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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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본 사람이 잘 안다
  
  김상철(金尙哲 : 변호사. 고시계 발행인)
  
  趙甲濟 기자는 심층취재에 있어 독보적 인물이다. 그의 취재 보도는 선입관과 편견을 배제하고 늘 사실과 증거에 입각하여 있다. 사회적 문제의식과 역사적 시대의식에 충만해 있되 결코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으며 취재에 있어 오히려 냉정하다. 그러므로 그는 직위가 아무리 높아지더라도 우리가 늘 기자라고 부르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
  
  조기자가 지난 해 어는 좌중에서 '지금은 북한 바로 알기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과연 북한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느냐'고 물으며 말문을 꺼내었다. 당시는 북한을 1개월 가량 잠행(潛行)한 소설가 황석영의 방문기가 시중에 나와서 이야말로 북한 실정을 바로 알리는 것이라고들 하면서 많이 읽고 있었고, 그 외에도 루이제 린저의 북한방문기나 재미 한국교포들의 북한 방문기가 도처에서 탐독되고 있었을 때였다.
  
  조기자의 해답은 '북한에서 살아 본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간단한 한 마디야말로 실로 정곡을 찌르는 것이다. 그렇다. 북한의 실정은 일시적 방문객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 연구인력이나 정보분석통이라 할지라도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만큼 바로 알 수는 없는 것이다.
  
  북한에서 살아 온 사람이, 그것도 북한을 싫어하여 자기 의사로 버린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는 관계없이 지금 이 나라에 있게 되어 북한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누구이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바로 KAL기를 공중 폭파시켜버린 미모의 처녀 공작원 김현희였다. 그래서 조기자가 김현희를 수일간 동행하며 취재한 <김현희는 말한다>라는 연재기를 읽게 되었다.
  
  밑줄까지 쳐 가면서 읽었고, 스크랩을 해두고 두 번 세 번 또 읽었다. 이 글은 분명히 하나의 충격을 주었다. 세계의 어느 독재국가에도 유례가 없이 북한에는 왜 도처에 3만5천 개나 되는 크고 작은 김일성의 상(像)이 즐비하게 세워져 있는지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북한은 공산 독재체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좋게 말해서 김일성 수령신(首領神)체제 이기 때문이다. 북한을 가리켜 공산 병영국가(兵營 國家)라고도 하고, 영국의 <가디언>지 북경특파원은 수년 전에 나에게 북한 실정을 가리켜 <거대한 수용소>라고 했었지만, 실은 북한은 거대한 유사종교 집단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 중에 참으로 가슴이 섬짓할 정도로, 동족이 당하고 있는 비극에 망연자실하게 되는 대목이 있다. 김현희가 지도원으로부터 교육받은 남한 실태가 모두 허위라는 것을 아는 데는 단 3일이면 족했으나, 이 모든 허위선전과 자유박탈의 장본인이 바로 김일성 임을 깨닫고 드디어 그의 입으로 김일성을 비판하는 데는 반년 이상이나 걸렸는데, 그가 그토록 철저하게 믿어왔던 어버이 수령을 부정하고 나자 일종의 금단현상과도 같은 극도의 불안정상태를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기부 수사관이 성경을 읽게 했더니 성경을 며칠 숙독하고 하는 말이 '성경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성경의 <하나님 아버지>자리에 <어버이 수령>을 대산 집어 넣는다면 이제까지 북한에서 교육받아 온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 대목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언젠가 죽어서 없어질 피조물(被造物)인 주제에 무슨 인간의 얼굴을 한 신처럼 군림하며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에 주체사상(主體思想)이라는 인조 이데올로기를 심어 놓고서 정신적으로 노예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의 소원은 통일'하면서 노래 부르듯 말하지만 과연 통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일은 드물다. 어떤 기회에 국민학교 5,6학년 아이들에게 통일이 되면 무엇이 달라질 것 같으냐고 물어본 즉 <금강산 구경을 하게 된다> <이산가족이 만난다> <국력이 커진다> 고들 대답하였다. 모두 자기들 좋아지는 생각만 하였지, 북한 주민들의 자유인권이라든가 실생활의 문제를 염려해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89년 11월에 시작된 동독의 개방이 벌써 독일 통일의 구체적 길로 진입하고 있는 이때, 동독과 다를 뿐아니라 루마니아와도 다른 북한의 실정을 생각해 볼 때 한민족 통일의 역사적 과업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실력과 인내, 그리고 동족애에서만이 나올 수 있는 희생을 요구하는 것인지를 점차 깨우치게 되었다.
  
