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거인의 초상 - 이용문장군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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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일곱 살에 비행기 사고로 요절한 이용문(李龍文)장군은 공식 기록으로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을 통해서 구전(口傳)되어 오는 데 적합한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신화적 요소를 지닌 사람이다.
  
  이데올로기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천의 무봉의 활달하고 순진한 영웅적 기상을 지녔던 이용문이 운봉 고개에 떨어져 죽지 않았더라면 한국의 현대사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이용문이 살았더라면 5.16 쿠데타의 지도자는 박정희(朴正熙)소장이 아니라 이용문 장군이었을 것이라는 가상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박정희는 이용문과는 정반대의 인간형이었다. 치밀하고, 내성적이며, 집념이 강하고, 절박한 박정희가 그의 일생 중 진심으로 복속했던 몇 안되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용문이었다. 이용문의 툭 터진 인간상에서 박정희는 자신의 부족한 점, 그리하여 갈망하는 하나의 이상형을 발견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혼, 투옥, 파면, 어머니의 죽음 등으로 그의 일생 중 가장 깊은 골짜기 속으로 떨어져 있을 때 '이용문형'을 발견한 박정희는 이용문에게서 피난처와 위안처를 함께 구했던 것 같다.
  
  이러한 인간적인 관계 하에서 두 사람은 이승만 정권을 뒤엎어 버리려는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외견상 성격이 판이한 두 사람이 지닌 공통점은 '큰 뜻'이었다. 그러나 그 '큰 뜻'을 추구하고 실천하려는 방식은 달랐다. 이용문은 인간 본연의 정의감을 사고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었고, 박정희는 나라를 개혁하는 큰 일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권력을 추구하였다. 이용문은 거침없이 움직였고, 박정희는 심사숙고 끝에 무섭게 결단을 내리는 스타일이었다. 둘 다 청탁(淸濁)을 함께 들이마시되 이용문은 껄걸 웃으며, 박정희는 싱긋이 웃으며 그렇게 할 사람이었다.
  
  역사의 가정은 흥미로서만 가치가 있다지만 이용문이 5.16 때까지 살아 있었다면 5.16 뒤의 한국은 박정희 시대와는 상당히 달랐을 지도 모른다. 이용문의 요절은 우리 군부 속에 남아 있던 '낭만적 개혁주의'의 가닥을 끊어 버렸던 것이다.
  
  이용문, 박정희 두 사람의 사이는 생전에는 이용문에 대한 박정희의 일방적인 종속관계였으나, 오늘날에는 이용문이 역사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은 박정희와의 관련 아래서이다. 박정희를 감싸고, 자극하고, 고무하였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에 공감하였던 이용문은 뜻을 펴지 못하고 죽었다. 박정희가 그 뜻을 이어받은 셈인데 '이용문형이 살았더라면 내가 이 자리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는 미안감 비슷한 것을 평소에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서른 일곱 해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주로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하여 복원한다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고, 부정확한 점이 많이 지적될 것이라고 각오하고 있다. 이 책이 오늘의 우리들 삶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큰 영향력을 끼쳤던 한 작은 거인의 연구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수많은 증언자와 자료 수집을 도와 주신 육군본부, 그리고 정리 및 교정을 도와주신 조돈만, 김동현, 고욱균, 조차숙, 박종성 님들에게 감사한다.
  1988년 2월 21일 조갑제
출처 : 샘터
[ 2003-07-10, 10: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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