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뽕 지하제국 탐험(제 2부) - 쫓는 자와 쫓기는 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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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뽕 地下帝國 탐험(제 2 부) - 쫓는 者와 쫓기는 者:白色의 恐怖 [화이트 트라이앵글]을 가다
  
  아파트에서 농촌까지, 무인도에서 고속도로까지 전국 방방곡곡으로 밀조 공장은 숨어들고 뽕꾼과 수사관들의 밤낮없는 숨바꼭질은 갖가지 희비극을 연출하고 있다.
  
  <1984년 1월 월간조선>
  
  
  제1장 사라진 4천만 원의 수수께끼
  
  갈림길에 선 히로뽕 세계
  
  83년말 현재의 한국 히로뽕 정세를 개관하면 대강 이렇다. 80년초의 만다린―이황순(李黃純)사건을 계기로 하여 히로뽕 조직에 대한 수사가 크게 강화되었다. 옛날처럼 별 부담없이 공직자가 히로뽕꾼들을 감싸고 돌 수 있던 분위기도 사라졌다. 수사 기관이 훨씬 자유롭게, 소신껏 그들을 맹타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금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히로뽕 사범은 미? 기결수를 합쳐 약 4백 명이나 된다. 웬만한 거물들은 거의 교도소에 앉아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히로뽕 밀조량은 줄었는가? 여기에 대해선 상반된 주장이 있다. 일본에서 82년에 적발한 한국루트의 히로뽕 압수량이 67.9kg으로, 81년에 비해 10kg쯤 줄어든 것을 들어 한국의 생산량도 감소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쪽에선 히로뽕 밀매 가격이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요즘 들어 약간 떨어진 점을 지적, 수많은 뽕꾼들이 잡혀 들어가긴 했지만 신진들의 대거 등장으로 총생산량은 절대로 줄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검찰의 집중 공세로 히로뽕 세계에서도 요 몇 년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釜山 중심의 큰 밀조 조직이 잇따라 붕괴되면서 밀조 공장이 전국으로 분산되고 있다.
  
  83년에 釜山지검이 소탕한 10개 밀조 조직의 11개 공장 소재지는 다양한 분포다. 3개소가 부산, 3개소가 서울 및 서울 근교, 慶南 晋陽·蔚州·河東군에 1개소씩, 慶北 永川ㅾ姃?谷城에 한 곳씩. 釜山은 밀조 誰値關?릿募?對日 수출 기지, 또는 상품(히로뽕)의 集荷地로서의 기능을 더 활발하게 하고 있는 듯하다. 제조 기술면에서는 간소화, 분업화, 기동화의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원료밀수입면에선 만다린호 사건으로 대만 선원을 통한 홍콩 루트의 밀반입이 대타격을 받은 뒤 한국 화물선원들을 통한 대만·싱가포르 루트가 개척되었다.
  
  히로뽕 사범 검거 인원
  (자료:보사부'검찰)
  
  
  對日 밀수출은 여전히 對日 活鮮魚 운반선·화물선 루트가 주종이다. 공해상에서 한·일 두 나라 밀수선이 랑데부, 히로뽕을 건네주는 [해상 박치기] 수법이 특히 성행하고 있다. 항공편으로는 외교관 가족·미군 등 제3국인을 활용하는 책략 등 기묘한 아이디어들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히로뽕 대금의 결제수단으로는 전자 제품·금괴·보석 등을 일본조직으로부터 받는 방법이 보급되고 있다. 히로뽕 문제는 단순한 범죄의 수준을 벗어나 우리 일상 경제 생활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국내 유통면에서 보면 본격적인 전파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술집 접대부·창녀·운전사·숙박업 종사자 등 특수 계층에 히로뽕이 파고 들고 있는 단계이지만 대학생·사무원들의 투약 사례도 적발되고 있다. 한·일 양국의 단속 강화로 밀수출 길이 막히면 국내에서 소비처를 구하려는 뽕꾼들이 늘어날 것이다. 심화되는 소비 향락적 사회분위기로 히로뽕 확산에 좋은 토양이 된다. 낙관적인 요소와 불안한 징조가 동시에 보이는 때, 그래서 앞으로 2∼3년이 히로뽕 박멸이냐, 확산이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 같다.
  
