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소리 울린다. 북한에서도 이맘 때 울린다. 이때는 어김없이 동원되었을 때이다. 내 기억으로 중학교 1학년인 1969년 11살부터이다. 남한 식으로 초등 4학년 때이다. 20리 가량 되는 농장 밀보리밭에 물주기이다. 가물이 들어 어린 학생들도 동원되어 바케츠 소랭이 들고 내천에 물을 날라다 주어야 한다.

5월 가뭄의 뙤약볕 속에 땀 철철 흘리며 물을 길어가는 애들을 상상해 보시라. 그때도 뻐꾸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배부른 여기는 자연으로 들리겠지만 11살 12살짜리들에게 뻐꾸기 소리는 지겹게 들렸다. 저 소리가 안 나는 어둑한 저녁이 돼야 작업이 끝나기 때문이다. 그 저녁이 천날처럼 길게 느껴지게 뻐꾸기가 부채질하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자고 일어나면 코피가 쏟아졌다. 종이나 솜으로 코 막고 또 물주러 나가야 했다. 어린이들까지 동원해서 그 넓은 밭에 물주기로 소출이 얼마나 더 날까. 오히려 밀보리를 짓밟아 더 못해졌다. 밀보리는 짓밟아야 좋아진다고 해서 우정 짓밟고 다녔다.

겨울에 언 땅에 어린 밀보리가 들떠 가뭄타기에 3월경에 밟아주어야 좋다는 원리는 더 커서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 5월의 이삭이 배도록 큰 밀보리를 짓밟으면 망치는 것이다. 물 긷느라 흙이 신발에 묻은 것을 닦아내고 또 밀보리 밟는 것이 푹신푹신해서 우정 더욱 밟고 다녔다.

이런 농촌지원 전투는 대학생이 되도록 이어지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군대 가서도 이어진다. 그렇게 전 군민이 총동원되도 배고픔은 나아지기커녕 점점 더 심해져 갔다. 그 지겨운 뻐꾸기에게 다 뜯기우기 때문이다. 아무리 낳아놓아도 공산이란 뻐꾸기가 다 밀어내는 것이다.

뻐꾸기 소리가 남한에서도 똑같이 울린다. 논밭에는 가끔씩 건달같은 사람이 나타나고 기계들이 어느새 뚝딱 해치운다. 북한에서 가장 힘든 벼농사가 여기서는 가장 쉬운 거라고 한다.

북한에서 농촌 사람과 도시 사람은 확연히 차이난다. 검게 탄 얼굴과 흙묻은 옷차림 때문이다. 여기는 그 차이가 별로이다. 농민들은 북한 식으로 보면 다 간부같아 보인다. 배 나온 이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넘치고 돈은 안 되니 묵은 논밭이 늘어난다. 내 주변에도 마찬가지로 공짜로 텃밭 농사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 묵은 밭을 나도 손노동이 아니라 장비로 텃밭 농사한다. 트랙터도 있지만 그보다 포클레인으로 더 쉽게 한다. 어제는 유압관이 노화로 터져나가 오늘 즉시 교체하였다.

걱정은 힘든 것이 아니라 저걸 누가 다 먹나이다. 흔히 나누어 먹는데 워낙 배들이 불러 나누어 드리는 것도 조심스러운 세상이다. 여기는 뻐꾸기가 북한 뻐꾸기 아닌가. 그게 정답게 울려 들려온다. 건달에 상건달처럼 일하는 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