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김유신의 대당 결전 의지가 오늘의 한국 만들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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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통일에 성공한 것은 중국과의 거리 때문』
  
  ―통일문제에 있어서 통일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그 국가의 분위기나 엘리트들의 자세가 특출해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 역사에서 최초의 통일을 이룬 신라(新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북한은 단군릉을 조작해서 고구려와 연결하고 다시 金日成으로 연결해 마치 한반도 전체 역사의 정통성이 北韓에 있는 것처럼 조작하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구려에 정통성이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하나의 왕조를 세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통일이었으며 최선의 통일이 아니었습니다. 新羅통일은 평양 이남만 통일했으니 삼국 판도의 3분의 1도 안되게 통일한 것에 불과했지요. 사람들은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통일했더窄?좋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고구려의 20대 장수왕은 왕이 된 후 바로 도읍을 평양으로 옮겼습니다. 그것은 곧 대륙국가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평양 천도가 기원 427년이었는데 고구려가 망한 것은 668년이었습니다. 후퇴한 것은 고구려의 기상이 꺾인 증거입니다.
  
  신라도 통일을 했으면 수도를 북쪽으로 옮겼어야 했습니다.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중국의 북경, 미국의 워싱턴은 다 왕과 귀족이 피흘려 싸우던 격전지에다 수도를 정한 예입니다. 그러나 신라는 통일해 놓고 수도를 북쪽으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고려도 고구려 부활을 주창해 놓고 묘청이 평양 천도를 주장하니까 죽였습니다. 조선왕조는 어디가 백성을 지키는 데 필요한가 따지기 이전에 나침반을 들고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씨 왕조가 오래 갈 곳을 찾아 계룡산에서 왕십리로 북악산으로 옮겨다니기만 했죠.
  
  신라가 통일에 성공한 이유는 중국과 거리가 멀어서였습니다. 중국과 교류하려면 늘 백제가 막고 있으니까 목숨을 걸고 지금의 수원인 당항성으로 가서 중국 가는 길을 텄고 그로 인해 철기문명과 최신 무기를 받아들이게 됐죠. 또 중요할 때마다 신라 백성은 뭉쳐서 싸워 이겼어요. 당시 백성이라면 모두 농민인데 전쟁에 이겨서 돌아와 보니 땅은 엉뚱하게도 귀족들이 차지해버렸어요. 신라는 불완전하나마 통일까지는 성공했으나 통일 후 국정이 문란해졌습니다.
  
  통일신라 임금 중에 제대로 목숨을 유지한 임금이 반도 안됩니다. 신라통일은 그런 면에서 볼 때 역사에서 썩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다만 신라 통일에 있어서 평가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김유신이 당나라 군대를 쫓아낸 결단입니다. 김유신은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온 힘을 보태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의 전 국토를 삼키려하자, 감연히 일어서서 이를 평양 북방으로 몰아냈습니다. 어려운 여건 하에서 큰 결단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나마 안 했던들 오늘 우리 민족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김유신이 당나라를 몰아내지 않았더라면…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 김유신(金庾信) 장군을 높게 평가하시던데 김유신 장군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셨나요.
  
  『많이 연구하지는 못했습니다. 김유신 장군의 조부 김무력은 가락국이 신라에 통합되었을 때 신라의 장군으로 등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은 신라의 변방을 지키는 장수로 충북 진천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김유신 장군은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김유신 장군이 당나라를 몰아내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나라가 중국의 한 성이 됐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신라 조정은 사대주의에 젖어 있었고 왕도 당나라 옷을 입고 있는 실정에서 김유신 장군의 자세를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특히 김유신 장군의 개인적인 면도 좋아합니다. 아들 원술랑이 패전에서 살아 돌아오자 남의 자식들은 전사했는데 홀로 살아온 내 자식을 용납할 수 없다 하며 죽는 날까지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가 신라인으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통일에 참여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키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저는 三國史記 원전을 읽고 있는데 삼국사기에서 어느 개인에 대한 기술로는 김유신에 관한 내용이 제일 깁니다. 당나라가 신라를 왜 치지 못했느냐에 대해 三國史記에 나와 있습니다. 소정방이 본국으로 돌아가 天子에게 포로를 잡아 바치니 왜 신라마저 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소정방이 「신라는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이 윗사람 섬기기를 부형 섬기듯 하니 비록 나라는 작지만 범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당시 엘리트와 백성의 단합이 잘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당시 당나라에 대한 일대격전 논의가 분분할 때 왕은 당나라가 우리의 적을 멸해주었는데 어떻게 치느냐고 유화론을 편 반면 김유신은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 하지만 주인이 다리를 밟았을 때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한 우리 자신을 구하지 않겠습니까」하면서 主戰論을 주장했습니다.
  