  이상한 현장 급습
  
  1982년 4월 21일, 釜山시 西구 富平동 상가 아파트 주위에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아파트 앞 태광 약국 앞길에는 포니 승용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차옆에서 한 사나이가 서성거린다. 아파트쪽에서 두 사나이가 내려오더니 포니차옆에서 기다리던 남자와 어울렸다. 곧 무슨 실랑이가 벌어진 듯 그들은 옥신각신했다. 갑자기 한 사람이 종이 뭉치 같은 것을 들고 번잡한 버스 정류장 쪽으로 후닥닥 뛴다. {서라!}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들리는 순가, 6∼7명의 사나이들이 우루루 뛰쳐나왔다. 사나이들은 포니 곁에 남아 있던 두 사나이를 덜컥 붙들었다. 그들은 한 사나이가 들고 있던 손가방도 잽싸게 빼앗았다. 그리곤 두 남자를 미리 대기시켜 두었던 차에 태워 어디론가 끌고 갔다. 南구 大淵동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보사부 釜山 마약 감시 분소. 여기 붙들려 온 두 사나이는 따로 떼어져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둘 중 김준하(金俊夏.41)라는 남자는 체포 당시의 살벌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아주 간단히, 부드럽게 신문을 받고 있었다. 그 옆방에서 다른 한 사람, 김수근(金壽根)씨(32)는 엄중한 문초를 받고 있었다. 마약 감시원들은 金壽根씨롤부터 빼앗은 손가방에서 아홉 개의 비닐 봉지를 꺼냈다. 봉지 속에는 반투명의 결정체 부스러기들이 들어 있었다. 金壽根씨는 술술 자백하기 시작했다.
  
  {…저는 79년 12월경 국제시장 대도백화점에서 옷가게를 경영하고 있었는데, 자주 출입하던 재일 교포 尹사장(일본이름 히라누마)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의 소개로 三千浦에 사는 선원 張채길씨도 알게 되었읍니다. 81년 10월말께 우리 세 사람은 釜山시내 어느 호텔방에서 만났읍니다. 尹사장은 지도를 펴 놓고 그의 밀수 계획을 설명했읍니다. 尹사장이 일본에서 전자 제품 등을 실은 밀수선을 麗水 근처의 소리도 부근 공해상으로 보내면 張씨가 三千浦에서 배를 몰고 마중나와 물건을 받아 三千浦항구로 돌아가고 내가 그 물건을 인수, 처분한다는 계획이었읍니다. 이 계획대로 우리는 세 차례에 걸쳐 싯가 약 2억 원어치의 전기 면도기·계산기·비디오·라디오 등을 밀수, 처분하였읍니다. 그런데 尹사장은 [밀수품 처분 대금으로 히로뽕을 11kg 사달라]고 하였읍니다…}
  
  金壽根씨의 진술은 히로뽕 입수 경위로 흐르기 시작했다.
  {…저는 구입 루트를 찾다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金俊夏씨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읍니다. 어제 저녁에 金씨는 저에게 전화를 걸었읍니다. 히로뽕 아홉 개(9kg)를 구해 놓았다는 것이었읍니다. 저는 오늘 오후 현금과 수표 3천2백25만원을 신문지에 싸들고 부평 상가 아파트의 金씨 집으로 찾아갔읍니다. 그에게 돈을 보여 주었더니 물건 가진 사람이 곧 연락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과연 얼마 뒤 전화가 왔고 그는 잠시 바깥으로 나가자고 했읍니다. 내가 먼저 아파트 근처에 세워 둔 나의 포니 승용차 곁에 가 있었읍니다. 곧 金씨는 손가방을 하나 들고 나타나 [물건이 여기 있다]면서 그것을 불쑥 건네 주면서 내가 들고 있던 돈뭉치를 빼앗듯이 가로챘읍니다. 나는 물건을 확인않고는 돈을 줄 수 없다고 실랑이를 벌였는데 그 순간 마약 감시반의 습격을 받아…}
  
  며칠 뒤 金壽根씨 등 밀수 관련자 6명은 관세법위반 혐의로 釜山지검에 구속됐다. 수근씨에게만은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법 위반 혐의가 덧붙여졌다. 비닐봉지의 투명 결정체에서 메스암페타민(히로뽕) 양성 반응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거래 현장에서 같이 잡혔던 俊夏씨는 이상하게도 바로 다음날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 구속된 수근씨는 3천2백25만 원을 현장에서 俊夏씨에게 주었다고 진술했는데 수사관들은 그 돈뭉치가 어디로 갔는지, 심하게 추궁을 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그러나 기괴한 사건의 제1막에 지나지 않았다.
  
