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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게 '왜 정치를 하느냐'고 물으면 거의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요즈음 소설가들에게 '왜 소설을 쓰느냐'고 물으면 '민중의 애환을… 위해서'라는 답이 나올 때가 많다.
  심지어 운동 선수들도 메달을 따거나 선수권을 획득한 뒤에는 마이크 앞에서 '국위를 선양하여 기쁘다'는 말을 먼저 해야 마음이 놓이는 듯하다.
  텔레비전 기자가 어떤 사건에 대한 소감을 듣기 위해 행인에게 마이크를 갖다 대면 거의 자동적으로 나오는 말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이다.
  
  자신의 생각, 직업, 행동을 국가, 민족, 국민, 민중과 같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추상적인 개념과 연결시켜야 으쓱해지고 뿌듯해지면서 안도하게 되는 그런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깔려있다. 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많은 기자들이 기자됨의 이유를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사회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등등으로 설명한다.
  기사가 진실을 밝히고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기사를 쓰다가 보니 그렇게 된 면이 더 강하지 처음부터 진실과 사회 정의를 의도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가끔 나는 '왜 기사를 쓰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호기심과 명예욕 때문이다'고 답한다.
  인간이, 사건이, 그리고 이 세상이 재미있기에 취재를 하고, 그렇게 해서 쓴 기사로 이 세상이 영향을 받고 정책이 세워지며 사람의 생각이 바뀌는 것을 보고, 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고 해서, 신이 나서 기사를 쓰는 것이다. 예쁜 여자를 봐도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고, 세상사가 모두 그저 그렇게 보이며, 자기가 쓴 기사조차 읽기 싫어질 때 기자의 생명은 끝나는 것이다.
  
  내가 히로뽕에 관한 기사를 많이 쓰게 된 동기도 재미 때문이었다.
  1970년대에 부산에서 경찰 출입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나는 히로뽕이 가져다 주는 엄청난 이문에 눈이 어두워 불꽃으로 덤벼드는 부나비처럼 밀조·밀수에 몰려드는 수많은 범죄자들과 만났고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일본 조직 폭력단이 배후 세력으로 돼있어 국제적인 규모와 기동성을 가진 이 히로뽕 범죄의 취재에 재미를 느끼면서 들어갔다가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나는 1984년 1월에 히로뽕 문제를 취재하러 갔었다.
  그때 일본에서 유통되는 히로뽕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밀수입된 것이었다.
  일본 경찰은 히로뽕 범죄를 가장 큰 사회 문제로 생각하고 그 대책에 총력을 다 쏟고 있었다. 불과 수십 명의 전담 요원으로써 수천 명의 히로뽕 범죄꾼들을 쫓으면서 함께 진흙탕에 빠지기도 하고 범죄자들의 유혹에 넘어가 허우적대기도 하는 한국의 수사 실정은 너무나 안이했었다.
  
  그때 우리 정부나 언론은 히로뽕 문제를 '강 건너 불 구경하듯'하였다.
  수백만 명이나 되는 일본의 상용자들이 주사 맞고 있는 것은 거의가 한국에서 만든 히로뽕이었지만, 한국에는 상용자가 많지 않고 일본에 대한 밀수출로 외화를 많이 벌고 있지 않느냐 하는 안도감이 깔려있어 당시의 히로뽕 대책은 너무나 허전하였던 것이다. 히로뽕 사건의 피고인을 변호하면서
  '히로뽕 밀조자는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다'는 이야기를 한 변호인도 있었던 시절이다.
  
  1980년부터 몇 년간 우리 검찰이 거물 히로뽕 제조범들을 많이 잡아넣어 그들의 기를 꺾어놓은 적이 있었다. 이때가 히로뽕 문제를 근절시킬 수 있는 찬스였지만,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한국 정부가 히로뽕 문제를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대만 정부 등과 손잡고 1980년대 초에 제대로 손을 썼더라면, 전(前)대통령의 아들까지 히로뽕 사용자가 되는 이런 상황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기적이고 국수적이며 보편적 가치관을 무시한 국가 정책이 결국은 자해(自害) 행위가 된다는 교훈을 우리는 히로뽕 문제에서 보게 된다.
  
  나는 1983년 12월호∼1984년 2월호 월간조선에 세 차례 「히로뽕 지하제국 탐험」이란 시리즈 기사를 썼었다. 이 책은 이 기사를 중심으로 하고, 그 뒤에 몇 차례 더 쓴 관련 기사를 모은 것이다.
  
  1984년의 기사에서 나는 한 일본 전문가가 한 경고―'올림픽 무드를 조심하라'―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86, 88올림픽으로 상징되는 잔치 분위기와 대중 소비·향락 무드의 확산 속에서 히로뽕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깊게 내릴 위험이 있다고 한 일본 학자의 경고는 불행히도 적중하고 말았다. 히로뽕은 쾌락을 향해 자신을 다 태워 없앨 때까지 끝없이 질주하고 싶은 현대인의 야수성을 유혹하는 미끼인 것이다.
  
  오래 지속되는 진정한 쾌락은 자기 절제에서 나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순간의 환락을 위해 일생까지도 던져버리는 모험을 무릅쓰고 있고, 히로뽕은 그 도구로 쓰여지고 있다.
  나는 히로뽕 문제의 대책으로써
  ① 검찰과 보사부 마약 감시반이 맡고 있는 수사 기능을 방대한 경찰 조직으로 확장시키고
  ② 전문 수사관과 히로뽕 사범의 유착을 단절시키며
  ③ 일본·대만 등 관련 국가와의 협력 체제를 강화하고
  ④ 폭력단이 히로뽕에 손을 대어 부를 축적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조직을 확대시켜 온 일본의 예를 교훈삼아 폭력단과 히로뽕의 연결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보다 근원적인 것은 육체적인 쾌락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인 쾌락의 요소들을 우리 사회가 많이 개발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마약 문제는 선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으례히 있는 것이라고 체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 사회의 변화 과정이 일본 사회를 그대로 좇아가고 있는 형국이고, 히로뽕 문제까지 닮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은 미국식도, 일본식도 아닌 한국식의 사회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처지에 있다.
  
  이런 새 모델을 만드는 데 있어서 우리는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그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고, 이것이 후발국의 이점이라고도 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 가운데서 마약 문제가 없는 유일한 나라'라는 칭찬을 들으며 한국식으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동물적인 욕망을 절제하고 그 바탕에서 정신적인 보람과 가치를 창조하려는 우리 모두의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
  
  나의 애창곡은 '마이 웨이'인데 '마이 웨이를 마이 웨이식으로 부른다'느니 '아무리 들어도 곡목을 알 수 없는 추상화 같은 창법'이란 촌평을 듣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만은 아메리칸 웨이도, 재퍼니즈 웨이도 아닌 '마이 웨이'식으로 줏대 있게 성장해 가기를 바라며, '마이 웨이'식 한국 사회의 첫째 조건은 히로뽕으로 상징되는 자기 소모적이고 퇴폐적 향락 문화를 물리치는 일일 것이다. 1989년 2월
출처 : 조선일보사
[ 2003-07-10, 10: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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