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동물사냥의 신화적 상징성

‘파리大王’과 ‘배키’는 각각 상호 관련된 세 개의 儀式主題(의식주제), 즉 짐승-神(beast-god), 희생양이 되는 인물의 豫示(예시)로서의 사냥, 희생양의 四肢切斷(사지절단)-를 포함하고 있다. 한 가지 점에서 골딩은 유리피데스에서 벗어나고 있다. 어린이 펜테우스인 랄프가 희생양이 되어야 하지만 골딩은 이 역할을 사이먼에게 할당하고, 대신 랄프는 ‘인간 정신의 암흑’을 깨닫게 하고 살려 준다.

유리피데스는 동물적 힘의 화신인 짐승-神(beast-deity)의 원초적 특성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는 디오니소스를 묘사하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사냥꾼이자 사냥을 당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배키’에는 짐승-사냥의 이미지가 가득히 배어 있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배키’는 희생자가 사지절단을 당하기 전에 먼저 神을 닮게 하는 희생의 의식을 擧行(거행)하는 劇(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희생양인 펜테우스를 열성신도에게 보낼 때 디오니소스神의 복장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펜테우스의 죽음은 광란의 여신도들이 소들을 찢어 죽이는 장면에서 豫示(예시)된다. 펜테우스가 전나무 안에서 발견될 때 그는 실제로 사냥 당해서 살해된다.

‘파리大王’에서 사냥에 대한 강박관념은 사냥꾼들을 개인적인 정체성 없이 하나의 단체로 기능하면서 개개인의 이름이 없어진 하나의 집단으로 변형시킨다. 그들의 합창 후렴, “짐승을 죽여라! 그놈의 목을 베라! 그놈의 피를 흘려라!”는 디오니소스 광신도들의 “사냥하라, 죽여라, 잡아먹어라”를 연상시킨다.

소 떼를 기습하는 것이 펜테우스의 죽음을 前兆(전조)하듯이 돼지를 죽이는 것은 희생양인 사이먼의 죽음을 예시한다. 펜테우스의 머리가 디오니소스의 지팡이에 꽂히듯 돼지머리는 막대기에 꽂혀서 상상의 짐승에게 제물로 바쳐진다.

사이먼이 本意(본의) 아니게 돼지사냥극을 방해하게 되고 짐승으로 오인되어 살해된다. 사이먼과 펜테우스 모두 그들의 속성과 반대가 되는 세력에 대항한다. 펜테우스만이 동물의 모습을 한 디오니소스를 보게 되지만 그는 그가 집착하는 합리주의는, 비이성적이지만 삶에 필수적인 정열로 보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아이들 중에서 사이먼만이 파리대왕의 정체를 인식하지만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광란의 사냥꾼들에게 살해당한다.

‘배키’에서 유리피데스는 이성과 감정의 영원한 分岐(분기)를 극화하였다. 그는 감정은 이성보다는 하등이지만 자연스러운 감정에 대한 욕구를 무시하면 그 무시하는 죄를 더욱 초월하는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디오니소스는 아폴로보다도 더 원시적인 힘(primitive power)이며 그의 복수에는 衡平性(형평성)이 결여되어 있다. ‘배키’를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자연스러운 감정의 지나친 억압은 인간을 약화시키고 인간을 물체가 없는 정신으로 축소시켜서 보다 하등의 자아와 敵對(적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유리피데스는 沒我(몰아)적인 신비주의는 그 자체로서는 타당하고 바람직한 예배의 형식이지만 이성의 통제가 없을 때는 관능의 난장판으로 타락하기 쉽다는 것을 암시한다. ‘배키’의 펜테우스나 광신도들(Bacchants)은 인간을 이성과 감정의 두 부분으로 쪼개어서 전체가 아닌 부분을 神格化(신격화)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골딩의 ‘파리大王’에는 兩極性(양극성)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 일시적으로는 화합하는 일도 있겠지만 언제나 적대적인 대치나 갈등 속에 살아가는 불의 파수꾼들과 사냥꾼들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랄프 그룹과 잭 그룹의 싸움은 랄프의 죽음이나 사냥꾼들의 改心(개심)이 아닌 우연이나 섭리만이 중단시킬 수 있다. 그래서 섬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한 화재가 랄프와 잭으로 대표되는 양극성의 갈등을 종식시킨다. ‘배키’도 펜테우스의 죽음이나 아가베의 이 성회복에 의해서가 아니라 디오니소스의 등장으로 끝난다.


