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고용·소득분배·투자·경제성장률 등에서의 모든 경제지표가 ‘경제의 위기’를 말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기조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가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고용·소득 지표 악화는 소득주도성장을 오히려 속도감 있게 추진하라고 역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문이 막힌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인해 경제가 악화된 결과를 가지고, 경제가 악화되었으므로 더 소득주도성장을 해야겠다니, 이게 무슨 고집인가?

먼저 소득주도성장의 정체를 좀 알아보자. 경제학자들은 한결같이 ‘소득주도성장’에 대해 실소를 금치 못한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0년간 경제학을 배웠고 박사 학위 받은 지 30년이 됐는데 소득이 경제성장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는 이론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의 지적과 같이 소득주도성장은 경제학에 없는 이론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이 이른바 ‘포스트 케인지언(Post-Keynesian)’ 경제학자들이 연구해온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에 근거하긴 하지만, 임금주도성장 자체는 경제학의 개념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소득주도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근거는 경제이론상 무(無)에 가깝다.

세계 경제학계의 3대 학술지로는 ‘AER(American Economic Review)’과 ‘The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Journal of Political Economy’가 꼽힌다. 온갖 경제 논문들이 실리는 이들 학술지에서 지난 50년간 ‘임금주도 성장’ 논문은 단 한 편도 발견하기 어렵다.

‘임금주도성장론자’들은 스스로를 포스트 케인지언이라 부른다. 실제 케인스 학통을 이어받은 ‘뉴 케인지언’과는 전혀 다른 학파다. 정통 경제학은 임금이 노동의 수요와 공급, 한계노동생산성에 좌우된다고 본다. 반면 이들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에 의해 임금이 결정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자본가가 과실을 더 많이 가져가면 ‘이윤’주도성장이고, 노동자가 더 많이 차지해야 ‘임금’주도성장이 된다는 것이다.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 노동자의 임금이 오를수록 민간 소비는 늘어나고 경제가 성장한다는 논리다. 이런 시각에서는 2년간 29%라는 최저임금 인상이 한국 경제의 급성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이 가능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장하성 정책실장과 함께 소득주도성장을 이끈 양대 산맥이었던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소득주도성장론의 창시자(?)라 할 만하다. 그가 쓴 논문에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가 발간한 보고서에 언급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뚜렷하지 않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 포럼에서 “홍장표 전 경제수석 본인이 쓴 논문에 해당 명칭이 나오고 국제노동기구(ILO)가 발간한 출판물에서도 ‘임금주도성장’이란 명칭이 몇 차례 언급되긴 하지만 경제성장 이론으로 보기엔 무리이고 실제로도 경제성장 이론이 아니다”라며 “홍 전 수석이 쓴 논문도 해당 개념을 간단히 테스트한 정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경제성장 이론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즉, 지금껏 문재인 정부는 실체도 없는 ‘소득주도성장론’에 근거한 정책을 펴 왔고, 그 결과는 참사 수준의 경제 지표로 나타났다. 그리고 실체도 없는 ‘소득주도성장론’을 가지고 ‘폐기하라’, ‘아니다 지속해야 한다’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경제성장 실패 및 고용시장 경직 등의 근본 원인은 소득주도성장론 자체가 경제성장 이론이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26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실체가 없던 ‘소득주도성장론’을 확실하게 정의 내렸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3개의 정책 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첫째, 가계의 소득을 높이고
 둘째, 가계의 생계비를 줄여 가처분소득을 높이며
 셋째,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확충해 실질적인 소득증대효과를 높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자,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이 무엇인지는 분명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느낌을 받는가. ‘성장정책’으로 들리는가, 아니면 ‘분배정책’으로 들리는가? 비전문가가 봐도 경제의 ‘공급’측면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고, 오로지 ‘수요’측면만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득을 높인다는데, 그 소득이 어디서 창출되어 가계로 주어진다는 것인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공정경제’, ‘혁신성장’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마저도 들여다보면 기업을 옥죄는 ‘반기업’정책들 투성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자. 먼저 장하성 실장은 1) 가계소득증대 정책의 세부내용으로 ▲최저임금 인상 및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근로장려금 확대 등을 통해 저임금근로자의 소득을 높이고 ▲카드수수료·임대료 인하, 가맹점과 가맹본부간 불공정 거래관행 해소 등을 통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정당한 소득을 보장 ▲기초연금을 확대해 노인가구 소득을 높인다고 한다.

