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드드득’ 정도 발사되는 게 아니다”

12월 16일 광주지방법원 201호 형사대법정에서 전두환(全斗煥) 前 대통령의 사자(死者) 명예훼손 재판의 9차 공판이 열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사자(死者)명예훼손을 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주장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조 신부와 5•18 희생자,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광주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앞서 조 신부는 1989년 국회의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80년 5월 21일 오후 1시에서 1시 30분, 2시 정도에 상공에서 헬기 소리와 함께 기관총 소리가 드드득 세 번 울렸다”고 주장한 바 있다.

11일 광주지법 형사 8 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는 육군 1항공여단 501항공대대 31항공단 103항공대 소속으로 광주에 500MD 기종의 헬기를 몰고 출동했던 조종사 조 모씨와, 전일빌딩 진압 작전에 투입된 11공수특전여단 61대대 소속 중대장 최 모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과거 열린 재판에서는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이른바 ‘목격자들’이 대부분 증인으로 출석했으나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의 요청에 따라 당시 근무했던 헬기 조종사들과 상황을 목격했던 군인들이 증인으로 출석하게 됐다.

500MD를 몰고 간 조 씨는 “광주에 출동할 당시에는 무장한 채로 떠났으나 광주 도착 후 무장을 해제했다”며 “헬기사격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다른 헬기 조종사들도 모두 무장을 해제했고 교신을 서로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헬기사격 명령이나 헬기사격이 이뤄졌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고 했다. 그는 500MD에 장착된 7.62mm 구경의 미니건으로 발사하면 총알이 엄청 많이 날아가고 떨어진 탄피와 실탄이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7.62mm 구경의 미니건은 느리게 발사하면(1단, low) 1분에 2000발, 빠르게 발사하면(2단, high) 1분에 4000발까지 나가는 총이라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 변호사는 과거 재판에서 한 증인이 주장한 내용을 소개하며 조 씨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과거 한 증인은 ‘500MD가 방송장비를 달고 선무방송을 했으며 옆 창문이 열려 있었고 총이 거치돼 있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조 씨는 500MD에는 방송장비를 달지 않는다며 “비행 중 옆 창문을 열 수 없다”고 했다.

검찰 “조금만 쏠 수도 있다”

검찰은 반대심문에서 영상 하나를 제시했다. 500MD 사격 장면인데 9~10발 정도만 날아간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었다. 앞서 재판에서 쟁점이 된 문제 중 하나는 미니건으로 사격하면 수천 발이 날아가고 탄피가 수 없이 많았을 것이나 아무도 이를 발견한 사람이 없었다는 광주 출동 조종사들의 발언이었다. 이에 따라 검찰이 500MD 실사격 과정에서 9~10발 정도만 발사된 영상을 제시한 것이다. 조 씨는 “당기면 (6열 회전총열이) 계속 돌아가기 때문에 엄청 많이 나간다”라고 했다. 이렇게 조금 발사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냐는 검찰에 질문에는 “조종사가 트리거(방아쇠)를 당기다가 뺀 것 같다”고 했다.

“저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조 씨는 검찰이 헬기 위협사격이 있지 않았느냐, 없다고 하는 증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저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사격 명령은 없었습니다. 실탄은 마지막 날(27일) 전남도청에 공수부대가 들어갈 때 얘기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진압이 안 되면 사격하라는 준비는 하라고 했지 사격을 한 적도, (상부에서) 하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검찰은 군(軍)의 과거 문건 중 광주사태 당시 헬기가 ‘위력시위’를 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실을 조 씨에게 물었다. 조 씨는 이 문건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력시위의 뜻은 “편대를 이뤄 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비행만 하는 게 위력시위냐”라고 묻자 “그 뜻이다. 그냥 비행하는 것이다. 실탄은 장착하지 않은 채 출동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계속해 ‘증인이 아는 한에서 모르는 것 아니냐’고 했다. 조 씨는 “네”라며 “마지막 날까지 실제 기관총이나 실탄이 장착된 적은 없다”고 했다. 검찰은 500MD 자체가 위력을 나타낼 수 있다면 처음 출동할 당시에는 무장을 왜 했느냐”고 했다. 또 “지상에서 헬기가 무기를 장착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위력을 보이기 충분한데 왜 무장했느냐”고 했다. 조 씨는 “그건 내려갈 때 싣고 간 것이고 광주에선 무장해제했다. 27일 도청 진입할 때까지 진압이 안 되면 사격하려고 준비한 것뿐”이라고 답했다.

“억류된 내외신기자 구출했다”

이날 출석한 증인 중 다른 한 명은 27일 새벽 전일빌딩 진압 작전에 투입된 11공수특전여단 61대대 소속 중대장 최 모씨였다. 그 역시 헬기사격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최 모씨는 27일 새벽 2시경 조선대 뒷산에서 우회해 전일빌딩 쪽으로 진입했다고 했다. 작전은 새벽 4시에 시작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전일빌딩 정문으로 들어갔고 내외신기자 10여 명이 억류됐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내부에 (광주) 시민은 없었고 내외신기자를 억류하는 보초 1명이 총알 1발이 들은 총을 들고 있었다. 기자들은 밖에서 자물쇠를 잠근 방에 갇혀 있었다. 꼭대기층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는 “교전은 없었고 보초는 학생이었는데 순순하게 총기를 건넸다. 이런 보고를 받고 대원들에게 자물쇠를 부수라고 하고 나도 현장으로 올라갔다”고 했다. 그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기자가 있었기 때문에 내신 기자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에게 위험하니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취재를 하려고 하는 건지 다들 흩어져 버렸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한 방청객은 “감금이란 표현은 잘못됐다. 역사에 죄를 짓느냐”고 소리쳤다가 퇴정조치를 받았다. 최 씨는 “외신기자 한 명이 우리(부대원)를 촬영한 사진이 있고 1988년 국회청문회에서 사진이 공개됐다”며 당시 부대원들과 기자들이 상황을 다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이 외부에서 잠긴 것인지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묻자 최 씨는 “그럼 그 안에 왜 들어가 계속 있느냐”고 했다.

