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창문을 열면 무학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식목일. 이 산에 전교생이 나무 심으러 왔었는데 그때는 온통 바위산이었습니다. 나무가 없으니 더욱 바위만 두드려져 보이죠. 2학년 학생 한 명이 나무를 심는데 위에서 꽤 큰 돌이 굴러내려왔고 거기에 맞아 그 학생이 죽었습니다. 그 학생의 부모가 울부짖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그 현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젠 그 산이 온통 벚나무 천지가 됐습니다. 간혹 있던 소나무는 씨가 말랐습니다. 거기가 깡그리 바위산이었다는 걸 아는 사람도 드물게 되었고요. 마침내 4월 초순 벚꽃 잔치는 끝났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왜 이리 아쉬운가요? 온 산이 흰색과 연분홍으로 채색돼 있다가 이젠 그냥 신록만 남았습니다. 신록도 좋기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파리일 뿐입니다. 이파리가 제 아무리 곱기로서니 꽃잔치보다 좋겠습니까?

해마다 4월이면 봄병이 도집니다. 그래서 이맘 때엔 연례행사처럼 술에 취해 살고 취한 기분에 이따위 글도 씁니다. 벚꽃이 필 무렵 그렇게나 희망차고 활기찼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벚꽃이 지고 맙니다. 화려하고 요란하고 울창했던 벚꽃이 자고 나면 나도 기가 죽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벗어날 길을 찾습니다. 이윽고 제행무상을 중얼대고 무념무상을 흥얼댑니다. 그리고 한여름이 될 때까진 술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나무 심으러 산에 가서 고개를 숙이고 나무를 심다가 굴러 내려온 돌덩이가 그 머리를 때려서 죽었습니다. 그의 부모가 지금의 저 산을 보고서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렇게 해서 우리 세대는 꿈이었던 ‘산림녹화’를 이룩했습니다. 후대(後代)가 박수쳐주지 않아도 우리는 이루었으니 가슴 뿌듯합니다. 사랑하는 젊은이들여. 그대들도 나라에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지 않겠나.

떠들썩한 벚꽃 잔치를 내 생애에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서글퍼지지만 그래도 그 잔치를 있게 만든 우리는 남기고 가는 게 있어서, 먼저 가신 박정희 각하를 뵈오면 드릴 말씀이 있기에 다행입니다. 젊은이들도 후대를 위해 그러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