  共謀者, 폭로하다
  
  3천만 원 돈뭉치가 증발된 지 다섯달째 되는 82년9월 초순, 釜山지검 특수부에 새로 부임한 마약 담당 공창희(孔昌喜) 검사는 히로뽕 밀매·투약자 19명을 검거, 구속했다. 히로뽕의 유통 루트를 뒤밟아 밀매자는 물론이고 대학생·창녀·여관업자·노동자·상인·건달 등 투약자들도 몽땅 붙잡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중심 인물은 김중수(金重守)씨(42·釜山시 影島구)였다. 9월6일 그는 검사 앞에서 놀랄 만한 자술서를 썼다.
  […7년6개월 동안의 군 하사관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보니 모든것이 생소하고 캄캄하였읍니다. 그 때 알게 된 사람이 양동식(梁東植.43)이었읍니다. 그 때만해도 그는 의협 남아였고 저는 그를 선배로 모시고 따랐읍니다. 얼마 뒤 梁이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석방되었다기에 찾아보았더니 그는 벌써 히로뽕 전과가 두 개 였읍니다. 梁은 정에 약한 저를 꾀었고 그 때부터 저는 梁의 개가 되고 말았읍니다. 梁의 덕택에 77년엔 저도 히로뽕 관계로 교도소 경험을 하게 되었읍니다. 출소해선 참되게 살려고 했으나 梁과 어울려 다닌 탓으로 또 마약 전담반에 붙들리게 되었읍니다. 저는 S검사님 앞에서 무릎 꿇고 빌었읍니다. 한번만 살려 주시면 꼭 보은하겠다고―.
  
  S검사님의 아량으로 용서를 받은 梁과 저는 히로뽕 수사에 적극 협력하게 되었읍니다. 국제시장의 元홍연 공장을 적발, 완제품 10kg을 압수하고 金말봉 일당을 붙드는 데도 협조를 아끼지 않았읍니다. 梁은 S검사님으로부터 샘플용 3∼4g을 받아 나와서는 저에게 건네 주고 그것을 활용, 정보를 얻어 오라고 시키곤 했읍니다. 내가 정보를 얻어 주면 梁이 검사님 앞에 가서 생색을 내는 것이었읍니다. 82년4월 梁은 검찰 실무진과 모종의 히로뽕 수사를 의논하였읍니다. 부평동의 金壽根이란 밀수꾼을 잡자는 작전이었읍니다. 梁은 남해안 고속도로의 晋州쪽 남강 톨 게이트 부근에서 金壽根에게 히로뽕 3kg을 건네 주기로 했다고 말했읍니다. 4월15일 밤 저는 梁의 승용차를 운전, 약속 장소로 갔읍니다. 저의 뒤에는 수사 요원들이 탄 두 대의 승용차가 따르고 있었읍니다. 우리가 톨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던 金씨의 검정색 포니 차에 접근하니 金씨는 누군가가 미행하는 것 같다면서 히로뽕 받기를 거절하고 晋州시내 쪽으로 달아났읍니다. 수사관 승용차가 비상 깜박이를 켜고 따라왔기 때문에 金씨가 눈치를 챈 것 같았읍니다.
  
