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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늄탄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천연 상태의 우라늄을 정제하여 우라늄의 비율을 90%이상으로 농축시킨 고농축우라늄(HEU: High Enriched Uranium)이 필요하다. 북한은 천연우라늄을 고농축우라늄으로 농축시키는 다양한 방법 가운데 파키스탄을 통해 획득한 ‘가스원심분리법(Gas Centrifuge Uranium Enrichment Process)’을 채택했다.

가스원심분리법은 기체확산법에 비해 분리효율이 높아 농축단계를 줄일 수 있고, 10분의 1정도의 전력으로 충분히 가동이 가능하여 현재 가장 선호되는 기술이다. 또한 우라늄 농축 시설을 여러 곳으로 분산・은폐할 수가 있기 떄문에 일단 제조시설이 설치되면 농축우라늄의 지속적인 은폐 및 생산이 가능하다. 원심분리기는 직경 20cm, 길이 1.5m에 불과하며 최적의 환경에서 약 10년간 수리없이 사용이 가능하다. 연간 핵무기 1개(농축우라늄 20kg기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런 원심 분리기가 약 100대 필요하다. 이에 필요한 면적은 300평 정도이다.

북한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핵연료의 보유 및 재처리에 이르는 일련의 핵연료 사이클(cycle)을 완성하고, 플루토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뒤, NPT에서 탈퇴하고 우라늄 핵무기의 개발에도 나섰다. 이러한 북한의 우라늄 핵프로그램과 관련하여 가장 관련이 깊은 조직이 바로 ‘칸 네트워크(The A. Q. Khan Network)’이다.

칸 네트워크는 파키스탄의 과학자 칸(Abdul Qadeer Khan)박사가 1980년대부터 2003년까지 운영했던 고도로 조직화된 네트워크이다. 칸 네트워크는 모든 종류의 핵 관련 물질, 설계 및 기술을 20년 이상 거래했고, 그 범위는 전 세계적이었으며 엄청난 규모의 금액을 수반했다. 칸 네트워크는 파키스탄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북한·시리아·리비아·이란·이라크의 핵무기 프로그램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파키스탄은 1998년 인도가 일련의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자 17일 뒤 대응 핵실험을 실시해 핵보유국이 됐다.

파키스탄의 핵개발 책임자였던 칸 박사는 1998년 5월28일 파키스탄이 핵실험에 성공하자 ‘국민적 영웅’이 됐다. 당시 파키스탄이 핵실험에 사용한 핵장치(nuclear device)는 중국의 ‘CHIC-4’로 알려져 있다. 칸 박사는 파키스탄 핵개발 과정에서 중국, 북한, 리비아, 사우디 등의 국가를 여러 차례에 걸쳐 드나들었다. 북한에는 최소 13~15차례에 걸쳐 방문했으며, 이 과정에서 핵무기 설계도를 북한에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칸 박사는 1993년 12월 부토(Benazir Bhutto) 당시 파키스탄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기 며칠 전 총리 집무실을 방문했다. 그는 부토 총리에게 김정일을 만나면 파키스탄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북한이 지원해 줄 것을 부탁하라고 요청했다. 칸 박사는 핵탄두의 장착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의 설계도가 필요하다고 부토 총리에게 설명했다.

당시 파키스탄은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고, 부토 총리는 칸 박사를 도와주면 군부가 정부에 대한 간섭을 줄일 것이라고 생각해 그의 요청에 동의했다. 부토 총리는 1993년 북한 방문 중 김정일이 주최한 만찬에서 “각 나라는 경제·사회 발전에 맞는 평화적인 목적의 핵기술을 획득하고 개발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부토 총리는 방북기간 중 우라늄 농축기술이 담겨진 데이터를 북한에 건네주고,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담긴 자료를 갖고 파키스탄으로 돌아왔다. 파키스탄은 이러한 방식으로 북한의 미사일 기술을 획득하여 1998년 4월 노동미사일을 변형시킨 가우리(Ghauri) 미사일의 시험 발사를 성공시켰다.

북한과 파키스탄 사이에서 벌어진 ‘핵과 미사일의 거래’ 가능성이 공개적으로 제기된 것은 1998년 6월7일 파키스탄에서 김사내라는 북한 여성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부터이다.

당시 파키스탄 주재 북한 대사관의 경제참사인 강태윤의 처로 알려졌던 김사내의 사망 원인은 이웃사람에 의한 오발사고로 보도된 바 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나서야 김사내가 1998년 5월28일 실시된 파키스탄 최초 지하핵실험을 참관하기 위해 파견된 20명의 북한 대표단 일원이었으며, 칸 박사의 집 근처에서 근거리 저격에 의해 사망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김사내는 서방정보기관에 협조하고 있었으며 이런 사실을 발견한 북한 요원들이 현장에서 사살했다는 것이다. 1998년 6월 김사내 사망 사건이 발생한 사흘 뒤 그녀의 시신은 C-130 수송기로 평양으로 이송됐다. 당시 수송기에는 원심분리기, 설계도면, 기술적 자료, 육불화우라늄(UF6) 가스 등이 적재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육불화우라늄 가스는 원심분리기에 주입해서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하는 원료물질이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