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들을 불태웠으면 좋겠다>

“손님, 제가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택시 기사가 백밀러로 나를 힐끗 보면서 양해를 구한다. 대화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말씀하시죠.”

나는 차 안에서 기사들이 하는 이런저런 얘기를 듣기 좋아한다. 세상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저는 큰 회사에서 공장장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했습니다. 퇴직 후 집에서 술을 마시고 빈둥거렸죠. 어느 날 아내가 말하더라구요. 예전에 존경스럽던 남편이 이제 실망스럽다구요. 그 말을 듣고 택시 기사가 됐습니다. 수십년 출퇴근 때 차를 운전했는데 그게 제일 쉬울 것 같더라구요.”

그는 결단을 잘 내린 것 같았다. 내가 후회되는 일이 있었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퇴직을 한 후 내게 길거리에서 만두 장사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말렸다. 성숙하지 못했던 얕은 생각이었다. 나는 기사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기사를 하면서 세상에 의외로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쁜 사람은 일부예요. 그러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편견이 강한 세상을 발견했어요. 차 안에서 즐겁게 얘기를 하던 아주머니 한 분이 내릴 무렵 갑자기 저에게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고 화를 내는 거예요. 똑같은 길을 갔다 오는데 왜 택시비가 다르냐는 거죠. 사실 차가 막혔고 신호등 여섯 군데서 기다렸거든요. 요즈음 택시 미터기는 조작이 불가능합니다. 열심히 해명했는데도 납득하지 않더라구요. 안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어요. 또 어떤 아주머니는 재산 자랑을 잔뜩 하시다가 마지막에 ‘어, 택시기사 앞에서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데’ 하더라구요. 돈이 없는 사람을 깔보는 행동이죠. 저도 3층 건물이 있고 자식들이 다 잘됐는데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걸 보니까 화가 나더라구요.”

택시 기사의 말을 들으면서 지금 이 사회에 무성한 ‘편견’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선민의식이나 가짜뉴스 같은 것들이 편견을 만들어낸다. 거짓이라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진실은 외면한다.

한 유명한 탈주범을 변호한 적이 있다. 그 탈주범의 내면적인 고통 중에는 세상의 편견이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제가 감옥 안에서 열이 40도까지 오르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어요. 사람을 불러도 안오고 해서 문을 발로 찼어요. 그랬더니 여러 명이 달려와서 저를 묶고 때리는 겁니다. 몸이 성할 때면 그래도 참겠어요. 그런데 피까지 토하는데 계속 때리니까 악이 나더라구요. 그때 탈옥할 결심을 했었습니다. 도주 중에 저를 철저히 매도하는 언론의 글들을 보면서 정말 세상이 그렇게 철저한 악마가 되어주기를 바라느냐고 소리치면서 산 속에서 울고 다닌 적도 있어요.”

교인들의 모임에 초청을 받아서 얘기를 하던 중에 탈주범의 일면을 말했다. 인간은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듣고 있던 한 권사라는 여신도가 냉랭한 얼굴로 내게 항의했다.

“어떻게 악한 범죄자를 그렇게 미화시킬 수 있어요?”

그 여자는 세상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믿음이 있다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없는 사람은 성경속 바리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편견은 범죄자에 대한 것만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될 무렵 무수한 악소문이 떠돌았다. 여성 대통령의 침실이 벽에 대형 거울을 붙인 아방궁이라니 별별 소리가 다 있었다. 지금도 지나가다가 방송에서 나오던 카랑카랑한 김동길 교수의 목소리가 기억난다.

“청와대에서 굿을 하면 안돼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대통령이 무속에 빠져 있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 후 나는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의 변호사가 되어 적나라하게 실체를 볼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이 거짓이었다. 그리고 그 거짓이 편견을 만들었다.

어제는 동해 바닷가 집으로 인도 대사를 했던 친구가 찾아왔다. 고교 동기였다. 그를 보니까 문득 문재인 대통령 부인의 인도 방문 기사가 떠올랐다. 영부인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인도를 갔다 왔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권력을 남용한 관광이 아니었느냐는 야당과 언론의 질타가 대단했다. 나를 찾아온 친구가 바로 그때 인도 대사였다. 평생 성실한 직업외교관으로 지낸 사람이었다. 그 때의 일들을 무심히 물어보았다.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인도 총리를 만나기 위해 줄을 서. 인도 총리의 바쁜 일정에서 십분을 빼기도 힘든 나라야. 투자나 통상 대상으로 세계가 관심을 두는 나라지. 그런데 인도에서 한국 대통령을 초청했어. 한국의 위상이 그렇게 올라간 거지. 그런데 한국에서 대통령이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 인도측에서는 그렇다면 비중 있는 실세를 대신 보내달라는 요청이었어. 장관이나 총리는 싫다고 그래. 청와대에서 고심을 하다가 대통령의 부인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지. 그랬더니 인도 측에서 너무 좋아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영부인이 가게 된 거야. 그게 내용의 다야. 나도 검찰청에 불려가서 그 간단한 말을 하는데 열다섯 시간 조사를 받았다니까.”

나는 친구의 말을 믿기로 했다. 성경을 보면 악마가 와서 밤새 밀밭에 스며들어 가라지의 씨를 뿌려놓는다. 그게 자랄 동안 밀과 구별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걸 발견한 일꾼들이 가라지를 어떻게 처리할까를 주인과 상의하는 모습이 나온다. 지금 이 사회에 널린 거짓과 편견이 그런 가라지가 아닐까. 밀이 다치지 않게 하면서 그것들을 모아 불 속에 던져 태워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