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층의 표적 김정남 수석의 이념과 역사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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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층의 표적」 金正男 수석의 이념과 歷史觀 - 정부 內 이념적 색깔 문제를 놓고 벌인 결투 같은 對談 5시간
  
  ● 「불꽃회」사건의 사회주의적 강령에 대해서
  ● 평화신문 재직시의 親北的, 反대한민국적 신문논조에 대해서
  ● 좌파적 경향이 있는 민예총의 남북한 미술전에 정부측이 돈을 지원한 데 대해서
  ● 한국 現代史와 前정권의 정통성을 전면 부정하려는 태도에 대해서
  ● 청와대 內 在野출신 人士들의 전향 여부에 대해서
  
  『이념적 과잉표현에 대해서 과민 반응 않았으면…사회주의의 환상에 젖은 적은 있었으나 사회주의자였던 적은 없었다. 한국의 주류층이 좀 더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
  
  <1994년 6월 월간조선>
  
  제 1부 金正男 수석의 對北觀과 한국 현대사를 보는 눈
  
  사상적 의구심의 표적이 된 金수석
  
  우리들에게 이념과 사상의 문제는 국가의 存亡과 개인의 生命을 가르는 것이었다. 본질적으로는 사상대립으로 일어난 6·25전쟁에서 인구의 6분의 1인 5백22만명이 피를 흘렸다. 수많은 고아를 낳았고, 흩어진 이산가족은 1천만명까지 추산된다. 그 전쟁에서 자본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남한쪽에서 살아남은 우리들은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하는 사람이 숱한 반면, 사회주의 이념의 북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식량 배급이 끊겨 노인들이 집을 나가 아무도 모르게 굶어 죽고 있다. 非자발적인 선택이었다 해도, 이념적으로 갈라선 결과는 생존의 상황에 이처럼 잔인한 차이를 가져왔다. 이념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엄혹했다. 越北者나 사상범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자기 삶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시절이 멀지 않은 과거였다. 「빨갱이」라는 꼬리표가 한번 붙으면 파렴치범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다. 이것은 40여년밖에 지나지 않은 우리의 과거(6·25전쟁)와 아직까지 이념대립은 계속중이라는 현실이 우리들을 풀어주지 않고 있는 족쇄들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개인도 아닌, 정부의 사상적 투명성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 의한 한국 現代史의 정통성 비판, 북한 核에 대처하는 유화적이고 수세적인 정부 정책들에서 시작된 이런 의구심은 국사 교과서 준거안 파동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언론매체를 통해 공개적으로 나타난 것만 꼽아보자.
  
  ▲헌정회(黨政會)는 정부 요직에 있는 고위 공직자의 사상공개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星友會)는 일부 국민 지도층의 존재를 북한 이상의 위험한 요소로 평가한다는 신문 광고를 냈다.
  ▲자유총연맹에서도 星友會와 비슷한 내용의 광고를 신문에 실었다. 이런 단체들의 (정부 주요 공직자의 사상적 투명성) 요구는 구체적으로는 金正男 교문·사회수석비서관에게 모아진 것이다. 공개적으로 金수석을 거명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북 출신 前 국회의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국사 교과서 준거안 연구위원의 人選에 「某 수석비서관」이 누구를 지칭하느냐는 질문에 『金正男 수석비서관을 말한다』고 주저없이 답했다.
  ▲月刊잡지 「민족정론」은 93년 12월호와 94년 5월호 두 차례에 걸쳐 金수석을 거명하며 사상적인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이 金수석에게 사상적인 투명성을 요구하고 나선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20여 년간 줄곧 이름 없는 在野 人士로 활동해오며 국민들이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金泳三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라는 요직에 오른 점
  ▲金수석의 경력 중 대학 시절 「불꽃회」사건과 관련,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된 적이 있는 점
  ▲현재 金수석이 관장하고 있는 교육·문화 관련 분야에서 교과서 준거안 파동과, 좌익적 색깔이 있는 예술단체인 민예총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사단법인으로 등록한 뒤, 정부의 지원금까지 받아 反美·反체제적인 미술전시회를 南北화가 공동으로 개최한 사실
  ▲金수석이 在野 人士들의 정부에 참여하는 창구가 되고 있다는 世論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
  
  月刊朝鮮은 金正男 수석비서관에게 쏠리는 이런 의문들에 대해서 지난 5월7일 金수석과 5시간 동안의 인터뷰를 통해 직접 물어보았다.
  
