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뽕 지하제국 탐험(제 3부) - 폭력과 광기의 지옥기행(1)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일본은 한국 히로뽕 문제의 뿌리다. 히로뽕의 최대 소비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히로뽕의 가장 큰 피해자가 자신들이라고 주장하고 우리는 한국 밀조범들의 배후세력은 일본 폭력단이라고 반론하고 있다.
  
  <1984년 2월 월간조선>
  
  제1장 犯罪企業 山口組의 음모
  
  84년1월4일, 동해를 가로질러 두 시간만에 도착한 도쿄의 거리는 아직 신정 연휴 기분이었다. 대부분의 상점과 개인 회사는 이날도 문을 열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출근은 했지만 시무식(始務式)만 끝내고 오후엔 휴무 상태였다. 기자는 먼저 히로시마에서 발행되는 중국신문(中國新聞) 도쿄 지사의 시미즈(淸水文裕) 기자를 찾았다. 시미즈 기자는 82년 여름 한국에 건너와 2주간 한국의 히로뽕 문제를 취재했었다. 그 때 중국신문(中國新聞)은 히로뽕 추방 캠페인 기사를 연재하고 있었다. 중국신문은 발행 부수 60만 부의 대지방지로서 1960년대에는 전사적(全社的)으로 폭력단 추방 캠페인에 취재력을 집중, 협박을 무릅쓰고 폭력단 세계를 잇따라 폭로했었다. 이 기사로 「일본의 퓰리처상」이라 일컬어지는 국지관(菊池寬)상을 받는 등 폭력단과 히로뽕 문제에 대해선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신문이다.
  
  시미즈 기자는 한국인들이 히로뽕 문제에 관심이 거의 없는 데 가장 놀랐었다고 했다. 일본에선 히로뽕을 가장 큰 사회 문제로 생각하고 있고, 한국에 대해선 은근히 「공동 책임을 져달라」는 태도인 데 반해 정작 한국에 가 보니 냉담, 무관심하더란 것이다. 『일본 신문에 히로뽕 기사가 안 나는 날은 거의 없습니다. g단위의 압수도 3∼4단, ㎏단위 압수는 사회면 머리기사지요. 한국에선 수십㎏의 밀조 사건도 1∼2단 취급이더군요. 일본이면 1면 입니다』다?수사 기관 사람들은 한·일 협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더라 면서, 『우리와 같이 민간 레벨에서의 교류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고 했다. 그는 휴가 중인데도 일부러 시내로 나와 이틀간이나 필자를 안내하면서 참고자료를 구해 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오염의 피크에 서 있다』
  
  1월 5일 도쿄는 서울의 초봄처럼 따뜻하고 화창했다. 기자는 관공서가 몰려 있는 가스미가세끼의 경찰청(警察廳)을 찾았다. 낡고 우중충하고, 그래서 일본 경찰의 사령탑으로는 오히려 어울리는 이 건물의 3층에 경찰청 보안부(保安部) 보안과(保安課) 약물대책실(藥物對策室)이 있다. 경찰청은 직접 수사는 하지 않고 경시청(警視廳 도쿄 관할)을 비롯한 전국의 지역 경찰을 행정적으로 통괄하고 있다. 우두머리는 경찰청 장관이다. 약물 대책실은 히로뽕, 신나(본드), 마리화나 등 약물 남용 문제에 대한 정책을 세우고 전체적인 수사 방향을 제시하는 곳이다. 말이 약물 대책실이지 실제는 히로뽕 문제 대책실이다. 실장은 55세의 호리(屈和雄) 경시장(警視長). 아주 곱게 나이가 든 노신사였다. 그는 외국 기자 앞에서 자기 나라의 치부를 거리낌없이 털어놓았다. 갖가지 통계 자료를 미리 준비해 놓고 기자의 질문에 답변이 막히면 담당 직원을 불러 대신 설명하게 하는 등 성의 있게 나왔다.
  
