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미국 뉴욕에서 3월 초 예정됐던 미국 전직 관리와 북한 현직 관리의 접촉이 전격 무산됐습니다. 북한의 김정남 독극물 암살 정황이 막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양성원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은 25일 미국 국무부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에 대한 비자, 즉 입국사증 승인을 철회해(withdraw visa approval) 3월 1일과 2일 개최될 예정이던 뉴욕 미북 접촉이 무산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앞서 이번 접촉에 정통한 소식통은, 24일 오전만 하더라도 행사가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내용의 이메일, 즉 전자우편을 행사 주최 측이 미국 대표단 일원에 보낸 상황이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당국의 발표로 북한 정부가 개입한 김정남 독살 정황이 점점 명확해지자 트럼프 행정부로서도 도저히 이번 접촉을 용인할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한국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의 김현욱 교수의 말입니다.

김현욱 교수: (트럼프 행정부에서) 트랙 2, 탐색적 대화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논의가 있었을 것인데 결국 최근 벌어진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김정남 살해 사건이 이러한 탐색적 대화조차도 막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도 25일 김정남 살해에 치명적 신경작용제인 VX가 사용됐다는 말레이시아 당국 발표가 행사 취소의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전했습니다. 실제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24일 여전히 행사가 실제 개최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간 스위스와 독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서 수 차례 개최됐던 미북 민간접촉, 혹은 반관반민 접촉은 미국 내에선 지난 2011년 7월 이후 5년 반 넘게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새 행정부의 대북협상 가능성 등과 관련해 그 개최 여부에 큰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이번 뉴욕 미북 접촉에는 미국 측에서 도널드 자고리아 미국 외교정책위원회 부회장, 윈스턴 로드 전 주중 미국대사,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핵특사,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번 접촉에서 북한에 현재 억류돼 있는 미국 국적자 2명의 석방을 강하게 요청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접촉에 참석할 예정이던 미국 대표단 중 한 명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이 지난해 말부터 트럼프 행정부 상황에 정통한 미국 인사를 만나길 원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과의 접촉에 적극 나서려는 미국 내 인사들은 미국 행정부 내 대북정책 기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아 북한에 대해 곱지 않은 입장을 가진 인물이라도 미국 행정부와 의회 등 워싱턴 주류 시각을 제대로 전달해 줄 인사를 접촉하려 한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지난해 11월 미국의 대통령 선거 후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북 접촉에 나섰던 최선희 국장은 행사를 얼마 남기지 않고 주최 측에 트럼프 진영 인사를 미국 대표단에 포함시켜달라고 뒤늦게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접촉 날짜가 너무 임박했기 때문에 트럼프 진영 인사가 행사에 참석하진 못했습니다.

한편 미국 국무부는 최선희 국장에 대한 비자승인 철회와 관련해 개인적 비자 관련 사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