  김현희는 일대 참상을 그 손으로 수행하였기 때문에 큰 죄를 졌지만, 그 악행을 계획하고 연출한 자는 따로 있고 오히려 스스로는 수단적 이용물로서 김일성체제의 비극적 희생자라 해야 옳을 것이다. 김현희는 그의 시도와는 달리 살아남아 이제 스스로의 자유의사로 김일성체제의 실상과 그 부자(夫子)의 잔혹성을 증거하고 있다. 폭파된 잔해중 태극마크가 선명한 부분이 2년도 더 지난 때에 인양되어 결정적 증거물로 제시되고 있는 이 일들을 우리가 체험하면서 이를 모두 우연한 기적으로만 돌린다면 너무 우둔하고 완고한 처사라 하겠다.
  
  김현희의 고백처럼 여기에는 역사의 주재자이신 하나님의 듯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북 분단을 그저 척박한 땅에 사는 한많은 민족이 당하는 비극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분단과 6.25 전란이라는 통절의 수난을 겪으면서 20세기 초기에 굉음을 울리며 등장한 공산주의 세력의 도도한 남하를 저지한 채 단일민족이 남북으로 나뉘어 처절한 체제경쟁을 벌여왔던 것이다.
  
  전란으로 모두 초토화된 상태에서 시작하였고 남북이 각각 지독스레 열심이었던 만큼 그 경쟁의 결과는 유물사관과 계획통제경제에 입각한 공산체제와 인간 종엄과 다양성 및 시장경제에 입각한 자유민주체제 중 과연 어느 것이 옳은가를 실증해주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양 체제의 제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나던 때인 1988년 가을 서울올림픽을 통하여 한국과 한국사람들의 모습들이 텔리비전 중계를 통하여 동구라파 등 전세계의 안방에나마 속속들이 알려지고 나서 바로 1년만에 동구 공산체제가 차례로 와해 붕괴되는 극적 전환을 맞게 되었다. 우리 민족이 보여주는 이 사실의 증거 앞에는 어떤 교묘한 논리도 전문지식조차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공산체제에서는 인민, 곧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는 단 한마디 <우리는 더 이상 속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제국주의의 식민지요 세계 자본주의권의 주변부로 종속된 편입된> 참으로 한심한 나라로 알았는데 저토록 번영과 자유인권을 구가하고 있고, 공산체제하에서 자기들은 궁핍과 무기력에 싸여 희망을 상실하였으니 이제가지 그들 공산당들이 한 모든 말이 허위와 기만 뿐 이었음을 온 몸으로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공산당이 이제는 <민주적 사회주의>정당으로 변신을 하여도 결코 믿어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난의 역사를 살아 온 우리는 김현희의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이 민족의 수난들이 한 많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내를 통하여 기어이 세계에 소망을 보여주는 영광의 자리에 이르기 위한 단련임을 깨닫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펴내기로 하였다. 이로써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식의 각성에 한 작은 도움이 된다면, 크게 감사할 일이다.
  