  『그게 우리가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대목이죠. 그때 안 했더라면 당에 흡수되었을지도 모르죠』
  
  ―신라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사 집단으로서 화랑도가 있었기 때문인데 화랑도는 일종의 엘리트 양성사관학교였습니다. 화랑도에 관해 연구하는 민속학자들은 화랑도가 놀이 집단으로서의 성격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천하를 주유하면서 시도 짓고 풍류를 즐겼으며 임전무퇴 정신으로 전쟁에 나갔습니다. 이 양쪽 정신이 양립한 것이 매우 매력적입니다. 군사문화와 문화적인 면이 한 조직에 통합된 것이 이 조직을 튼튼하게 했습니다. 이런 文武의 조화는 바로 신라의 사회 분위기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金이사장님이 어느 책에서 주장하신, 완성된 인간이 되려는 내용과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 화랑정신에는 불교사상이 크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찰라다. 조금 먼저 죽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인생에 있어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졌죠. 당시 불교가 폭발적으로 영향력을 미쳤는데 중국의 「위지동이전」이나 「한서지리지」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굉장히 용감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것은 바로 높은 경지의 불교 철학이 젊은이들을 크게 격동시켰기 때문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독립을 하려면 내부적으로 단합을 잘하고 그 바탕 아래서 외교를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신라가 통일하는 데에는 삼국사기에 나와 있듯이 단합도 잘했지만 당나라의 힘을 빌 수 있었다는 것은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요새 이런 말하면 인기 없는 소리지만 당시 상황을 요즘 민족주의로 보면 안됩니다. 당시는 민족주의가 없었어요. 인종적 통합체라기보다 정치적 통합체였습니다. 민족주의 역사는 불과 2백∼3백년밖에 안됩니다. 앞으로 민족주의는 더 약해집니다. 신라시대에는 3국이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당시는 통일국가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당나라를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요새 민족주의로 과거를 재단하면 안됩니다. 당나라 힘을 빌려 통일했는데 국토의 3분의 2를 포기했다는 것과 수도를 옮기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당나라를 쫓아낸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당나라를 이용해서 통일하고 쫓아낸 것은 전략적으로 아주 훌륭합니다』
  
  원효의 업적
  
  ―통일과 맞물려 원효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원효의 역할 중 하나는 신라 불교를 크게 일으켰다는 점입니다. 그의 불교에 대한 학문적 경지는 당나라의 그것을 압도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는 당나라 유학은 포기하고, 우리 한국적 특색을 띤 불교를 세운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전쟁 때문에 고통받고 실의에 빠진 민중에게 용기를 주어 통일 후 사회안정에 기여했다는 점입니다. 도 하나 원효가 지배층이면서 민주의 편에 서서 친구가 되었다는 것도 굉장히 높이 살 만한 점이지요.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화합시킨 업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융합이 잘 안됐던것 같습니다. 잘 됐으면 후삼국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3백년 후에 분열되지 않았습니까.
  