  『제2차 히로뽕 남용(濫用)시대의 피크에 일본은 지금 서 있습니다. 다행히 4년 전까지 급속도로 증가하던 검거 인원수가 최근 거의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어요. 저희들은 일본, 그리고 한국 수사 기관의 단속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히로뽕의 성장률이 둔화된 것으로 해석합니다. 지금이 우리 나라 한국에겐 찬스입니다. 10여년 간에 걸친 집중 수사가 비로소 결실을 가져오는 것 같은 지금, 히로뽕을 뿌리뽑아야 합니다. 일본 밀매 시장은 한국의 밀조 공장이 있는 한 없어지지 않습니다. 히로뽕은 한국과 일본의 공동 적입니다』
  
  호리씨는 한국과의 수사 협종 문제로 가끔 서울에 간다. 그는 『사회 분위기로 보아서는 한국에서도 히로뽕이 번지지 않을까요?』라고 걱정했다.
  『1950년대 제1차 히로뽕 시대에는 야간 노동자, 수험생, 작가 등이 주로 히로뽕을 사용했는데 목적은 밤새워 더 일하겠다는 거였습니다. 지금의 제2차남용 시대에는 사용 목적이 향락, 특히 섹스로 완전히 바뀌어져 버렸습니다. 그것은 역시 사회에 부가 축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경제 발전이 되면 될수록 히로뽕의 유혹도 강해질 것입니다. 올림픽 무드가 그런 점에선 촉진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호리씨는 1차남용 시대에는 히로뽕 상용자(常用者)가 직업별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주부, 소년, 소녀, 학생층 그리고 농촌, 어촌 할 것 없이 전국민 사이로 무차별적 확산이 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국민학교 6학년 학생이 히로뽕 주사를 맞을 지경이 된 일본, 그래서 경찰청에서는 「히로뽕 문제는 언론에서 더욱 더 떠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판단 아래에서 「기사거리 제공에 한층 노력한다」는 계몽 방침까지 세워 놓고 있다. 호리씨가 내 놓은 경찰청의 최신 통계 자료를 보면 「히로뽕 남용」이 일본의 가장 큰 사회 문제라는 것을 단박에 알게 된다.
  
  히로뽕은 일본 사회에 악의 핵분열, 범죄의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밀수·밀매로 인한 범죄(폭력단의 개입 등), 상용자에 의한 비행(가정 파탄, 구입 자금을 얻기 위한 절도 등), 상용자가 정신병 발작을 일으켰을 때의 흉악 범죄(살인, 방화 등등)…히로뽕은 사회를 복합 오염시키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약 15만 명이 히로뽕 범죄로 검거되었다. 80년 이후엔 해마다 2만 명 이상이 체포되고 있다. 남용자, 즉 상습 사용자는 60만∼1백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일본 사회의 노른자위인 10∼40대다. 83년의 경우 경찰 검거자의 약12%는 19세 이하의 소년·소녀, 약17%는 여자, 여자 가운데 약 13%는 주부다. 일본 사회의 중견층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독극물이 바로 히로뽕인 것이다. 히로뽕 남용자에 의한 범죄도 해마다 4백∼8백 건에 이른다.
  
  지난 5년간만 해도 선량한 시민 백여 명이 히로뽕 중독자들의 발작으로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히로뽕은 또 10만 폭력 단원들의 자금줄로서 그들을 지탱하는 「삼손의 머리카락」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의 히로뽕 시장에 대한 한국 밀조 조직의 지배력은 별표처럼 요지부동이다. 1978년엔 대만, 79년엔 홍콩, 81년엔 다시 대만 루트의 도전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만 홍콩 제품은 한국산에 비해 저질인데다가 수사력이 집중되면 다음해엔 맥을 못추는 등, 강인한 코리언 커넥션과는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이 경찰청의 평가였다.
  
  압수량으로 본 히로뽕 공급 루트 (일본 경찰청 통계)
  
  (공급자가 확실한 압수량을 기준한 것)
  
  경시청 수사 간부의 불만
  
  그날 오후, 기자는 호리씨의 소개를 받아 경시청방범부 보안제2과장 야마노(山野義雄) 경시(警視)를 만났다. 신축 청사의 9층에 있는 보안제2과는 도쿄를 통괄하는 히로뽕 수사의 야전 사령탑이다. 야마노 경시는 만주에서 태어났다는 55세의 베테랑 수사관. 중국 사람 비슷하게 뚱뚱하면서도 완강한 체구였다. 그는 서울서 온 기자에게 하소연 투의 이야기부터 했다. 『지난해 우리는 일곱 번이나, 인터폴을 통해 한국 치안 본부에 특정 인물을 지명, 수사 협조 의뢰를 하였습니다. 일본에서 붙들린 밀매·운반책의 상선(上線)들로서 한국에 거주하는 범인들입니다. 한국에서 수사 결과를 통보해 주긴 하는데 그곳에서 체포했다는 반가운 소식은 한번도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물론 관련자들이 재빨리 도망해버려 수사가 어려운 건압니다만』
  