  우리는 釜山으로 돌아와 마약 감시반원으로부터 접선 실패에 대한 꾸중을 들었읍니다. 金壽根씨와 짜고 뒷거래하는 게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읍니다. 梁은 며칠 뒤 그의 매제 되는 金俊夏를 동원, 작전을 새로 짰읍니다. 4월21일 오전 梁과 나, 그리고 梁의 부하인 金龍泰(31) 등 세 명은 저의 집에서 가짜 히로뽕을 만들기 시작했읍니다. 제가 여러 약방들을 돌면서 백반 9kg쯤을 사 왔읍니다. 여기에다가 梁이 검찰청에서 공작용으로 받아 왔다는 히로뽕 1kg을 섞어 엉터리 히로뽕 9봉지를 만든 겁니다. 오후에 金俊夏로부터 빨리 물건을 가져오라는 연락이 와서 부랴부랴 가방에 챙겨 넣고 부평동으로 갔읍니다. 차를 아파트에서 5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세워 놓고 梁은 용태에게 물건을 갖다 주라고 했읍니다. 용태는 金준하에게, 준하는 金수근에게 물건이 든 가방을 넘기다가 우리의 귀띔을 받고 미리 잠복중이던 수사관들에게 붙들렸읍니다. 우리는 차속에서 그것을 지켜 보고 있었읍니다. 곧 용태가 준하로부터 건네받은 돈뭉치를 갖고 우리 차로 돌아왔고 우리는 영도(影島)쪽으로 차를 몰았읍니다…] 梁씨를 중심으로 하여 그의 매제(金俊夏)와 그의 두 부하(金中守·金龍泰) 네 명이 수사관들과 합동 작전으로 덫을 깔아 밀수꾼을 생포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밀수꾼의 돈뭉치를 梁씨 등이 차지하면서 이야기는 복잡하게 얽힌다. 金中守씨는 같은 날짜의 검사 긴문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폭로하기 시작했다.
  
  검사={그 돈을 어떻게 처분했나요?}
  金中守={영도로 가면서 차안에서 돈을 확인하고 3천2백50만 원의 반은 누런 봉투에 넣고 반은 신문지에 싸서 다시 대연동으로 가서 UN 묘지로 들어가는 육교 밑에서 제가 내려 마약 감시소에 전호, K순경을 밑으로 나오라고 했읍니다}
  
  검사={돈을 전하여 주는 것을 보았나요?}
  金中守={K순경이 차를 몰고 육교 밑으로 나오고 梁동식이 그 차에 타는 것을 보았으니 건너갔다고 생각합니다}
  
  검사={梁동식이 주었다고 이야기하던가요?}
  金中守={1천5백만 원을 주었다고 이야기했읍니다}
  
  검사={梁동식이 진술인과 金용태에게는 돈을 주지 않던가요?}
  金中守={저에게는 자기가 기반이 잡히면 생활 보장을 해주겠다고 했고 용태에게는 1백만 원을 주겠다고 약속만 했읍니다}
  
  검사={K순경에게 준 돈은 현금이었나요?}
  金中守={전부 수표였답니다}
  
  {순경과 나눠가졌다}(?)
  
  金中守씨의 진술로 돈뭉치의 행방과 俊夏씨가 곧 풀려난 까닭 등 두 가지의 의문은 풀렸다. 釜山지검은 보사부 마약 감시반 釜山 분소를 지휘, 梁씨 등을 미끼로 한 함정수사를 편 것이었다. 그러나 함정 수사는 밀수꾼을 잡기 위한 것이었지 가짜 히로뽕을 만들어 거액을 사기하라는 건 아니었다. 더구나 중수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보원 梁씨는 그 사기한 돈을 수사관과 갈라 가졌다는 얘기가 아닌가? 중수씨의 폭로에 따라 孔검사는 사기단으로 변해버린 梁東植씨 일당에 대한 수사를 개시, 9월18일 俊夏씨를 다시 연행,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俊夏씨는 검철에서 梁씨의 사기가 한 건 더 있음을 폭로했다. 그 요지―.
  
