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이따금씩 30년을 써 온 변호사 일지를 들추어 볼 때가 있다. 그 안 무엇을 대하고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 변호사 일지 안에는 분노와 탐욕 그리고 인간의 끈끈한 욕망들이 물기가 빠진 채 겹겹이 굳어 있다.

우연히 수첩 속에서 꽃뱀에게 물릴 뻔한 착한 교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공과대학에서 국제적인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분이었다. 학회의 중진이기도 했다. 집에서도 자식들에게나 아내에게는 단정한 아버지와 남편이었다. 평생 공부밖에 모르던 그가 몹시 곤혹스러운 상황에 닥쳤던 것이다. 어느 날 나의 사무실로 찾아온 그가 쑥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고백했다.

“제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단골로 서브를 하는 아가씨가 있어요. 너무 예쁘고 상냥해서 쉬는 날 밖에서 식사를 사�募鳴� 했죠. 그리고 약속한 날 일급호텔 레스토랑의 고급 룸으로 초청해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샀어요. 같이 밥을 먹은 게 다죠. 그런데 그 아가씨가 나한테 연락을 해서 오백만 원을 자기 구좌로 넣으라는 겁니다.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정도면 보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느낌이 이상해요. 줘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의논하러 왔어요.”

“실례지만 젊은 아가씨하고 호텔 방으로 들어가셨나요?”
“아닙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순간적으로 뭐라고 할까 남자로써 강한 유혹을 받기는 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넘어갈 뻔했는데 자제했습니다.”

“여러 번 카페에서 봤다고 하는데 어떤 성품을 가진 아가씨였습니까?”
“이상해서 그 카페 매니저에게 조용히 연락을 해서 그 아가씨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상습적으로 손님에게 돈을 요구하는 버릇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 정도라면 제가 돈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돈을 준 사실 자체가 근거가 남으면 남에게 오해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조심스럽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문자 메시지를 자꾸 보내고 있어요.”

그는 내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그 내용은 이랬다.
‘교수님 제가 지금 술 한 잔 먹어서 그런데요. 한 마디만 할께요. 제 속 얘기를 말이죠. 제가 이 일에 뛰어든 게 이혼하고 자식이 두 명 있어서 그랬거든요. 애들은 친정에 맡겨두고 이 일에 뛰어들어 돈 벌고 있는 거예요. 제가 그날 일까지 빠져가며 교수님이 만나자고 하신 그곳에 갔거든요. 그런데 저한테 물어보시지도 않고 뽀뽀하려고 그랬잖아요? 그날 교수님 모습에 놀랐어요.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까 교수님이 저를 너무 가볍게 보고 무시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돈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이제 돈을 천만 원 달라고 하든 이천만 원 달라고 하든 할 말이 있으세요? 저는 정말 돈 때문에 카페에 나와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데 눈물이 뚝뚝 떨어지네요. 다시 만나요 그리고 거기서 의논을 하죠.’

만남에 대한 서로의 시각이 전혀 달랐다. 교수는 단골로 서브를 하는 그녀에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저녁 한번 사려고 한 게 동기였다. 사회적 명예 때문에 그 이상은 겁이 나서 엄두를 못내는 스타일이었다. 여자 측의 입장은 비즈니스인지 공갈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한번 돈을 주면 계속 구걸하듯 달려들 것 같기도 했다.

그날 저녁 삼십대 중반인 아들에게 저녁을 먹으면서 그 내용을 얘기했다. 비슷한 또래인 여자의 마음을 아들이 더 잘 파악할 것 같다. 아들은 심리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아버지 같은 사람을 그 여자가 밖에서 만났다면 결국 돈이지 뭐겠어요? 못난 사람을 만났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건데 돈 있고 잘 나가는 교수니까 돈 달라고 했네? 꽃단장하고 나갔잖아? 그 여자는 성(性)을 팔고 큰 돈을 받으려고 나갔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까 화가 난 걸 수 있지 공쳤으니까.”

집으로 돌아간 그 교수가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저 가지고 장난하셨죠? 학교하고 집에 찾아갈게요. 거기서 교수님 그런 사람이라고 알리면 되나요? 저 지금 화가 나서 더 이상은 못 참겠어요’

교수는 차라리 만나서 미안하다고 하고 돈을 줘버리면 어떠냐고 내게 의논했다. 만나면 악어에 물린 것 같이 깊은 늪 속으로 끌려 들어갈 것 같았다. 침묵하라고 했다. 교수는 다시 그 여자한테서 온 이런 문자 메시지를 내게 전송했다.

‘제 가슴 만지고 뽀뽀했다고 인터넷에 띄우고 공개하기 전에 나한테 오세요. 한 시간 기다릴게요. 그 안에 오세요’

성을 파는 불법 비즈니스를 넘어 그녀는 꽃뱀이라는 공갈범이 되어 있었다. 나는 교미를 하고 그 자리에서 수컷을 잡아먹는 암사마귀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람둥이들이나 돈 없는 사람은 절대로 꽃뱀의 대상이 아니다. 어설픈 사람들이 걸려들곤 했다. 유흥가의 곳곳에 꽃뱀과 암사마귀가 숨어 있는 모습을 변호사 사무실 안에서 전해 듣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