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변론에 출석, 법률 기술자의 면모를 과시했었다. 동아일보 천광암 논설주간의 오늘 칼럼 표현에 따르면 그는 총 11차례 중 8차례의 변론에 나와 변호사에게 귓속말이나 메모를 건네며 변론을 진두지휘하다시피 했고, 중요한 대목에서는 본인이 직접 나서서 많은 말을 쏟아냈다.

뻔해 보이는 거짓을 사실로 포장하거나, 궤변이나 억지를 막무가내로 늘어놓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헌법 재판관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봤겠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헌재 결정문을 읽어보면 그가 뱉은 말들이 그의 주장과 논리를 무너뜨리는 근거로 역이용된 경우가 더라 나온다. 천광암 주간은 ‘법 기술자 윤석열’이 ‘대통령 윤석열’의 발목을 잡았다고 표현했다.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은 줄곧 이번 계엄이 야당의 專橫과 국정 위기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고 호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포된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주장만으로도 피청구인이 이번 계엄을 중대한 위기 상황에서 비롯된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위기 상황으로 인하여 훼손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경고성 계엄, 호소형 계엄 운운이 "나는 헌법과 법률을 어겼다"는 자백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헌재는 ‘對국민 호소’라는 말장난 자체도 거짓말로 보았다. “계엄 해제에 적어도 며칠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고 한 윤 전 대통령의 헌재 발언이 호소용이 아니란 증거로 인용된 것이다. 윤석열은 앞뒤 맞지 않은 이야기들을 태연히 쏟아냈는데 헌법재판관들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署)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고 돼 있는 헌법 82조와 관련해서, 윤씨는 ‘보안상의 이유 때문에 이를 이행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변명했지만 헌재는 윤석열의 말로써 윤석열을 반박한다. “대통령실 대접견실에 국무회의 구성원 11명이 모여 있을 때 부속실장 강OO가 계엄선포문 10부를 복사하여 김용현에게 전달했다”고 한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을 들어 앞부분 윤 전 대통령의 보안상 이유 운운은 수긍하기 어려운 변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윤석열은 8차 변론에서 “종이를 놓고 (김용현) 장관이 경찰청장하고 서울청장에게 국회 외곽의 어느 쪽에 경찰 병력을 배치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의도로 이 말을 했지만, 헌재는 이를 “경찰로 하여금 국회의원의 출입을 통제하도록 한 사실이 없다”는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판단하는 증거로 삼았다.
헌법재판소에서 보여준 윤석열의 법 기술자 같은 면모는 헌법재판관들에게는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복직시켜선 안 된다는 확신을 더했을 가능성이 있다. 결정문엔 이런 문장이 있다.

<가장 신중히 행사되어야 할 권한 중 하나인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있어서 피청구인이 위와 같은 태도를 보인 점을 고려할 때, 만약 피청구인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다시금 행사하게 된다면, 국민으로서는 피청구인이 헌법상 권한을 행사할 때마다 헌법이 규정한 것과는 다른 숨은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것은 아닌지 등을 끊임없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청구인의 권한행사에 대한 불신은 점차 쌓일 수밖에 없고, 이는 국정운영은 물론 사회 전체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천광암 주간은 <필자는 이 대목이 헌재가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게 된 가장 중대한 사유라고 본다>고 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의 신임을 잃은 대통령’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임을 잃은 민주국가의 대통령이란 ‘호수 위에 뜬 달그림자’일 뿐이기 때문에. 법 기술자로서의 재주를 부리다가 그 재주에 자기가 넘어간 것이다. 법률 기술자로서 윤석열의 최후였다. 헌법재판소가 그를 국민신임배반자라고 한 것은 실체가 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