  ―저는 金수석께서 몇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보며 가장 먼저 물어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한국전쟁에 관한 金수석의 생각입니다. 작년 月刊朝鮮과 新東亞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金수석은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불가피한 아픔이었다. 지금 와서 책임을 따져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 같이 죄인이라는 입장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4·3 사건에 대해서도 『누가 잘했고, 잘못했다기보다는 이 역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아픔이었다』고 답했습니다. 한국전쟁의 원인은 제가 보기에 명백합니다. 金日成이 소련의 후원을 받아 남침을 한 것입니다.
  
  그 명백한 요인을 金수석은 『우리 민족 모두의 아픔』이라는 말로 사상(捨象)시켜버리고 남한 사회에 있었던 4·3사건 같은 內因이 전쟁을 불러왔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 누가 침략했는가 라는 6·25 전쟁의 원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명백합니다. 그런 명백한 것을 전제로 이야기한 겁니다. 그 위에서 당시의 상황을 다시 반추하고, 책임을 거듭 들추어 미움을 증폭시키기보다는 가급적이면 넓게 보고, 넓게 생각하자는 뜻이었습니다. 냉전의 시대가 가고 있는 마당에 원인이 어떻고, 잘못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새삼스럽게 꼭 왈가왈부해야 하는 것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4·3사건은 폭동으로 보십니까, 항쟁으로 보십니까.
  
  『솔직히 4·3사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고 있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아픔으로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겠죠. 아직 사실 규명이 명료하게 되어 있지 않아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소요, 또는 폭동에 가까운 사건으로 이해해야 하겠죠』
  
  ―폭동과 항쟁이라는 개념 속엔 뚜렷한 의미의 차이가 있습니다. 폭동은 일으킨 쪽이 잘못했다는 가치 판단이 들어 있고, 항쟁은 진압한 쪽이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6개월전 金수석의 답변은 『책임을 굳이 따질 필요가 있는가』라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4·3사건의 실체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 사건에 대한 명확한 역사적인 定說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것은 소요가 확대된 것이 아닌가 정도로 생각합니다. 굳이 책임을 따지는 개념을 사용한다면 폭동쪽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폭동이라는 단정 속에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아픔이나 가려진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고하게 죽었거나, 억울하게 고혼이 된 주민들의 원한과 그 자식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모르는 체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그렇게 보지 말고 총체적으로 우리 민족이 살아온 현대를 아픔 속에 반추해보는 것이 正道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였습니다』
  
  金泳三―金日成 정상회담 한다면…
  
  ―대구폭동도 소요나 폭동이라고 해석하십니까.
  
  『적어도 그 시작과 행태에 대하여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4·3사건이나 여순반란사건, 대구폭동에서는 그 사건 때문에 억울한 국민들이 많이 죽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원인 제공을 하고 그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이 공산당이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책임을 따질 때는 누가 일으켰느냐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항쟁이라는 표현을 쓰기 위해서는 엄밀한 검증을 거쳐야 하겠죠. 일단 항쟁이라는 용어를 쓰려면 검증과 공감이 필요할 겁니다. 그러나 역사를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만 보는 획일적 도식에는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아직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방적인 가치판단의 강요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대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어느정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3사건과 여순반란사건, 대구폭동을 지금 와서 문제 삼는 것은 그 사건 자체보다도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서 李承晩 정권을 어떻게 보느냐, 나아가 우리나라의 지난 50년 현대사의 정통성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항쟁으로 보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우리 現代史의 정통성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반사적으로는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쪽입니다. 한국전쟁의 책임 문제는 통일을 위해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만약 金泳三 대통령이 金日成과 정상회담을 한다면 첫번째 회담에서는 金대통령이 다른 이야기는 할 필요없이 한국전쟁에 대한 책임을 金日成에게 엄중히 따지는 것으로 회담의 승기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지금 와서 책임지라 한들 무엇 하겠느냐』는 金수석의 말에 수긍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미시적으로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는 책임을 따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로서 화해와 통일이 시급한 우리에게 책임을 따지는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가 걸림돌이 되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뜻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어떤 현안을 가지고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金泳三 대통령과 金日成 주석이 만날 때 저는 기본적으로 金日成 주석은 한국전쟁의 책임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죄의식을 가진 그 위에다 엄중하게 책임을 져라,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 흡수통일을 반대하나?
  
