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북한이 외국어 교육에 대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이전까지 북한 내 가장 인기 있는 외국어는 단연코 '러시아어'였다. 하지만 소련 해체 이후, 급격하게 러시아어에 대한 인기가 줄어들면서, 2000년대부터는 영어가 제1 외국어가 됐다.

북한이 영어를 제1 외국어로 선택한 이유는 '원수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구호 때문이었다. 원수와 겨루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를 알아야만 한다는 의미였다. 이에 따라 교육기관에서도 러시아어보다는 영어 교육에 더 비중을 두는 추세다.

하지만,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어나 영어보다 중국어가 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국경지대를 시작으로 이 같은 중국어 열풍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영어 같은 경우 실제적으로 사용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실용' 위주로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탈북한 최지영 씨는 뉴포커스와의 인터뷰에서 "장마당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중국에서 물건을 가져오는 일이 잦다. 이 때 중국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같은 물건이라도 말만 잘하면 훨씬 더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차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중국어를 배워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 씨는 "중국인과 직접적으로 밀매를 하는 경우 이와 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한 개 살 수 있는 것도 중국어로 말하면 5개에서 6개까지 더 얻어올 수 있다. 가장 좋은 점은 중간 밀매 브로커의 수수료 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데 가장 큰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주민들이 장사 이외에 중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특히 자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려는 부모들이 많은데, 김정은 정권 이후에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이유는 체제에 대한 염증 때문이다.

2014년 탈북 한 김호준 씨는 "나 같은 경우 자식이 북한에서 자라게 될 경우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라는 뜻으로 중국어를 배우라고 강요하기도 했지만, 사실 기회가 되면 탈북하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린 아이들은 습득 능력이 빨라서 언어도 금방 배운다. 나중에 자식과 함께 탈북할 경우 언어가 통하면 중국에서 잡히지 않고 생활하기가 훨씬 더 편할거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북한에서 그냥 살 경우에도 중국어는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실제로 가족과 함께 탈북을 감행하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아들 덕분에 위기의 순간을 모면한 게 한 두번이 아니다. 일례로 버스를 타다가 공안의 검사가 이루어졌는데, 아들이 먼저 '시안을 가려면 이 버스를 타야 되는 게 맞습니까?'라고 유창한 중국어로 말을 꺼내면서 대화를 하다가 시간이 다돼서 버스가 출발한 적도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북송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중국어 구사 능력은 한국에 정착해 살면서도 탈북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 다른 탈북민 오명진 씨는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중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4년간 살고 나서 겨우 겨우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이 때 배웠던 중국어 생활 회화가 한국 생활에 큰 도움을 줬다. 현재는 번역 업무를 하는 회사에서 중국 관련 일을 돕고 있다. 중국어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한국에 입국해서 중국과의 무역이나, 번역, 여행 가이드등 많은 기회가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외국어를 필요에 의해 점수로 취득한다. 취업시 '토익 700이상'과 같은 조건을 맞추기 위해 맹목적으로 외국어를 학습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외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외국어가 '중국어'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