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뽕 지하제국 탐험(제 2부) - 쫓는 자와 쫓기는 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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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현해탄의 風波
  
  地下帝國에 내려진 살인지령
  
  釜山의 어느 관광 호텔에서 종업원 반장으로 일하고 있는 金幸福(42)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日本도야마縣의 조직 폭력단 北友會에서 20년 동안 [야꾸자]생활을 했다. 일본에서 모종의 강력 사건을 저질러 옥살이를 한 그는 4년 전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 단단한 몸집, 스포트 깎기의 헤어 스타일, 독특한 일본어 발음에서 그는 아직도 [야꾸자]의 냄새를 풍긴다. 金씨는 지금도 韓·日 폭력단 세계의 정보에 밝다.
  
  {일본의 야꾸자들이 요즘 재일 동포 한 사람을 지명 수배해 놓고 있읍니다. 그 사람 목에 현상금 1백만 엔을 걸었죠. 물론 저에게도 잡아달라는 부탁이 바다 건너서 왔어요. 이 남자는 5개 폭력단이 공동 투자하여 구입한 다이어먼드 6백 개를 훔쳐 한국으로 도망왔읍니다. 그는 오야붕의 수행 비서였지요. 약 1억 원어치나 되는 다이어예요. 제가 추적해 보니 그는 한국내 애인과 함께 지금 서울, 경주를 여행다니고 있어요}
  {왜 폭력단에선 일본경찰에 신고를 안했죠?}
  {그 다이어가 밀수품이니까…}
  {한국에서 그를 발견하면 어떻게 합니까?}
  {일본으로 연락을 하면 5∼6명의 꼬붕들이 달려와 데리고 가게 돼 있읍니다}
  {따라 갈까요?}
  {모든 걸 용서해주겠다고 구슬러서 데려가겠지요}
  {데려가선?}
  {죽일 겁니다. 죽이기 전에 그의 면전에서 마누라를 욕보일지도 모르죠. 한국으로 도망오기 전에 본처와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만 조직에선 위장 이혼으로 보고 있어요}
  
  金씨는 자신이 히로뽕의 유혹을 숱하게 받고 있다고 했다. 안면 있는 일본 폭력단에선 히로뽕을 사달라고 부탁한다. 한국의 밀매 조직에선 팔아달라고 부탁하고. 3년 전엔 일본 깡패와 한국 뽕꾼을 소개해 주었다가 쇠고랑을 찰 뻔했던 金씨다. {지금도 선을 달아달라고 조르는 뽕꾼들이 10명쯤 됩니다. 이달말에는 또 일본에서 야꾸자가 한 명 찾아올 겁니다. [시고또노 다메니 이끼마스](일 때문에 간다)라고 국제 전화를 걸어왔는데 그들이 한국에서 할 일이야 히로뽕밖에 더 있읍니까?}
  
  한국이 10만 일본 야꾸자들의 뒷마당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25만 일본 경찰의 눈이 번득이는 자기 나라에서 못할 일을 그들은 한국에 와서 벌인다. 1978년 11월 일본에서 네번째로 큰 (단원 4천2백 명) 관동 지방의 폭력단 도천회(稻川會)가 [도박 관광단]을 조직, 釜山과 서울의 관광 호텔 카지노에서 수억엔대의 판을 벌였다가 간부들이 일본에서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稻川會의 어느 간부는 釜山의 모 카지노에 투자까지 해놓고 있었다. 이 도박단의 안내역을 맡았던 것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단번에 알만한 프로 권투 매니저 S씨였다고 日本신문에선 보도했었다. 재일 동포 S씨는 稻川會의 간부였는데 도박장을 개설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재판을 받던중 한국으로 도망갔다는 것이었다. 많은 일본 깡패들이 한국으로 사격 연습을 하러 오기도 한다. 태릉 사격장에선 여권을 가진 외국인에 한하여 38구경, 22구경 권총의 실탄 사격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0발에 8천 원.
  
  金幸福씨에 따르면 일본에선 깡패들이 실탄 사격 훈련을 할 데가 없다고 한다. 권총뿐 아니라 장총까지도 많이 갖고 있는 일본 야꾸자들은 손이 근질근질하여 죽을 지경이란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권총을 방석으로 둘둘 말아 방음 처리를 한 뒤에 조심조심 사격 연습을 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들은 관할 구역(나와바리)을 둘러싼 분쟁이 예상되면 전력 연마를 위해 깡패들을 한국·필리핀 등지로 보내 권총 사격 훈련을 하고 오게 한다는 것이다. 일본 깡패들이 경찰의 눈을 피해 총회를 한국에서 개최한다는 것은 예부터 알려진 이야기다. 최근 어느 폭력 조직은 한국에서 방탄조끼를 수입해 가기도 했다. 그들의 꾐에 빠져 對日 밀수품 권총과 실탄을 구하러 다니던 한국사람이 서울시경에 구속된 적도 있었다. 서울의 몇몇 주먹장이들은 日本 폭력단에의 입단식을 엄숙하게 하고 왔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실정이다. 암흑 세계에서의 빈번한 한·일 교류는 히로뽕 수출 루트의 컨베이어 벨트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뽕꾼들 코 꿰는 야꾸자들
  
