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의 경제정책에 대해 훈수를 뒀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5일 '경제위기 탈출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남한의 경제를 망친 주범이며, 문재인 정부는 보수 정부가 망친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민족끼리는 "외세의존과 예속경제라는 구조적 모순으로 남조선 경제는 다국적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747공약'을 '칠 만한 사기는 다 치는 공약'이라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박근혜 역도 역시 서민경제와 복지를 떠들어댔지만 실제로는 재벌 위주의 반인민적인 경제정책을 강행하면서 서민경제의 목을 조르고 민생을 도탄 속에 몰아넣었다"면서 현재 한국경제 위기의 원인은 보수정권과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패당'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최근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매체는 "현 남조선 당국은 보수패당에 의해 엉망이 된 경제를 추켜세우고 소수의 가진 자들만 배불리는 사회적 적폐를 청산, 근로자와 사회적 약자의 소득을 늘리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고 썼다.

이어 "반면 자유한국당 등 보수패당은 저들의 죄악에 대한 반성은 꼬물만큼도 없이 현 집권당국에 경제위기의 책임을 들씌우는 것에만 피눈이 돼 돌아가고 있다"면서 이는 "자신들이 저지른 경제파탄의 죄악을 가리고, 적폐청산의 초점을 흐리려는 교활한 속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건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 대해 한국의 언론과 경제전문가, 기업인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이를 두고 '절세위인의 민족애·동포애의 발현'이라고 경탄했다고 밝혔다.

이 매체는 "남조선 경제의 회복이 불명확한 조건에서 출로는 오직 북남경제협력밖에 없다"면서 "북남관계의 활성화는 섬나라나 다를 바 없는 남조선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훈수’를 듣고 있으면, 문재인 정부가 주장해온 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북한매체는 ‘소수의 가진 자들만 배불리는 사회’라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우리가 함께 이룬 경제성장의 혜택이 소수의 상위계층과 대기업에 집중되었고, 모든 국민에게 고루 돌아가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부의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나라”라고 했고, 1대 99 사회, 승자독식 경제라고 언급했다.

북한이나 문재인 대통령이나 ‘사실’이 아닌 ‘거짓’을 얘기했다. 소득분배 정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지니계수와 소득 5분위 배율을 보면, 우리나라는 소득 분배가 매우 양호한 그룹에 속한다.

OECD 국가들의 2014~2016년 중 지니계수 최신 수치를 비교한 순위에서 한국은 36개 국가 중 16위(0.295, 2015년 수치)로 독일(0.293)과 프랑스(0.291), 스위스(0.296)와 비슷했고, 캐나다(0.307), 이태리(0.328), 일본(0.339), 스페인(0.341), 영국(0.351), 미국(0.391)엔 앞섰다.

부의 양극화는 보수 정권에서 개선되었고, 좌파 정부에서 악화되었다. 통계청이 작성한 소득 5분위 배율을 보면,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악화하는 추세를 보였지만, 그 이후부터 2016년까지 개선되는 추세다.

1분기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소득 5분위 배율은 2003년 5.28에서 2009년 5.93으로 높아져 불평등해졌다. 2·3·4분기도 유사한 추세를 보인다. 그러나 이후로는 꾸준히 낮아져 개선되어 2015년엔 4.86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2016년(5.02), 2017년(5.35), 2018년(5.95)로 다시 높아졌다. 특히 2018년 1분기 소득 5분위 배율은 금융위기 여파가 있었던 2009년(5.93) 이후 가장 높았다.

지니계수는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년 0.306에서 2008년 0.314로 높아졌다가 2013년 0.302로 낮아졌다. 2015년까지 낮아지던 지니계수는 탄핵 정국이 시작된 2016년 급격히 상승했다. 소득 5분위 배율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GDP 대비 기업소득의 비중은 경제성장률보다 계속해서 높아졌지만, 가계소득의 비중은 계속해서 낮아졌다”며 “오래 전에 낙수효과는 끝났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거짓이다.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비교는 장하성 전 정책실장의 통계 왜곡을 되풀이한 것이다. 글로벌화된 경제, 수출비중이 높은 경제일수록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이 해외에서 이익을 창출하면 국내로 들어오는 본사 이익은 늘어나지만, 임금은 당연히 현지에서 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의 수익은 가계 수익으로 꾸준히 이전해왔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10일 문 대통령 기자회견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하성의 거짓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문재인씨(대통령)'라는 제목으로 대통령 발언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이 교수는 "지금도 한국은행의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 통계로 확인이 가능하다"며 우리나라의 노동소득 분배율 그래프를 제시했다. 대기업의 수익이 가계 수익으로 이전하는 것을 나타내 준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해당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 2010년 59.4%를 저점으로 꾸준히 상승, 2016년 63.3%까지 올랐다가 2017년 63.0%를 기록했다. 노동소득 분배율은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피용자 보수)이 차지하는 비율로, '노동 가격'이 '자본 가격'보다 높을수록, 노동집약적 산업일수록, 전체 취업자 중 근로자 비율이 높을수록 커진다.

이 교수는 '낙수효과'가 오래전에 끝났다는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낙수효과는 고소득층의 소득 증대가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도 증가하게 되는 효과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교수는 "대기업 법인세가 가계소득으로 이전하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함부로 복지를 늘릴 수 있는 것"이라며 "삼성전자 대주주가 국민연금인데, 국민연금의 배당금이나 주가 차익을 통해 우리의 미래 소득으로 이전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소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간접소득도 엄청나다"며 "고소득자들은 한 달에 기업과 본인 몫으로 의료보험료만 약 700만 원(347만8580원×2) 내지만, 직장 저소득층은 1만7460원, 지역가입자는 1만3100원만 의료보험료를 낸다. 이것도 다 간접 소득분배"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인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시각이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거짓이고, 선동이다. 대기업과 과거 정부를 ‘적폐’로 몰기 위해 통계까지도 부정하며, 왜곡한다. 둘다 ‘남북경제협력’이 경제 위기의 돌파구가 될거라는 ‘환상’도 공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