  『제일 큰 실패의 원인은 전쟁이 끝난 후 성과를 피 흘려 싸운 국민들에게 분배하지 않고 오히려 수탈로 몰고 간 데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회적 불안이 야기되고 결국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져 분열이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치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김유신을 읽으면서 플루타크 영웅전에 나오는 시저와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전장에서 일반 병사와 동고동락하고 패전한 아들 원술랑과 父子의 연을 끊어버리는 등 공인의식이 대단히 투철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그 부인도 아들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스파르타 시대를 연상시키죠. 신라사람들은 자기 개인을 희생하고 엄격한 규율 밑에서 국가에 헌신하는 정신이 굉장히 팽배했어요. 김유신은 원래 가야국 출신으로 진천에서 출생해 지금도 진천에 사당이 있습니다. 김유신은 기생 천관녀에게 가지 않기 위해 말의 목을 자르는 절도 있는 면, 아들에 대해 대단히 엄격한 점, 병사들과 함께 생활한 면이 모범이 되어 칭송을 받은 것 같습니다. 또 자주정신으로 당나라를 쫓아낸 점은 높이 살 만하지요』
  
  ―金庾信의 자주통일 정신이 오늘 날 우리가 민족공동체로 살 수 있는 하나의 경계선을 확보해 주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요새 로마사를 읽고 있는데 거기에 통일이나 개혁에 참고가 될 만한 사례가 나옵니다. 로마 호민관 크라쿠스 형제가 개혁을 하려다 실패해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마리우스란 사람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크라쿠스가 못한 개혁을 집정관으로서 해냈습니다. 호민관으로서 안되던 개혁이 권력을 잡고 나니까 되더라는 역설적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金이사장님께서도 모든 포부를 이루시려면 정권을 잡아야 하는데 정계 은퇴를 약속해버리셨으니…. 앞으로 金이사장님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정치를 하지 않아도 민족과 국가에게 봉사할 길은 얼마든지 있으며, 또 세계 사람들을 위해서 할 일도 많습니다. 그 한 예로 저희 아태평화재단이 지난 1년 우리 통일문제의 방향을 잡는 데 상당히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은 이제 통일문제가 나오면 저희의 생각에 주목을 합니다. 북핵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제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저는 93년 3월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했을 때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일관되게 세 가지를 주장했습니다. 일괄타결, 중국의 역할 중시, 카터 방북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민족의 3단계 통일론」이라는 가제로 1백여명의 교수·학자들의 협력을 얻어 통일방안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금년 초에는 이것을 작성하여 국민 앞에 내놓을 예정입니다. 금년 일년 동안에는 주로 아시아 민주화를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아시아 민주화의 가능성이 아주 커졌습니다. 이번에 우리 재단에서 주도해서 창설한 아시아·태평양 민주지도자회의(FDL-AP)는 자타가 공인하는 큰 성과를 올렸습니다. 세계 각국의 민주 지도자가 대거 참여했고, 유엔 사무총장과 10여 개국의 현직 집권자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이제 한국은 아시아 민주화운동의 본거지가 되었고 FDL-AP는 아시아 민주 공동체로서의 위치를 세웠습니다. 아시아 각국 대표에게 이의 없이 인정받고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아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위를 위해서도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이 경제발전뿐 아니라 민주화에 있어서도 아시아의 구심점이 되고 모델이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습니다. 앞으로 아시아 각국에 지부도 만들고 훈련도 시킬 예정입니다.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가장 부당한 상황인데 그걸 변화시키면 아시아 민주주의가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올해는 아시아를 위해 일하고 국내문제는 되도록 멀리할 생각입니다. 3단계 통일방안 책을 내놓으면 일단 할 일은 했으니까 그 다음은 국가가 집행할 일이니 두고 보겠습니다』
  
  차라리 정계 복귀 선언해야
  
  ―지금 金이사장님이 현실정치, 특히 민주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실체로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차라리 정계복귀를 선언하고 정직하고 당당하게 정치에 참여하기 바란다는 압력이 작용하게 되리라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생각해 본 일 없습니까. 내가 정치에 개입한다는 것은 언론의 과장보도 때문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사도 주간지가 민주당은 원내로 돌아가라고 타이틀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기사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어요. 내가 말한 것은 대통령이 야당 당수 만나는 것은 의무다, 대통령이 강자니까 강자가 양보하라는 얘기와 함께 야당도 원내를 지키면서 싸우라는 원칙론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국민으로? 당원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지, 이것이 정치활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치활동이란 직접 정치조직 속에 참여하고 공직선거에 관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치를 안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당활동을 안 하신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정당활동 하지 않고 출마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같이 막중한 때에는 의견을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은퇴한 정치원로들도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차기 대통령 출마는 정말로 포기하셨습니까.
  
