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내 사전엔 「정계은퇴」란 단어가 없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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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전엔「정계은퇴」란 단어가 없다』- 金鍾泌 민자당대표의 두 시간 직격 토로
  
  그는 1992년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 金泳三후보를 지지하는 조건으로 어떤 밀약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金대표는 자신을 『백주에 비치는 촛불』로 표현하며 『해가 중천에 있을 땐 그 빛이 잘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타고는 있다. 그러나 구름이 덮히고, 해가 서산으로 기울면 그 빛이 밝게 빛난다.』고 말했다. 金대표는 특히「일부 세력의 언론을 이용한 음해」에 대해서 분노를 감추지 못하면서『(기자들은) 리포터와 코멘테이터의 역할부터 구별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사람은 헤어질 때 잘 헤어져야 한다』대통령·민주계·언론에 의해 벼랑으로 몰린 金대표는 격양된 표정에 분노서린 말투로『세계화가 정치적 무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나를 원하는 국민이 있는한 설 땅이 있다』『나는 지난 2년간 어머니나 주부로서의 역할을 다해왔다』『결심은 섰지만 말할 때가 아니다』는 요지의 말들을 쏟아놓았다.
  
  <1995년 2월 월간조선>
  
  『충청도 지역 식당 탁자 평수보다 많이 부서진다』
  
  김종필(金鍾泌)대표의 정확한 거취와 민자당의 개편 내용에 대해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숱한 예측들이 쏟아지고 있을 때인 1월 14일 아침 金대표 집을 찾아갔다. 흔히 「청구동」으로 통칭되던 金대표 자택의 주소는 서울 중구 신당동. 지금까지도 그 주소가 잘못 알려져 왔던 것이다. 자택 주소가 잘못 알려진 상태에서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온 것만큼이나 金대표의 지금 흉중도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정계은퇴」「부총재」「총재상담역」「백의종군」등에서부터 「신당창당」에 이르기까지 金대표의 대응에 대해 그가 선문답(禪問答)처럼 내뱉은 몇마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돼 왔다. 그에게 분명한 것은 여권 핵심부에서 그를 민자당 대표직에서 퇴진시키기로 한 이상 이제 자신의 34년 정치인생을 건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金대표 자택에는 이른 시각임에도 비서진들과 방문객들이 대기하는 장소로 쓰는 본채 옆 부속건물에는 이미 이긍규(李肯珪)의원과 최인관(崔仁寬)비서관이 도착해 있었다. 김길홍(金吉弘)비서실장은 조금 늦게 들어섰다. 金대표 측근들은 『요즘 여기로 걸려오는 전화는「金대통령이 그렇게 의리없는 사람인 줄 몰랐다. 당장 때려치우고 나와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들은『이런 식으로 金대표가 쫓겨나면 충청권을 포함, 경북 일부와 경기권의 일부까지 현 정원에서 많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서귀포시·남제주군 지구당 개편대회 참석자 오전 11시 비행기를 예약해두고 있는 金대표와의 인터뷰는 8시40분쯤 시작됐다.
  
  金대표는 처음엔 계속『지금 무슨 말을 단편적으로 하면 여러 가지로 오해받을 수 있다』며 답변하길 꺼렸으나 대화가 진행되며 최근의 격양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도는 방향으로 일해온 나를, 무슨 죽을죄를 짓지도 않은 나를, 그런 나를…』이라고 말일 잇지 못한 적도 있었다. 金대표는 그렇게 감정으로 드러내는 속에서도 절제를 잃지 않아 돌아와서 정리해보니 그의 말은 그대로 완전한 문장에 가까웠다. 金대표는 최대한 참고는 있다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많은 것 같았다. 기자가 묻는 말에 끝까지 응답을 하다보니 이날 인터뷰는 10시20분 가까이에 끝이 났다. 일어설때는 비행기 출발 시각을 걱정해야 했다.
  
  『언론의 수준이 그 모양인데…』
  
  ―제주도에 갔다온 뒤 내일(15일)은 대전으로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대전 집회에서 할 이야기는 생각해 놓았습니까.
  
