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란 무의미하게 마구 짓는 것이 아니라 설계자의 個性과 人格이 표현되어야 한다. 건축은 사용하는 사람의 사고와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용도에 어울리는 외관과 쾌적한 내부 공간은 건물의 정체성으로 나타난다. 後代에 남길 만한 기념비적 건축은 '철학'과 '비전'을 이해하는 건축가의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가는 창조자(creator)이다.”

건축은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有機體)’

부대진(夫大珍) 진아(眞我)건축 前 회장/1941년생/ 서울대 건축학과/서강대 경영대학원/1969년 眞我건 축 설립/2003년 眞我건축 회장/사진=조갑제닷컴

최근 <조갑제닷컴>은 재정자립도 전국 최하위권(전국 17개 市道 가운데 14위)의 경상북도가 여의도 공원 면적보다 넓은 부지에 4055억 원을 투입해 완공한 거대한 규모의 경북도청 新청사(2016년 3월 개청)를 비판하는 기사(하단 관련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조갑제닷컴> 홈페이지에서만 3만3050건의 클릭(click)수를 기록하며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기사를 본 네티즌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경북도청 新청사에 대해 ‘주변과의 조화를 간과한 거대한 규모에서 오는 불안정감과 주변경관을 무시한 오만함이 느껴지는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건축물은 인간과 환경 중심의 철학적 고찰이 있어야만 진정한 건축물로서의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경북도청 新청사는 철학 부재의 건축물이다. 모든 건축물은 가치관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理念的이다. 경북도청 新청사는 理念이 없는 건축물이다. 理念이 빠지면 實用이 상실된다. 위대한 건축물에는 中道가 없다.
 
건축을 하나의 살아있는 ‘통일된 有機體’로 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지론을 고수해온 ‘진아(眞我)건축’의 부대진(夫大珍) 前 회장을 12일 서울 모처에서 만났다. 은퇴한 지 4년이 됐다는 夫 회장은 7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호기심과 열정만큼은 젊은이 못지않는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는 듯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긍정적 사고와 에너지가 느껴졌다.

‘참된 자아’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회사설립

夫 회장은 서울대 工大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1969년 건축과 도시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진아건축을 세웠다. 사명(社名)을 ‘眞我’로 정한 이유를 묻자 “젊은 시절 우연히 헤르만 헤세(Hermana Hesse)의 《싯다르타》라는 소설을 읽으며 그 속에서 ‘眞我’라는 단어를 접한 뒤, ‘참된 自我’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날부터 회사설립의 청사진을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夫 회장은 건축을 ‘한 나라의 문화, 한 시대의 일어난 일과 함께 그 시대의 정서를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인지 夫 회장이 이끌어온 진아건축의 건축물을 보면 시대정서가 반영된 작품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俗名이 망치빌딩), 을지로 SK텔레콤 사옥, 배재 정동빌딩 등 개성이 돋보이는 건축물들이 夫 회장의 작품이다.

진아건축은 수년 전 베트남에 진출해 수도 하노이市 마스터플랜을 비롯, 닥농市(베트남 남부에 위치한 도시) 마스터플랜, 호치민市 빈카이주단지 마스터플랜 등 베트남 정부에서 주관하는 주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 가운데 베트남의 ‘1000년 수도 재건사업’은 2050년까지 총면적 3300㎢，인구 1000만 명이 될 하노이 광역市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대규모 사업으로 주택，오피스 등을 비롯해 도로，상하수도，전력，하천정비，철도，정보통신사업 등 도시 전체를 새롭게 계획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성이 돋보이는 진아건축의 작품들.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 본사, 을지로 SK텔레콤 사옥, 배재 정동빌딩(사진 상단 좌측으로부터)/베트남 수도 하노이 마스터 플랜의 컨셉 디자인(사진 하단)

진아건축은 서울 면적의 5배가 넘는 새로운 하노이를 디자인하는 데 있어 도시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자연환경 보존도시’라는 밑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와 함께 난개발(亂開發) 방지를 위해 그린벨트를 설정하고 환경문제를 고려한 적정밀도 계획을 포함시키는 등 디자인의 초점을 ‘친환경 도시에 맞춰 수립했다. 무엇보다 하노이市가 지닌 동양적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이를 ’첨단‘이라는 키워드와 접목시키려는 방향으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건축은 인문학에 기반을 둔 종합예술”

夫 회장은 ‘건축’과 ‘건설’의 차이에 대해 같이 설명했다.