  ―한국전쟁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통일을 이루는 데 중요한 단계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에 대한 북한의 명백한 사과를 받는 것이 통일을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의 방법에 대해 金수석께서는 新東亞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통일은 흡수가 아니라 힘을 합쳐 새로운 민족공동체를 같이 세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질문도 체계적인 것이 아니었고, 제가 말한 것도 낭만적인 대답이었습니다. 제 뜻은 이런 것입니다. 북한이라는 집단은 상대하기 상당히 어렵고 악랄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은 오염되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공산주의 세뇌라는 측면을 일단 사상(捨象)시켜놓고 보면 말이죠. 또 북의 산하도 우리처럼 발전은 안됐지만 개발에 다른 오염은 덜 된 상태가 아닐까, 그래서 가능하다면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아직 개발되지 않은 땅에,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빼면 아직은 순박한 북한 주민과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입니다』
  
  ―金수석께서는 통일 방법에 있어서 흡수통일을 반대하는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흡수통일의 정의가 애매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동서독식의 통일방식을 말하는 겁니까.
  
  『흡수통일이라는 용어를 꼭 써야된다면 그 모델은 동서독 통일이 되겠죠』
  
  ―동서독의 통일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체제로의 통일이고 무혈 통일입니다. 그것을 반대한다면 그것에 대한 代案을 내세워야 합니다. 代案에 대한 언급 없이 흡수통일을 반대한다면 과연 국민들이 납득하겠습니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의 통일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흡수통일이 빠른 속도로, 인위적으로 흡수하는 통일이라는 의미에서 부담이 불가피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간 개념으로 흡수통일을 반대한다는 겁니까.
  『시간과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서독과 동독의 인구비율은 4대 1이었는데도 독일이 지금처럼 허덕인다면 인구 비율이 2대 1인 우리는 급격한 통일이 우리의 발전 잠재력에 심각한 상처를 입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사실 현 단계는 통일을 해야 하느냐, 마느냐는 단계가 아니라 어떤 통일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논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되어지는 통일」의 가능성 높다』
  
  ―흡수통일이라는 말에는 무력통일이라는 개념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흡수통일이라는 용어는 북한 체제가 붕괴됐을 때 우리가 바로 흡수할 것이냐, 아니면 같이 공존하는 기간을 좀 더 오래 둘 것이냐는 의미에서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흡수를 해서 통일하려고 하지 않더라도 북한 체제의 급변에 따라 우리가 흡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어떤 부담을 안더라도 통일에 바로 임할 수 있는 쪽으로 준비를 해야 진정한 통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지레 겁을 먹고 흡수 통일은 않겠다고 국민들에게 통일 교육을 하면 이기주의적인 분위기를 확대시킬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통일은 우리가 공식적으로, 또는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추진하는 식으로 될 수도 있겠지만 「되어지는 통일」의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되어지는 경우를 상정하여 우선적으로 논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관계부처에서는 그것까지도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되어지는 통일까지를 포함해서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브란트 前 서독 수상이 89년 訪韓하여 「내 생전에 독일의 통일을 보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한국의 통일은 의외로 빠를지도 모른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독일로 돌아간 직후 독일은 통일이 됐습니다. 저는 우리의 통일도 이처럼 되어질 수도 있는 것이며, 우리가 목표를 설정한 대로 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지금 정부에서 되풀이해서 사용하는 「우리는 흡수통일을 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발언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 앞에 「급격한」 흡수통일은 않겠다는 수식어가 붙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누구나 흡수통일을 독일식의 자유민주주의식 통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통령에서부터 정책 당국자들이 계속 흡수통일을 않겠다고 하니 우리의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약화되거나 쇼로 인식되게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안보를 책임지고 또 북한을 의식해야 하는 등 모든 것을 헤아려야 할 대통령의 입장에 있다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의 깊은 생각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정부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설사 그것이 당연한 귀결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통일은 힘을 합쳐서 새로운 인간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누구와 힘을 합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金日成·金正日 지배체제가 현실적인 권력으로 존재합니다. 그 지배층이 힘을 합치는 대상이 될 수 있습니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지배층이 바뀐 상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 세계사적인 대세를 따라 개방과 개혁을 하며 스스로 변해 가는 지배체제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하지 않고 지금과 같은 金日成·金正日 체제는 힘을 합칠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실질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金日成은 민족 발전의 장애물』
  