  『내 말과 행동에 대해 왜들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말을 다 정해놓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제 모 석간신문은 지난 1월 10일 청와대 회동에서 金대표께서 퇴진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金대표의 말을 인용한 보도였습니다.
  
  『그 사람들 그런 짓 잘 하더군요. 사람들이 하는 일이 다 그 모양입니까.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지금은 이야기할 심정도 아니고 때도 아닙니다.』
  
  ―미국으로 가지 전 까진 밝히실 겁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내가「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며 마음대로 추측하고 있지만 내가 이쪽이건 저쪽이건 마지막으로 결심을 했을 때는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민자당 대표로 있는 한 이미 정해져 있는 스케줄대로 충실히 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겠다는 결심은 섰습니까.
  
  『어느 방향으로 행동할지 지금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직 결심이 서지 않아서 이야기하지 않는 겁니까.
  
  『결심은 했죠. 그러나 그것도 때가 됐을 때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야기할 때는 분명히 이야기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언론에 대해서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금 언론 수준이 그 정도인 것 같으니 어쩝니까』
  
  ―그러나 사실관계가 틀렸으면 어떤 것이 틀렸다고 분명히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양식 있는 언론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사실이 아닌데 왜 이렇게 썼느냐고 하면 「아니면 그만이지」라는 식으로 픽 웃고 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봐야 무슨 소용 있습니까』
  
  ―최근 金대표께서 몇 군데서 언급한 것을 보면 세계화에 대해 金대통령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80년대부터 세계화 이야기했다』
  
  『나는 80년대부터 국제화, 세계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세계화는 지금 새삼스럽게 나온 말이 아닙니다. 나는 1919년 1차대전이 끝나고 국제연맹이 생길 때부터 세계화가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끝난 뒤 평화와 인권을 존중하는 지구촌을 만들려는 의지가 그때부터 규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기구로 국제연맹이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나치즘, 파시즘, 밀리터리즘 등이 생겨나고 2차대전이 발생하면서 그 기구가 깨졌습니다. 2차대전 종전 후에는 다시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국제연합이 탄생했지만 이념대결로 그 이상을 실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이젠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그들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시장경제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처럼 富를 골고루 나눠주었던 것이 아니라 가난을 골고루 나눠주었던 것이 증명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계가 모두 시장경제체제로 인간답게 더불어 살려고 하는 가운데 WTO체제가 출범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화는 경제에서 이미 시작되어 선도하고 정치가 뒷받침해야 합니다. 지금 시작된 게 아니라 이미 시작된 세계화에 우리는 뒤지지 않게, 그런 흐름에 굳건히 자리잡아 주도적으로 세계에 기여하자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세계화라는 건 더불어 살자는 것이지 주구를 배제하는 것이 돼서는 안된다는 뜻이군요.
  
  『지금은 그런 방향으로 초점이 모아져 정치적으로 세계화의 의미가 사용되고 있는 점이 없지 않습니다. 나 같은 사람 불필요하게 됐으면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서 나는 극히 제한된 표현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92년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경선 때 金泳三후보 지지선언을 하기 전 두분 사이에 어떤 밀약이 있었습니까.
  
  『그런 것을 단편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없었으면 없었다고 확인해 주십시오.
  
  『단편적으로 그런 것을 이야기하면 전후관계를 잘 모르고 오해할 우려가 있습니다. 말을 할 때는 분명하게 이야기해야지 이런 땐 이런 이야기. 저럴 땐 저런 이야기를 하면 단편적인 말들을 종합해 엉뚱하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은 자신의 의지를 펴는 것이 중요』
  
  ―모택동의 주치의가 쓴「毛澤東의 사생활」을 읽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그 책을 읽고 「만년 2인자」주은래(周恩來)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周恩來가 불쌍했던 것은 毛澤東의 본질이 그렇게 잔혹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좌경 사람들의 공통된 행태 같습니다. 그런데 내가 「毛澤東이란 사람도 형편 없더구만」이라고 말한 것을 한 석간신문은 「毛澤東도 형편없는 놈이더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기사가 났더군요. 그렇게 쓸 수 있습니까. 나는 「놈」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요즘 人倫을 자주 언급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 세상이 人倫이란 걸 찾기 어렵게 되지 않았습니까.』
  