그는 전일빌딩 10층 방송실에서 탄흔 150개가 발견된 것과 관련, “당시 탄흔은 확인 못했고 총기는 확인해 보병부대에 인수했다. 이 총기는 사용할 목적이 아니라 회수할 목적으로 모아놓은 것 같았다. 사용 목적이면 카빈과 M16을 구분해놓을 텐데 중구남방으로 300~400여 정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두운데 헬기가 떠있는 건 이해 못해”

그는 전일빌딩과 관광호텔을 진압한 이후 전남도청 외곽으로 진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도청 외곽 확보 위해 들어가다 YWCA에서 사격을 받았고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건물에 누가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YWCA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 있었던 사람들 모두 생포했고 작전은 동이 트기 전에 끝났다고 했다. 그 이후에는 전남도청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최 씨의 부대는 총알이 날아오는 곳으로 보이는 건물 위를 향해 총을 쏘며 진입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에는 어두워서 총격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고 했다.

변호인은 전남도청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데 특공조가 레펠 하강을 하며 사격했다고 과거 증언한 사람의 주장에 대해 최 씨에게 물었다. 또 27일 새벽 5시 전후 헬기가 전일빌딩으로 날아가 기수를 낮추고 있었다는 한 증인의 발언도 소개했다. 최 씨는 27일 작전하는 동안 헬기 사격이 없었던 것은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헬기를 보지 못했다. 여명 밝기 전 그렇게 어두운데 헬기가 떠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본 것과 보고받은 것들이 혼재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헬기사격 실험하나?

한편 판사는 증인 심문이 끝난 뒤 앞으로의 재판 일정 등을 소개하며 앞으로 다퉈야 할 법리들을 소개했다. 그는 피고인과 검찰 측 증인 거의 대부분을 출석시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피고인이 신청한 헬기 사격 검증이라고 했다. 판사는 “법원에서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500MD 화력이 논란이라면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며 “전일빌딩 탄흔이 이런 화기에 의해 생기게 됐다는 것을 (피고인이) 전혀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재판부는 곤란하지만 안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판사는 앞으로 다툴 법리의 핵심은 ‘21일 헬기 기총소사가 드드득 있었다’는 조비오 신부의 발언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한 전두환 대통령의 발언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것인지 여부라고 했다. 그는 허위사실을 적시했어야 하는데 무엇이 허위사실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기총소사에 대한 정의부터 내려야 한다고 했다. 기총소사가 없었어도 소총이나 M60의 사격이 있었다면 이를 기총소사로 볼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기관총으로 안 쐈지만 넓게 통용되는 기총소사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한 21일이 아닌 다른 날 사격이 있었다면 날짜가 다르지만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로 볼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변호사는 “헬기사격 의혹이 많고 이 법정이 이를 조사할 수 있는 마지막 재판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추가로 헬기조종사들을 증인으로 신청한다고 했다. 검찰은 “오늘도 밝혀졌지만 헬기조종사들은 자기들은 모른다, 사격명령 모른다, 내 부대 아니라 모른다, 이렇게 말한다. 증인들이 헬기에 대해 아는 건지 재판부가 판단해달라”고 했다.

“너희는 광주사람 아니야?”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 출석 문제도 다시 언급했다. 그는 “언론 보도라 사실은 잘 모르지만 12.12 오찬, 골프회동 등을 보면 재판부가 (출석 필요성을) 다시 판단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변호인은 즉각 반박했다. 그는 “주소지가 아닌 원거리 재판을 받게 했고 관할 위반을 떠나 이전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검찰은 ‘경미한 사건’이기 때문에 피고인 출석 없이도 재판 받을 수 있다, 광주 목격자들의 권리 보호 차원이다라고 해 이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헬기 사격이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본질이지 왜 쟁점을 바꾸느냐”고 반박했다. 검찰은 “관할권이 있는 곳에 참석해야 한다”며 “피고인이라도 대통령을 한 번 하신 분이고 시민이라면 나와야 한다. 치매가 있고 거동이 어려워 광주까지 오기 어렵다고 하는데 언론기사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언론만 보면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설전이 벌어지자 방청객 중 한 60대 여성이 “치매가 20만 원짜리 밥 먹고 골프를 치느냐. 다음 재판에는 전두환이 딱 앉혀놓고 합시다, 지가 뭔데”라고 했다. 법원 직원이 이 여성을 퇴정시키려 하자 그는 “왜 말을 못하게 해. 너희들은 광주 사람들 아니야?”라고 했다.

다음 공판은 2월 10일에 열린다. 한편 이날 한 지역 언론의 기사 제목은 <전두환측 증인들 법정서 ‘모른다. 없었다’ 발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