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우리 집은 낙산 아래 서민 한옥이 들어선 동네에 있었다. 집 장사들이 서울 변두리 밭에 급조한 작은 한옥이었다. 좁은 방은 두 명만 마주 앉아도 꽉 찼던 것 같았다. 동네 뒤의 낙산에는 판잣집들이 굴 껍질같이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이따금씩 산동네 아이들과 아랫동네 아이들의 패싸움이 있었다. 연탄재를 서로 던졌다. 놀이 비슷했다. 그러다 흥분하면 돌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서민 동네에 살던 나는 산동네 아이가 던진 돌에 맞은 적이 있다. 아랫동네에 살던 우리들은 그때 산 동네 아이들과 왜 싸우는지 이유를 몰랐다. 그걸 아는 아이는 없는 것 같았다. 더 가난한 판자집 아이들은 덜 가난한 아랫동네 아이들이 미웠을까.

요즈음은 모임을 가면 어디서나 정치문제가 화제에 오르고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사람들이 말싸움을 한다. 어렸을 때 산동네 아이들과의 편싸움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진짜로 이념적 지향이나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싸우는 것인지 의문이다. 오랫동안 정치를 해 왔던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정치라는 건 말이요. 엘리트와 카운터엘리트가 하는 싸움이요. 거기에는 선악도 없고 좌우도 없어. 권력을 앞에 놓고 그냥 싸우는 거지. 그런 정치꾼들이 적당히 선악이나 좌우로 사람들을 갈라놓고 집단 패싸움을 유도하는 거지.”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정치꾼들이 북치고 장구치면 대중은 그냥 깨춤을 추지만 그 끝은 무엇일까. 정치꾼들은 권력을 얻지만 대중은 뭘 얻을까.

나는 사람들이 좌니 우니 하면서 이념적으로 스펙트럼을 가르는 게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는 자칭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정말 사상적으로 알고 그러는 것일까 의문을 가진다. 나는 북한법을 연구한 적이 있다. 그 과정에서 주체사상도 읽고 김일성 선집도 읽어 보았다. 대학가에서 의식화 때 사용되는 문건들도 공부했다. 러시아 혁명소설들도 읽었다. 그들이 추구하는 세상을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동해방의 상징인 박노해 시인은 글에서 한 여인의 입을 빌려서 말한다. 언제 이기적이고 교활한 노동자와 대중이 사회주의 사상에서 전제되는 선인이 되겠느냐고. 그렇게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에서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고 반어법으로 사상의 허구를 지적한다. 대중만이 그런게 아닌 것 같다.

변호사를 하면서 운동권의 비밀조직에 있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혁명가들은 지금도 지하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요. 그들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때부터 아주 서서히 점진적으로 혁명을 해 왔어요. 미디어를 장악하고 선거 혁명을 시도했죠. 삼성을 공격하는 것도 그들의 장기 전략 중의 하나예요. 북한 공산주의자보다 더 무서운 게 남한의 좌익입니다. 저는 그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생리를 압니다. 그들에게는 끝없는 증오와 소수 엘리트주의밖에 없어요. 어떤 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도 겉으로 나타난 간판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핵심 이외에는 그 누구도 진정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이용 대상으로 여길 뿐이니까요.”

그들 역시 이념은 포장일 뿐 본질은 추한 권력의지가 아닐까. 그러면 북한에는 공산주의가 있을까. 북경에서 김일성대학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내가 그에게 공산주의 이론을 얼마나 아느냐고 물었었다. 그가 털어놓았다.

“나도 공산주의 이론을 몰라요. 내가 자라면서 러시아와 관계가 나빠지면서 마르크스 레닌에 관한 책자는 모두 사라져 버렸어요. 또 중국과 사이가 멀어지면 모택동사상에 관한 책을 못 읽게 했죠. 그러다 보니 내가 아는 게 없죠. 남한에서 오히려 사상 서적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다는데 그걸 구했으면 좋겠어요.”

그의 말에 진정성이 있어 보였다. 북한은 더이상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것 같았다. 세습 체제의 김씨 일가가 권력을 유지하기에 급급한 것 같았다.

요즈음은 대통령 선거 기간이다. 싸우는 모습이 마치 어렸을 때 산동네와 아랫동네 아이들이 싸우는 것 같다. 왜 싸우는지 모르고 그냥 싸우는 것 같기도 하다.

싸움을 놀이같이 바꿀 수는 없을까. 성경을 보면 아이들의 독특한 놀이가 있다. 한쪽에서 피리를 불면 일어나 춤을 추는 것이다. 또 다른 소리가 들리면 거기에 맞추어 다른 춤을 추는 것 같다. 그렇게 선거가 축제가 됐으면 좋겠다. 더러 증오와 분열을 부추기는 파열음이 나올 수도 있다. 숨은 혁명가나 패자가 비겁하게 몽니를 부리는 소리다. 그런 소리를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