  6년만에 히로뽕 세계에서 손을 씻고 나온 梁學承씨에게 일본 야꾸자는 거머리처럼 진절머리나는 존재로 인상 박혀 있다. 지난 81년 1월 梁씨는 관광 안내인 金모씨(60)로부터 다나까 야스히로(34)라는 앳되어 보이는 일본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는 고오베에서 온 폭력단 山口組의 말단 야꾸자였다. 다나까는 1천4백만 엔을 내어 놓고 히로뽕 5kg을 구해달라고 했다. 81년 1월8일 서울의 A호텔 객실에서 7명의 관계자들이 모여 상담이 벌어졌다. 즉석에서 그들은 합의를 보았다. 먼저 관광가이드 金씨가 소개료 50만 엔, 다나까의 수행원격인 다른 金모씨가 75만 엔, 梁씨가 알선비로 1백55만 엔, 對日 운반책 韓모씨가 3백만 엔, 히로뽕 조달책 朴모씨가 물건값 8백만 엔씩을 그 자리에서 나눠 가졌다. 물론 다나까는 소량의 샘플 제시를 요구, 순도를 확인한 뒤 돈을 주었다. 梁씨는 물건을 열흘 뒤까지 다나까가 적어 준 전화번호의 日本내 수취인에게 전달할 것을 약속했다. 물건이 日本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통보가 올 때까지 깡패들은 한국에 머물러 있는 것이 관례다. 거래 약속의 이행을 감독,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거래에서 문제가 생겼다. 조달책 朴씨는 晋州에서 밀조 공장을 돌리고 있는 姜모씨에게 5kg 대금을 주었다. 며칠 뒤 이 姜씨가 수사 당국에 잡혀버린 것이다. 당황한 것은 다나까였다. 그는 梁씨를 물고늘어지기 시작했다. 다나까의 [오야붕]은 일본에서 계속 독촉전화를 그에게 걸어오니 다나까도 사색이 되었다. 梁씨가 [이게 어디 나 혼자만의 책임이냐]고 시간을 끌자 다나까는 어느 날 梁씨의 아파트로 쳐들어왔다. 재크 나이프를 뽑아든 그는 梁씨의 외동 딸을 냉큼 낚아채 가선 목에 칼을 들이대고 [죽인다]고 협박했다. 다음날엔 학교길의 딸을 호텔로 납치, 梁씨를 위협하기도 했다. 그 몇해 전 어느 뽕꾼이 서울의 호텔에서 일본 야꾸자에게 칼을 맞아 빈사 상태에 빠졌으나 경찰에 신고도 못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梁씨는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뒤 梁씨는 점포를 저당잡히고 1천5백만 원을 빌어 딴 루트를 통해 5kg을 구해 日本으로 보내 주었다.
  
  일본 야꾸자에게 혼이 난 것은 梁씨가 처음은 아니다. 80년5월에 釜山지검에 구속된 孫浩烈씨(50·서울 厚岩동)는 서울 A호텔에서 만난 [야꾸자]에게 히로뽕을 계속 알선해 주다가 아무래도 불안하여 손을 씻으려 했다. 그러자 일본 깡패들이 {한국 경찰에 신고하겠다} {칼잡이를 보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 히로뽕을 턱없는 헐값에 받아가곤 했다. 위협에 못이겨 계속 밑지는 장사(알선)를 해오던 孫씨는 검찰에 구속되자 {오히려 마음이 후련하다}고 했다.
  
  釜山지검에서 마약 담당을 했던 이경재(李炅在)검사에 따르면 이런 일도 있었다. {일본의 山口組에 포섭된 재일 동표 A는 釜山에 건너 와 히로뽕 1kg을 인수, 오오사까 공항으로 날아갔다가 그곳 세관원에게 적발되었다. 그러자 山口組는 A의 아내를 다시 釜山으로 보냈다. A의 처는 출국 직전에 잡혔는데 폭력단에서 남편의 실수를 엄히 추궁, 자신이 代役을 맡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폭력단에게 코를 꿰여 혼줄이 난 한국의 뽕꾼들은 한둘이 아니다. 최근들어 한국의 밀매 조직이 히로뽕 거래를 선금제로 바꾼 것도 야꾸자들의 간계에 대한 방어책으로서라고 한다. 물건을 먼저 가져간 뒤에는 [질이 좋지 않더라]고 생떼를 쓰며 값을 깎는 일이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위조 수표로 물먹이기도…
  