  『안 합니다』
  
  ―그러나 정치인은 상황의 요구에 따라야 할 의무도 있는데 너무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건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요. 그러나 내가 볼 때 상황의 변화가 있다고 볼 수도 없고 내가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안 합니다』
  
  『나는 보수주의자』
  
  ―그래도 좀 여운을 남겨두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정치적 발언은 국민으로서 안 할 수 없지만 정당활동은 안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그 부분에 관해 오해를 풀어야겠는데 정치적 발언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정당활동이고 바로 대통령에 나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나라에 문제가 있을 때 필부도 걱정하는 말을 하는 건데 그런 말이 어떻게 정치활동이 될 수 있느냐 이겁니다』
  
  ―정치 관측자들은 현실정치의 주도권이 오히려 金이사장님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지역적으로 경남·북의 균열,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에 대한 찬성과 비판 세력의 균열 등 우리나라 보수층 안에서 균열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점 때문입니다. 최근에 어느 잡지에서 대구 지역에서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1등으로 꼽혔고 金이사장이 오히려 낮았습니다.
  
  『네 번째로 되어 있더군요』
  
  ―그런 걸로 봐서도 정치판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금의 고정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해서 보수층을 확보할 수 있는 틈이 생겼다고 보는 것입니다. 더구나 95년이 지방자치제 선거니까 金이사장님께 정치적 부하가 많이 가해지리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나는 원래 중도우파 정도의 보수주의자입니다.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를 지지한 사람인데 왜 진보적으로 보이냐 하면 사회복지를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어느 학자가 자기는 정치적으로는 보수고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주의자이고 사회적으로는 진보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나의 입장도 그와 유사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치 풍토가 통일을 이야기하고 노동자 농민을 위하는 말만 하면 그냥 색채를 이상하게 보는 풍조가 있습니다. 게다가 역대 정권에 의식적으로 이상하게 몰렸던 것입니다. 사상적으로는 나같이 철저하게 세탁 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중앙정보부에 김대중과(KT)를 설치해 놓고, 나에 대해서 온갖 조사와 음모를 꾸몄던 것입니다. 심지어 지난 대선 때는 북한이 나를 지지한다고 허위발표를 하고, 이선실 사건을 조작해서 누명을 씌웠습니다. 그들은 단 한번도 나에게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몇 년 전 기자회견 때 보수주의자로 불러도 되겠느냐고 하니까 민주당은 중도정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도 우파라고 했습니다. 보수 혁신 중도로 나눌 때는 중도이긴 하지만 나 자신은 중도 우파이다, 그러나 우리당 내에는 중도 좌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金이사장님은 역사의 인물 중에서 신돈이나 묘청같이 역사의 패배자들을 좋아하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치인은 결과로 판단하는데 역사의 패배자에 대한 동정심과 이해심이 있으면 정치인으로서 성공하는데 사고적으로 장애가 되는 거 아닙니까.
  
  『개혁하려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지 그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귀중한 일입니다. 홍길동전이 얼마나 보배롭습니까. 보수적인 책도 중요하지만 개혁적인 책도 중요합니다. 특히 봉건시대에 그런 책이 있었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은퇴해도 살기 힘들다』
  
