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철학자인 에릭 호퍼는 《맹신자들(The True Believer)》에서 어떤 인종이나 국가 혹은 어떤 특정 집단을 평가할 때 그곳(인종, 국가, 집단)의 가장 밑바닥 사람들을 척도로 삼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명백히 부당한 일이지만 여기에도 명분이 없지는 않다. 어떤 집단의 특성과 운명이 그곳의 가장 열등한 요소로 결정되는 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국가에서 가장 타성적인 대중은 중간층이다. 도시와 농촌에서 일하는 어지간한 수준의 평균 인구 집단의 성격과 형태는 양 극단에 있는 소수자들--최상위층가 최하위층--의 영향을 받으면서 만들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호퍼는 “정치, 학문, 과학, 상업, 산업,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우월한 개인들은 국가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지만, 그 반대편 극단에 속하는 개인들--낙오자, 부적응자, 부랑자, 범죄자 등 존중받는 인간 부류의 순위에서 발판을 잃었거나 한 번도 그런 발판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퍼는 “역사라는 놀이는 흔히 중간의 다수자들은 제쳐놓고 최상위와 최하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한 국가에서 가장 열등한 구성원들이 두드러진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현재 상태를 털끝만치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과 현재를 치유할 수 없이 망가진 것으로 여기며 인생이든 현재든 언제든지 내버리고 파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것이 그들의 무모함과 무정부 의지의 원천이다.

호퍼는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그들은 이미 망가져버린 의미 없는 자신의 영혼을 휘젓는 눈부신 공동체적 사명에 바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여기에서 그들이 단결 행동을 하는 성향도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혁명 초창기의 자원병들, 집단 이민자들, 종교운동과 인종운동, 광신적 애국운동 추종자들 가우네 최하층민들이 많은 것이며, 이들은 국가적 성격을 형성하고 역사를 건설하는 봉기와 대중운동에 자취를 남긴다.

버림받고 거부당한 사람들이 한 국가의 미래에 원료가 되기도 한다. 건축자가 거부한 돌이 새로운 세계의 주춧돌이 되는 것이다. 사회의 쓰레기 같은 존재와 불평분자가 없는 나라는 질서 정연하고 점잖고 평화롭고 쾌적하지만, 새로운 변화의 씨앗이 없는 셈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달갑지 않게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대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신서계를 건설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다. 오로지 그들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다.》

독일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호퍼는 “불평분자들이 각계각층에 존재하게 마련”이라며 이들의 범주를 아래와 같이 분류했다.

《빈민, 부적응자, 부랑자, 소수자, 청소년, 야심가들, 일련의 악덕이나 강박에 사로잡힌 사람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능한 사람들, 과도하게 이기적인 사람들, 따분한 사람들, 죄인들》

참고로 《君主論》의 저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이런 말을 했다.

《국가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이행하며 그런 다음에는 무질서에서 다시 질서로 되돌아온다. 유능함은 침묵을 낳고, 침묵은 나태를 낳는다. 나태는 무질서를 낳고, 무질서는 파괴와 파멸을 낳는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폐허로부터 질서가 생기고, 질서로부터 능력과 유능함이 생기고, 마지막으로 영광과 행운이 생긴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의 現 상황을 역사발전의 한 단계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기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나라는 지금 마키아벨리의 말처럼 ‘나태’와 ‘무질서’로 진입한 상태로 보인다. 이 상황을 방치하면 그 다음은 ‘파괴’와 ‘파멸’, 그리고 ‘폐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