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전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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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봄이었던가 보다. 월간조선 편집회의에서 어느 기자가 말했다.
  '뾰족한 아이디어도 없는데, '대해부·국가안전기획부'나 쓸까?'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때는 한 호 한 호의 잡지를 만드는 것이 꼭 안기부와 정기전을 하는 것 같았던 시절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채찍 역할을 하고 있던 안기부를 한번 도마 위에 올려보자는 뜻의 스트레스 해소용 농담이 있었던 1년 뒤 나는 월간조선(1988년 3월호)에 정말로 '심층취재·국가안전기획부'를 썼다.
  
  안기부로부터는 어떤 간여도 없었다. 이 기사로 해서 나라가 망하지도 않았다. 별것도 아닌 기사를 놓고 당장 국가의 안보망에 구멍이 생길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애국은 자신들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던 정보기관 사람들도 이제는 좀 느긋해지고 있다.
  
  국가안보 활동과 함께, 정통성이 약한 정권의 파수꾼 역할도 떠맡아야 했던 한국 정보기관의 역사는 지난 12·16대통령선거를 계기로 하여 한 장(章)의 막을 내렸다. 질풍노도의 한국 현대사가 펼친 무대에서는 악역이 있어야 했다.
  
  국군보안사와 국가안전기획부로 대표되는 정보기관들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구호를 앞세우고 '오직 역사만이 우리를 평가할 것이다'는 자세로써 한 시대를 주도하였다. 한 정권을 유지하는 고삐가 되었다가, 그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도 관계되었는가 하면 또 다른 정권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막후의 연출자 역할을 했던 것이 안기부나 보안사였다.
  
  5·16 뒤에 중앙정보부란 이름이 등장했을 때 소년기에 있었던 나는 김종필이란 인물 때문에 오히려 호감을 가졌다. 그때의 젊은이들이 많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앳된 모습의 청년장교 김종필에게 매료당했었다. 그의 강연회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내가 정보부란 벽과 구체적으로 부딪치게 된 것은 1971년에 기자가 되고 난 뒤부터였다.
  
  기사의 본질이 아니라 몇 구절에 나타난 표현상의 문제를 트집잡아 기자를 불러다가 흠씬 두들겨 팬 뒤 돌려보내곤 하는 일들을 가끔 목격하게 되었다. 내가 쓴 특종기사가 정보부의 전화 한 통화로 부장 책상의 고무판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한심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정보부가 절실하게 나의 삶 속으로는 들어와 있지는 않을 때였다.
  
  1976년 1월에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포항에서 양질의 원유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그 뒤 며칠 동안 산유국의 꿈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그해 5월엔 5·16 기념일을 맞아 포항유전 발견을 경축하는 석유축제가 열릴 것이라는 소문과 함께 주식 값도 춤을 추었다. 포항 석유시추를 주도하고 있던 정보부가 언론사에 대해서 '석유 석(石)자도 쓰지 말라'고 기사 금지령을 내려놓고 있을 때였다.
  
  포항석유에 대해 약간의 진실을 알고 있었던 나는 할 수 없이 '포항석유에는 경제성이 없다'는 요지의 논문을 써 관계자들(정부기관·연구소·언론기관)에게 돌렸다. 기자의 사명감에서라기보다는 나만 알고 있기가 답답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고 소리쳐 본 셈이었다. 이 논문을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인용하여 기사를 썼다. 나는 정보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논문 내용에 문제가 많으므로 자진 회수한다'는 각서를 썼다. 그리고 회사에서 쫓겨났다.
  
  생계를 위해서 국제상사 기획실에 취직한 나는 기자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서 거대기업의 한 톱니바퀴로써 열심히 일했다. 이 경험이 그 뒤 내가 기자생활을 다시 하게 되어 기업에 관련된 문제를 다루게 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정보부에 감사하고 있다.
  