  뒷 이야기지만 梁씨를 괴롭힌 다나까는 그의 부하 가시모또(30)와 함께 지난 4월 釜山지검에 구속되었다. 히로뽕 2kg을 구입, 한국인 운반책에게 넘겨 일본으로 반출시키기 직전 붙들린 것이다. 이 다나가는 한국의 히로뽕 조직에겐 얼굴이 많이 알려진 야꾸자이다. 그는 수십 번이나 서울·釜山을 들락거리며 적어도 수십kg의 히로뽕을 가져갔을 것이다. 범죄 집단 내부의 범죄는 사직당국에 신고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점을 악용, 상습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일본인들도 있다. 지난 5월 釜山지검에 구속된 오오이시 다까시(51·다까마쓰市)와 가다히라 고조(50·오오사까市)는 미쓰비시 은행이 발행한 것처럼 위조한 2백만 엔짜리 수표 등을 가지고 濟州시로 건너 왔다. 제주시의 다방 주인에게 위조 수표를 주고 한화6백40만 원을 바꾼 둘은 釜山으로 건너와 그 돈으로 히로뽕 1kg을 샀다가 붙들렸다.
  
  오오이시 다까시는 지난 81년11월에도 긴끼 상호 은행이 발행한 것처럼 위조한 1백만 엔짜리 수표 18장을 사용, 한국 밀매 조직으로부터 히로뽕 18kg을 밀수입했다가 서울시경에 붙들렸었다. 그는 징역 1년을 살고 지난 82년11월16일에 출소, 日本에 돌아갔다가 다시 이런 짓을 했다. 이런 전과자들이 韓國으로 거듭거듭 입국할 수 있다는 것도 출입국 관리의 문제점이다. 한국 뽕꾼들에겐 간교하기 짝이 없는 일본깡패들이지만 그들끼리의 의리는 대단하다 지난 76년 교오또 合津小鐵會의 두 야꾸자가 釜山에 거래선을 찾으러 왔다가 샘플 50g을 구해 구두창밑에 숨겨 비행기를 타려다가 붙들렸다. 경찰에선 문제의 구두를 신은 한 명만 구속하려 했다. 그런데 형뻘 되는 다른 한 명이 [나도 이 거래에 관련 있다]고 자수, 함께 구속했다. 둘은 징역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형뻘 되는 사람은 같이 했다고 하면 부하의 형량이 분산, 감소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 의리의 두 사나이를 위해 合津小鐵會에선 달마다 위문 사절(?)을 부산 교도소로 보내 과자·초콜리트 등을 갖다 주곤 했었다.
  
  두드러진 山口組의 개입
  
  히로뽕 구입을 위해 한국을 찾는 일본깡패들은 거의가 말단이다. 간부들이 직접 히로뽕에 손대는 것은 좀처럼 드물다. 일본 폭력단 간부들은 오히려 [각성제(히로뽕)를 추방하자]는 가두 캠페인에 앞장설 정도다. 그들은 뒷구멍으로는 하부 조직에서 히로뽕 밀매로 벌어들인 돈을 상납받으면서도 겉으로는 어디까지나 俠客을 자처한다. 한국 히로뽕꾼들과 거래를 하고 있는 폭력단으로는 日本최대의 야마구찌조(山口組) 산하의 조직이 압도적으로 많다. 고오베에 본부를 둔 山口組는 1만3천여 명의 단원을 휘하에 두고 주로 고오베·오오사까·교오또·시모노세끼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야마구찌組의 세력권이 공교롭게도 釜山과 왕래가 빈번한 곳이라 일찍부터 그들은 한국의 히로뽕 세계와 유대를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일본 깡패들이 밀매 루트를 처음으로 트는 경로를 보면
  ① 日本에서 소개를 받아 오거나
  ② 일부관광 가이드나 토산품 판매업자들을 통하거나
  ③ 공항 주변을 맴도는 택시 운전사나 영업 행위를 하는 자가용 운전사들의 알선을 받는 수가 많다고 한다.
  특히 일부 관광 안내원들은 히로뽕 알선을 부업으로 삼고 있을 정도다. 지난 70년 이후 釜山에서 히로뽕에 관련돼 구속된 日本人은 약 30명인데 반은 폭력단원, 나머지 반은 게릴라식의 소매업자들이었다. 이들 소매업자 중에는 일본에서 비싸게 주사를 맞느니 한국에 가서 헐값에 히로뽕을 사겠다고 무작정 현해탄을 건너와 완월동의 창녀들을 통해 수소문을 하다가 창녀들의 신고로 쇠고랑을 차기도 한다. 사업을 하다가 망해 최후의 승부를 히로뽕에 걸고 집까지 처분한 돈을 가지고 한국에 한탕하러 건너오는 순진파(?)도 더러 있다. 이런 초심자들일수록 잘 잡힌다. 폭력단원들은 거래 약정만 하고 日本까지의 운반은 한국인에게 맡기는 데 반해 [게릴라]들은 직접 물건을 갖고 나가려다가 덜미를 잡히는 것이다.
  