  일본인으로는 드물게 푸근한 인상을 주는 야마노씨는 한국으로 출장 수사를 갈 수 없는 게 한이라는 눈치였다. 야마노씨는 그 동안 한국 치안 본부로 보낸 협조 공문철까지 보여 준다. 지난해 3월2일 야마노 과장이 지휘한 경시청 수사팀은 가나가와 현에 사는 미군 하사관의 아내 한국인 하월성(河月星 36)을 체포했다. 그 보름 전 수사반은 오오사까에서 부산 거주 조상래(趙相來 44)를 검거, 한국에서 갖고 온 히로뽕 2㎏을 압수했다. 조(趙)씨의 수첩에는 하(河)씨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운반책인 조씨는 하씨로부터도 히로뽕을 건네 받게 돼 있었다고 자백했다. 경시청은 미군 수사 기관의 협조를 받아 하씨의 집을 수색, 건조 새우 안에 든 히로뽕 2㎏을 찾아냈다. 이 새우는 한국에서 군사 우편으로 부쳐 온 것이었다.
  
  하씨는 81년에 한국에 갔을 때 김(金)모 여인을 알게 되었다. 그 김씨가 용산 미군 기지 안에 있는 모 미군의 명의로 새우를 하씨에게 보낸 것이었다. 경시청은 그 미군 및 김여인의 구체적 인적 사항과 사는 곳을 알아내 한국 치안본부로 보냈다. 치안 본부로부터는 수사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하는데 누구를 구속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미국, 일본, 한국 등 세 나라가 관계된 밀수로서 그 동안 첩보로서만 나돌던 「미군 루트」의 실재를 입증한 중요한 사건이었으나 한국에서의 진전이 없어 전모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야마노씨는 말했다.
  
  『우리가 수사를 해보면 거의 빠짐없이 위로는 한국 조직이 드러나는데 거기서 수사가 막히고 맙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하선(下線)조직은 거의가 일본 거주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일본 내 조직에 대한 정보를 우리에게 주면 모조리 잡겠는데 한국으로부터의 정보 제공이 없군요』 기자가 일본 경찰의 편을 들려는 것은 아니지만 히로뽕에 관한 한 일본에서 오는 정보보다 한국에서 가는 정보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일본 경찰에 전달되면 틀림없이 일본 내 밀수입 조직이 적발될 것 같은 정보도, 워낙 한국에서는 사건이 많고 뒤처리에 바빠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묻혀 넘어가기 일쑤다. 지난 81년 여름에 서울지검이 적발한 JVC사의 VTR 부품을 이용한 히로뽕 밀수출 사건 같은 것이 좋은 예다.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비디오 메이커인 일본 JVC의 한국 대리점 사장 민(閔)모씨를 지명수배하고 그 하수인을 구속했지만 관련 정보가 일본의 경찰에 전달되었더라면 일본 내 관련 조직도 뿌리뽑혔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히로뽕 근절은 우리의 국책(國策)!』
  
  야마노씨도 히로뽕 확산의 가장 큰 이유는 섹스라고 말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권하고, 중독된 여자가 거꾸로 남자에게 권하고, 남자는 친구에게 권하고…악순환입니다』 야마노 과장은 『한국에서는 한해에 히로뽕 사범이 2백명쯤 잡히죠?』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말했다. 『10여년 전에는 일본에서도 그 정도밖에 검거되지 않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더니 이제는 한해 2만 명씩 잡히고 있습니다』 야마노씨는 『압수량은 줄었지만 한국으로부터의 밀반입양은 줄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과거에는 20㎏, 30㎏씩 운반하던 조직이 자꾸 붙들리니까 위험을 분산시키려고 소량씩 나눠 밀반입하는 것 같습니다. 수사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경시청 보안2과의 작품 중 고전적인 장기 수사로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은 1년간의 미행 끝에 적발한 81년 12월의 「신간선 30㎏ 운반 사건」이었다. 이때 잡힌 한국인 정성황(鄭成晃)씨에게 30㎏을 보낸 범인이라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던 정씨의 아버지 은종(銀宗)씨는 달아났다가 검찰에 출두,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그 뒤 다른 밀조 사건으로 수배됨). 같은 사건에 일본은 징역 17년, 한국은 무혐의 결정. 이것은 하일 양국간의 수사 협조, 그 실상과 한계를 보여 주는 사례다.
  