  {나는 손위 처남인 梁東植에게 히로뽕 정보를 제공하려고 金壽根을 처남에게 소개했다. 金壽根은 1천만 원을 나에게 주면서 히로뽕 2kg을 구해달라고 했다. 이 돈을 梁에게 주었다. 梁은 다음날 金壽根씨를 찾아가 2kg을 건네주었다고 했다. 며칠 뒤 金壽根씨가 나에게 항의를 해 왔다. 그 2kg이 히로뽕이 아니라 설탕이더라면서 돈을 돌려 달라는 것이었다. 처남 梁東植에게 이야기했더니 梁은 金씨에게 [당신이 정말 뽕을 살 생각이 있는지 시험해 본 것이다]고 떼우면서 1천만 원은 선금으로 계산하고 진짜 9kg을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부평동 아파트 앞에서 함정 수사가 성공한 다음날 나는 梁으로부터 수고비 5백만 원을 받았다} 梁은 결국 金壽根씨로부터 두차례 모두 4천2백50만 원을 받아 챙긴 것이란 새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처남(梁)은 [K순경에게 준 1천5백만 원은 전부 수표이고 그 번호를 다 적어 두었으므로 이제 내 손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면서 태연히 돈을 쓰고 다녔다. 그러나 중수가 붙들린 이후엔 사태가 안 좋은 방향으로 나간다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둘이서 피해 다니게 되었다. 피해 다니면서도 梁은 9월 중순 어느 날 오후3시 30분경 에덴 공원 입구 노점에서 K순경과 만나 두 시간 동안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俊夏씨의 이런 진술로 이번엔 K순경에게 의혹의 화살이 날아갔다. 孔검사는 K순경으로부터 진술서를 받았다. K순경은 돈의 분배는 부인하고 梁을 만난 사실은 인정, 그에게 자수를 권유했다고 썼다. 梁은 {내가 고발하여 들어간 범인들이 釜山교도소에 너무 많다. 그들이 大邱로 옮겨간 뒤 자수하겠다}고 하더란 것이었다. K순경은 자술서를 이렇게 끝맺었다.
  
  [제가 그로부터 수사 정보를 얻어 사건을 하였기에 그냥 헤어졌는데 이번에 한하여 한번 용서하신다면 빠른 시일내에 검거하겠읍니다] 검찰은 이 단계에서 피해자 金壽根씨를 교도소에서 불러내어 다시 조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金씨는 그 무렵까지도 자기가 산 히로뽕이 진짜라고 믿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압수 히로뽕에 대한 감정 결과가 [히로뽕 검출]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부산시 보건 연구소에선 定量 시험을 않고 定性 시험만 하였고, [히로뽕이 검출되었으니 진품이다]는 식으로 조서가 꾸며졌던 것이다. 金壽根씨는 [하루빨리 사기당한 4천2백50만 원을 압수, 국고에 귀속시켜달라]고 호소했다. 며칠 뒤 검찰은 金壽根씨에게 적용된 죄명 가운데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법 위반 부분에 대해선 공소를 취소해야 했다. 이 소동의 장본인인 梁東植씨와 하수인 金龍泰씨는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4천2백25만 원의 분배 내역이나 수사관과의 공모 여부는 안개 속에 가려진 그대로다. K순경과 돈을 나눠 가졌다는 이야기도 당사자인 K순경은 부인하고 梁씨는 안 잡힌 상황에서는 [입증되지 않은 이야기]일 뿐이다. 이 사건은 히로뽕 수사에서 관례가 되어 온 이른바 [함정 수사]의 윤리 문제를 제기했다. 증인 신문에서 변호사들은 마약 감시원 徐모씨에게 이 문제를 들이대었다.
  
  변호사={이 件 함정 수사에서 돈을 받아도 좋다는 것은 양해가 된 것이 틀림없는가요?}
  徐={예, 그렇습니다}
  
  변호사={梁東植씨에게, 히로뽕 9kg은 어떻게 구해서 갖다 주라고 했읍니까?}
  徐={뒤에 히로뽕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이므로 어디서 어떻게 구하든지 구해주라고 한 것입니다}
  
  변호사={그렇다면 그것이 진짜든 가짜든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닌가요?}
  徐={모르겠읍니다만 金수근이 진짜를 요구하면 진짜를 주어야 하지 않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변호인들이 문제삼으려 했던 것은 [정보원들(피고인)이 가짜 히로뽕을 만들지 않을 수 없게끔 정신적으로 몰리고 있었다]는 상황이었다. 梁씨는 그 상황을 역으로 이용, 검찰을 속이고 [범죄자금]을 사기해 먹은 셈이었다. 이 사건은 함정 수사의 위험성도 아울러 보여 주었다. 1심에서 사기 혐의로 기소된 준하씨는 징역1년, 중수씨는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사기당한 밀수범 金수근씨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 미스터리는 결론없이 중단된 상태다. 梁씨는 붙들리면 이 미스터리에 결론이 지어지고 재판 결과에도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누가 그를 잡을 수 있을까?
  
