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과의 새로운 형태의 군비 확장 경쟁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동맹국들로 하여금 중국의 대표적인 이동통신회사 화웨이에 강경한 입장을 택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미국의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26일 지난주 미국을 방문했던 제레미 헌트 영국 외교장관은 하나의 질문에 봉착했다고 한다. 영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위험을 감수하면서 화웨이가 영국에서 차세대 컴퓨터와 핸드폰 네트워크 기술을 전파하도록 하는 것을 막아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폴란드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고 한다. 미국은 폴란드에 화웨이가 5세대(5G) 네트워크를 폴란드에서 설치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는 폴란드의 결정에 따라 폴란드에 파견하는 미군의 규모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 당국자들은 지난해 화웨이가 네트워크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하는 독일을 방문해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당국자들이 “저렴한 중국 이동통신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따른 경제적 이익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에 대한 안보 위협이 훨씬 클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미국 정부는 지난 한 해 동안 공개적으로나 비공개적으로 화웨이의 사업이 팽창하는 것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전세계는 재래식 무기가 아닌 기술을 사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군비 확장 경쟁에 들어섰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런 새로운 기술 경쟁이 재래식 무기보다 미국 안보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뉴욕타임스는 핵무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사이버 세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5G 기술에서 우위를 점하는 국가가 이번 세기의 정보력을 비롯해 경제적 및 군사적 우위를 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전세계는 기존의 통신망 체계에서 5G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변화는 진화 수준이 아니라 혁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5G 기술의 장점 중 하나는 사용자들이 더 빠른 네트워크 속도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스마트폰 네트워크만으로도 각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아울러 5G 기술이 도입된다면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실시간으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 송수신을 필요로 하는 차세대 기술이 현실화될 수 있다. 또한 공장과 건설 현장, 나아가 도시 행정까지도 지금처럼 사람의 도움과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다. 아울러 지금 개발되고 있는 가상 현실과 인공 지능 관련 기기들도 더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다.

이와 같이 5G 기술이 개발된다는 것은 정보당국과 사이버 공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5G는 과거 네트워크와는 달리 소비자가 모르는 상황에서도 업데이트 등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이는 5G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사람이 정보의 흐름 역시 관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울러 이런 정보를 수정하거나 송수신자의 동의 없이 복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행정부의 전현직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 정부는 이런 5G 네트워크의 군비 경쟁에서 미국은 승리자는 한 명뿐이어야 하며 패배자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백악관은 미국 사업체들로 하여금 중국산 핵심 통신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고도의 네트워크 기술을 보유하는 것을 오랫동안 우려해왔다. 이를 통해 중국 정보 당국이 미국의 군대나 정부, 기업체의 통신망에 접근해 정보를 빼돌리거나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 정보 당국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해킹 그룹이 미국 회사들을 해킹한 사례가 여러 차례 밝혀지기도 했다.

미국의 이런 우려는 여러 국가들이 누구로부터 5G 기술을 도입할지 결정하고 있는 지금 더욱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 당국자들은 과거부터 더욱 더 큰 문제는 중국 정부가 더욱 더 전체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중국 정부가 화웨이와 같은 회사가 만들고 보유한 네트워크를 감시하거나 아예 이를 정부에 내놓도록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앞으로 6개월이 매우 중요하다고 파악하고 있다. 여러 국가들이 이 기간 중 수십억 달러 상당의 계약을 체결해 5G 사업자를 결정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샌포드 번스타인 이동통신서비스 전문가는 뉴욕타임스에 “이 기술(5G)은 전기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며 “모든 것들이 연결되게 될 것이고 5G 네트워크가 스마트 시티 등의 중추 신경계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화웨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높이고 투자를 제한하며 해킹 등에 나선 여러 중국인들을 기소한 것과 크게 보면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미국의 돈을 오랫동안 빼앗아 왔다고 주장해왔다. 화웨이가 어떤 간첩 활동에 가담했다는 실질적인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주장은 다른 국가로 하여금 미국의 목적이 정말 안보 우려 때문인지, 아니면 중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해서인지 여부에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주장했다.  또한 서방 국가들은 현재 어느 편에 설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근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체포되고 캐나다인들이 중국에서 보복성으로 체포되는 등 중국이 어떤 조치에 나설지도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화웨이에 대한 우려는 아직은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통신을 사용한 간첩 활동에 심증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다는 것이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역시 이달 초 중국을 위해 간첩활동에 나선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조국을 아직 사랑하고 중국 공산당을 지지한다”면서도 “다른 국가에 해를 주는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직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 계약직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지난 2010년께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NSA는 비밀리에 화웨이의 본사에 침투하는 작전을 실시했다. NSA는 화웨이가 여전히 인민해방군에 의해 운영되고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수사하려 했다고 한다. 런정페이 역시 군부를 떠난 적이 없다는 의혹에서 비롯됐으나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폴란드는 최근 전직 정보 당국자와 화웨이 직원(注: 폴란드 지사 영업이사) 왕웨이징을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이는 화웨이가 간첩 활동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일 수 있다. 폴란드 정부 측은 화웨이로부터 곧바로 해고당한 왕웨이징이 중국 정보 당국을 위해 일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외교관들 역시 왕웨이징이 이번에 체포된 폴란드 정보 당국자를 도와 폴란드 정부의 보안 소통 네트워크를 침투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화웨이는 이 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왕씨의 변호사 역시 자신의 의뢰인은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줄다리기 싸움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