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의 1차 침공 때 고려의 서희는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강동 6주를 차지했는데 그것은 노련한 협상의 결과였다. 고려가 적국인 송나라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거란에 대해 우호적이기를 바라는 적장 소손녕의 바람을 역이용하여 그렇게 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강동 6주를 요구했던 그 협상술이 절묘했던 것이다. 상대방이 간절히 무언가를 바랄 때 그것을 이용하여 내가 원하는 것을 대가로 받아낸다는 것이 협상의 기본 아닌가.

이번 미국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한국인 근로자들 체포 사건과 관련하여 한미정상회담 당시 취업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이재명의 무능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트럼프가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간절히 원한다면 그것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이것을 요구했었어야 했다. 한미 FTA 이후 가장 문제가 되는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재명이 놓쳤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마치 소손녕을 향애 서희가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가운데 놓인 강동 6주가 우리 땅이 아니어서 힘들다’고 말한 것처럼 이재명도 트럼프를 향해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취업비자 문제가 대미 투자의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라고 했더라면 아마 트럼프의 성격상 그 자리에서 해결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체포된 한국인들은 B-1, B-2 비자 및 ESTA (전자여행 허가)를 갖고 노동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노동을 하려면 취업비자가 필요한데 미국의 연간 취업 쿼터(quota)에는 한도가 있다고 한다. 연간 전문직은 85,000명, 비숙련 66,000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과 FTA를 체결한 칠레는 1,400명, 호주는 1만 명 이상, 싱가포르도 5000명 이상의 전용취업비자 쿼터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가 한미 FTA 체결 이후 10여년간 한국의 대미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이었고 지속되는 현안이었음에도 한미정상회담에서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약속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이것 하나 받아내지 못한 이재명 정권의 무능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비서실장이란 자가 민관이 총동원되서 해결했다느니, 곧 전세기로 귀국할 거라느니 하면서 무슨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고 대통령이란 자는 이제 와서 ‘총력대응’하라고 보여주기 쇼를 하고 있다. 일 잘하는 사람의 특징인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효율’은 보이지 않고 일머리 안 돌아가는 인간들의 특징인 ‘시끄럽고 요란한 뒷수습’만 눈에 띈다. 이런 일이 처음부터 안 생기도록 해야 일 잘하는 거지, 버스 지나가고 나서 손 열심히 흔들고 소 잃고 외양간 열심히 고치면 일 잘하는 거냐?

이재명이 미국 가기 전 트럼프가 쓴 ‘거래의 기술’을 몇 번이나 읽었다더니 읽으면 뭐하냐? 트럼프 손바닥 안에서 길들이기나 계속 당하고 있는 주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