  1백15 명의 KAL폭파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부디 김현희양의 새로운 인생도 평안하기를 바라고, 남북한에 사는 우리 동족 모두가 정의와 사랑의 공동체, 곧 서로 다른 생각과 이익이 아름답게 하나되어 각 사람이 인간의 존귀성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이루는 데 일조를 하였다고 보람을 느끼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1990년 6월 25일
  
  
  김현희의 神 - 金日成
  
  조갑제(조선일보 월간조선부 부장대우)
  
  1990년 초에 우리 언론에서는 <김일성이 곧 은퇴할 것이다>는 요지의 기사를 전파하였다. 그 무렵 저녁 식사자리에서 우연히 산케이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기자와 마주 앉은 적이 있었다. 구로다 기자는 교토통신과 산케이신문의 서울특파원으로서 6년간 한국을 체험한 고참기자이다.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베스트셀러를 써 내는 등, 최근의 한국사정을 일본에 알리는 많은 저술활동을 한 분이다.
  
  구로다 기자는 '며칠 전에 김일성의 은퇴문제에 대해서 기사를 썼는데, 은퇴설을 잘못이라고 썼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김일성은 북한주민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다. 상아 있는 신이 어떻게 은퇴한단 말인가'
  나는 그 순간 <역시 고참 기자는 다르다 !>는 생각을 했다.
  
  내가 김현희와 나흘간 이야기를 하고 나오면서 느낀 것이 바로 그 문제였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김현희의 신>이라는 실감이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이다. 김현희는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나서도 안기부 수사관들 앞에서 계속 <위대한 수령>이라는 존칭을 썼었다고 한다. 김현희가 김일성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것은 88년 10월, 서울롤림픽 뒤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김현희는 비로소 마음을 턱 놓고 김일성을 비난하더라는 것이다.
  
  북에서 내려온 다른 사람은 '내 가슴 속에 있는 김일성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죽울 때까지 김일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지지는 못할 것이다'고 실토하였다. 수십 년 동안 교회와 예수님 밖에 모르던 기독교 신자가 어떤 사정으로 교회에 다니지않게 되었다고 해서 금방 예수님을 욕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김현희를 만난 뒤로는 <김일성은 북한의 신이며, 북한체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방법은 북한을 국가가 아닌 신흥종교집단으로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가 구로다 기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김일성을 정치지도자, 북한을 국가로 본다면 은퇴설이 그럴 듯하겠지만 김일성을 신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살아서 은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월간조선 1989년 5월호부터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하였던 <김현희를 말한다>는 1989년 12월에 일본의 도꾸마서점(德間書店)에서 책으로 먼저 나왔다. 김현희에 대해서는 일본사람들이 오히려 한국사람보다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책을 낸다는 생각을 생각으로만 갖고 있는데 김상철변호사가 우연히 김현희 기사 이야기를 꺼내더니 '그 글을 읽고서 북한체제를 종교집단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그 기사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던 핵심을 정확하게 끄집어내 주는 것이 고마웠다. 김변호사와 나는 그 자리에서 <북한과 김일성을 보는 인식의 틀>을 널리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합의하여 이 책을 내기로 한 것이다.
  
  서정 시인으로 유명한 정호승(鄭浩承)씨는 월간조선 사무실에서는 나와 마주 앉아 있는 직장 동료이다. 정기자는 월간조선 1990년 3월호에 <귀순자들이 본 남한 사회>란 기사를 두 번 썼다. 그 기사를 통해서도 김일성과 북한 주민들의 특수관계를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읽은 북한에 대한 기사나 책을 다 합쳐 놓은 것보다 더 많은 핵심정보를 나는 鄭기자의 두 기사에서 얻어낼 수 있었다.
  
  한 철학도가 친구에게 한강철교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저 철교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뭔지 아니 ? '
  '교각이지 뭐'
  '아니야, 저 다리를 버티고 있는 것은 역학 공식이야'
  현상으로서의 쇳덩어리가 아니라 그 쇳덩어리 속을 흐르는 힘의 원리를 드러내 보이자는 심정으로 이 책을 낸다.
  1990년 6월 18일
출처 : 고시계
[ 2003-07-10, 10: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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