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취업자수 5000명 증가’라는 보도를 보고 숫자가 잘못된 것으로 생각했다. 본 적이 없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5만 명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2010년 이후의 ‘고용 동향’통계를 보면 계절별로 차이가 있긴 해도 25만 명을 내려간 적이 거의 없다. 2014~2016년엔 평균 40만 명씩 매월 취업자수가 늘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에도 평균 31만 명 수준이었다. 그런데 올해 2월 들어 취업자 증가 숫자가 10만4000명으로 떨어지더니 6개월 연속 10만 명 선에서 오르내렸다. 급기야 지난 달 취업자 증가율은 0.0%로 주저앉아 신기록을 세우고 말았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충격으로 고용 시장이 마비됐던 2010년 1월(마이너스 1만 명) 이후 8년 6개월 만이다.

7월 실업자는 103만9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만1000명 늘었다. 실업자 숫자는 최근 7개월 연속 100만 명을 넘겼는데, 이는 외환위기(1999년 6월~2000년 3월, 10개월) 이후 최장(最長) 기록이다. 지난달 실업률은 3.7%로 1년 전보다 0.3%포인트 올랐고, 고용률은 61.3％로 0.3％포인트 떨어졌다.

지난 주말의 이런 충격적인 통계 소식에 정부는 19일 일요일 부랴부랴 긴급 당정청(黨政靑)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는 최악의 경제지표를 받아 들고서도, 철저한 ‘자기반성’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니 ‘나를 믿고 좀더 참으라’는 목소리만 들린다. 정부 및 여권 관계자들은 지금의 결과가 前정부 탓, 인구 탓, 자동화 탓, 날씨 탓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언급하면서 ‘오랫동안 계속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해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고 그와 함께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돼 왔다’며 전 정부 탓을 한 적이 있다. 모두 왜곡된 사실에 기반한 ‘남 탓’이었다. 과거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제대로 펴본 적도 없을 뿐더러, 경제적 불평등은 오히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개선되었고, 고용 사정도 지금과 비교하면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훨씬 좋았다(2018.8.2.자 기사 『문재인의 ‘나도 모르는 말 대잔치’』 참고).

박근혜 정부 집권 2년 차이던 2014년 7월 취업자 수는 2597만 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50만5000명 늘었다. 문재인과 박근혜의 집권 2년 차 7월의 일자리 성적은 5000명대 50만5000명으로, 박근혜 쪽이 100배 높다.

대통령의 ‘남 탓’ 발언이 전염됐는지, 정부 및 여권 관계자들도 하나같이 ‘탓하기’ 바쁘다. 최악의 고용 지표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올해를 기점으로 생산가능 인구가 줄면서 일자리를 매달 수만 개씩 줄이고 있다’며 ‘인구 탓’을 했다. 갑자기 인구가 수백만 명씩 줄기라도 했는가? 오히려 인구는 늘었다. 인구 증가율이 둔화됐을 뿐이다.

올해 7월 ‘15세 이상 인구’는 전년 동월 대비 24만1000명이 늘었다. 생산가능 인구 감소에 대한 경고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통계청이 지난달 11일 발표한 '6월 고용동향 보도참고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생산가능 인구는 1만 명 감소했으며, 올해도 5만 명 감소가 예상된다. 취업자수 증가폭이 1월 33만4000명에서 7월 5000명으로 감소할 정도로 급격한 하락을 겪은 것에 비하면 변화 폭은 크지 않은 상태다. 즉, 현재까지 단기간에 엄청난 고용쇼크를 일으킬 정도의 감소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최악의 고용참사를 ‘인구 탓’으로 돌리는 건 부적절하다.

이외에도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관계자들은 폭염 탓, 자동화 탓을 했다. 취업자 수가 처음으로 10만 명 아래로 내려간 지난 5월에는 비가 와서 그렇다고 하더니 이제는 폭염 때문에 자영업종이 타격을 받아서 고용 감소로 이어졌단다. 그럼 해마다 여름이 되면 고용쇼크가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닌가?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인력이 필요하지 않은 구조적인 문제가 나타났다’는 통계청의 변명은 더 구차하다. 18세기 산업혁명 때도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면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 우려했었다.

이해찬 의원을 비롯한 여권 관계자들은 자기반성은커녕 노골적으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 탓을 하고 있다. 4대강 사업에 20조 원이 넘는 예산을 써서 4차 산업혁명에 투자가 되지 않았다, 기술혁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등, 별별 ‘탓’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박근혜 정부에 감사해야 한다. 최저임금 급격인상에 따른 소상공인들의 반발, 고용 악화 등의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이 정부는 세금을 더 투입하는 방식의 해법만 고수해왔다. 소득주도 성장이 아니라 ‘세금주도 성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올해 이미 34조 원이 투입이 되었고, 내년에는 21조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마구 뿌리고 있는 세금이 누구 덕에 많이 확보되었는가? 박근혜 정부 덕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유일한 호황은 세수(稅收) 호황이다. 올해 상반기 세금이 작년보다 19조 원 이상 더 걷힌 것으로 집계됐다. 조세 전문가들은 세수 증가의 원인으로 지난 박근혜 정부 당시 담배세 인상과 각종 비과세 제도의 철폐, 적극적인 세무조사를 통한 부가세 탈루 적발 등을 꼽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의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들이 효과를 나타내면서 지난해 정부 국세수입은 전년보다 22조8000억 원 늘어 역대 최대 세수 풍년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목표치 대비 초과 세수는 14조3000억 원에 달했다. 이렇게 확보된 세금도 지금처럼 물 쓰듯 쓰다보면 곧 재정적자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가 현재 들려온다.

감사할 줄 모르는 건 교만하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개입을 전제로 하는 ‘소득주도 성장’, 기업경영을 을(乙)에 대한 갑(甲)의 착취로 보는 ‘공정경제’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귀를 닫고 있다. 참 교만하다. 감사하지 못하면 늘 ‘남 탓’하는 원망과 불평이 따르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