적 현상으로 보인다. 서구처럼 이익집단이 정직하게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한국적 체면은 흔쾌하지도 떳떳하지도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밥그릇 지키기에 적당한 대의나 명분의 포장을 추구한다. 이때 이익집단의 명분찾기에서 좌파 이념이 선택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 사회에서 지난 수년간 좌파 경향이 진보로 평가되면서 그 매력은 더욱 커지게 됐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이익집단이 진보라는 색깔을 갖게 되면 한꺼번에 많은 지원군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우리 사회에 강한 편가르기 논리가 존재하는 만큼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진보의 색깔을 띠면 그 안에서는 최소한 비판은 면제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예컨대 공무원노조의 단체행동권 주장에 대해 국민의 80% 이상이 반대하는 현실에서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 안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기능이 마비돼 있는 것이다.

이익집단과 좌파 이념의 결합은 일종의 거래이자 야합이다. 이 둘의 결합은 원초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미 사회주의가 불가능한 것으로 역사적 검증이 끝난 시대에 이익집단에 좌파 이념은 무의미해졌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익집단은 충분한 자유를 누리고 있으며 얼마든지 그 존재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오직 배타적 이익과 공공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숙제만 풀면 된다.

지난 87년이후 한국에서 노조운동이 개화한 것은 대학출신 좌파운동권들이 '투신'을 통해 오랜기간 의식화, 조직화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우선 反정부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전략 하에 어떻게든 파업투쟁을 벌이기위해 노력했고, 이 과정에서 공권력의 개입을 유발시켜 전선을 '反정부' 즉 정치투쟁으로 몰고 가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어느새 노조는 뒤로는 자기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치중했고, 이른바 진보적 가치는 명분을 얻는 액세서리로 이용하는 영악함에 빠져버렸다.

김 장관은 근로자 중에는 아직 사회적 약자가 많지만 노조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며 '노조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는 게 진보라는 도식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정곡을 찔렀다. 사회개혁을 명분삼아 노조를 권력화하고, 거기에서 배를 채워 온 ‘가짜 진보’에 대한 질타였다.

모름지기 권력은 견제되지 않으면 타락한다. 노조도 예외가 아니며 '노조 전임자의 임금 지급' 등 각종 제도적 특권부터 박탈해야 하며 더 이상 권력이 아니도록 만들어야 한다.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 이 글은 뉴라이트 웹진 www.new-right.com에서 전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