  日本 대사관엔 히로뽕 전담 직원
  
  일본이 한국의 히로뽕수사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7년전부터 서울의 일본 대사관과 釜山의 총영사관에 히로뽕 전담 직원을 상주시키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 담당자는 서울 대사관의 일등서기관 이시즈끼 히로시, 釜山 총영사관의 가나마루 에이지 영사다. 두 사람 모두 경찰 간부로서 경찰청에서 외무성에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두 나라 수사 기관 사이의 연락관 구실을 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구속됐을 때의 뒤처리도 한다. 일본 경시청은 한국에서 건너온 밀반입책들을 붙들면 인터폴을 통해 치안 본부에 사건 개요를 통보하지만 이들 대사관 직원을 가끔 활용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큰 조직이 검거되면 그 수사정보를 일본으로 보고하는 것도 이들의 의무다. 물론 접수된 상대국 수사 기관의 자료를 가지고 어떻게 수사를 할지 또는 그냥 참고만 할지 하는 것은 당사국의 자유다. 이들의 임무는 자료 전달에 그칠 뿐, 어떤 요구는 할 수 없다.
  
  3년 전 釜山총영사관은 일본 경찰청으로부터 곤란한 의뢰를 받고 고민한 적이 있었다. 金海공항을 거쳐 후꾸오까에 도착한 두 일본인이 따로따로 히로뽕 소지 혐의로 검거되었다. 이들은 한국내 비호 세력의 이름을 들먹였다. 소속이 각각 다른 세 사람의 한국인 수사관 이름이 나왔는데 일본인들은 이들로부터 여러 가지 출국상의 편의 제공을 받았다고 했다. 日本경찰청은 釜山총영사관으로 공문을 보내 세 사람이 實在 인물인지의 여부를 알려달라고 했다. 조회 결과 모두 실존 인물이었다. 총영사관에선 그러나 한국 수사 기관엔 이 사실을 일체 비밀로 붙였다.
  
  일본을 통해 한국 수사 기관으로 넘어오는 정보를 활용, 범인들을 검거한 예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孔昌喜검사는 [똑같은 자료가 내무부, 법무부, 보사부등 세 갈래로 전달되는 바람에 여러 수사 기관에서 동시에 용의자들을 들쑤셔 상대방이 방어 태세를 취하게 할 뿐 별 소득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측에선 [우리가 범인의 주소지와 범행 상황까지 자세히 통보했는데 왜 잡지 않느냐]고 내심 못마땅한 눈치를 보일 때도 있다. 지금은 도망중인 히로뽕元祖 정은종(鄭銀宗)씨의 경우, 일본 경시청이 그의 아들과 운반책을 검거, [新幹線30kg]의 발송인은 鄭銀宗씨라는 내용의 자료를 치안본부로 보냈으나 한국 검찰에선 그 자료로는 鄭씨를 기소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鄭씨는 얼마 동안 피해다니다가 82년 봄에 검찰에 출두, [나는 아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 풀려났다가 최근 다른 밀매 사실이 발각돼 전국에 지명수배되어 있는 형편이다.
  
  지난해부터 한일 히로뽕 대책 실무자회의가 해마다 한번씩, 간담회가 서너번씩 열려 정보 교환을 모색하고 있으나 실효는 아직이다. 가나마루 영사는 {한국으로 건너오는 일본 깡패들은 대부분 이쪽의 이름난 조직 리스트를 환히 외고 오거나 그러지 않아도 쉽게 밀매 조직과 접선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면서 {히로뽕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고 다만 그것을 日本까지 어떻게 운반하느냐가 문제다}고 말했다.
  