  금괴 강탈한 경찰관
  
  83년10월23일 오후1시께 釜山시 西구 부용(芙蓉)동 대원장 여관 앞길,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를 미행하는 세 건장한 사나이가 있었다. 두 남녀가 影島구 南港동 옛전차 종점 자리에 이르렀을 때 미행 3인조 가운데 한 사람인 孔병로 경사(釜山시경 제3기동대)가 [잠깐 봅시다]면서 부부를 근처의 여관객실로 데리고 갔다. 孔경사는 다짜고짜 [난 검찰청 직원인데 다 알고 왔으니 물건 내 놓으라]면서 남자에게 주먹질을 했다. 여자는 겁을 먹고 몸에 차고 있던 담배갑만한 금덩어리들을 주렁주렁 풀어 놓았다. 孔경사는 부부를 꿇어 앉혔다. 이 순간 미행 3인조의 鄭석조 순경(釜山시경 외사과)이 객실로 들어왔다. 그는 孔경사와는 모르는 사이인 척 위장, 신분증을 孔경사에게 보이고 [난 시경 직원인데 잠깐 이야기를 합시다]면서 孔경사를 목욕탕안으로 밀어 넣었다. 이 때를 맞추어 미행 3인조의 세번째 인물 沈현수씨(정보원)가 뛰어 들어와 겁에 질린 두 남녀에게 달아나라는 눈짓을 했다. 두 사람은 후닥닥 여관을 뛰쳐 나갔다. 7kg, 8천4백만 원어치나 되는 금덩어리는 방바닥에 남겨 놓고서―.
  
  깜쪽같이 금괴를 차지한 세 사람은 금덩어리가 너무 큰 데서 오히려 불안해졌다. 세 사람이 꿀꺽 삼키기엔 너무 컸다. 그들은 7kg 가운데 2.5kg은 그날 오후 달아났던 주인 金덕기씨(46)를 찾아 돌려 주고 4.5kg만 차지했다. 그래도 세 사람은 불안했다. 아무래도 말썽이 생길것 같았다. 이 때 孔경사가 묘안을 짜냈다. 그는 다음날 오전 釜山지검 孔창희 검사를 찾아가 큼직한 밀수 정보가 있다고 귀띔했다. 금괴 밀수꾼들이 모여 있는 곳을 알아냈으니 덮치러 가자는 것이었다. 孔검사는 수사관들을 데리고 西구 東大新동1가 151번지의 가정집으로 달려갔다. 이 가정집은 금괴를 갈취한 3인조 중의 한 명인 沈현수씨(34)가 세들어 사는 집이었다. 집주인은 對日 냉동 운반선 화성3호의 조리원인 金남수씨(28). 沈씨는 며칠 전부터 金씨의 행동거지가 수상해 유심히 관찰하다가 밀수를 하고 있음을 맨먼저 눈치 채고 孔경사·鄭순경을 끌어들여 금괴를 가로챘던 것이다.
  
  검찰 수사대가 金씨집에 들이닥쳤을 때 방안에는 金덕기씨 등 네 밀수꾼들이 모여 있었다. 孔경사는 전날의 실수(?)도 있고 해서 그랬는지 앞장서서 뛰어들어 선원 洪점동씨(31)의 손목에 수갑을 찰칵 채웠다. 이걸 보고 있던 金덕기씨가 식칼을 들고 나와 孔씨의 손, 얼굴을 마구 찔렀다. 孔경사는 화분을 들고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밀수범 梁병규씨(29)는 이 화분을 빼앗아 피투성이의 孔경사를 향해 던졌다. [퍽!] 소리와 함께 孔경사는 쓰러지고 네 사나이들은 비호처럼 달아나버렸다. 수갑을 찬 洪씨도 도망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검찰 수사요원들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의 전말을 눈치챌 수가 있었다. 孔경사는 검찰을 앞세워 밀수범 일당의 소탕에 공을 세우기만 한다면 전날의 실수는 묻혀넘어갈 것이라고 계산했으나 소탕은커녕 자신만 전치 6주의 중상을 입었을 뿐 아니라 전날의 금괴 갈취 사실도 들통이 났다. 검찰은 3인조 공갈범들을 구속하고 그들이 갖고 있던 금괴 4.5kg을 압수했다. 검찰은 달아난 밀수꾼들을 수배, 10월말까지 洪점동·梁병규씨 등 5명을 붙들었다. 이들의 입을 통해 금괴 밀수의 전모가 드러났다.
  
