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건 정승화는 말한다(조갑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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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3년 동안 육군의 군복을 입었다. 나에게는 과분할 정도의 명예인 대장까지도 올라갔다. 나는 수많은 사선을 넘으면서 나름대로 국가에 충성해 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해방 뒤 혼란기에 군문(軍門)으로 들어간 나는 정부 수립에 이은 여수. 순천반란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산악을 누비며 공비토벌작전에 종사하였다. 6.25 한국전쟁 때는 일선 전투부대의 중대장, 대대장을 지내며 피로 물든 산야를 돌아 다녔다. 특히 백골부대의 한 대대장으로서 내가 겪은 전투는 모두가 악전고투였다. 내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전우들의 희생 덕분이라고 감사하면서 나의 삶 자체를 덤으로 생각해 왔다.
  
  한국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나는 일선을 떠나 군 교육기관의 교단에 선 적도 있고 그 뒤 제1선 지휘관과 참모직을 번갈아 경험하면서 1979년 2월에는 군인으로서 최고의 영광인 참모총장이 되었다.
  
  나는 평소에 '남을 속이지도 말고 속지도 말라'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아 왔었다. 군인으로서 나의 생애에 종지부를 짝은 1979년 12월 12일의 사건은, 내가 남에게 가장 크게 속은 일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나에게 치욕과 고통을 가져왔을 분 아니라 이 나라의 역사발전에도 너무나 큰 좌절과 시련을 안겨다 주었다. 이 사건은 나의 개인 체험으로 묻어 두기에는 너무나 큰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기회가 오면 이 사건에 대한 나의 증언을 꼭 발표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름대로 준비도 해왔던 것이다.
  
  요즈음처럼 바른말과 거짓말, 정의와 불의를 분간하기 힘들 때에는 나의 증언도 독자들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이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이 증언을 하는 목적은 나의 명예회복에 있지 않다. 나의 능력부족이 한 나라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원인이 되었음을 통감하면서, 군민 앞에서 사죄하는 심정으로써 나의 부끄러운 점을 털어놓으려는 것이다.
  
  국군은 글자 그대로 국가의 군대, 국민의 군대이다. 어느 개인이나 특정기관의 소유물이 아니다. 국군은 합헌적 국기(國基)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그렇기에 국군은 그 사회의 현실적 문제가 일으키는 파도에 의하여 흔들려서는 안되고 정치로부터는 초연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지도자와 집권당은 교체될 수 있으나 국가와 국민은 교체될 수 없으며, 국군은 현실문제를 떠나 보다 차원 높은 대상을 향해 충성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국내의 정훈교육은 어느 개인을 비방하거나 영웅화하는 사병(私兵)교육이 되어서는 안되고 군은 사리사욕을 추구하며 이합집산하는 사조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국군이 1979년 12월 12일 사건으로써 뼈아픈 교훈을 얻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이 교훈이 우리 국군의 발전을 위한 쓴 약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일부 군인의 손에 의해 고초를 겪었지만 아직도 국군을 사랑하는 나의 이 증언이 그런 쓴 약의 구실을 다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상관의 합법적 명령은 지켜져야 하며, 군의 단결은 지휘계통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록 지휘계통에서의 상관이 불충실한 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참모와 예하 장병에 의해 보충되어야 하고, 또 합법적 절차에 의해 시정되어야 한다. 군인의 충성이 그 대상과 방향을 잘못 잡으면 어느 개인의 오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에까지도 영향을 끼친다.
  
  나의 이 증언이 나외 다른 길을 걸었던 일부 군인의 어긋난 충성심을 드러내놓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당시 육군의 최고 책임자인 나의 불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정신교육의 미흡과 지휘체계의 유지에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국군은 이제 12월 12일 사건의 과오를 시정하며, 앞으로는 국민의 군대로서 오직 국민과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만 복종하는 국체보존의 최후 보루가 될 것을 확신한다. 사회가 불의를 추종하는 데 군인만이 정의롭기를 바랄 수는 없다. 우리 주변에서부터 폭력에 아첨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제거하는 용기를 보여야 군인들도 충절의 길을 바르게 걷게될 것이다.
  
  이 증언이 군의 최고 직위에 있다가 부하들에 의해 쫓겨난 못난 한 장군의 변명으로 받아들여질 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진실에 바탕을 둔 솔직한 증언을 하려고 애썼다. 북괴의 위협하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에서는 다시는 12.12 사건과 같은 일이 없기를, 아울러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 나의 증언을 활자로 옮겨 준 조선일보 조갑제(趙甲濟)기자에게 감사를 드린다. 1987년 11월 1일 정승화
출처 : 도서출판 까치
[ 2003-07-10, 10: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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