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야당 정치인이자 국회의장인 후안 구이도를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공식 인정한다고 23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결정은 후안 구이도 의장이 이날 니콜라스 마두로 독재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이끌며 수만 명 앞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강행한 직후 이뤄졌다. 앞서 베네수엘라 의회는 구이도 국회의장에게 과도정부 대통령직을 수행하도록 하고 공정한 대통령 선거를 준비할 권한을 주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자유와 법치 체계를 위해 용기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며 “베네수엘라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미국이 갖고 있는 모든 경제력과 외교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며 미국 외교관들이 72시간 내, 즉 토요일 이전에 베네수엘라를 떠날 것을 명령한다고 했다. 이에 구이도 국회의장은 외국 대사관들에 직접 서한을 보내 베네수엘라를 떠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은 마두로 정권을 베네수엘라 정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미국은 미국 대표부가 베네수엘라에 남아 있어달라고 말한 구이도 임시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를 통해 베네수엘라와 계속 외교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마두로는 이날 대통령궁 발코니에서 베네수엘라 국기를 흔들며 “미 제국주의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괴뢰정부를 만들기 위한 공작을 하고 있다”며 “어느 누구도 항복하지 않을 것이고 승리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현재 마두로에 대한 공개 지지 의사를 밝힌 국가는 터키와 멕시코, 볼리비아 등이다.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3일 마두로와 전화통화를 갖고 “마두로 동지, 굳세게 맞서 싸워라. 터키는 당신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에보 모랄레즈 볼리비아 대통령 역시 “제국주의자들이 민주주의에 치명타를 내고 남미 사람들을 자멸하게 하려는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들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더 큰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년간 베네수엘라를 극좌 성향으로 움직이게 한 핵심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중요한 지원 세력에 대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큰 돈을 베네수엘라에 대출해 줬고 마두로를 외교적으로 보호해주는 역할도 맡아왔다. 베네수엘라의 가장 가까운 동맹인 쿠바의 경우는 쿠데타 시도를 사전에 막기 위한 정보 인력의 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만약 구이도를 체포하거나 탄압을 가하게 된다면 미국이 더욱 강력한 조치에 나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아직도 인구의 3분의 1이 마두로를 지지하고 미국을 의심의 눈초리를 보고 있는 가운데 이런 조치를 강행하면 마두로의 권력을 오히려 공고히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구이도 역시 이번 달 짧은 시간 정부 당국에 억류된 바 있다. 베네수엘라 정권은 유력 야당 인사들을 감옥에 보내거나 추방, 혹은 가택연금을 시키고 있다.

미국 고위 행정부 관계자는 이날 마두로가 구이도나 다른 의원들에 폭력을 가한다면 미국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고 거듭 경고했다. 폼페오 장관은 “미국 대사관과 관계자들의 안전과 안보를 위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 수 있도록 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