《건축은 창작(소프트웨어에 해당)이고 건설은 제작(하드웨어에 해당)이다. 건축은 영어로 아키텍처(architecture)로 ‘창조의 뜻’을, 건설은 컨스트럭션(construction)으로 ‘만든다는 뜻’을 내포한다. 만들어진 제작물은 시간이 지나면 감가상각(減價償却)되어 가치를 잃어간다. 그러나 창작물은 재료의 값이나 시간과 무관한 가치를 갖는다. 어느 한 쪽이 더 중요한 것도 아니고 덜 중요한 것도 아니다. 설계에 무게를 둔 건축과 시공에 목적을 둔 건설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건축을 단지 집 짓는 행위라고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夫 회장은 건축을 “인문학에 기반을 둔 종합예술”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건축이 다양한 학문 분야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이 완성되려면 1차적으로 구조와 물리, 그리고 설계 등의 공학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건축물에 작용하는 수많은 과정 중 가장 초기 단계에 해당된다.

실제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에서는 본격적으로 보다 많은 요소들이 개입된다. 바로 과학적인 기술, 사회적 경향, 경제성, 그리고 그 시대의 철학‧예술‧문화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건축에 여러 부문이 반영되는 이유는 건축이 ‘인간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夫 회장은 해석한다. 

《인간은 생활하면서 공간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그런데 공간과 관련된 모든 것이 인간에게 긍정적 영향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과거에 지어진 건물과 도시를 면밀히 연구하여 현재의 건축을 설계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건축은 인문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다른 학문, 특히 工學과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夫大珍 씨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꼽은 판테온(Pantheon). 판테온은 그리스어 '판 테이온'에서 유래한 말로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다. 판테온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서양 건축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건축과 인문학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夫 회장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건축의 역사(建築史)로 넘어갔다. 건축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건축사를 배우는 것은 지난 역사를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래의 건축 창조를 위해 교훈을 삼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 夫 회장은 건축사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건축 분야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흐름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傳統과 古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통성과 권위를 만들어 낸 서구건축의 역사를 보자. 서구 건축에서는 오랫동안 권위주의 요소가 계속 사용되어 왔다. 그리스의 신전 건축에서 유래한 이 고전주의 건축 요소란, 기단과 오더(기둥), 그리고 엔타블러쳐(entablature‧상인방)와 페디먼트(pediment‧박공) 등이다.

고전주의 건축 요소의 사용이야말로 건축적으로는 非윤리적이고, 非실용적인 대표적인 사례이다. 돌은 나무와 달라서 기둥으로 사용하기에는 좋아도 보(beam)로는 사용하기 어렵다. 기둥과 보로 만들어진 고전기의 신전 건축(예: 파르테논 신전)은 촘촘하게 기둥이 늘어서 있기 때문에 내부 공간의 사용에는 매우 부적합한 형식이다. 그리스 신전은 의례가 신전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행해지며, 건물은 내부를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례가 일어나는 장소의 배경으로서, 그리고 멀리서 부터도 보이는 표지로 사용됐다.

로마가 위대한 것은 아치(arch) 構法을 개발하여 내부 공간의 사용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고, 모르타르를 사용하여 대형의 건축물을 손쉽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의 신전 건축을 짓는 방식이 제국을 만들려고 하는 그들의 의도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로마가 더욱 위대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의 고전주의 건축요소를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돔(dome)으로 만들어진 판테온의 前面에 그리스 신전의 일부를 덧대어 붙였고, 볼트로 쌓아올린 콜로세움의 외벽에 부조로 오더를 만들어서 장식했다.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실용적인 면에서는 새로운 구조기술을 채택했지만, 외관에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효과를 위해서는 그리스가 만들어 준 권위를 이용했다.

고대 서양 건축물의 주요 명칭(上)/로마 제국이 건설한 수도교(中)/성베드로 대성당의 모습(下)

이처럼 구조와 외관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접근 방식은 르네상스에서 되살아난다. 그들이 취한 태도는 구조법까지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전주의 건축요소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했다. 심지어 가운데가 높고 양쪽이 낮아 계단모양을 이루는 바실리카식 교회의 정면에도 고전주의 신전의 입면을 덧붙이려 노력했다. 이 실험은 15~16세기 기간에 걸쳐 많은 천재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한 끝에 마침내 ‘산 피에트로’ 대성당과 같은 정면과 측면의 중첩, ‘일 제수’ 성당과 같은 크고 작은 정면의 중첩(重疊)이라는 두 가지 해결안을 찾아냈다.

고전주의 건축요소의 해체와 재조립은 19세기말까지 서구 건축가들이 고전주의 건축 요소를 재활용하는 기본적인 수법이 되었다. 고전주의 건축요소는 그리스의 고전기에 형식을 완성한 이후, 로마帝政 시기, 그리고 중세를 건너 뛰어 르네상스 시기에 다시 되살아나, 신전뿐만 아니라, 왕궁과 교회, 그리고 근대기에는 관청과 은행, 학교와 미술과, 철도 역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건축의 내외부에 사용됐다. 최소한 1940년대까지는 고전주의의 우세라고 말할 수 있다.

