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이저리그(MLB) 시즌 개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은 시범경기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모든 야구팬들이 새로운 시즌을 고대하고 있지만은 않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 훔치기’ 관련 보도가 연일 스포츠면 야구섹션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2017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다. 전신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1969년 창단한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했다. 애스트로스는 2019년에도 월드시리즈에 올라갔지만 워싱턴 내셔널스에 패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사인 훔치기’ 스캔들은 애스트로스가 우승을 차지한 2017년 시즌부터 2018년 시즌 일부 사이에 벌어졌다.

MLB 측은 이와 같은 스캔들이 사실로 확인되자 제프 루노 단장과 A.J 힌치 감독에게 1년 자격 정지 조치를 내렸다. 휴스턴 구단은 자체적으로 루노 단장과 힌치 감독을 해임했다. MLB는 또 휴스턴 구단의 2020~2021년 신인 드래프트 1~2라운드 지명권을 박탈하고 벌금 500만 달러를 부과했다. 미국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사인 훔치기’로 이런 수준의 중징계가 내려진 것은 대단한 일이라는 의견부터, 애스트로스의 2017년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박탈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고 있다. 현대 야구 역사상 한 구단에 대한 가장 큰 중징계가 내려진 것은 사실이다.

이번 사건을 메이저리그 역대 최대의 스캔들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일부 개인이 약물을 사용해 징계를 받는 일은 과거에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는 특정 선수 한두 명, 혹은 구단 경영진 일부만이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구단 관계자와, 코치, 선수 모두가 가담했다.

논란이 된 ‘사인 훔치기’ 사태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사인 훔치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처음으로 보도한 것은 월스트리트저널의 야구 전문 기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다. 그는 MLB 구단측이 자체 조사를 벌인 뒤 휴스턴의 힌치 감독에게 1월 2일 전달한 공문을 입수, 2월 7일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MLB는 68명의 증인을 심문하고 수십만 건의 이메일과 문자 등 통신 기록을 조사했다고 한다.

사건의 시작은 2016년 9월 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애스트로스 구단의 경영팀 인턴인 데릭 비고아는 제프 루노 단장 앞에서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을 선보였다. 비고아는 현재 경영팀 수석매니저로 승진했다. 당시 그가 소개한 것은 컴퓨터 엑셀 기술 등으로 프로그램한 알고리즘을 사용한 기술이었다. 이를 통해 상대편 포수의 사인을 훔칠 수 있다는 설명을 내놨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코드브레이커(암호해독자)’였다. 애스토르스의 직원들은 이 시스템을 ‘어둠의 마법(dark arts)’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시스템의 원리는 중견수 뒤쪽 관중석에서 포수의 사인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휴스턴의 더그아웃 쪽으로 송출하는 것이었다. 전자기기 사용이 적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송출된 영상은 더그아웃에서 클럽하우스로 향하는 복도에 설치돼 있었다. 경기 시작부터 어떤 사인에 어떤 공이 들어가는지를 컴퓨터로 기록, 분석했다. 경기가 계속 진행될수록 사인을 맞출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정 사인이 나왔을 때 어떤 공이 실제로 던져진다는 데이터가 모아지기 때문이다.

사인을 찍은 영상이 더그아웃쪽으로 실시간 전송되면 선수들은 이런 신호를 타석에 있는 타자에게 전달했다. 실시간으로 사인을 확인한 더그아웃쪽 선수는 야구배트나 전동 마사지건 등을 사용해 쓰레기통을 세게 쳤다. 이를 미국 언론에서는 ‘Banging Scheme(쾅쾅 음모)’라고 부른다. 애스트로스 선수들은 변화구나 체인지업과 같은 속도가 떨어지는 공이 들어오면 쓰레기통을 쳤다. 구속 변화에 대비하라는 신호였다. 직구가 들어올 때는 쓰레기통을 치지 않는 식으로 타자에게 어떤 공이 오는지 알려줬다.

언론에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인 훔치기 방법은 이 정도이다. 그러나 일부 유튜버들이 자체적으로 분석한 영상에 따르면 쓰레기통을 때리는 소리가 한 번 울리는지, 여러 번 울리는지에 따라서도 공의 구질이 바뀌었다. 무조건 스윙을 해야 하는 공이 들어올 때는 여러 차례 쓰레기통 때리는 소리가 울리는 경우도 있었다.

루노 단장은 비고아 인턴 등으로부터 ‘코드브레이커’에 대한 설명은 들었던 것 같지만 선수들이 쓰레기통을 두드리는 것은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과거 경기의 사인을 분석해 어떤 공이 들어오는 것인지 파악하는 것은 합법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시간 사인을 훔칠 계획이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야구 선수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의 스포츠 선수들도 비난에 나섰다. 일본 출신의 시카고 컵스 투수 다르빗슈 유는 17일 트위터에 애스트로스가 받은 월드시리즈 챔피언 사진을 공유했다. 그는 “아름다운 쓰레기통이다, 아주 마음에 든다(Gorgeous trashcan! I like it!)”라고 적었다. 그는 2017년 월드시리즈 당시에는 LA 다저스 소속이었다. 그는 3차전과 7차전에 출전해 모두 패배했다.

MLB에서 가장 각광받는 선수 중 한 명인 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 역시 휴스턴을 비난했다. 그는 애스트로스가 받은 우승 트로피를 언급하며, “어떤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은 이를 얻지 못했다. 정당한 게임을 통해 얻어낸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애스트로스는 2017년 월드시리즈 진출 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에서 뉴욕 양키스를 만나 승리를 거뒀다. 마이크 트라우트 LA 에인절스 선수는 “휴스턴의 일부 선수들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됐다”고 했다.

뉴욕 양키스의 팬인 농구스타 르브론 제임스도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나는 야구를 하지 않지만 스포츠계에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 나로부터 부정하게 우승 트로피를 빼앗아갔고 이를 알게 됐다면 나는 분노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 트위터에 욕설도 추가해놨다.

한편 애스트로스 선수들 중에서도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인을 훔친 것이 어느 정도 이점(利點)으로 작용됐을 수는 있지만 열심히 싸운 선수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까지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2017년 정규시즌에는 실시간으로 사인을 훔치는 일이 가능하지만 월드시리즈와 같은 큰 경기에서는 모든 팀이 한 공에 대해 하나의 사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인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를 분석해 대응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박탈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