  ―빗나간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만 저는 북한의 실상에 대해 알면 알수록 金日成·金正日체제는 전쟁을 막는 범위 안에서의 대화 상대는 되지만 통일을 위한 협력 상대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저도 일단은 그렇게 봅니다만 그것을 전제로 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임 있는 입장에 있는 남한 사람들은 북한, 특히 金日成에 대한 평가가 스스로 정리돼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의 발언이나 對 사회적인 행동에 상당한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在野인사나 일부 야당 의원들의 발언 중에는 아직도 金日成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든지, 정확한 평가를 나름대로 못내리고 있어서 나온 것이라고 느껴지는 말들이 많습니다. 金수석께서는 金日成을 어떻게 보십니까.
  
  『趙부장이 지적한 대로입니다. 한때는 저쪽을 이해하려고 다소는 노력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을 생각할 때 그는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오도하고 있고, 민족이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결정적 호기를 장애하고 있습니다. 빨리 깨우쳐 개혁과 개방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에 동참해 나왔으면 하는 개인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런 딜레머가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대할 때, 金日成정권을 대하는 방식과 북한 동포를 대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둘을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권력을 대하는 것이 곧 북한을 대하는 방식이었죠. 그러나 최근에 러시아 벌목공과 脫北者들, 참혹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 동포의 존재가 어떤 실상에 있는지 아주 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런 북한 동포를 위하고 이해하는 입장에 서면 자연적으로 反 金日成주의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金日成과 북한 주민들의 관계는 단순히 독재정권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은 착취와 도륙과 살륙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과 주민들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金수석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북한의 상황에 대해서는 각자 이해하고 있는 것만큼의 표현이 가능하겠죠. 그러나 북한 주민의 참담한 생활을 담보로 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측면은 통탄스럽습니다. 주민으로부터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역사의 대세도 거스르는 그런 미망(迷妄)으로부터 빨리 벗어나는 것이 민족을 위해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하면 깨끗한가?
  
  ―그럴 가능성, 즉 개방을 한다든지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들이 세계사의 흐름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개방은 필연적이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물론 저도 그 가능성에 회의적입니다. 그러나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래야 북한 주민들도 유혈없이 변화하는 개방의 세계를 호흡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도륙이라는 말을 쓴 것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취재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살아서 탈출해온 강철환, 안혁 두 사람의 말을 들어보니 그 말이 적절한 표현이었습니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은 대부분 특별독재대상구역이라는 완전통제구역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가서 살아 나온 사람은 없습니다. 영원히 밖으로 못나옵니다. 나머지는 혁명화구역에 수용돼 있습니다. 두 사람은 혁명화 구역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서 그곳의 생활을 들으니 金日成은 정치범들을 멸종 대상으로 생각하고 수용소를 관리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남녀를 분리 수용하여 자손 번식을 차단하고, 미친 사람이 헛소리로 金日成을 욕해도 공개처형했습니다. 저는 서슴없이 아우슈비츠보다도 심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그들은 남한에서 「빠삐용」 영화를 본 뒤 『우리에 비하면 천국』이라고 말했습니다. 金수석께서는 북한이 경제개발이 덜 됐고 사람들이 부패되지 않고 깨끗하다, 산하의 오염도 적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는데 북한을 잘 못 보신 것 아닙니까.
  『언뜻 생각할 때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러나 북한도 요즘은 부정부패가 상당히 만연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정부에 들어가서 북한 정보를 많이 접했기 때문입니까.
  
  『보편적으로 접하는 정보를 통해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성과 자연환경의 오염이 경제성장을 향해서 마구 달려오는 데서 온 것이라면, 그런점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은 전반적으로 아직은 오염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집니다. 북한 주민들이 가지는 생의 욕구나 삶의 희망이 건강할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 인터뷰한 글을 읽고 그 말에 金수석의 인간관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가난하면 깨끗하게 살 수 있다든지, 개발하지 않으면 국토가 보존될 수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저는 반대로 생각합니다. 가난하면서 인간이 깨끗할 수는 없습니다. 청빈(淸貧)이란 실제로는 어려운 것입니다. 가난하면 부패하기 쉽고, 국토의 보전과 환경도 나라가 잘 살아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럴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가난하고 가난하지 않다는 시각에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돈에 의한 타락은 덜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그리고 가난하면 부패하기 쉽고, 잘 살아야 환경도 보전된다는 도식에는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李承晩은 고뇌 없었다』
  