  위장 속에 히로뽕 감추고…
  
  후꾸오까 적십자 병원의 의사는 개복 수술을 위해 변정덕( 正德)씨의 배를 갈랐다가 깜짝 놀랐다. 작은 비닐 봉지 여섯개가 실에 주렁주렁 묶인 채 배속에 들어 있는게 아닌가? 그것을 꺼내 환자의 친구인 瀨口씨는 어물어물하더니 다섯 봉지를 낚아채 달아났다. 의사는 남은 봉지 하나를 경찰에 넘겼다. 그것은 히로뽕으로 판정되었다. 택시 운전사 출신인 환자 등 친구 세명은 그 5일 전 釜山으로 관광차 갔었다. 거기서 그들은 일화 30만 엔을 주고 히로뽕 1백g을 구했다. 이들은 히로뽕 상습자들로서 자기들이 사용할 히로뽕을 헐값에 구하러 부산에 간 것이었다. 문제는 日本까지의 운반 방법이었다. 이들은 손가락을 다쳤을 때 끼우는 비닐 골무 일곱 개를 구했다. 그 속에 히로뽕을 넣고 실로 곶감처럼 달아매었다.  正德씨는 이것을 꿀꺽꿀꺽 삼켰다. 실의 끝머리는 이빨 사이에 끼워 걸어 두었다. 항공편으로 일본에 돌아온 일당은 후꾸오까 여관방에 틀어박혀  씨의 배속에 든 히로뽕을 당겨 올리다가 첫번째 봉지만 회수하고 실을 놓쳐버렸다. 방법이 막연했다.  씨는 배가 아프다고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두 친구는  씨를 데리고 병원에서 개복 수술을 받게 했다. 결국 그 수술이 화근이 되어 몽땅 잡히고 말았다.
  
  1978년 5월일 일이었다. 83년 2월 釜山지검 마약 담당 검사실로 여자의 전화가 걸려 왔다. 히로뽕 전과자로 지금은 정보원으로 전향한 그녀는 특수 정보를 제공했다. {지금 빨리 釜關페리 부두로 가십시오. 미꾸라지 통, 검은 표시가 돼 있는 것을 찾으세요} 즉시 수사용원들은 접안중인 페리호 부근에 잠복했다. 얼마 있으니 타이탄 트럭이 도착, 수출용 미꾸라지통 백여 개를 내려 놓는 게 보였다. 다짜고짜 검은 점이 찍힌 일곱 통을 끄집어냈다. 함석통인데 미꾸라지를 살려서 가져 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통을 해체했다. 히로뽕은 가운데를 양쪽으로 잘라 만든 공간 안에 들어 있었다. 한 통에 5백g씩 모두 3.5kg이 압수되었다. 物主를 추궁하니 기다야라는 일본인이 히로뽕을 부탁했다는 거였다. 그가 묵고 있다는 남포동 여관으로 수사관들이 뛰었다. 몇 시간 전에 나갔다는 것이었다. 이번엔 공항으로―. 金海공항에서도 같은 결과였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일본行 비행기를 타고 출국했음을 확인했다. 기다야씨는 멀리서 미꾸라지통이 압수되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서둘러 내뺀 것이었다. 히로뽕꾼들은 물건을 운반하는 [지게꾼](운반책)뒤에는 반드시 미행자를 따라 보내 사고 여부를 감시, 일단 유사시에는 신속히 도망가는 방법을 쓰고 있다.
  
  해상 박치기의 현장
  
  소량의 히로뽕은 위에 예로 든 기기묘묘한 수법으로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 수 있지만 대량일 때는 보통의 눈가림 방법으로는 어렵다. 그래서 해상 박치기 수법이 대량 밀수수법으로 정착되었다. 日本경찰청 보안과가 펴낸 [昭和57年中에 있어서의 약물 사범 취재 상황]이란 자료에 따르면 82년에 일본경찰이 소탕한 4개 해상 박치기 조직이 일본에 밀반입한 히로뽕은 약7백kg(日本年間소비량의 약25%)이었다. 韓國의 원조 鄭銀宗씨가 자기 아들을 日本내 운반책으로 삼고 30kg을 밀수출시켰다가 新幹線 안에서 운반인들이 일망타진된 사건도 경찰은 [해상 박치기]조직의 소행으로 단정했었다. 新幹線 사건 넉달 뒤인 82년 3월31일 日本규우슈 북쪽의 關門 해협 부근 해안에서 한 어부가 이상한 물건이 표착해 있는 것을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그 물건은 플래스틱 통이었다. 부서져 있었다. 석유 냄새가 났다. 통의 바닥은 칼로 도려내어지고 대신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밑으로 물건을 쑤셔넣은 다음 기름을 부어 기름통으로 위장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어부는 근처에서 비닐 봉지 26개를 주웠다. 플래스틱 통에서 삐져 나온 것이었다. 물론 히로뽕이었다. 그것도 순도 95%의 최고급이었다. 베테랑 수사관들은 단박에 {이것은 鄭銀宗의 물건이다}고 단정했다.
  