  야마노 과장의 말대로 일본이 히로뽕 대책을 국책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는 여러 군데서 발견된다. 거의 매일처럼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는 히로뽕·폭력단 기사, 거리에 나붙은 계몽 포스터, 방송을 통한 정부 홍보, 계몽 영화 상영, 파출소 게시판에 마다 붙어 있는 거물 히로뽕 사범의 수배 사건…. 한국의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하는 내각 총리 대신 관방심의실(官房審議室)의 약물 남용 대책 추진 본부를 찾았다. 경찰청, 후생성 등 임무를 띠고 있다. 담당관 이시이씨(石井硏志)는 『히로뽕, 헤로인 등 마약에 대해서만은 국가의 이익이나 위신보다는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정부간 협력이 있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총리부 건물 3층에 있는 이 추진 본부에서 역점을 두고 벌이는 계몽 사업은 히로뽕 중독자들의 수기를 모은 「각성제의 무서움」 「하얀 가루의 공포」 등 팜플릿의 보급이다. 「소녀의 수기」 「성인 수기」 「가족의 수기」 등의 장(章)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체험 기록엔 광기(狂氣), 地獄(지옥), 폐인(廢人) 등등의 극단적인 용어와 지긋지긋한 묘사가 많이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한때 매스 미디어에 의한 히로뽕의 상세한 소개는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으나 지금은 적극적으로 해독을 알리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란 계몽 방침을 굳혔다고 한다.
  
  야쿠자-일본 문화의 한 양식
  
  히로뽕, 그리고 야쿠자. 뗄 수 없는 이 두 명사는 일본인의 삶, 그리고 의식 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기자는 확인했다. 히로뽕이 얼마나 일본인들에게 익숙한 물건인가를 잘 표현한 사람은 헌법상 일본 경찰의 최고 통수 기관인 국가 공안위원회의 위원장이었다. 지난 82년 9월 당시 위원장은 총리부가 제공하는 텔리비전의 정부 홍보 프로에 출연, 『옛날엔 나도 히로뽕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히로뽕의 해독을 설명했다. 그가 말한 「옛날」은 물론 패전 직후로 히로뽕이 법으로 규제되기 전이었다. 그의 너무 솔직한 고백은 말썽을 빚기도 했다.
  
  패전 직후의 1차남용 시대엔 수백만 명이 히로뽕을 상용했고, 그 국민적 집단 체험의 기억은 일본인에게 아직 남아있으며, 그 기억을 없애 버리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일본의 영화관의 태반은 야쿠자를 미화하고 있다. 소소한 조직의 인사 이동도 주간지의 뺄 수 없는 취재거리다. 깡패 두목에 지나지 않는 다오까 등 거물의 전기(傳記)도 여러 권이 나와 있다. 그들의 앨범사진이 특집으로 잡지에 실리기도 한다. 일본 폭력단과 가까운 고마다 요시오, 고다마와 밀접한 다나까 전 수상을 2대표적으로 겨냥, 집요한 공격을 되풀이해 온, 그 유명한 잡지 문예춘추(文藝春秋)조차 지난해 7월호에 다오까 사망 3주기를 앞둔 그의 가정을 사진 특집으로 보도했다.
  
  1월 6일 오전 기자는 지요다구(區)에 있는 문예춘추 빌딩에서 오까자끼(岡崎滿義) 편집장을 만났다. 털털하게 생긴 그는 『사실 그 때는 편집실 안에서도 반대가 있었지만, 다오까의 집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호기심을 위해 싣기로 결정했었다』고 말했다. 『야쿠자 세계에는 일본인의 의식 구조를 반영하는 요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와바리」의식, 오야붕·꼬붕 관계, 의리·인정 등등. 그래서 일반인들이 야쿠자에 대해 이질감을 덜 느낀다고 할까요』 일본의 주간지 가운데 야쿠자 관계기사를 가장 많이, 또 가장 정확히 취급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것은 덕간출판사(德間出版社)에서 나오는 「아사히 예능(藝能)」이다. 도쿄의 무교동이라 할 신바시(新橋)에 있는 이 잡지사의 편집장 다찌바나씨를 만났다.
  