  주범 김덕기(金德基)씨는 83년8월 對日냉동수출선 화성3호(3백t)를 선주 鄭모씨로부터 3천만 원에 용선했다. 이 배에 일당 6명을 선원으로 태웠다. 화성3호는 1주일에 한번씩 釜山에서 냉동 어패류를 싣고 일본 시모노세끼항으로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사건의 발단이 된 금괴 7kg은 10월21일 시모노세끼시내 山海상회의 일본인 주인으로부터 산 것이었다. 구입 자금 1천7백만 엔은 金德基씨의 처 朴정희씨가 대준 것이었다. 검찰은 화성3호가 시모노세끼에서 두 달 동안 23kg, 싯가 약3억 원어치의 금괴를 밀수했음을 밝혀냈다. 문제는 밀수 자금인데 주범인 金덕기·박정희 부부가 달아나 확실한 자금 루트는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에선 이들이 히로뽕과 금괴를 물물교환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범인 가운데 한 사람인 金모씨(40)의 형이 유명한 히로뽕 전과자인 것이 첫째 혐의점이고 외화로 금괴 대금을 결제하기에는 그 액수가 너무 많아 그 일부를 히로뽕으로 청산했으리란 것이 두번째, 추측, 화성3호가 히로뽕 운반 우범 선박으로 전부터 지목되어 왔었다는 것이 세번째 혐의점이다.
  
  사건 거래와 함정 수사의 論理
  
  이 두 사건의 내막을 재미삼아 소개한 것은 아니다. 두 사건은 현재 진행중인 히로뽕 수사의 실태, 그리고 히로뽕―금괴(또는 전자 제품)의 물물 거래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事例로 든 것이다. 헤로인·히로뽕 등 마약 수사는 다른 범죄 수사와 다른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마약 조직은 점조직으로 돼 있고 경험자만이 할 수 있는 [비밀 배타적]특성을 지니고 있다. 즉각적인 현금 동원력과 기동력을 생명으로 알고 있다. 밀조나 밀매·운반 현장에서 바로 잡히지 않는 한 법망을 빠질 수단도 많이 갖고 있다. 막강한 금력으로 변호사를 활용, 법의 맹점을 악용하기도 한다. 이런 조직을 쫓는 마약 수사요원들도 숫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자칫 잘못하면 마약 범죄꾼들과 [친면]이 생기게 된다. 친면에 마약 조직의 金力이 작용, 수사요원들을 오염시키는 현상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엔 마약 수사를 검찰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경찰에서도 히로뽕 수사를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의무감을 갖고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11개 지방 검찰청의 담당 검사가 검찰에 파견된 보사부 마약 감시원과 형사를 지휘, 수사를 한다. 83년말 현재 전국의 마약 감시원은 34명인데 7명은 일반직, 실제 수사요원은 27명뿐이다. 마약감시원은 별정직으로 직급이 6(주사), 7(주사보)급에 한정되어 있다. 20년을 근속해도 주사보에 머문다. 일반 관료가 갖게되는 출세 동기는 처음부터 거세된 채다. 승진 의욕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돈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 돈에서만은 히로뽕 조직은 끝내 준다. 이런 구조적 유혹 요인이 수사요원들 주위에 덫처럼 깔려 있다. 마약 수사에는 돈이 많이 든다. 마약범의 공소 유지에 꼭 필요한 물증, 즉 현물을 구하는 데, 정보원을 넣어 공작 수사를 하는 데, 기동력 강한 범인들을 뒤쫓는 데…. 그러나 마약 감시원에게 지급되는 수사비는 경찰 수준에도 밑돈다. 히로뽕 압수품에 대한 보상금 제도는 있으나 건당 백만 원 이하로 거의 도움이 안 된다.
  