  제조 경력 30년의 鄭씨의 제품은 질이 좋기로 日本에까지 소문나 있었다. 이 정도 물건을 만들 만한 사람은 鄭씨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었다. 경찰은 新幹線 사건에 관련된 한·일 두 나라 조직들이 이 플래스틱 용기를 해상 박치기 수법으로 인수인계하려다가 급박한 사고가 나 50억 엔어치가 든 통을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라고 추리했다. 무슨 사고가 생겼을까? 한국배와 일본배가 랑데부하기로 한 공해상에 日本 순시선이 갑자기 나타났던가? 아니면 양쪽 조직 사이에 다툼이 생겼던가? 밀수꾼들은 밀수품의 꾸러미를 배꽁무니에 밧줄로 길게 매달아 끌고 목적지로 가다가 순시선이 다가오면 밧줄을 끊어버린다. 히로뽕 포착 사건이 발생한 관문 해협근해는 [해상 박치기]의 주무대다.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사건이 81년5월 忠武에서 있었다. 히로뽕 밀매범 金모씨(당시45·도망)는 제품5kg을 對日활장어 수출선 인성호(47t) 선주 金수기씨(34)에게 맡겼다. 日本의 우노항에 있는 어느 일본인에게 전해 주면 7백5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金선주는 직접 배를 타고 우노항에 들어갔다. 日本쪽의 감시가 심해 물건을 전달하지 못하고 돌아오게 되었다. 귀항 도중 선원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그대로 히로뽕을 갖고 돌아가면 위험하니 對馬島등대 밑에 묻어두고 가자는 파와 이에 반대하는 파가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격투를 벌였다. 결국 묻어 두고 가기로 승부가 났다. 묻기 직전 히로뽕을 보관하고 있던 선원이 히로뽕을 쌀봉지와 바꿔치기하려다가 金선주에게 발각되어 반죽음을 당했다. 金선주는 선원 몇 명만 데리고 히로뽕을 묻으려 對馬島에 상륙했으나 묻는 시늉만 하고 히로뽕을 지닌 채 돌아왔다. 金선주는 밀매범 金씨에게 對馬島등대 밑에 묻어 놓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밀매범 金씨는 물건을 돌려달라고 했다. 金선주는 왕복 비용으로 2백만 원을 요구, 자기집에 숨겨 두었던 히로뽕을 갖다 주고 돈을 받아 챙겼다. 金선주는 히로뽕에 재미를 붙였던지 얼마 있다가 히로뽕 3kg을 직접 구입했다. 忠武의 새마을 금고 이사장인 馬모씨를 통해 그는 日本의 수입선인 니시씨를 소개받았다. 약정 단가는 kg당3백50만 엔. 성공하면 馬씨에겐 알선료1백50만 원을 주기로 했다. 金선주는 배를 몰고 日本 세또나이海로 들어가 히로시마縣 해안으로 접근했다. 칠흑 같은 밤, 金선주는 약속대로 갑판에서 비상 전등을 휘둘렀다. 맞은 편에서 {알았다}를 뜻하는 전등 신호가 왔다. 작은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니시씨가 소형 어선을 타고 마중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니시씨는 물건 3kg을 받자 4백만 엔만 내어 놓고 이것밖에 없으니 싫으면 물건을 가져가라고 배짱을 내민다. 1천50만 엔을 받기로 약속했는데… 金선주는 별수없이 물건을 넘겨 주고 돌아왔다. 니시씨는 忠武의 馬씨에게 나머지 돈을 송금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馬씨는 金선주가 알선료를 주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한다고 한바탕 싸우기도 했다. 金선주 일당은 두달 뒤 잡혔다.
  
  對日히로뽕 밀수출 수단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은 활선어 운반선이다. 82년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수출된 활선어 및 패류는 5만9천8백t에 1억5천만 달러어치였다. 活鮮魚운반선은 배 안에다가 물고기를 살려서 운반하는 시설을 해놓고 있다. 현재 釜山과 麗水선적으로 등록된 운반선은 76척이다. 이들 운반선은 어장에서 활어를 받아 싣고 한국측의 통관 수속 없이 곧장 日本으로가 물건을 부린 다음 귀항, 사후 통관 절차를 밟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특수 정보가 없는 한 출항때 히로뽕을 싣는 것을 적발하기란 무척 힘들게 되어 있다. {의심스럽다고만 해서 수색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배를 잡아 두면 생선이 상하게 되는데 만약 수색에서 아무것도 나오지 안으면 어쩝니까? 수색한다고 해도 수천 개의 상자를 일일이 뒤져야 하는데… 정보원이 히로뽕 은닉처를 정확하게 찍어주지 않으면 수색이 불가능합니다} 어느 마약 담당 출신의 검사 얘기다. 1년에 현해탄을 건너 日本에 입항하는 한국배는 1만 척에 가깝다. 약55%는 시모노세끼나 우노항에 들어가고 있다. 지키는 사람이 열명이라도 도둑 하나를 못잡는다고 하는데 지금 실정은 도둑은 열이고 지키는 사람은 하나인 상황이다.
  
