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법원이 김정남 살해 주범 도안 티 흐엉의 살인혐의 공소를 기각하고 상해 혐의만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 8개월을 선고했다. 구속된 상태에서 형량 대부분을 채웠기에 곧 석방이 유력하다. 앞서 공범으로 기소되었던 시티 아이샤는 아예 공소가 취소되어 어떤 벌도 받지 않고 석방된 바 있다. 말레이시아는 이런 나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레이시아는 이제 보니 법치 국가가 아니다. 두 여성을 사주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요원들은 사건 직후 다 도망가고, 그나마 용의자 신병과 증거를 확보할 유일한 길이었던 북한대사관 압수수색은 북한이 평양 주재 말레이시아 대사관 직원과 가족을 사실상 인질로 억류하자 말레이시아 정부가 금방 꼬리를 내려 무산되었다. 이어 인도네시아의 항의와 로비가 들어오자 시티 아이샤는 석방되었고, 이걸 보고 베트남이 우리라고 가만있을소냐 하면서 로비하니 도안 티 흐엉도 곧 석방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용이 엄금된 화학무기 VX가 사용된 사건임에도 살인범이 없다는 게 말레이시아 사법당국의 결론이다. 세상 어느 배우지망생이 몰래카메라 상황을 가정해서 다른 사람 얼굴에 화학무기를 묻히나. 그런 말도 안되는 피고인 주장을 받아들이는 국가와 법원 판사들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말레이시아 사법당국 논리대로라면 김정남을 죽인 것은 누구인가? 김정남은 무엇 때문에 죽은 것인가. 이 나라가 정녕 제대로 된 법치국가였다면, 우선은 죄와 벌을 명명백백히 밝혀 올바른 선고를 내리되 외교의 문제가 있다면 정부가 형 확정 후 사면을 했으면 될 일이다. 이렇게 그냥 무죄나 다름없이 풀어줘버리면 사건의 실체 진실은 묻혀버리고 공모살인을 한 두 여성은 제 나라로 돌아가 당당히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가 이런 나라라면 여행주의국가로 지정하는 게 옳다고 본다. 외국인이 공항에서 테러를 당했는데도 테러 실행범을 단죄 않고 놓아준다면, 항차 북한 특수부대 요원들이 이 나라 수도 한복판에서 활개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말레이시아는 김정남 사건이 터진 이래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아웅산 테러 이후 북한과 단교한 버마와도 차이를 보인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말을 건네는 외교결례를 범했음에도 이 나라가 한국에 공식적으로 어떤 항의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들려오는 말이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언론들이 문제점을 대신 지적하고 나섰을 정도다. 비굴한 나라인가, 참을성이 많은 것인가.

김정남이 북한사람이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자도 아닌데다 사건 발생시기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 때여서 우리나라가 개입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았다. 잔인한 화학무기로 사람을 죽인 두 여성은 피해자에 대해 이제껏 단 한 마디 사죄의 말도 표명하지 않았고, 김정남은 어떤 나라도 돌보지 않는 가운데 비참하게 죽었다. 김한솔이 '자유조선'과 내응(內應)하고 있는 게 정말 맞다면 세력을 규합하여 훗날 반드시 아버지의 원수를 갚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