고전주의 건축요소의 사용을 과거에 얽매인 역사주의라 폄하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양식의 사용을 주장한 근대주의자들의 기능주의적인 형태는 1910년대에 실험적인 모습을 선보인 이래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1945년 戰後의 복구사업이 전(全) 지구적으로 벌어지면서 크게 그 사용범위를 넓혀왔다. 그래서 현재 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건축물의 대부분은 철근 콘크리트와 철골의 구조 체계에 적합한 고층, 장 스팬, 매끈한 입면 등의 기능주의적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日本, 과거와 현재의 재해석 통해 건축문화 꽃피워

夫 회장은 한국과 일본의 건축 분야에서의 격차를 언급하며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프리츠커상(賞)을 예로 들었다. 세계적 호텔 체인 ‘하얏트 재단’의 前 회장 프리츠커(Pritzker) 부부가 1979년에 만든 상이다. 일본은 그동안 8명의 수상자(미국과 함께 역대 最多)를 배출했다.

반면 한국인 건축가 가운데 프리츠커상을 받은 이는 없다. 일본에서, 성숙한 건축문화가 꽃피우게 된 배경은 이렇다. 오래전부터 서양의 건축문화를 받아들여 이를 재해석해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리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국가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과 문부과학성 등 정부 단체가 앞장서서 일본의 건축을 알리는 해외 전시를 주최하고, 외부 인사를 일본에 초청해 일본 건축을 홍보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지원했다. 이는 결국 국제적 건축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개방정책 시기와 서양 현대건축 발아기가 일치했다. 의양(疑洋)건축을 통한 서양건축의 흡수, 절충, 목조건축에서 철골, 콘크리트 건축으로 이행, 일본화하면서 건축을 고전으로 승격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1910년 韓日합방으로 전통건축의 고전화의 시간을 잃었다. 우리의 전통 건축이 단지 ‘전통’이라고 불릴 뿐 고전으로 승격하는 일은 없었다. 아끼고 보살피고 가꾸어야 할 것인긴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골동 취미였을 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새삼스럽게 ‘전통’ 건축 요소를 현대적인 건축물에 적용하려는 시도 그 자체는 근대 이행기를 불완전하게 겪은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법한 일이다.》

일본에는 현대 건축의 거장이 무수히 많다. 2013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이토 도요가 설계한 일본 에히메현 건축박물관/1987년 프리커츠상 수상자 단게 겐조가 설계한 일본 도쿄 후지 티브이 방송국/2014년 프리커츠상 수상자 반 시게루의 퐁피두 메츠 센터(상단으로부터).

“경북도청 新청사, 우스꽝스런 모양을 한 권위적 형태의 건물”

夫 회장은 東西洋 건축사를 이야기한 뒤 경북도청 新청사의 문제점을 짚었다.

《현재의 경북도청 新청사를 보면 얼마나 게으른 해결안을 보여주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들이 행한 방식은 목조의 건축물을 그대로 확대하고, 그렇게 하여도 해결되지 않는 높이의 문제를 위하여, 아래에 기단부를 높이 쌓은 것뿐이다. 1960년대에 시도했던 수준에서 머뭇거리며 주저앉은 모양새이다. 가죽구두 신고 넥타이 메고 갓 쓴 우스꽝스런 모양의 조선시대 관리가 좌우에 부속시설들을 늘어놓은 매우 권위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鄕校의 대성전과 좌우에 동서무(東西廡)를 둔 배치와 비슷하다.

조선시대로의 회귀가 전통을 잇는 것은 절대 아니다. 경북도청 新청사 건물이 과연 아름다운가? 구조적인 합리성에 부합하는 형태인가? 이 시대의 건축 기술의 선진을 모두 모아놓은 총화라고 볼 수 있는가? 이 시대 지방자치체의 거점으로서 자율적이고 민주적이며 효율적인 지방 정부를 상징하고 있는가? 지역의 고유한 문화 전통을 잘 계승하여 재해석에 충실한가? 이도 저도 아니지만 그래도 보기에 좋거나,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민원인들이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적당한가? 대답은 궁하고 건물은 이미 지어졌다.