  항공 루트의 기발한 수법들
  
  어느 날 釜山鎭경찰서의 李종집 형사는 기묘한 첩보를 하나 얻었다. 관할지역 안에 있는 목공소에 재일 동표가 나무불상을 주문했는데 바닥에다가 사방 20cm정도의 홈을 파 놓으라고 당부하더란 것이다. 李형사는 한달 뒤 재일 동포가 완성된 불상을 넘겨 받다 가는 것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재일 동포는 東萊의 어느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李형사는 바깥에서 하룻밤을 새우며 감시한 다음날 새벽에 덮쳤다. 불상을 뒤집어 보았더니 히로뽕 2kg이, 파여진 홈에 다져 놓여져 있었다. 재일동포는 불상을 들고 출국하기 전에 붙들린 것이다. 1978년의 일이었다. 이 정도의 은닉법은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청자나 백자 모조품을 만드는 단계에서 장인에게 부탁, 히로뽕을 그릇 몸 안에 미리 집어넣는 방법도 쓴다. 깨보지 않으면 히로뽕을 확인할 길이 없다. 세관들도 확실한 정보가 없으면 승부를 걸 수가 없게 된다.
  
  어느 검사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 외국으로 반출하는 개에 개복 수술을 하여 배 안에다가 히로뽕을 넣는다는 첩보도 받은 적이 있으나 수백만원짜리 애완 동물의 배를 가를 수도 없어 수사를 포기한 적도 있다} 日本으로 수출되는 냉동 생선의 배속에다가 히로뽕을 숨겨 암호 표시를 해놓고 일본의 輸入先이 그 고기만을 골라내게 하는 수법은 일본에서 적발된 바 있다. 1980년6월26일 오오사까 국제 공항에 釜山발 대한 항공 A300이 도착했다. 이 여객기의 화물창고에서 釜山에서 누군가가 보낸 별송품(別送品)이 하나 들려져 나왔다. 별송품은 화물이 너무 커 승객이 들고 오지 못하고 별도로 부치는 것으로 통관 수속이 비교적 간단하다. 이 별송품은 나전문갑이었다. 오오사까세관 감시관은 간단한 체크로 통관을 시켜려다가 아무래도 물건이 좀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X레이를 쬐어 보았다. 문갑 서랍의 천장에 공간이 있고 거기에 무엇이 들어 있는 것같이 보였다. 검사관은 문갑을 한 번 세게 흔들어 보았다. 하얀 가루가 점점이 떨어졌다. 자신을 가진 검사관은 문갑을 해체해 버렸다. 흰 결정체가 든 비닐 봉지, 그 속에선 20kg의 히로뽕이 잠자고 있었다.
  
  수사 당국은 며칠 뒤 이 문갑의 인수인으로 적혀 있는 일본인 M씨를 붙들었다. 그는 그러나 히로뽕 거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M씨는 그 몇달 전 釜山에 관광하러 갔다가 金영대라는 관광 가이드를 알게 되었다. 金씨는 M씨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는데 M씨가 귀국한 뒤에도 계속 선물을 보내 주곤 하는 등 호의를 베풀었다. 어느 날 金씨는 M씨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왔다. 나전 칠기 家具를 항공편으로 세 개 M씨에게 보냈다는 거였다. 그 중 하나는 M씨가 가지고 두 개는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을 터이니 그에게 넘겨 주라는 내용이었다. M씨는 오오사까 국제 공항에서 가구 3개를 찾아 金씨가 시키는 대로 했다. 얼마 전에도 金씨에게서 또 같은 내용의 전화가 왔다. 결국 M씨는 자신도 모르는 채 金씨와 일본 폭력단을 이어 주는 히로뽕 중계를 해 준 것이었다. 이런 문갑 이용 수법은 81년 무렵까지 유행했으나 요즈음은 거의 쓰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한번 들통이 난 은닉 수법은 그 순간부터 실효된다.
  
  외교관의 애인이 운반책
  
  82년1월21일 정오 대한항공704편으로 한 서양 여자가 도오꾜 나리다 공항에 도착했다. 세관 검사대에 닿은 그는 잠시 주저하는 눈치였다. 재빨리 감을 잡은 검사관이 가방을 붙잡았다. {나는 서울 스페인대사관 직원의 피앙세예요!} 여자는 부르짖으며 가방 속에서 무엇을 꺼내려고 했다. 검사관이 가방을 낚아채 열어보니 007가방이 또 들어 있었다. 그 안에서는 히로뽕 10kg이 발견되었다. 이 여자는 무엇을 꺼내려고 했던가? 가방 속에는 스페인 대사관의 공용 문서를 사용한 편지가 한 통 있었다.
  [과테말라 여권을 가진 이 미스 마구다 레티시아 모라레스 힐은 현재 대한 민국에 살고 있음을 내가 책임지고 보증하는 바입니다. 미스 모라레스는 나의 피앙세로서 곧 서울에서 결혼하게 되어 있읍니다. 1982년1월20일, 헤수스 드라 크루스]
  이 편지는 외교 관례상 [신원 보증서]라고 불리는 것이다. 외교관처럼 치외법권적 대우를 받지는 않지만 이것을 제시하면 통관 때 아주 가벼운 검색을 하는 것이 외교관례다.
  