  1년 3개월 뒤, 정보부장이 신직수 씨에서 김재규 씨로 바뀐 틈을 타 나는 정보부 실무자들의 양해 하에 다시 기자로 돌아갈 수 있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정보부장의 총탄을 맞고 죽은 사건은 거대한 파도가 굉음을 내면서 무너져내리는 듯한, 장대한 비극이었다. 김재규와 박선호, 박흥주 씨들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제쳐두더라도 법정에서 보여준 정보부 사람들의 태도는 당당하였고, 남자 세계의 미학을 보여주는 면도 있었다. 그런 법정 드라마를 통해서 정보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기도 하였다.
  
  1980년 5월 광주사태를 취재한 직후에 신문기자임을 중단 당해야 했던 나는 1년 뒤부터는 잡지기자로서 재출발하였다. 1986년 1월에는 '한국내 미 CIA'(월간조선 1986년 2월호)란 기사 때문에 안기부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뒤 회사를 그만두었다가 넉 달 뒤 복직하였다. 요사이는 당시 나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자주 만나며 취재를 하기도 한다. 그 장씨를 대면하고도 특별한 감정의 파문이 생기지 않았다.
  
  한국 현대사의 급변은, 인간관계의 변화를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끔 하였다. 식민지, 해방, 분단, 동족상잔, 사상전쟁, 쿠데타, 민중봉기 등 엎치락뒤치락하는 사태를 너무나 많이 겪어 온 한국인들은 과거의 기억을 뇌리에서 빨리 지워가지 않으면 오늘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드라마를 도저히 수용할 수 없게 돼 있다.
  
  이런 시대의 기자로서 나는 지워버리려고 하는 기억들을 주워 모아 역사의 기록이란 명분 아래에서 정리해 놓은 일을 하기도 했는데, 지난 몇 년 사이에 내가 쓴 기사를 분류해 보니 군부와 정보기관에 대한 것들이 유달리 많아 한 권씩의 책으로 엮어낼 정도였다. 군과 정보기관이 한국의 국정(國政)을 주도한 조직이었다는 얘기이겠다.
  
  안기부의 기능이 크게 축소되고, 일부 요원들의 행동거지에서 힘이 좀 빠진 것 같은 요사이에 만난 안기부 간부들 중에는
  '우리의 악역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민주화도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역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운명이다. 변명도 홍보도 할 수 없는 것이 정보기관 아닌가'란 취지의 말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보기관이 국내외 공산세력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맡고, 경제가 또 튼튼한 울타리를 쳐 놓은 그 안에서 비로소 민주화의 진통이 가능했다는 뜻이겠는데, 정보기관의 기능을 나 같은 기자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광기와 열정의 바람이 좀 약해져야 할 것이다. 그런 평가가 가능해지려면 안기부와 보안사에 대한 사실들이 더 많이 캐내지고 검증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약간의 기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기사들이 쓰여지던 시대는 한국인들의 가슴에 희망과 성취감뿐 아니라 분노와 사명감이 꽉 차 있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성의 시대가 아니라 감성의 시대였다. 그런 시대의 기자를 통해서 나온 이 기사에도 감정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이념이나 인식은 시대와 국경을 넘나들 때마다 바뀔 수 있고, 때로는 마땅히 바뀌어져야 하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기자는 사실관계를 다루는 전문가(fact finding specialist)로서, 사실로써 승부하고 주장하고 분노하고 기뻐해야 한다. 생각이 사실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생각을 결정해야 한다. 누구도 사실 앞에서는 고개를 저을 수가 없는 법이다. 이 책에 얼마나 많은 소중한 사실들이 담겨져 있는지,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사실왜곡이나 과장, 또는 사실오인이 있었다면 가슴이 뜨거웠던 만큼 머리가 냉철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사실확인에 대한 프로정신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 CIA의 모토인 '익명(匿名)에의 정열'은 기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글쓴이의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 잡지의 기자를 한 때문에, 또 몇 권의 책을 낸 때문에 나 자신은 익명에의 정열이 아니라 '허명에의 오기'를 부리는 것 같아, 취재현장의 뒤안길에서 묵묵히 밤낮을 뛰고 있는 일선 기자들에게 오직 미안할 뿐이다. 1988년 11월
출처 : 조선일보사
[ 2003-07-10, 10: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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