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한 사상이 惡을 제압한다
말로우는 “우리하고 얼굴색이 다르거나 우리보다 낮은 코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땅을 뺏는 것을 의미하는 지구의 정복이라는 것은,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 추악한 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思想(사상: idea,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에 문명의 빛을 전달하려는 선한 의도와 이상)뿐입니다. 그런 아름답지 못한 것의 裏面(이면)에 있는 사상 말입니다. 感傷的(감상적) 허세가 아닌 사상… 우리가 그 앞에서 머리를 숙일 수 있고 희생물을 바칠 수 있는 어떤 것…'이라며 사상(즉 환상)이 인류를 재생시킨다고 생각한다.
말로우는 인간은 무한히 전락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또한 드높은 이상을 갈망하고 숭배하는 능력과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인간의 本性(본성)은 이상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희생하는 不可思議(불가사의)한 面(면)도 있다. 인간이 이상의 실현과정에서 卑劣(비열)하게 타락하고 용서받기 힘든 죄를 짓기도 하지만 理想(이상)자체는 이상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컬츠는 빛의 使者(사자)로서 패배하였지만 그가 추구하였던 문명의 가치는 여전히 우리가 崇慕(숭모)하고 따라야하는 가치들이다. 인간의 본성에는 惡(악)의 요소도 있지만 善(선)의 요소가 더 많다. 시대를 초월해서 인간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악이 아닌 선을 삶의 지표로 한다.
컬츠는 ‘짐승 같은 본능’(brutal instincts)으로 인해 ‘괴물 같은 열정’(monstrous passions)에 굴복하지만 선을 위해 투쟁하고 투쟁하였다. 이러한 투쟁은 컬츠의 내면에 있는 도덕적 覺醒(각성)의 존재를 암시한다.
그가 죽음에 임박하여 말로우에게 “너무 무서워! 너무 무서워!”(”horror! horror!')라고 부르짖는 것은 컬츠 자신이 가진 이상의 빛으로 자신을 판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컬츠가 이상실현에 대한 자신의 叛逆的(반역적)인 태만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지만 그 반역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그 것을 증오하기 때문에 그의 ‘암흑에의 본능’은 암흑을 초월하여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도 있다고 단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暗黑의 奧地’의 엄청난 힘은 자신과 투쟁하고 자신 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판정하고 형벌을 가할 수 있는 가치기준을 발견하는 인간영혼의 능력의 啓示(계시)에 있다. 자신의 이상에 대한 타당성의 확인은 컬츠의 위대한 승리이다. 이 능력이 ‘암흑’의 ‘압도적인 힘’을 박탈하는 것이다.
컬츠는 비록 그의 이상과 사상과 言約(언약)의 실현에 실패하지만 인간이 가진 善(선)에 대한 가치를 결코 거부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가치들 때문에 컬츠는 ‘도덕적 승리’를 거둔다. 컬츠의 가치는 비록 많은 제약을 받지만 약혼녀의 영혼 속에 이상으로 살아남는다.
‘暗黑의 奧地’ 끝에 가서도 소설의 분위기는 허무주의적이며 어떠한 긍정적인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생존만이 보장 될 뿐이다. 그러나 ‘환상을 구출하는 것’(saving illusion)의 중요성은 명백하다. 말로우의 거짓말이 없이는 ‘모든 환상적 목적의 빛’도 ‘문명의 흐릿한 빛’도 消燈(소등)되어 버릴 것이며 그러면 인류에게는 향상의 모든 가능성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썩은 하마의 냄새를 맡을지라도 우리는 아득히 저 멀리 절벽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크리스털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 6
말로우의 시간여행
‘暗黑의 奧地’는 顯現(현현: epiphany) 소설이다. 현현이란 깨달음을 의미한다. 현현을 경험하게 되면 종전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과 사물을 보게 된다. “暗黑의 奧地'에서 현현의 대리인은 말로우이다. 말로우는 단순한 서술자가 아니다. 그는 깨달음을 위해 암흑의 오지로 여행하는 巡禮者(순례자: pilgrim]이다.