  『매주 야쿠자 관계 기사를 싣는 것은 장사가 되기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55만 부를 찍습니다』
  『한국인으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데……』
  『일본인에겐 「남자다움」에 대한 선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은 옛날엔 무사, 지금은 야쿠자지요. 일본의 남자들이 조직 속에서 샐러리맨화 하면 할수록 남자다움, 야성, 야쿠자, 이런 것들에 대한 동경은 더 높아집니다. 그런 동경을 우리 같은 잡지가 충족시켜 주거든요』
  『그런 동경은 이상형의 야쿠자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지금의 일본 야쿠자 세계를 지배하는 논리는 무엇입니까? 의리입니까, 돈입니까?』
  『역시 돈이라고 봐야겠지요』
  그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히로뽕에서 나온다. 일본과 한국 히로뽕 문제의 뿌리와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일본 폭력단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기자는 그 세계 속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10만 병력의 범죄(犯罪) 재벌
  
  기자 앞에서 지금 거대한 절벽이 버티고 서 있다. 연 매상고 1조7천억 원(한화 환산)의 히로뽕 밀매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일본의 조직 폭력단. 이 조직은 일본 자위대(20만 명), 경찰(25만 명)에 다음가는 제3의 무장 집단이다. 그들은 82년 말 현재 2천3백95단체, 10만2백37명의 병력, 그리고 수많은 권총·장총을 보유하고 있다. 폭력단원의 90%는 전과자, 반 이상은 해마다 한 번씩 경찰에 검거된다. 일본 전국민의 0.1%에 불과한 이들이 전체 형사범의 10%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범죄집단임을 증명한다(일설에는 형무소 인구의 4분의 1이 폭력단 관계자라 함).
  
  폭력단은 범죄 재벌이기도 하다. 1978년 일본 경찰청 산하 과학 경찰 연구소는 폭력단의 수입을 추산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 해 총수입은 1조8백19억엔, 한화로는 약 3조5천억 원. 총수입의 약 10%는 합법사업을 통해, 나머지 90%는 범죄를 통해 벌어들인 것이다. 폭력단 총수입은 일본에서 가장 큰 유통업체 다이에이의 연매출액을 웃돈다. 폭력단의 수입에는 원가가 거의 들지 않는다. 총수입은 순수익으로 봐도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10대 재벌이 올리는 순수익을 몽땅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이 이 「범죄 콘체른」인 셈이다.
  
  이 보고서는 폭력단원들의 수입 내역도 추정했다. 1인당 한해 평균 수입은 한화로 환산 약3천5백만 원이었다. 그들은 월급 3백만원짜리의 최상급 샐러리맨? 각 조직의 수령급은 한해 약1억 원의 수입을 평균적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폭력단 총수입의 44%는 히로뽕 밀매에서 생기고 있다고 추정했다. 1982년 일본에서 히로뽕 범죄로 경찰에 붙들린 2만3천3백65명 가운데 47.5%인 1만1천96명은 폭력단원이었다. 이 머리숫자는 일본 폭력단원 전체 병력의 약 10%다. 82년에 형사범으로 검거된 폭력단원들의 총수는 5만2천2백75명, 위반 법규별로 보면 5만2천2백75명, 위반 법규별로 보면 「각성제(히로뽕) 취체법 위반」이 가장 많아 21.2%나 되었다.
  
  일본 폭력단은 해마다 이런 막대한 병력 손실을 당하면서도 히로뽕 루트를 사수(死守)하고 있다. 그것이 그들의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6백 개를 넘는 일본의 시(市) 가운데 폭력단 조직이 있는 곳은 거의 70%나 된다. 전국 방방곡곡에 모세 혈관처럼 뻗어 있는 폭력단의 조직 네트워크는 거대한 히로뽕 판매망으로도 가동하고 있다. 일본에서 히로뽕 단속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판매망이 지하 조직이고, 전국적이기 때문이다.
  
