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중에, 외교부만큼 주인의식 없고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곳은 또 없다. 외교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외교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분노를 초래하는 수준이다.
요즘 외교부 모습은, 세금 축내며 伏地眼動('복지부동'의 응용,
엎드려 눈알만 굴리고 있다는 의미)하는 모습에 더도덜도
아니다. 최근 일본과의 외교관계가 파행으로 흐르고, 이에
다른 경제 파장까지 우려되는 상황에 도달한 책임은 전적으로
외교부에 있다. 일본측이 이번에 대사 소환 등 강경한 조치를
취하게 된 직접 원인은 위안부像 설치 때문이다.

재작년 말 양국간 합의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 대사관 앞 위안
부像에 대해, 한국 정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에 노력해
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외교부는 일본으로부터 돈
만 받아내고 그 동안 위안부像을 적절하게 조치하는 노력은
전혀 안했다. 노력은커녕, <우리는 모른다. 민간이 한 일이다>
는 식의 오리발(발뺌)뿐이었다. 국가 간의 합의를 사실상 무시
하는 모습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위안부像이 추가
설치되면서 결국 사태는 이 지경이 되었다. 그런데, 외교부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본적 책무만 제대로 했더라도, 부산 영사관
앞의 위안부像은 설치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잘 버티던
부산 동구청장이 무너져, 영사관 앞 위안부像 설치를 용인하
면서 했던 언급은 이런 것이었다.

<이 문제는 자치단체가 감당하기 힘들다.>

그런데 당시 부산 동구청장은 사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상급 단체(외교부)는 빠져나가고 친일파 욕은 지자체 혼자
먹으라고? 우리가 바보냐?>

외국 공관을 모욕하는 불법 조형물에 대한 입장 표명과 이에
대한 의법조치는 상식적으로 외교부가 주도해야 순리다. 그런
데, 부산 영사관 앞에 위안부像을 설치하려는 세력과, 이러한
시도를 불법으로 규정한 동구청 간의 공방과 갈등이 계속
이어지던 상황에서, 위안부像 설치 며칠 전인 12월27일까지
외교부가 보여준 태도는 믿기지 않게도, 이랬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건과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국내법 등에 따라서 해당 지자체에서
판단할 사안이라는 것이 정부 입장”이라고 밝혔다.>
-12월 27일 언론 보도 중-

그리고, 위안부像이 이미 설치되어 모든 상황이 완전 종료된
12월 31일이 되어서야 외교부는, 일본을 달래주려는 형식적
립서비스 차원이었는지, 그제서야 대변인의 입을 통해 이런
식으로 언론에 흘렸다.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한 국제 예양 및 관행이라는 측면에
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 시민단체 등
관련자들이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기억하기에 적절
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것인지, 사후약방문하겠다는 것인
지, 상황종료 후 그냥 심심해서 한 마디 하고 싶어서 한 것인
지, 외교부의 태도는 무사안일과 무책임 그 자체다. 이러한
前後 사정을 종합하면, 외교부는, 국제적 규범의 준수를 한
국인들에게 호소하는 작업을 원래는 자신들(외교부)이 나서
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친일파라는
욕을 먹게 될까봐, 부산 동구청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는 결
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부산 동구청은, 외교부가 최소한
준법준수 의지표명('공관 앞 위안부像 불가')에 동참해 줄 것
으로 기대했는데 사실상 <우리(외교부)는 모른다. 당신들(동
구청)이 혼자 욕 먹어라>는 식으로 나오자, 그간의 태도를 바
꾸어 백기투항('나만 욕 먹을 수 없다'는 불만 차원)한 정황
이다.

만약 외교부가 처음부터 준법준수 의지('공관에 대한 불법 조
형물 불가')를 표명하며 동구청에 힘을 실어주었다면 위안부
像이 설치되는 일은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동구청 입장에서
는 친일파라는 욕을 외교부와 나누어서 먹으면 되기 때문에
부담이 크게 줄어, 적법한 대응을 지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외교부가, 자신들은 욕을 하나도 안먹고 책임을 떠넘
기려다가 사태가 이렇게 꼬이면서 외교 파행까지 초래된
것이다.

서울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像 및 부산 영사관 앞 위안부像
과 관련해 그간 보여준 외교부의 태도를 종합하면, 외교부는
구역질 날 만큼의 보신주의와 無책임, 無소신, 책임 떠넘기기
에 급급한 집단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평소 세금이나 축내
면서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노골적으로 방기 내지
해태하며 伏地眼動(복지부동)하는 이런 집단이 한국의 외교
를 맡고 있는 이상, 한국 외교가 파탄지경에 봉착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에 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