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조선일보의 <대한민국 건국=항일+반공>이라는
제목의 기고 칼럼은, 대한민국 건국이 분명 1948년
(8월15일)임을 밝힌 것으로서 대체적으로 옳은 내용이다.
하지만, '옥의 티'가 존재한다.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항일의 결과로 1945년 해방되고 나니 한반도에는 새로
운 적이 등장했다. 다름 아닌 북한 공산 정권, 그리고 이
정권을 뒤에서 사주하고 있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이다.
그러나 당시 남한을 통치하던 미 군정은 이러한 사정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소련이 점령한 북한에서 공산
전체주의 국가가 차근차근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하면
서도 미 군정은 신탁통치를 추진했다.>

컬럼은, <항일의 결과로 1945년 해방되고>라고 썼는데,
이는 잘못이다. <미국(or 연합국)의 승리로 1945년 해방
되고>라고 써야 정확하다. 항일(독립운동) 활동을 높이
평가해주는 것과, 사실(Fact)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항일의 결과로 1945년 해방되고>
라는 식의 표현은 한국인에게 그 동안 익숙해진 표현일
뿐, 내용 자체는 사실(Fact)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비약이자 심하게 말하면 왜곡에 가깝다.

아울러, <한반도에는 새로운 적이 등장했다. 다름 아닌
북한 공산 정권, 그리고 이 정권을 뒤에서 사주하고 있는
스탈린과 마오쩌둥이다. 그러나 당시 남한을 통치하던 미
군정은 이러한 사정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부분
또한 사실과 다르다.

당시 美 군정은 누구보다 이러한 사정(북쪽 사정)을 잘 파
악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해방 직후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
으로 알려주는 아래와 같은 내용은 참고가 된다.

<美國은 朝鮮人을 군정에 참여시키는 것을 철저하게 꺼렸
다. 朝鮮人의 군정 등용(참여)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었다.
왜 그럴까?
통치능력 결여와, 도를 넘는 자기주장, 흥분 잘하는 민족성
에 더하여, 편협한 사고를 지닌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
들이 난립하게 되면서, 일치단결하여 건국에 매진하는 작업
등에 차질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朝鮮人의 특성을
美國은 간파했다. 실제로 1945년 가을, 30명 가량의 朝鮮人
軍閥이, 경찰서와 신문사, 기업, 공장, 상점 등을 마음대로
접수하는 일이 발생했다. 美軍은 무장해제를 강제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정당을 만들거나 정치 결사를 하는
건수가 200件에 달했고, 지도자는 내부 항쟁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암살이나 테러가 횡행했다. 또한 '조선인민공화국'
조직조차 중화민국에 세웠던 '한국임시정부'와 대립했다.
아울러, 두 개의 정부 각각 내부에서도 제각각 자체 항쟁
으로 해가 뜨고 해가 졌다.
이런 식의 혼란이라면, 38도선 이북에 진을 치고 있는 소련
군정에 대항하는 힘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것은 당연했다.
당시 美國의 최우선 과제는 소련의 한반도 지배를 저지하
는 것으로서, 남한의 독립은 부차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
었다.
韓國은, '日帝를 무찌르고 독립을 쟁취해 냈다'고 주장하지
만, 사실상의 독립은 日本 패전 3년 후였다. 美國은 장기간
韓國을 신탁통치해 나가는 것을 염두에 두었지만, 北韓 지
역에 통일국가를 건설할 움직임을 보인 소련에 대항하여
韓國의 독립 실시를 크게 앞당겼다.>
(2015.2.2. 산케이, '한국이 알려지기 꺼려하는 역사' 中)


아울러 컬럼은, <(오늘날) 이러한 번영의 기초를 우리는
언제 놓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출발하면서부터다. 전통 국가 조선도 아니고 일본이 지배한
식민지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 기본
운영 원리로 채택한 대한민국이 국회, 헌법, 정부를
순차적으로 만들어나간 1948년이 그 출발이다.>라고 썼다.
내용에 잘못은 없다.

다만, <1948년에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국가 기본 운영 원리로 채택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이전에 더욱 근본적인 '한국의 근대化'
부분에 대해서는 가급적 외면하는 듯한 오늘날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한국에 도입된 것은 일본통치가 계기가 되었다.

단적으로 '法治'라는 개념조차 없던 한국에 '法治'가 실현되
기 시작한 것도 일본통치 때부터다. '人權' 개념 또한 마찬
가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자본주의)라는 것은, 기
본적으로 法治와 人權의 뒷받침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6일, 국내 한 매체(CNB저널)에는 이런 내용이 소개되었다.

《고 박완서(1931~2011)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정도의 서민금융 혜택은 (일제시대에는) 절차만 밟으면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였다…해방 후에 비뚤
어진 금융 풍토 때문에 융자라면 특혜나 특권 등 비리 아니
면 남다른 수완이 있어야만 인연이 닿았다. (일제 때) 손쉽
게 도움을 받곤 했던 금융기관…"(114쪽)
일제 강점기만 해도 금융기관에 가서 일정한 서류만 써 내면
융자를 받을 수 있었던 경험 때문에, 박 작가의 어머니는 해
방 정국에서 집 장만을 위해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특권.특
혜층 아니면 융자를 받을 수 없는 ‘별난’ 경험을 했다는 얘기
다.
일제강점기의 금융 관행에 대해서는 이런 기록도 있다.
총독부는 고리 부채 근절이 농촌 사회 안정화의 관건이라고
파악해, 농가들을 금융조합에 가입시켜 그 대부로 부채 정리
를 꾀하게끔 했다. 그러나 지주제에 뿌리를 둔 영세농 경영
을 해체하지는 못했다.

(한석정 ‘만주 모던’ 261쪽. 이경란 著 ‘일제하 금융조합 연구’
로부터 재인용)》

굳이 거창한 연구조사나 통계자료 같은 것을 별도로 동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단적 사례만 보더라도 일제시대를 계기
로 시장경제(자본주의)가 일반화되었다는 사실은 쉽게 확인
된다.

아울러, '해방'이 되면서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일제시대 당
시, 1945년 이후부터 한반도에는 국회의원 선거구(各道)가,
정해져 국회의원(중의원)을 선출할 계획이 있었다. 그 以前
에는 선거구가 존재하는 일본 본토로 한국인이 이주하여
출마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래서 여러 한국인들이
일제시대 때 일본 땅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고 실제 당선된
경우가 있다. 미흡하나마 일제시대를 계기로 (대의)민주주
의가 싹텄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Fact)이지만, 오늘날 기준으로 볼
때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감히 일제가 근대화?') 때문에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나아가 비난('식민지 근대
화론 주장하면 친일파!')까지 분위기가 팽배한 오늘날 현
실은, 한국인들로 하여금 점차 시야를 좁게 만들고 편협
한 민족주의 같은 것에만 빠지게 할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