  힐은 이 서류를 꺼내 제시하려다가 실패한 셈이다. 힐은 [돈이 아쉬워] 이런 범행을 하게 되었다고 수사관 앞에서 진술했다. 힐은 1979년 그녀의 사실상의 남편인 크루스씨(둘 사이엔 6살짜리 남아가 있었다)가 워싱턴 주재 스페인 대사관에서 서울로 옮기자 함께 따라왔다. 이 부부는 곧 한국의 히로뽕 밀매 조직에 휘말렸다.
  
  10kg을 日本까지 운반해 주면 2만5천 달러를 주겠다는 제의에 따라 외교관가족의 신분을 이용, 운반책이 돼버린 것이다. 힐의 자백에 따라 일본수사 당국은 그날 기민하게 움직였다. 도오꾜 시내에 있는 호텔 오꾸라로 한 서양여자를 들여보냈다. 힐은 이 호텔에 방을 예약해 두었었다. 그 방으로 곧 두 사나이가 찾아왔다가 잠복중이던 수사진에 붙들렸다. 둘은 폭력단 야마구찌組의 깡패인 오꾸이(당시29)와 俠道會의 깡패인 후지가와(35)였다. 둘은 방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낯선 서양 여자를 보고 {이거, 방을 잘못 알았는데}라며 달아나려다가 붙들렸다.
  
  이것은 이 깡패들과 힐이 그전에도 여러번 히로뽕 거래로 만난 적이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힐의 남편 크루스는 9일 뒤인 1월30일 延世大 뒤편의 자택을 떠나 金浦공항발 마닐라行 대한항공기 편으로 출국해 버렸다. 한국 수사당국은 日本쪽으로 수사 자료만 갖고는 외교관 신분의 그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크루스는 출국하기 전 대사관에서 해고되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출국 직전 이렇게 말했다. {매일 나한테 협박 전화가 걸려 온다. 입을 열면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다. 히로뽕 운반을 부탁한 한국인의 이름은 미스터 권, 미스터 차라고밖에 밝힐 수 없다. 이들은 [우리 조직은 크다. 협력해 줄 외교관들을 찾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의 케이스는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일본에서의 수사는 더 진전되지 못했다. 체포된 두 깡패도 일본 안에서의 1차 운반인에 지나지 않았다. 上線을 밝힐 수가 없었다. 그런데 두 깡패가 속한 俠道會와 山口組는 적대 관계에 있는 폭력단이었다. 그럼에도 히로뽕 거래에 있어서만은 서로가 협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폭력단 내부에선 그들의 최대 자금원인 히로뽕 거래를 성역화하여 이것의 밀수입, 밀매에서만은 모든 적대 의식을 초월, 협조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돈을 벌게 하기 때문이다.
  
  82년5월23일 오후 일본 나리다 공항 세관 검사대. 서울서 온 우루과이 국적의 여대생 A양(19)이 짐검사를 받고 있었다. 검사관은 가방 밑창이 2중으로 된 것을 확인, 속에서 비닐 봉지 9개에 포장된 히로뽕7kg을 압수했다. A양을 추궁하자 A양은 이 가방이 자기 어머니(47)가 美國에서 일하고 있는 상점의 주인 金昌煥씨(25)의 것이라고 했다. 金씨와 A양의 어머니는 A양의 바로 뒤에서 불안하게 서 있다가 잡히고 말았다. 경찰은 이들3명이 그날 묵기로 예약해 둔 호텔에 의심스러운 李모 여인(55)도 예약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李씨는 이틀 뒤 나리다 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항공기 탑승 수속을 밟다가 붙들렸다. 李씨는 서울에서 유명한 C관광 요정을 경영, 日本의 폭력단 稻川會간부 및 일본 정객들과 친밀하게 접촉했었다고 하는데 일본 경찰은 李씨와 金씨를 공범으로 보았다. 金씨는 공화당 정권 때 釜山시장을 지낸 사람의 아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제3국의 외국인을 운반책으로 이용하는 수법이 최근 유행하고 있다.
출처 : 월조
[ 2003-07-09, 15: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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