  ―오늘로써 金이사장님과 여섯 번째 인터뷰를 하는데 느끼는 게 참으로 많습니다. 정치하는 것은 리얼 폴리틱스(Real Politics)로서 권력 속성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권력의 비정함에 대해 현실적인 접근을 하는 것 아닙니까. 역사에 어떤 식으로 기록될 것이라든지 도덕성을 많이 강조하시는 면을 보고 혹시 목표로 했던 정권을 잡아서 포부를 펴보려 하다가 안됐을 때를 대비해 자기 변명을 만들려는 거 아니냐. 정치인으로 마음이 약해지신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거에요. 나는 정치인이니까 정치로 성공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 그래서 대통령이 될 때를 대비해서 일생 동안 정책을 연구했습니다. 외교 국방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대해 대비하고 준비하여 지금 누구를 만나도 대화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결코 현실정치를 포기한 것이 아니죠. 그러나 나는 정도 위에서 원칙을 지키면서 성공하겠다. 원칙을 포기하는 성공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을 몇 번 내놓을 뻔했습니다. 공인은 내 자신의 시대만 사는 것이 아니라 후세를 위해서도 살아야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사실상 처참한 실패자였어요.
  
  이순신 장군은 해군 총장밖에 못했어요. 그러나 그분들은 결코 실패자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스승이자 소중한 재산입니다. 나는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대통령이 되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3당합당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당을 같이 하자고 권했지만, 분명히 거부했습니다. 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 신군부는 자기들과 협력하면 살려주고, 대통령 빼 놓고는 무엇이든지 시켜주겠다. 아니면 반드시 죽이겠다. 재판은 요식행위다. 이렇게 회유하고 협박했지만 그것이 내가 사는 정치적 원칙과 배치되기 때문에 거부하고 죽음의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물론, 굉장히 살고 싶고 죽음이 두려웠지만 말입니다. 정치인 중에는 나같이 사는 사람도 필요한 것 아닙니까.
  
  요즈음 나에 대한 동정심이나 애석한 심정을 가진 국민들이 다시 정치에 나오기를 바라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나의 태도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여론 때문에 언론이 민감해져서 모든 것을 나의 정계복귀와 연결해서 해석하고 과장하기 때문에, 요즈음은 참으로 말 한 마디 하기가 힘듭니다. 정계 은퇴하면 좀 편하고 자유스러워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은퇴라고 하면 드골식 은퇴를 많이 생각합니다. 고향에 칩거, 파리에 올라오지 않고 두문불출하고 있는 은퇴 말입니다.
  
  『그것은 아주 예외이지, 일반적인 일은 아닙니다. 어느 나라건 은퇴한 정치인들도 자유롭게 현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드골도 시골에 있었지만, 자기 지지자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정치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나는 아태평화재단을 창립해서 남북통일·아시아민주화·세계평화의 3대 과업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일산에 은거해 있지만 시내에 안 나올 수도 없습니다』
  
  ―정의를 내리자면 金이사장님은 정당활동은 안 하지만 정치적 활동은 하면 정계로부터 은퇴했지 정치로부터는 은퇴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됩니까.
  
  『앞에 말한 대로입니다』
  
  『서울시장에 정치인이 더 적합』
  
  ―서울시장은 어떤 사람이 나오면 좋겠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다만 시장이나 자치단체장이 반드시 행정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정치가나 사회활동가 출신이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레이건이나 카터, 클린턴은 다 행정 경험이 없지만 일급 주지사를 지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정은 부시장이나 부군수를 시키면 됩니다. 시장 같은 자치단체장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내가 맡은 지역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관광개발, 적합한 산업유치, 주민의 복지증진, 그리고 주민의 자치행정에 대한 민주적 참여 등의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도 연구하고, 외국이나 대도시에서 투자도 유치하는 활기찬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통일에 관해 말씀을 나누어 보겠습니다. 그동안 통일 방안과 전략이 많이 나왔습니다만 제일 중요한 것은 왜 통일을 하려 하느냐 하는 가치관이라 생각합니다. 김유신을 읽으면서 왜 신라가 통일하려는 의지가 생겼나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통일하기 1백년 전부터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에게 협공을 당해 피를 피로 씻는 혈전이 계속됐는데 김유신과 김춘추가 이런 식으로는 백성이 못 견디겠다는, 근본적으로 백성들에 대한 연민에서 통일의지가 일어났으리라고 추측됩니다. 왜 우리가 북한을 개방시켜 통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참상에 대한 연민의 정, 정의감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그 사람들을 못살게 만드는 金正日 노동당 지배세력에 대한 증오심, 이 두 가지를 잊으면 통일에 대한 가치관과 목표·방안이 이상하게 될 겁니다. 金이사장님은 입장도 있고 해서 말씀하시기 어렵겠지만 누군가는 이런 통일의 가치관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씀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이 통일하면 내가 손해 본다는 공포심 때문에 이기적으로 행동할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對中관계 슬기롭게 진전시켜야 한다』
  
