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식(51) 코레일 사장이 지난 8일 발생한 열차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취임 10개월 만에 물러났다.

오 사장은 11일 "지난 2월 취임사에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코레일의 사명이자 존재 이유'라며 안전한 철도를 강조해왔으나, 최근 연이은 사고로 국민과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죄의 뜻과 함께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

하지만 오 사장은 이날 ‘사퇴의 변’에서 잇따른 철도사고의 원인을 또다시 전(前) 정권 탓으로 돌렸다. 그는 보도자료에서 “이번 사고가 우리 철도가 처한 본질적인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하면서도 “그동안 공기업 선진화라는 미명 아래 추진된 대규모 인력감축, 과도한 경영합리화와 민영화, 상하분리 등 우리 철도가 처한 문제가 방치된 게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가 지난 2월부터 10개월여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서울역에서 KTX 열차와 굴착기가 충돌하는 등 최근 3주 만에 11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일련의 사고를 과거에 누적된 구조적 문제 탓으로 돌렸다. 강릉선 KTX 사고 당일에는 “기온 급강하에 따라 선로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면서 날씨 탓까지 했다.

이번 사고의 원인을 과거 정부 탓으로 돌리는 건 오 사장뿐 아니다. 철도노조도 부실한 안전점검으로 최근 잇따라 발생한 철도 사고에 대해, 과거 정부의 인력 감축으로 안전점검 인력을 충원하지 못한 것이 주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코레일 측이 전 정부 탓을 할 자격이 있나. 코레일의 누적 적자는 약 15조 원 규모이다. 작년엔 약 8555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기본급을 2.6%(호봉 승급분 포함) 인상하고, 내년 정원을 3064명 증원하기로 했다. 이 증원으로 코레일의 덩치는 11월 현재 2만9600여 명에서 내년 3만1800여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인력 감축 이전인 10년 전 정원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영식 사장 취임 이후 대규모의 해고 노조원 복직과 특별 채용이 이루어졌다. 비정규직 6769명의 정규직 전환 결정도 있었다. 안그래도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50%가 넘는 조직인데, 모두 인건비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정들이다.

업무 평가 및 성과에 따른 승진이 아닌 3급까지 자동으로 승진하는 자동근속승진제를 2015년까지 약 10년간 유지해온 결과, 3~4급의 상위 직급자들이 약 70%나 되는 최악의 인력 구조를 낳았다. 감사원까지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만 경영 실태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이런 승진제도를 최연혜 사장 시절 겨우 폐지하면서도, 노조의 요구에 밀려 '대우 수당'이란 명목으로 임금 손실분을 보전해주기까지 했다. 직급이 자동으로 승진되지 않은 결과 발생하는 임금 손실분을 수당으로 메꿔주는 것이다.

노사간 단체 협약에는 열차 1회 운행 때 3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서울~부산 노선을 예로 들면 4시간50분쯤 소요되는 새마을호 운행시 동대구역에서 인력 교대가 이뤄진다. 열차 운행이 상당 부분 자동화되어 있는데도, 굳이 ‘3시간 후 교대’를 고집하는 규정 때문에 2배의 인력 수요를 발생시키는 비효율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런 방만한 인력 운용과 기존 직원들의 밥그릇부터 챙기는 노사가 안전점검 인력이 부족한 원인을 전 정부 탓, 과도한 경영합리화 탓으로 돌리는 행태가 참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한 발 더 나갔다. 문 대통령은 10일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철도에 대한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고강도 대책’ 마련과 함께 “혹시라도 승객 안전보다 기관의 이윤과 성과를 앞세운 결과가 아닌지 철저히 살펴보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낙하산 캠코더 인사’에 따른 기강 해이가 최근 잇따른 사고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성과 추구’ 탓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성과 추구’ 탓은 결국 이명박 정부 때부터 이어져 온 ‘공기업 선진화 방안’탓을 한 오영식 사장과 입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이윤과 성과 추구는 모든 기업의 기본이다. 공기업도 본질적으로 마찬가지다. 성과를 추구하기에 남보다 우위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혁신에 몰두한다.

오히려 이런 이윤과 성과 추구를 죄악시하고 ‘경쟁’을 배제했기 때문에 오늘날 코레일이 적자에 허덕이지만 직원은 배부른 상태가 된 것 아닌가. 경쟁이 없는 조직에서 ‘기강해이’는 필연적이다. 그 결과 비상경영체제에서도 안전 점검이 이루어지지 못해 ‘열차 탈선’이라는 대형 사고를 낳는 ‘나사 풀린’ 상태까지 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안전권을 국민 기본권으로 천명한 정부로서 국민께 송구하고 부끄러운 사고”라면서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책임조차 지적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에 대해 그토록 박근혜 정부를 몰아붙였던 문재인 정부의 계속되는 ‘남탓’은 이제 보기 민망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