권력(정치, 종교, 경제)은 원래 건축을 좋아한다. 그래서 건축은 원래부터 정치적이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건축이 갖는 정치적 가능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정치가로 보인다. 그는 경상북도라는 지역에서 전통에 대한 향수를 읽고 건축을 이용할 줄 아는 정치가라 할 수 이다. 그 바탕으로 3선에 성공했다. 이번 작업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의도가 아니라 질이다. 지역을 배경으로 한 정치적 의도가 보이는데, 깊은 공부, 고민, 처철한 노력, 끈기와 인내는 보이지 않고 조급함만 보인다.  》

경북도청 新청사처럼 철학 不在의 건축물이 나오게 된 원인에 대해 묻자, 夫 회장은  “한국의 건축가들은 일본과 달리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 지어지는 대부분의 공공건축물이 ‘턴키방식(Turn-key)’으로 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말로 '일괄수주계약'으로 번역되는 턴키방식은 설계·시공·감리를 한꺼번에 맡겨 짓는 방식이다. 보통 시공업체인 건설회사가 주체가 되어 건축가를 기용한다. 건축주에게 편리해 공장건축이나 민간 건축에서는 많이 쓰이지만 다양한 용도를 충족해야 하고 문화적 의미가 큰 주요 공공건축물을 턴키방식으로 짓는 나라는 후진국이라는 비판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경북도청 신청사의 모습.

《공공건축물은 미래를 내다보고 많은 고민을 담아 지어야 한다. 턴키방식으로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담아낼 수가 없다. 일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시설물 등 지역 개발 계획에 지역 전문 건축가‧주민‧공무원 등이 폭넓게 참여한다. 건축을 문화적 바탕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부동산 논리로 바라보는 한국의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

우리의 지역 개발 주체는 주로 관(官)으로 건축전문가가 아닌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들의 논리에 따라 무분별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그 안에서 건축가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턴키방식으로 공무원들은 앉아서 예산을 쥐고, 모든 비난은 민간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미켈란젤로와 같은 천재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한국에 좋은 공공 건축은 나올 길이 없다. 차라리 전제군주 시대처럼 우수한 건축가를 공무원으로 임용하여 쓰는 것이 현재 방식보다는 좋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지 말아야”

夫 회장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축물의 保存과 復原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문화유산의 가치가 큰 건물일수록 보존과 복원은 정치적 사회적 문제와 결부되기 마련이다. 건물이란 의도한 취지와는 달리 시간과 더불어, 용도가 변하거나 대수선, 증축, 개축 등을 거치며 본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변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도 몇 년 전, 복원된 광화문(光化門)의 현판 글씨를 한글, 한자(漢字), 어느 시대, 누구의 필체(筆體)로 할 것인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시대 간, 세대 간의 이념전쟁(理念戰爭)으로까지 비화하는 것을 경험했다.

이에 앞서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기치 아래 1990년 경복궁의 복원 공사가 시작되면서 중앙청‧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에 관한 찬반논의도 있었다. 결과는 싱겁게도 정치적인 결단(?)으로 중앙청은 1996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최근 일본 조야(朝野)에서는 연일 우리 국민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韓日 양국의 국민감정의 악화가 무척 우려스럽다. 만에 하나,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과거 日帝가 지은 건축물이라 하여 국내에 몇개 남지 않은 ‘보쟈르 양식(Beaux-Arts)’의 건축인 한국은행 본점이나 서울역을 때려 부수자는 설익은 애국자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夫 회장은 한국의 현대 건축물에 대해서도 “과거 압축 성장기에 질보다 양에 치우치다 보니 그 수준에 우리가 모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평가한 뒤, “그러나 과거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 없는 내일이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지금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역사라는 것은 없애고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시대라는 레이어(layer)가 중첩되고 쌓여서 비바람을 이겨낸 퇴적층과도 같은 것이다. 건축이란 이처럼 특정 시간대인 시대의 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말했다.  

부대진 씨가 한국 최고의 건축물 중 하나로 꼽은 부석사(浮石寺).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때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세운 화엄종 사찰이다.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중 하나이다. 부석사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유명하다.

“건축과 여행은 사전계획 세운다는 점에서 동일”

夫 회장은 2000년대 초 상미회(尙美會, 여행사) 회원이 되어 거의 매달 국내외로 여행을 다닌다. 그는 “삶에 은퇴란 없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인생을 재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책을 통해 세상을 보고 여행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0여 년간의 여행으로 친구 부자가 됐다. 나이라는 벽을 허물고 나니, 나와는 다른 시대를 경험한 친구를 만나고, 그들을 통하여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또 표현하면서,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인생의 여정을 마칠 즈음 뇌리(腦裏) 속에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읽은 책과 여행의 추억뿐이라고 한다. 준비 없이 음악을 들으면 막막하지만, 사전에 조금 공부를 하고 들으면 음악의 환희가 느껴진다. 여행도 약간의 事前 투자가 필요하다. 뇌가 기억하는 것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여행과 건축은 사전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design)에서 동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름은 正體性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지은 사람의 실력을 드러낸다고 한다. ‘참된 자아(眞我)’를 찾기 위해 “조만간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는 夫大珍 회장의 모습을 보면서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고, 靑春과 老人을 구분하는 것은 육체적 연령이 아니라 ‘호기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夫大珍 회장의 정신력은 점점 더 젊어지고 있는 듯했다. 
 
인터뷰/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