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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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하루 전에, 이 책에도 나오는 경주당구장 여주인 피살사건의 수사 지휘 검사가 사표를 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열과 성을 다해 수사했으나 진범이 따로 잡혀 검찰조직에 누를 끼쳤다'는 것이 사표 제출의 변이었다고 한다. 이날 아침 대구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 왔다. 박호영(朴虎泳)씨였다. 경주 당구장 여주인을 죽였다는 누면을 쓰고 1심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던 형사반장 출신이다.
  
  그는 <월간조선>(1987년 2월호)에 난 권영기(權榮基) 기자의 <살인범으로 몰린 형사반장>기사 때문에 검사가 사표를 냈을 것이라고 말한 뒤 '며칠 전에는 부산의 고 박종철(朴鍾哲)군 집으로 조전을 쳤습니다. 처참한 고문을 당해 본 '고문 동기생'으로서 누구보다도 박군이 겪었을 고통을 실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는 '천추의 한을 남기고 떠나가신....'으로 시작되는, 213자나 된다는 조전 내용을 읽어 주었다. 그리고 나선, 문화재 도굴범으로 몰린 어느 골동품 행상이 경찰서에 불법 감금되어 남자 성기 속으로 철사를 찔러 넣는 고문을 당한 뒤 성기능이 마비된 사례를 자세히 설명하고 ' 이 사람 이야기도 써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한 젊은 검사의 추리소설 같은 조작극에 말려 패가망신한 박호영씨는 고문하고 위증한 자들에 대한 열렬한 고문추방운동가가 된 것이다. 녹음기를 품고 위증한 증인을 찾아 다니며 '자백'을 들은 뒤 12명의 위증자들을 고소한 그의 집념은 박종철군 피살사건을 계기로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한 단계 승화된 느낌마저 주었다.
  
  고문을 이 사회에서 최단 시간내에 뿌리뽑을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하다. 그것은 고문을 하거나 고문을 시키는 자들에게 고문 맛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사람이 사람을 고문할 수는 없으니까 물고문, 통닭구이, 비행기 태우기, 비틀기, 전화기 돌리기 등등 육해공의 모든 고문 수법을 익힌 로봇을 시켜 그 자들을 고문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차선의 방책이 있다.
  
  그것은 고문한 자들이 평생동안 공포와 치욕 속에서 살도록 하는 방책인 것이다. 우선 고문자를 살인미수나 살인교사, 또는 살인죄로 처벌해야 마땅하다. 인간이 물 속에서 살 수 없고, 벼락 맞으면 죽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면 물 먹이고 감전시키는 고문은 폭행치사로 다스려야 할 것이 아니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나 살인미수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변호사들의 견해다.
  
  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직업적 고문자들은 활자로써 벌할 수밖에 없겠다. 그 자들의 이름을 밝히고, 얼굴 사진을 알리고, 그리하여 처자식들은 그런 아버지와 남편 둔 것을 부그럽게 여기고, 부모는 그런 아들 낳은 것을 후회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일제시대엔 고등계 형사로서 독립투사들을 고문했고, 해방 뒤엔 경찰관이나 기관원으로서 민주투사들을 고문했던 '기술자들'이 지금도 인간 대접을 받으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고문이 없어지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하나의 사치일 뿐이다.
  
  나의 경험으로는 한 인간의 죽음을 놓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분노한 것은 최루탄을 맞고 죽은 마산 김주열군 이후 박종철군의 경우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박군의 죽음은 민주화의 핵심이 '고문으로부터의 자유'란 것을 절실하게 보여 주었다.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약 80년간 우리가 고문이란 악몽으로부터 얼마나 시달려왔는지, 그리하여 고문하는 자들과 그런 집단에 대한 원한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이번 사건은 새삼 깨닫게 하는 바가 있었다.
  
