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사시사철 푸르른 상록수 같이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주변상황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는 굳세지 못한 감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세월 따라 사랑도 변한다. 특히, 뜨거운 정념(情念)으로 타오르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청춘의 사랑은 계절이 바뀌면 종말이 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예를 들어 피서지 여름해수욕장에서 남녀가 인체의 요처만 가린 해수욕복을 입고 쉽게 만나 사랑을 하다가 가을이 오기 전에 파탄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지난 여름 능금이 익어갈 때 우리는 꿈꾸었지 가을에 올 행복을 그러나 철없는 여인의 허무한 꿈 능금이 빨갛게 익기도 전에 사랑은 끝났는가 행복한 꿈의 계절 가을이 오기 전에”라는 가사를 가진 이영숙의 <가을이 오기 전에>라는 노래는 바로 이런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우수(憂愁)에 찬 가을분위기에 물들어 정(情)을 주었다가 추운 겨울의 중간 혹은 연말연시에 헤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한번 떠나간 사랑은 쉽게 돌아오지 않지만 지나간 계절은 반드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를 원형의 회륜(廻輪)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노래가 나와 히트를 한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찾아 그동안 정들었던 농촌을 떠나 도시로 너도나도 가는 이촌향도(離村向都)의 시대였다. 이로 인해 시골의 보리밭이나 물레방아 뒷전에서 밀어를 속삭이며 서로 사랑하던 연인들의 이별이 잦았던 시기였다.

이처럼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슬픔을 계절의 변화에 은유(隱喩)한 박건의 <사랑은 계절 따라>는 가람 작사, 민인설 작곡으로 1969년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모은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발매되었는데,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타고 크게 히트하였다. 이로 인해 그는 명실 공히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이 노래를 부른 박건은 1940년 전남 함평 출신으로 본명이 홍몽희이다. 그는 1965년 상경하여 작곡가 손목인이 가르치는 가요학원에서 수강을 했는데, 1966년 손목인 작곡의 <장미엔 가시가 있다>, 마상원 작곡의 <꿈 속의 어마니>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대중들의 반응은 별로였다.

그 이후 그와 같이 편곡을 배우려 다닌 허현으로부터 <두 글자>라는 곡을 받아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발매했는데, 갑자기 히트하였다. 이 곡의 급작스런 히트에는 당시 동양방송 광고국장과 그의 부인의 역할이 지대하다. 어느 날 동양방송 광고국장의 부인이 라디오를 듣다가 이 노래가 좋은데 왜 동양방송에서는 나오지 않느냐고 자기 남편에게 얘기하였다. 부인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은 광고국장은 다음날 동양방송 음악 PD에게 그 노래가 담긴 음반을 찾아 달라고 하여 들어보고는 “괜찮네”라고 얘기하고 다른 말 없이 그 PD의 방을 나왔다. 담당 PD는 그것을 보고 필시 광고국장이 이 노래와 무슨 연관관계가 있구나 생각하고 집중적으로 방송하였다. 그래서 발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간중앙 인기가요 차트 7위에 올랐다. 이렇게 되자 오아시스 사장은 가수 박건에게 ‘너 무슨 빽이 있느냐’고 묻는 사태가 생기기도 하였다.

1971년은 그에게 큰 행운을 가져다 준 시기였다. 그해 그는 <청포도 사랑>을 히트시키고, 곧 이어 김희갑이 작곡한 드라마 주제곡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을 발표하였다. 처음에는 대중의 반응이 별로 없었으나 그가 1973년 MBC TV <무궁화 인기가요> 프로그램에서 5개월 간 부르면서 뒤늦게 크게 인기를 끌었다. 기타로 이 노래의 전주(前奏)와 간주(間奏)의 반주를 했는데, 이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시중에 세고비아 기타가 동이 났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 노래로 맑고 매혹적인 미성의 소유자인 박건은 1971년 이난영 가요상을 받았고, 1974년에는 KBS 10대 가수상을 수상하였다. 현역가수로 은퇴한 이후 그는 가수 박일준과 현숙 등을 가르쳤다.

이 노래를 작사한 가람은 <사랑은 기러기>, <그림자> 등을 작사하였다. 민인설 작곡가는 <이별의 길목>, <사랑의 미소>, <너하고 나하고>, <사랑은 계절 따라>, <사랑이 싹틀 때>, <떠나간 사람>, <누구를 위해> 등 여러 곡을 작곡하였다.

<사랑은 계절 따라>

여름에 만난 사람 가을이면 가 버리고
가을에 만난 사람 겨울이면 떠나가네
어디서 왔다가 어느 곳으로 가는지
계절이 다시 오면 그대 오려나 그대는 오려나
그대는 떠나가도 계절만은 돌아오고
사랑은 떠나가도 그대만은 못 잊겠어요

웃으며 만났다 웃으며 떠난 그 사람
계절이 다시오면 돌아와 주오 돌아와 주오
그대는 떠나가도 계절만은 돌아오고
사람은 떠나가도 그대만은 못 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