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9일 ‘국제 문학 인권 컨퍼런스’ 태영호 공사 인사말 녹취 全文

안녕하십니까. 제가 오늘 이 행사에 참석해달라는 초청을 받고 지난 주 토요일에 반디 책을 꺼내들었습니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자. 제가 오후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에 있는 모든 주인공들의 모습이 제가 북한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과 너무나 같아서 저도 모르는 사이 제 마음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책을 다 읽은 후 제가 집밖을 나서서 서울 거리를 걸어가는데 아직도 제 눈앞에 보이는 서울 거리와 제 발길이 닿는 서울 땅이 서울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반디 책에서 읽었던 그 모습들이 계속 제 눈앞과 머릿속에 있으면서 도무지 내가 지금 한국 땅에 와 있는지 아니면 평양시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공산주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 투사들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랐습니다. 북한소설, 또 이전 소련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같은 책을 읽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북한에 있으면서 점점 오늘의 북한사회가 공산주의 선각자들이 그리던 그런 공산사회인가 라는 질문을 계속 제기하면서 늘 고민해보았습니다.

여러분, 소설에서 반디는 김일성광장에 있는 김일성 초상화와 마르크스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해서 북한에서 펼쳐지고 있는 수령 우상화 작업, 또 1호행사 준비과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2년 4월 김일성광장에서 바로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인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가 조용히 내려졌습니다. 2012년 4월 김일성 탄생 100돌을 계기로 김정은 시대를 전 세계에 선포하는 북한의 공산체제는 차마 세습독재, 세습정치를 이념상 반대하고 있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김정은 시대를 선포할 수가 없어서 소설에서 나온 그 마르크스의 초상화와 레닌의 초상화를 조용히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행사에 참가했던 외국 공산당 대표단들에서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왜 수십 년 동안 김일성광장에 걸려있던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가 내려졌는가.”
여기에 대해서 북한당국은 아무런 공식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왜 김정은 시대가 도래하면서 북한이 김일성광장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초상화를 내릴 수밖에 없었느냐, 바로 공산주의 이념 그 자체가 오늘날 북한의 3대 세습체제, 봉건왕조 같은 세습체제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북한사회는 공산체제가 아닙니다. 오늘 북한사회는 21세기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민들을 여러 계급으로 갈라 관리하는 계급사회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이 세계에서 완전한 평등이 실현된 사회나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처럼 국가 시스템으로서 주민들을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으로 갈라놓고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사회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제가 한국에 온 후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매일같이 질문합니다. “당신 같이 고위급 북한 엘리트, 북한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당신과 가족이 왜 한국에 왔느냐”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시다시피 저는 북한에서 반디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비참하게 살지도 않았으며, 외교관으로서 스웨덴·덴마크·영국과 같이 유럽에서 제일 복지시스템이 잘된 그런 나라들만 골라 다니며 생활하였습니다. 절대 다수 북한 주민들이 노예처럼, 마소[馬牛]처럼 살고 있는 북한사회에서 태어난 저의 자식들은 아버지를 잘 만난 덕에 아이 때부터 부모를 따라서 유럽과 북한을 오가며 생활하면서 ‘집안에서 또 사회적으로 우리 아버지가 제일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점차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점차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버지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많이 공부하고, 세상물정도 잘 알고 북한 사회의 부패함과 허구성, 불합리성을 잘 알고 있는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외교관으로서 매일같이 북한체제를 홍보하러 다닐 수 있느냐. 또 저에게 매일같이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이 세상에 북한과 같은 체제가 있을 수 있고 아버지는 이런 사회에 대해서 그처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매일같이 외교관으로서 외부세계에 북한체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체제고 김정은이 위대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해왔습니다. 이런 질문을 당할 때마다 저는 김정은 세습독재 체제의 부당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순한 양처럼, 노예처럼 그 체제에 순종하여 매일같이 체제선전을 하러다니는 자신의 처지가 부끄러웠습니다. 또 이런 자식들 앞에서 지금까지 유지돼오던 가정의 아버지로서, 가장인 저의 처지는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북한대사관 밖을 나와서 탈북하는 그 순간 저의 자식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이 순간이 너희들의 노예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다. 앞으로 너희들은 이 순간을 영원히 명심하고 북한에 두고 온 일가친척들을 노예의 처지에서 해방하기 위해서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
 이게 제가 자식들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갈라진 강토, 갈라진 민족, 서로 다른 체제를 통합하는 통일이기에 앞서 북한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는 북한주민들을 해방하기 위한 노예해방 전쟁입니다. 1863년 미국대통령 링컨이 선언한 노예해방 전쟁을 우리는 이제는 북한의 주민들을 노예의 처지에서 해방하는 것으로써 노예해방 전쟁의 막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우리 모두가 반디 선생의 비판정신, 투쟁정신, 저항정신을 따라 배워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을 노예의 처지에서 해방하기 위한 우리의 노예해방 전쟁은 무엇부터 시작해야겠습니까? 우선 우리 모두가 한국과 전 세계에 북한의 노예 실상을 널리 알리고 또 북한주민들에게 그들의 노예의 삶을 깨우쳐줌으로써 그들이 북한 체제를 반대하여 들고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아쉽게도 반디 선생은 북한에 독자가 없는 작가입니다. 우리 모두가 나서서 반디 선생을 도와서 북한에 바로 이 고발의 책의 독자들을 만들어 나가야 하며 북한 주민들을 노예의 처지에서 해방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 모두 한사람이 되어 끝까지 싸워나갈 것을 호소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李知映(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