  새 내무장관이 고문추방을 맹세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때립니까'라고 했을 때, 장관에 대한 여러 가지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찡해졌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나는 안다. '사람이 사람을 때릴 수는 없다'는 장관의 선의도 뼛속에까지 젖어 있는 이 나라의 고문 습성을 어찌 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이 박종철의 바람이 지나가면 별로 달라진 것도 없이 악습은 되풀이될 것임을 나는 안다. 이 태풍 속에서도 정작 고문해서 박군을 죽인 두 사람의 신변에 대해선 정부와 언론이 철저하게 보호해 주고 있지 않은가(그런 점에서 기자 조갑제도 공범이다)
  
  오늘날 고문은 개인적 폭력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역학관계에서 그 정도가 결정되는 것이 고문이다. 고문은 정권의 야만성과 국민의 용기가 어떤 눈금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따라서 고문은 국민과 정부의 역학관계가 뒤바꿔지지 않을 때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민주화가 안된 정권 아래에서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립니까' 란 말을 믿고 고문이 없어지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한강물이 여의도 쪽에서 팔당 쪽으로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어느 체제의 유지 수단이 된 고문은 그 체제와 운명을 같이 할 뿐이다. 그렇다고 고문의 책임을 제도로만 돌릴 수는 없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때립니까'란 말 뒤에는 '사람을 고문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는 말이 숨어 있다.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야 한다. 여기엔 쓸데 없는 온정주의가 끼여선 안된다. 친일파를 온정으로 대한 결과는 친일파로부터 국민이 온정을 구걸해야 하는 지경으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한국의 언론과 세론이 박종철군 사건을 계기로 하여 전에 없던 용기를 보인 것은 높게 평가하지만, 그 관심의 방향이 맞아 죽거나 얻어맞은 피해자들 쪽으로만 집중되었던 것은 패배주의적 타성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고문하는 자, 고문을 시키는 자들의 가슴에 여론의 화살이 좀 더 깊숙이 꽂혀야만 뭔가 달라질 것이다. 고문하는 자들이 제도란 방패 뒤로 언제든지 숨어버릴 자신이 있는 사회에서는 고문은 근절될 수가 없다. 그런 방패를 걷어내고 고문자들을 사냥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야 뭔가 달라질 것이다.
  
  고문추방을 위해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업군이 넷 있다. 판사, 검사, 기자, 변호사. 온 나라가 성고문, 물고문으로 그냐말로 북새통이 되어 있는 가눙데서 대법원의 한 재판부는 학생을 불법감금한 경찰관을 '국가의 공이 있으므로 불기소함이 가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서울고법의 재판부도 권모양을 신문한 문귀동 형사의 가혹행위를 인정한 뒤에도 '국가에 공이 크므로 불기소함이 가하다'는 판단을 했다. 이 판사들은 경찰관만이 국가에 공을 세울 수 있고, 자기 직분에 충실한 보통사람들은 국가에 아무 기여를 할 수 없는 이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판사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경찰의 고문 습성을 견제해야 할 검찰이 성고문. 물고문 사건에서 경찰을 어떻게 싸고 돌았는지는 눈이 있고 귀가 뚫린 사람들이라면 다 안다. 박종철군 사건은 <중앙일보> 사회부의 특종에서 불이 붙어 그 다음날 <동아일보>의 심층보도를 계기로 대화(大火)로 발전하였다. 사체를 검안한 한 젊은 의사의 용기있는 증언이 경찰의 은폐기도를 무너뜨리는 돌파구가 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고문을 고발해 온 양식 있는 변호사들이 또한 이 대폭발의 인화물질을 예비하였다.
  
  언론의 집중보도가 가능했던 것은 독자들의 열화 같은 분노가 그들의 등을 밀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이런 분노를 배신하다가는 판매 부수의 격감을 각오해야 함은 모를 신문사 경영자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때로는 돈이 매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신문이 뇌관을 터뜨려 폭발시킨 국민의 분노는 사상, 성별, 세대차, 신분차 등을 초월한 인간 본연의 요구였다.
  
  이 땅에서 인간으로 살기 위하여 '우리는 개, 돼지가 아니고 인간이다'고 선언한 외침이었다. 이 4천만의 대합창을 외면하고는 어떤 신문, 어떤 정권도 살아 남지 못핳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박군의 죽음은 2.12 총선과 함께 한국민의 민권 수위를 한 단계 올려놓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언론계엔 한때 '직필(直筆)은 사람이 죽이고 곡필(曲筆)은 하늘이 죽인다'는 말이 유행했다. 이 말은 뭔가 멋진 것 같은데 패배적 표현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늘이 곡필을 죽일 날을 기다리지 말고 사람이 먼저 죽일 수 있어야 밝은 사회가 이룩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고문한 자를 역사나 민족의 이름으로(그의 무덤을 향해) 단죄한다고 떠든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고문자는 당대에 처단되는 사회를 이루어야 하고 그런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서둘러 이 책을 만든 것이다.
  1987년 2월 조갑제
출처 : 한길사
[ 2003-07-10, 10:3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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