세부적으로 봐도 가계 소득을 높일 방법은 ‘최저임금 인상’과 ‘세금’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임금을 줄 기업이 먼저 경영실적을 높여서 수익을 내야할 것 아닌가? 기업의 성장과 이익창출이 어떻게 가계소득의 증대로 견인될 수 있단 말인가. 지금은 일반인들도 물건이 필요하면 인터넷에서 해외 직구(직접구매)를 하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이자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 시대이다. 즉 높아진 소득이 꼭 국내 소비로 이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중국, 미국처럼 엄청난 내수시장을 가진 나라에서도 통할까 말까한 이 이론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가능키나 하겠는가? 그리고 이미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는 나왔다. 취업자 수 최악 감소, 저소득층의 일자리 감소로 인한 소득 감소와 그로 인한 소득분배 악화라는 결과로.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업의 투자와 이익이 확대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장하성 실장이 말한 소득주도성장론의 두 번째 키워드는 2) ‘가계지출경감’ 정책이다. 그는 세부 내용으로 “문재인 케어로 의료비를 줄이고, 보육료를 줄이고, 주거비용을 줄이고 어르신들과 저소득층에게 통신비, 교통비 등을 줄여서 가계의 실질소득을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만 된다면야 바랄게 없겠다. 그러나, 서울의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고 있는 정부가 ‘주거비용을 줄이겠다’니 누가 현실성 있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리고 통신비, 교통비 등의 가격통제를 정부가 나서서 강화하겠다는 발상은 반시장적이다.

세 번째는 ‘복지확충을 통한 실질소득 증대 효과’라는데 ▲문화·체육·복지·관광·생활안전 시설 등 국민생활에 꼭 필요한 생활SOC 확충 ▲쇠락한 도시환경 재생 ▲고용보험 지원대상과 혜택 확대 ▲직업능력개발과 공공취업서비스 확대가 세부 내용이다. 모두 혈세가 투입되는 재정확대 정책이다. 그리고 역시나 ‘성장’의 결과물이어야지, 경제성장의 ‘동인’이 될 수 없다.

학계에서도 소득 주도 성장이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지속하기 위해 또다시 돈을 푼다면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없고 재정 건전성도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안민정책포럼에서 “소득주도성장은 이름과 달리 ‘성장이론’이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등 저소득층 소득을 올리는 데 초점을 둔 ‘분배이론’”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성장은 자본, 노동, 기술 등 공급 능력의 지속적인 성장이 있어야 가능한데 소득 주도 성장은 수요 주도 이론이기 때문에 장기적 성장으로 이어질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한 이론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소득주도성장 이론은 임금 증가→소비·수요 증가→생산·소득 증가→소비·수요 증가 등 선순환이 이어진다고 주장하지만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임금이 증가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인상으로 고용을 줄이게 되고, 결국 전체 노동 소득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임금 증가로 인한 비용 증가를 충당하기 위해 기업이 제품 가격 등을 올리면 소비가 증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은 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이윤 감소로 투자와 생산을 모두 줄일 수 있다. 김 교수는 “개방경제하에서 우리나라만 임금을 인상하면 세계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저하되고 결국 수출 감소로도 이어질 수 있어 대외 교역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재정과 통화 등 거시경제학 분야에서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도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경제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는 것은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의 노동시장 진입을 막는 ‘명백히’ 나쁜 아이디어”라고 비판했다.

안민포럼에 참석한 최광 성균관대 석좌교수(전 복지부 장관)는 “예산 중심의 퍼주기식 소득 주도 성장은 남미처럼 재정 고갈로 이어져 국가 존망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 교수는 “남미는 저소득층에게 최저임금을 올린 것이 아니고, 기름을 팔아서 다 나눠주는 소득 주도 성장을 했는데, 결과는 어떻게 됐나. 나라가 덜 성장하는 정도가 아니고 근본적으로 망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경고와 충고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마이웨이’다. 28일 문재인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9.7% 늘어난 470조5000억 원으로 확정했다. 두 자리 수에 가까운 예산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영향을 미쳤던 2009년(10.6%) 이후 10년 만에 가장 확장적이다. 우리 경제는 좀 더 망해봐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