  『아주 귀중한 지적입니다. 신라가 통일한 것은 안 하면 내가 죽기 때문에 한 겁니다. 고구려나 백제도 마찬가지 입장이었죠. 당시 우리 국토는 세 나라가 공존하기에는 너무 좁았어요. 남북도 마찬가지에요. 주변 4개국은 날마다 강대해지는데 세계 격변속에서 이대로는 못삽니다. 냉전도 끝났는데 무슨 명분으로 통일을 안 합니까.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우리는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해서 남북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해서 민족·민주의 기반 위에 우리 운명은 우리끼리 해결하는 자주적 민족 공동체를 구성해 나가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통일을 단계적으로 해 나가야 합니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제가 20년 이상 주장해온 3단계 통일방안을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이제부터는 외교가 중요합니다. 4대국과 다각적인 외교가 벌어집니다. 한 수 잘못 놓으면 엄청난 국익의 손상을 봅니다. 우리는 제네바 북핵협상의 과정과 김일성 조문파동을 통해서 이를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습니다. 상당기간 한미공조를 확고히 유지하도록 탁월한 외교역량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이제 미국은 남북을 같이 상대하기 때문에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과의 외교를 슬기롭게 진전시켜야만 합니다. 미국 못지 않게 중요시해야 합니다. 일본과의 공조체제도 물론 중요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최근 러시아를 가보고 러시아가 차츰 우리에 대한 태도를 소원히 해 가는 것을 보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제 개방을 안 할 수 없어요. 세계시장에 나가려면 WTO 규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중산층이 지금 2억∼3억이라고 하는데 북한도 중산층이 생길 테고 그렇게 되면 복수정당을 요구할 것이고 다음으로 여야 정권체제로 가게 되겠죠. 중국도 머지 않아 복수정당 체제가 나옵니다. 북한은 중국을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주 자신 있게 나갈 수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남북이 이념간의 대결이 아니라 두 개의 권력간의 대결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북한이 부를 증진하면 권력은 안 내놓고 남한에 대해 더욱 공세적일 것이라는 견해가 있는데 이는 양보할 수 없는 권력관계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이 개방하면 남북이 가까워져서 통일의 길고 가리라는 것은 희망 사항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북한이 개방하고 부를 축적하려면 국제사회에 참여해야 합니다. 국제사회에 나오면 남한의 힘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북한에 중산층이 생기면 그들의 요구에 따라 개방경제가 이루어지고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들어오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처럼 손아귀에 넣고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을 가지고 나가야』
  
  ―그렇게 되면 북한의 권력통제가 약화되리라고 봅니까.
  
  『당연히 약화되지요』
  
  ―對南적화 의지도 같이 약화되리라고 보나요.
  
  『중국을 보십시오. 폐쇄적인 문화대혁명 때와 개방적인 등소평 시대가 얼마나 다릅니까. 남북은 앞으로 서로 교류 협력하게 되고 같이 합작 투자하게 되어서, 한반도 내에뿐 아니라 시베리아, 중동 등 같이 진출해 나갑니다. 서로 손잡고 신나게 돈벌이하면서 싸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힘도 북한보다 강하고 튼튼한 우방도 있습니다. 자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자유·번영·복지의 국내정치를 잘하면 됩니다. 우리는 적어도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지만 북한은 중국이 군사적으로 도와주지 않습니다』
  
  ―장시간 여러 가지 분야에 대해서 폭넓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출처 : 월조
[ 2003-07-11, 18: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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