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각하는 여성 문제에 관해 너그러웠다. 남녀평등이란 말조차 없던 시대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 역시 그랬다. “배꼽 아래의 일을 갖고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말도 했다. 지뜯고 싸우던 상대에게도 지킬 것은 지켜 주었으니 ‘풍류 정치’요 ‘신사 정치’였던 것이다. 지금의 정치 풍토는 동귀어진(同歸於盡) 정치란 말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주고 있다. 상대의 약점을 약점에서 그치지 않고 살을 더 붙이고 키워서 터뜨린다.

오늘 조선일보에 실린《[만물상] 난데없이 끌려 나온 킹 목사》를 읽고 펄쩍 뛰어오르도록 놀랐다. 그런 사실을 공개한 미국의 사회적 가치관은 무엇일까 의문도 들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인권 운동가로 세계가 존경한다. 미국은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생일을 공휴일로 기리고, 킹목사의 생일 또한 공휴일로 지정. 기린다 한다. 그런 일은 단 두 명뿐이다는 것이다. 킹 목사를 그렇게 대접하면서도 그의 엽색 행각을 덮어 주지 않았다. 미국의 이중성일까 솔직성일까? 동양의 예의관(禮義觀)으론 이해가 잘 안 된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과 함께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란 연설은 유명하기로 쌍벽을 이룬다. 연설을 하기 전날 밤에 매춘부를 호텔방으로 불렀다고 한다. 유부녀와의 사이에 아이도 있었다 하며 기업 후원을 받아 연 워크숍에서 섹스 파티를 했다고도 기사에 있다.

트럼프는 1기 집권 때인 2017년에도 ‘킹의 사생활’이란 제목의 20쪽 분량 FBI 기밀문서를 공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번에 또 킹 목사 관련 FBI 기밀문서 23만 장을 21일에 공개했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엡스타인 스캔들로 궁지에 몰리자 관심을 돌리기 위해 킹 목사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했다.

박정희 각하와 김영삼 대통령이었다면 저런 일은 절대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품성이 드러나며 동양적 예의가 빛난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란 옛말에 철 지난 공감도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