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元世勳, 65) 前 국정원장은 2012년 대선 등 선거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을 동원,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댓글을 달게 해 선거에 영향을 미쳐다는 혐의를 받아 2013년 6월 불구속 기소됐다.

元 전 원장은 1심 재판에서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有罪로, 대선 개입(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를 받아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는 '시큐리티' 파일 '425지논'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받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보고 징역 3년,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여기서 시큐리티 파일은 보안을 뜻하는 영어단어 ‘security’ 앞에 s를 하나 더 붙인 제목으로 된 텍스트 파일로 A4용지 19장 분량이다. 이 파일에는 심리전단 직원들 이름 앞 두 글자와 함께 한 사람당 10~30개씩 트위터 계정이 나열돼 있다. 총 269개 계정과 422개 트위터 계정이었다. 

‘425지논’ 파일은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김 모 씨가 원 전 원장의 지시사항을 요약한 ‘이슈 및 논지’에서 ‘논지’의 앞뒤 글자를 바꿔 명명한 텍스트 파일이다. 2012년 4월25일~12월5일까지 거의 매일 작성됐고 A4용지 420여 장 분량이다.

해당 파일에는 ‘현 정부의 경제업적은 과거 어느 정부보다 큽니다’, ‘4대 강 효과’ 등의 제목과 함께 4대 강 홍보, 서해 북방한계선(NLL) 사수, 경제민주화 주장 비판, 통합진보당 비판 등을 다룬 글들이 담겨 있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 19차 공판 지난 19일 서울고법에서 진행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년 7월 원 전 원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일부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핵심 증거인 국정원 직원의 이메일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사실관계 판단을 다시 하라는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이후 元 전 원장은 2015년 10월 파기환송심에서 보석으로 풀려난 채 지리(支離)한 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19일(2016년 12월) 서울고법 404호 법정에서는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하여 원세훈 원장 외 2명과 관련된 파기환송심 제19차 공판(부장판사 김시철)이 열렸다.

이날 재판부는 지난 1월 ‘트위터 게시글과 관련된 대법원 판결(육군 장교 A씨 사건)에 대한 심리가 필요하다’면서 검찰 측과 元 전 원장 변호인 측에게 이에 대한 입장 정리를 요청했다.

재판부는 “해당 판결의 쟁점은 ‘전체’가 아닌 ‘개별행위’를 따지는 것”이라며 “이 같은 법리가 적용된다면 ‘개별행위’와 ‘상급자와의 공모(共謀)관계’를 따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재판부가 언급한 판례는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을 비난하는 글을 트위터에 게재한 혐의로 벌금형이 선고된 육군 장교(A씨, 대위)에 대해 각각의 글이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기 환송된 사건이다.

육군 장교 A씨는 2012년 대선과 관련해 새누리당과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비판하고 민주통합당(現 더불어민주당의 前身) 후보를 지지하는 내용이 담긴 트윗을 올리거나 리트윗을 한 혐의로 2013년 기소됐다.

당시 사건과 관련하여 보통군사법원(1심)과 고등군사법원(2심)은 새누리당과 그 후보를 반대하는 글이 1000여회 이상인 점, 글 대부분이 새누리당과 그 후보를 비난한 점, 단순 의견 표명을 넘어 특정 후보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비난을 한 점 등을 이유로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올해 1월 “원심이 유죄로 판단한 트윗글이 어떤 근거로 새누리당과 그 후보자를 반대하는 목적의지가 있는 행위인지 세밀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또 “트윗글이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정치적 견해로 보일 뿐 직접적으로 선거와 관련돼 특정 후보를 지지·반대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元 전 원장 변호인 “이 정도에서 재판부가 판단 해야”

19일 재판부가 육군 장교 A씨 사건을 판례로 거론하자 검찰 측은 재판부가 “판결문에 비춰 심리가 미진할 위험이 있다는 것인데, (육군 장교 관련 판결은) 전혀 새로운 판결이 아니다”라며 “(재판부가) 어떠한 추가 심리를 더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元 전 원장 측 변호인도 “심리 미진의 단계는 지났다”며 “이 정도에서 (재판부가) 판단을 해주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원세훈 원장 측 변호를 맡은 이동명 변호사는 20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트위터에 글을 올린 모든 사람들을 특정하여 분석해야 한다는 판사의 요구를 검사가 이행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처럼 모두 전수(全數)조사하면 재판이 몇 년 더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대법원 판례(육군 장교 A씨 사건)가 있지만 그 사건과 이 사건을 연관 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어 “재판부가 요구하는 것은 모든 트위터 글을 뽑아서 (실행행위자 별로) 일일이 분석하자는 것인데, 어떻게 모두 조사를 한단 말인가? 실행행위자의 행위를 특정해보자는 것인데, 윗사람(원세훈)부터 붙잡고 수사를 하다 보니 재판이 이렇게 됐다. 애초부터 검찰이 지나치게 의욕이 넘쳐 능력이 넘는 수사를 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재판부가 바뀐 다음에 적당한 시기에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사진-취재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