  수퍼맨화(化)의 매력
  
  1월7일 토요일 오전, 기자는 서둘러 도쿄 야스꾸니신사(神社) 맞은 편에 있는 과학 경찰 연구소로 갔다. 한국의 치안 본부 산하 국립 과학 수사 연구소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폭력단 및 히로뽕문제에 가장 밝은 두 범죄학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방범소년부 환경 연구실의 호시노(星野周弘) 실장은 18년 동안 폭력단에 대해 60여 편의 논문을 쓴 권위자, 그의 밑에 있는 책임 연구관 다무라씨(田村雅幸)는 히로뽕 범죄에 대한 전문가다. 두 사람의 연구는 일본 경찰의 폭력단, 히로뽕 대책 수립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경찰청 직원이지만 대학 교수 같은 인상의 두 사람은 업무를 전폐하고 취재에 응해 주었다. 두 사람은 본 기자를 통해 한국의 히로뽕 사정을 알고 싶어했다. 이야기는 자연히 열띤 토론이 되었다. 라면을 시켜 먹으면서 일과 후까지 네 시간 동안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야쿠자의 기원에 대해 호시노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도꾸가와 막부시절, 18세기 중엽, 에또(도쿄)에는 도시 토목 공사가 크게 이뤄졌다. 막부는 농민들을 불러 올려 공사를 시켰다. 막부는 중개인을 내세워 이들 노동자에게 도박장을 제공했다. 중개인은 판돈에서 얼마를 뜯어 그 일부를 막부에 상납하고 나머지는 가졌다. 이들은 박도(博徒), 즉 노름꾼으로 일컬어졌다. 그들은 일정한 지역, 즉 「나와바리」를 세력권으로 하고 그곳에서의 도박을 독점 관리하게 되었다. 적옥(的屋)이라는 그룹은 예부터 경축일에 경내나 거리에서 노점이나 연예판을 벌이던 무리였다. 이들도 세력권을 형성, 박도와 같이 영리 목적의 폭력 집단으로 변해 갔다. 일본의 현재 폭력단은 그 기원에서 박도, 적옥, 그리고 전도(戰徒)에 나타난 불량 청소년 출신으로 갈라진다. 명치(明治)시대 이전, 그러니 1백여 년 이전부터 있었던 조직도 적지 않다.
  
  호시노씨는 「야쿠자 문화」라는 말을 썼다. 미국의 마피아와는 달리 일본 야쿠자는 일본 사회의 한 문화 양식으로 수용되고 있다. 마피아의 정체는 신비의 베일에 가려 있고, 그 미스터리가 공포와 저주의 감정을 유발하고 있다. 일본 야쿠자는 옛날의 「사무라이 문화」를 현대에 재생시킴으로써 동경과 친근감마저 불러일으킬 만큼 일본인들의 의식구조 속에 별 거부감 없이 터잡고 있다. 야쿠자는 절도나 강도처럼 일방적으로 시민의 재산을 앗아가지 않는다. 채권해결, 총회꾼, 마약 밀매, 포르노 산업, 도박장 개설, 업소 보호 등 비록 비합법적이긴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다. 개인적 피해자가 없다. 그래서 일반인들로부터는 「필요악」 정도로 평가받았다.
  
  야쿠자의 조직 윤리는 가족의 확대판이다. 오야붕(아버지)-꼬붕(아들)의 수직 관계와 의형제(義兄弟)의 수평 관계가 조직의 뼈대다. 이 「의제혈록(擬制血綠」 관계의 의리, 충성은 일본 사회의 기본적 인간 관계와 비슷하다. 호시노씨의 조사에 따르면 오야붕이 범행을 명령한다면 『무조건 따른다』는 꼬붕이 34.6%나 됐다고 한다. 오야붕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들어가라』고 명령해도 『무조건 따른다』는 꼬붕은 33.8%였다.
  
  야쿠자가 왜 히로뽕 밀매를 독점하게 되었는가? 다무라씨는 재미있는 해석을 했다. 현실주의적 민족(일본, 한국)은 술을 즐기고 명상적 민족(인도)은 환각제(大麻)에 탐닉한다는 얘기가 있다. 일본, 한국인들은 긴장 지속형(Tension)민족, 또는 일 좋아하는(Workaholic)민족으로서 노는 데 있어서도 「열심」을 요구하여 해방, 무위, 이완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헤로인에 의한 인간의 퇴행(退行)이 아니라, 히로뽕에 의한 「수퍼맨화」를 꿈꾼다. 특히 일본인의 신체적 열등감이 간담을 키워 주는 히로뽕에 잘 넘어간다. 히로뽕의 효과는 또 야쿠자들이 이상형으로 삼는 인간상을 현실화시켜 준다.
출처 : 월조
[ 2003-07-09, 15: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