그는 런던을 출발하여 콩고강 상류로 순례의 길을 떠난다. 런던은 인류 문명의 精髓(정수)이고 콩고강 상류 奧地(오지)는 문명이전의 原始(원시)의 땅이다. 런던과 콩고사이에는 인류문명 5000년의 시간이 가로 놓여 있는 것이다. 말로우의 순례는 문명에서 원시로 50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이다.
문명의 껍질은 대단히 얇다
여행을 하면서 말로우는 인간의 實存的(실존적) 본능은 문명 이전이나 이후에도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문명인의 外皮(외피) 안쪽에는 太古(태고)적 본능이 深海(심해)의 深層水(심층수)처럼 변함없이 자리 잡고 있다. 문명의 껍질은 대단히 얇아서 비문명적이고 가치중립적인 본능에 쉽게 압도당한다.
말로우는 암흑의 대륙 아프리카를 侵奪(침탈)하여 본능에 압도당하는 유럽인들에서 ‘폭력의 악마, 탐욕의 악마, 뜨거운 욕망의 악마’를 보았다. 이 악마들은 ‘사람들을 뒤흔들고 몰아붙이는 강력하고 눈에 핏발이 선 악마들’이다. 말로우는 컬츠를 ‘정욕의 충족에 있어서 통제력이 결핍’되고 ‘짐승 같은 본능’과 ‘짐승 같은 정열’에 耽溺(탐닉)하고 ‘무자비하게 사악한 악마’로 그리고 있다.
콩고강을 올라가면서 말로우는 이러한 악마들과 친숙하게 되며 특히 컬츠로부터 강력한 인상을 받고 그와 자신이 同類(동류)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컬츠처럼 말로우도 ‘야만과 정열의 함성’에 ‘遠親關係(원친관계: remote kinship]’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며 그것들에 ‘반응’하고픈 유혹을 느낀다. 컬츠는 말로우의 分身(분신: alter ego)인 것이다.
그가 런던에서 콩고강 상류 1000마일까지 컬츠를 찾아가는 것은 자신의 분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문명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野性(야성)으로 완전히 되돌아간 백인이상주의자 컬츠를 만남으로써 말로우는 자신도 轉落(전락)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컬츠의 ‘미친 영혼’을 들여다보는 고난을 겪으며 자신의 영혼도 들여다 보게 된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보다 더 깊은 지식을 배운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인간은 모두 친족이다
말로우는 백인인 컬츠뿐 아니라 문명을 모르고 원시상태로 살아가는 오지의 흑인들도 遠親(원친)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죽은 조타수가 매우 그리웠습니다- 나는 그의 시신이 조타실에 누워있을 동안에도 그가 그리웠습니다. 아마도 당신들은 사하라 사막의 모래 한 알보다도 더 중요하지도 않을 야만인을 이렇게 그리워하는 것이 대단히 이상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는 배를 조종했습니다. 수개월 동안 내 조수로 내 뒤에서 일했습니다. 일종의 협력관계였습니다. 그는 내 대신 키를 잡았고 나는 그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나는 그의 결함을 걱정해 주었고 이렇게 해서 우리 사이에는 유대관계가 형성되었었고 나는 그것이 갑자기 끊어진 다음에야 겨우 그 관계를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치명상을 입고 나를 쳐다볼 때의 그 깊고 친밀한 눈빛은-생애의 가장 격렬한 순간에 확인되는 遠親關係(원친관계)를 주장하는 듯한 그 눈빛-이날까지도 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말로우는 백인이든 흑인이든 문명인이든 야만족이든 모두 親族(친족)이며 의식의 오지에서는 동일한 인간이라는 것을 통찰하게 된다. 콩고 여행은 말로우에게 원시와 현대 사이에 놓여 있는 시간의 장막을 찢어버리고 야만인과 문명인을 동일한 실존으로 간주할 수 있는 炯眼(형안)을 갖게 해 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