  틀림없는 정보는 있는데 수사비가 없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사건 거래]라는 편법이 쓰인다. 앞에 예로 든 梁東植씨의 경우다. 히로뽕 투약범, g단위의 사소한 밀매·소지범 등 가벼운 범법자를 기소 유예하는 대신 그를 정보원으로 활용, 더 큰 조직을 깨는 방법이다. 제1부에 나온 밀매자 양학승(梁學承)씨는 검찰의 기소 유예처분에 감동하여 자기돈 1천여만원을 수사 공작비로 대가며 서울 지검이 30여 명의 뽕꾼을 잡아들이는 데 기여했다. 이런 [사건 거래]는 日本에선 불법화 되어 있으나 韓國 현실에선 {合目的的이다}고 어느 검사는 말했다. 이런 사건 거래는 자연히 함정 수사로 흐르게 된다. 함정 수사의 증거 능력에 대해선 나라마다 판례가 다르다. [마약 수사에서만은] 증거 능력을 인정하는 나라가 많은 것은 마약 조직의 파괴에는 이 방법이 불가피하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함정수사에서 꼭 필요한 미끼, 즉 돈과 현물을 어떻게 조달하느냐 하는 것이다. 梁東植사건의 경우엔 함정 수사는 성공했으나 이 [조달]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원칙은 수사 기관에서 미끼를 제공해야 하지만 우리 실정에선 어떤 명목으로도 수백만, 수천만 원의 미끼값을 마련할 도리가 없다. 임시 변통으로 검사가 보증을 서고 예비비 같은 데서 돈을 돌려내어 미끼값으로 쓰고 그 미끼를 문 범인을 잡아 미끼를 곧 회수, 국고에 반납하는 수가 종종 있다. 이 줄타기에 성공하면 문제가 없지만 범인이 미끼만 뜯어 먹고 달아나 버리면 검사가 개인돈으로 갚아야 한다. 그래서 마약 담당 검사들은 {실패하면 변호사 개업이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미군 마약 수사반원들이 그런데 신경 안쓰고 활동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저렇게 뛸 수 있다면 한달 안에 히로뽕조직을 다 청소하겠다}고 부러워하는 수사관들도 많다. 한국적 현실에서 사건 거래와 함정 수사는 불가피한 것 같다.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놀라}는 것과 같은 뜻이 되게끔 수사 조건이 좋지 않다.
  
  그런데 인간인 이상 [사건 거래]를 정말 양심적으로만 할 수는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사건을 봐준다는 명분 아래서 실은 돈을 위해 큰 사건을 묵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건 거래]의 풍토는 부정의 풍토로 발전하기 쉽다. 81년11월 光州지검順天지청은 히로뽕을 시모노세끼항으로 밀수출하고 그 대금으로 3억6천4백만 원어치나 되는 금괴 32.5kg을 밀수입한 일당 3명을 검거한 적이 있다. 이런 식의 대금 결제는 일반화되고 있다. 80년대에 들어 수사가 강화되면서 히로뽕 대금 결제의 실상이 밝혀지기 시작했다. 결제 수단은 현금→수표→금괴→전자 제품쪽으로 移行되고 있는 느낌이다. 현금(엔화)은 부피 때문에 세관 통관이 어렵다. 수표는 추적이 가능해 수사의 실마리, 그리고 물증이 되니 위험하다. 그래서 부피가 작을 뿐 아니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금괴로 쏠리게 됐다. 한국내의 금시세가 일본보다 비싼 만큼 히로뽕 팔아 돈벌고 금괴 가져와 또 수입 잡는 식이다. 금은방 기술자를 하다가 히로뽕에 손대었던 어느 전과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금·백금·보석 중 상당 부분은 히로뽕을 팔아 밀수입한 것이다. 히로뽕 밀수출·금괴 밀수입을 겸업하고 있는 이들 조직은 반입한 금괴를 귀금속業界의 중간 상인에게 넘긴다. 이 중간 상인은 자기의 거래선인 여러 금은방에 원료, 즉 금괴를 대주는 공급원인 것이다. 최근 서울에서 어린이가 주워 신고한 다이아나 2년 전 釜山에서 운전사가 습득 신고한 현금 4천만 엔의 주인이 끝내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것이 밀수 자금, 특히 히로뽕 결제자금과 관련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독자 여러분이 끼고 있는 금반지는 혹시 [히로뽕 반지]가 아닌가, 의심해 볼 만한 상황이다.
출처 : 월조
[ 2003-07-09, 17: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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