  ―통일이 되면 확인이 되겠지만 북한의 산하는 지금 비탈면에 만든 다락밭 때문에 산은 민둥산이 되었고 토사가 유실되고 河床이 높아져 비가 오면 홍수가 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북한은 산하가 완전히 황폐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함경도의 험준한 산은 아직도 밀림 상태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남한은 근대화 과정에서 산림화와 공업화를 동시에 추진해서 30년 전보다 산하가 오히려 충실해졌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내려다보면 댐과 저수지에서 수량 보존이 잘 돼 있고, 산에 나무도 많이 늘었습니다. 역시 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저도 그런 생각은 합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고 가다 내려다보면 작은 하천들까지 썩어 있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오염의 질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솔직히 북한에 대해 자세히 모르고 있습니다만 북한은 화학적 물질에 의한 오염, 우리가 말하는 바와 같은 공해는 덜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전 金수석께서 말씀하셨던 기록을 보고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金日成과 북한에 관계된 것에는 상당히 관대하지만 李承晩에 대해서는 너무 가혹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李承晩은 권력에만 집착했고 민족지도자로서의 고뇌가 전혀 없었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李承晩대통령의 개인적인 성품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李承晩 대통령이 분단국가를 세우면서 고뇌하는 표정을 지었다면 우리 정부가 휠씬 더 떳떳하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고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예를 들면 金九 선생에게는 38선이 그어진 데 울분하면서 그런 것은 안된다며 「3천만 국민에게 泣告함」과 같은 처절한 울부짖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울부짖음에도 불구하고 분단국가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훨씬 더 떳떳하지 않았겠습니까』
  
  ―그것은 金九 선생의 몫이었지 않겠습니까. 치열한 좌우 이념대결과 남한 內 좌익세력의 도전 속에서 李承晩 대통령이 좌익쪽에서 통일정부 수립에 반대할 것을 뻔히 알면서 그런 제스처를 쓰지 않았다고 해서 고뇌를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李承晩 대통령이 적어도 그런 고뇌가 없었기 때문에 체질적으로 권력을 향해서 질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李承晩 대통령의 자주성
  
  ―저도 과거에 李承晩 대통령을 낮게 평가했습니다만 최근에 전기와 비밀해제돼 공개된 자료들을 접하고는 상당히 높게 평가합니다. 그분이 있었기 때문에 남한에 국가 탄생이 가능했고,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세계사적인 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金日成은 소련 주둔군이 시키는 대로 충실했기 때문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지만 李承晩대통령은 미군정과도 싸웠고, 남한 내 좌익세력과도 싸우면서 나를 세웠습니다. 정권을 세우는 과정은 金日成보다 훨씬 더 자주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가 오늘 누리고 있는 번영의 기초와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기초로서는 성공적인 농지개혁이라든지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 기초 위에 현재 우리 안보의 결정적인 틀이 되고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체제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휴전 동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며 미국을 협박하며 얻은 것입니다. 李承晩 대통령의 치열한 對美 외교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일부 在野 출신 人士들은 그런 점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李承晩대통령이 먼저 분단국가를 만든 것처럼 몰아치고 있습니다.
  
  『李承晩 대통령의 업적 중에는 평가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평가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중 국가 건국에 기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시간이 흘러가면서 對 일본 관계에서처럼 자주적이고 당당한 모습은 상찬(賞讚)해 마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그 어느 한 부분을 在野의 시각처럼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도 옳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에 나름대로 기여를 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그의 노선이 옳기만 하고 또 찬미되어야 한다는 것은 수긍하기가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사의 첫 단추로서, 장기집권을 꾀하여 이후의 정치사를 파행과 굴절로 얼룩지게 한 책임 또한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옛 총독부 건물 철거 문제
  