# 10
예수도 죄인으로 몰아 죽이는 인간의 사악함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相剋的(상극적)인 두 특성-이성과 감정-의 갈등과 쟁투와 더불어 인간 자체의 사악함이나 인식능력의 결여로 인해 인간은 파국을 자초하기도 한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서는 예수와 같은 神人(신인)이나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도 죄인으로 몰아 죽일 만큼 사악하고 우매한 행위를 하고도 자신의 죄악을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이먼의 좌절과 죽음은 악에 대한 인식능력의 결여가 초래하는 파국을 상징한다. 사이먼에게는 聖(성)스러운 분위기가 있다. 많은 비평가들이 사이먼을 예수를 상징하는 인물로 간주한다. 사이먼은 피골이 상접할 만큼 여위어 있는 데 이것은 苦行(고행)하는 자의 금욕적인 자기희생의 특징이다.

그의 얼굴은 聖者(성자)의 光輪(광륜)처럼 빛이 난다. 먹을 수 없다고 아이들이 채취하기를 거부하는 정글의 열매를 사이먼은 성당의 ‘촛불’로 생각할 만큼 종교적 상상력이 풍부하다. 사이먼이 숲에서 꼬마들에게 저녁을 먹이는 장면은 배고픈 군중들을 빵과 생선으로 배불리 먹이는 예수를 연상시킨다:

〈그 때 오후의 햇빛 속에서 벌떼들이 윙윙거리는 가운데에 사이먼은 꼬마들이 올라 갈 수 없는 큰 나무에 올라가서 가장 잘 익은 과일들을 따서 무수하게 뻗어 있는 어린 손들에게 건네주었다. 아이들을 배불리 먹인 후에 그는 일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이먼은 잭이 사냥해온 멧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는 데 사이먼의 肉食(육식)에 대한 절제는 그의 성스러움을 심화시켜준다. 사냥은 외견상으로는 식량을 구하는 활동이지만 실제로는 살해를 위한 살해 충동에서 나오는 행위이고 또 육식은 肉慾(육욕)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고기를 거부하는 사이먼에게서 성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이먼은 랄프에게 “너희들은 너희들이 온 곳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라고 예언하지만 자신의 구조는 제외함으로써 구조 받지 못할 자신의 운명도 예언한다. 사이먼의 이러한 先見之明(선견지명)은 자신의 ‘(죽음의) 시간’을 예상한 예수의 예언과 일치한다.

사이먼이 밀림의 개인 은신처에서 막대기에 박혀있는 돼지머리와 직면하여 꼼짝하지 못하고 고뇌하며 무릎을 꿇고 땀을 흘리는 장면은 Gethsemane(겟세마네: 예수가 고뇌의 밤을 새우고 붙잡힌 장소)와 Golgotha(골고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언덕)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밀림이 겟세마네를 연상시키는 사건들이 일어나는 무대장치인 것처럼 밀림은 또한 골고다의 이미지를 喚起(환기)시키는 무대이기도 하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올라가면서 쓰러지는 예수처럼 사이먼도 쓰러지고 예수가 창에 찔려 피를 흘리는 것처럼 사이먼도 피를 흘린 후에 의식을 회복한다.

사이먼이 예수의 이미지를 가장 선명하게 나타내는 점은 그가 희생의 제물이 된다는 것이다. 사이먼은 다른 아이들처럼 황금색으로 볕에 그을리는 것이 아니고 燔祭(번제)의 양처럼 ‘태양에 의해서 태워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짐승’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啓示(계시)를 받았을 때 사이먼은 “무슨 할 일이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며 죽음을 맞이한 예수의 체념으로 ‘산 위에 있는 짐승’을 찾아 나선다.

그 짐승은 두려워할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먼이 ‘산 위에 있는 짐승’은 단지 죽은 조종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한 후 아이들을 잘못된 공포에서 구출하고 두려운 것은 죽은 자들이 아니고 살아있는 자들이라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산-진리의 산-에서 내려올 때 사이먼의 그리스도 역은 확인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 속에 있는 짐승을 인식하지 못하고 상상 속의 짐승을 만들어서 그 짐승을 두려워하고 증오하기 때문에 짐승은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채 영원히 존속하게 된다. 짐승은 스스로 자신을 파멸하는 인간들이 그 파멸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무능과 사악함을 표상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악에 대해서는 인간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비난을 받아야 하며, 비난받아야 할 것은 인간의 외부가 아닌 인간 내부에 있는 것이다. 골딩이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악을 자신이 아닌 돼지머리 같은 외부의 어떤 대상으로 轉嫁(전가)하는 현상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