  ―저는 金수석이 다음 부분에 행정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金泳三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몇 가지 정책을 통해 보았을 때 마치 金泳三정부의 정통성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바로 연결된다. 그 사이 50년의 역대 정권은 정통성이 없다는 식의 몇 가지 상징 조작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상해임정 요인 유해 봉안을 계기로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각시키는 반면, 역대 정권의 그것을 부정했습니다. 金泳三대통령은 또 金九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李承晩대통령 묘소도 참배해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옛 중앙청을 헐기로 결정한 데 대해 金수석은 『대통령은 저 건물에서 이루어진 지난 역사가 정통성이 없으므로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앙청 건물 (옛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것도 민족 정기를 회복한다는 측면은 있지만 지난 50년 우리 현대사의 흔적을 없애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는 생각 않습니다. 유해봉안을 통해 임시정부에 새로운 시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정통성을 무시하거나 훼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통성이라는 것이 애오라지 전적으로 옳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관되게 그 안에서 흐르는 맥이 있고 정신과 혼이 있는 것입니다. 임시정부의 경우 민주공화정을 우리나라 정치에 최초로 채택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임시정부의 의의가 있습니다. 조선 총독 관저를 헌 것도 해방이후의 역사적 측면보다는 그것이 일제시대 우리 백성을 유린한 상징이었다는 측면에서 일제시대와의 단절은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점이 더 강조되었습니다.
  
  조선 총독부 건물의 철거 문제와 관련한 대통령의 시각은 상당히 철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건물에는 영욕의 역사가 함께 점철돼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 핵심적인 장소에 버티고 있어서 우리 민족 자존심의 뒤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그 상처를 과감히 잊어버리자는 측면에서 대통령의 깊은 성찰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 그러나 건물을 하나 헐었다고 해서 민족 정기가 얼마나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청와대는 정치의 산실로 볼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정치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또 그 건물은 여러 차례 이어 붙여서 건물 자체의 유지비도 엄청나게 많이 듭니다. 청와대 본관이 따로 훌륭하게 있습니다. 그러하면 그 건물은 박물관으로 존치(存置)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도 어려울 정도로 퇴락한 상태였습니다』
  
  ― 중앙청 철거는 대통령께서 장기적 안목에서 한 번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건물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중앙청 같은 건물은 역사의 현장이면서, 역사의 교과서입니다. 민족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면 그 건물을 보는 시각을 바꾸면 됩니다. 강간을 통해 태어난 아이도 잘 자라나서 효도하면 되는 것이지, 성년이 되고난 뒤 새삼 출생 과정을 문제로 삼아 구박할 수는 없는것 아닙니까. 어떤 사람들은 중앙청 철거를 「야만적」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문명사회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日帝가 심산 김창숙 선생이 절을 안하니 틀 속에 집어넣고 억지로라도 절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결국에는 다리까지 못쓰게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인간의 몸이나 정신도 어떤 틀에 들어가면 변형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 건물 안에는 지금5천년 민족문화의 정수가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것이 민족 정기와 관련된 것일 때 그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립묘지에서 우리가 배울 것
  
  ―건물은 한 번 없애면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건물을 없애는 하나의 논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통일된 한국의 수도 그 중에서도 청와대와 서울역 사이의 Power Axis(권력의 축)를 재건축하는 거대한 플랜에서 보았을 때 그 건물은 오히려 격에 안 맞다는 논리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복궁을 복원한다는 논리를 앞세웁니다. 왕정을 복고한 것이 아닌 다음에야 복원된 경복궁은 기능이 달라진 세트에 불과합니다. 죽은 경복궁의 복원을 위해서 살아있는 중앙청을 없앤다면 지난 50년의 우리 현대사를 함께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경복궁이 우리의 정궁이었다는 점입니다. 正宮의 正殿이 근정전입니다. 正門이 광화문이죠. 그런데 근정전과 광화문 사이에 총독부 건물이 서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과연 5천년 민족 문화의 정수를 보관하는 국립 박물관은 이름에 걸맞게 우리 힘으로 지어 그 안에 보존하고 전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정통성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金수석께서도 조금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우리의 과거 정권은 정통성이 없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통성이 약했다고 해야겠죠. 정통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이렇게 세워졌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정통성 아니겠습니까. 물론 정권의 실체성은 다 있습니다. 정통성은 없으되 실체성의 측면에서 나름대로 크게 국가적 업적을 남긴 예도 있습니다. 조선시대 세조를 그런 예로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기득권이다, 아니다, 정통이다, 아니다는 것을 이분법적으로 보려는 것이 썩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우리의 국립묘지를 이해하면 국가의 정통성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곳에는 독립군도 묻혀 있지만 親日한 군인들이 6.25 때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어 묻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많은 기복들 속에서 나라를 키워왔던 과정들을 크게 보면 우리의 정통성도 키워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정통성이란 관용하고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당당한 것이지 배타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집권과정의 부도덕성을 예컨대 쿠데타라든가 독재와 영구집권 같은 것에 대한 준열함까지도 없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출처 : 월조
[ 2003-07-11, 17: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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