  ―「毛澤東의 사생활」을 보면 저자인 주치의는 주은래를 좋지 않게 평했더군요. 毛澤東에게 너무 굽히고 지냈다는 거죠. 보고할 때도 꿇어앉아서 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몸을 많이 사렸더군요. 그러니까 황제 밑에서 끝까지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毛澤東은 연안장정을 함께 했던 사람들까지 모두 숙청했지만 주은래만은 끝까지 같이 있었습니다. 毛澤東이 속으론 周恩來를 「이 불쌍한 사람아」하고 거만하게 내려다 보았을지 몰라도 끝까지 데리고 있었던 것은 周恩來가 그렇게 완전히 굽혔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런 周恩來를 대표께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사람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봐야겠죠. 정치가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周恩來는 그렇게 하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펴면서 살았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책은 계속 읽으시는가 보군요.
  
  『책을 손에서 놓는 날은 없습니다. 침대 옆에 항상 책을 쌓아두고 있어, 침대에 주우면 아무 책이나 집어들고 참이 들면 그대로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집사람이 주워놓죠』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책을 적게 읽은 사람에게 패배한 경우가 많습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그른 일 인줄 알면 쉽게 하지 못하는 점이 있기 때문이겠죠』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金대표의 거취 문제로 지금 충청도 민심은 방향이 애매해지고 있고, 야당에서는 李基澤대표가 金大中씨를 물러나라고 하니 일부 여론이 「경상도가 다 해먹으려고 하느냐」는 방향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이러면 지역감정이 노골화될 텐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충청도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나를 아껴주는 마음의 표시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런 성원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죠. 그러나 李基澤대표가 어떻게 행동한다는 것은 별로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못을 받는 일을 해서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내가 3共 시절 양보한 것은 朴대통령은 혁명동지이자 운명을 같이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고 하셨더군요.
  
  『당시 질문을 한 분위기가 내 속성상 3선 개헌 때처럼 또 받아들일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朴대통령은 인척관계를 떠나 내가 존경하는 분이고, 목숨을 걸고 혁명을 같이한 분이다. 3선 개헌때 물론 나는 반대했다. 그러나 朴대통령께서 경제가 이제 겨우 발돋움한 상태어서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나도 따랐다. 그런 경우하고 다른 경우하고 비교하지 말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김윤환(金潤煥)장관이 「정치인 70세 정년」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문제는 본인 특정한 대상을 두고 한 말이 아니라고 해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몇 살이 됐건 국민이 원하면 설 당이 있는 겁니다. 80세가 돼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참신성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그 시대를 이끌 수 있습니다. 독일의 아데나워도 74세 때 총리가 되어 전후 독일을 저렇게 훌륭하게 복구시켰지 않습니까. 내 마음은 지금도 젊어요. 허, 허, 허』
  
  ―저는 金대표 자체가 우리나라 현대사의 나이테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역사와 국민을 상대하는 대담한 정치를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처럼 사소한 게임 같은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리가 무슨 상관 있습니까. 과거에도 자리에 연연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에게 자리를 조건으로 운운하는 것은 모욕입니다. 이제 내 여생이 얼마만큼 숨 쉴 수 있는 기간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 조국에 봉사하는 길이무엇인지 선택해 그 길로 갈 것입니다』
  
  ―지난 1월10일 金대통령과의 회동에서 합의된 것은 없습니까.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그쪽에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결정적인 순간, 그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나도 그때 한 말이 있으니 좀 기다려 봅시다.』
  
  ―요즘 金대표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金대표의 거취 문제가 거론되는 방식에 대해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못쓴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물러난다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물러날 때는 물러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사람은 헤어질 때 잘 헤어져야 합니다.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벌을 주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죽을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해서야 쓰겠습니까』
  
  『黨名 바꾸는 것 몰랐다』
  
  ―지난해 12월17일 金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이 있고 나서 金대표께서 「기구개편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金대표계서 그 내용을 거짓 전달을 했든지, 아니면 속았든지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거짓 전달한 것은 없습니다. 기자들보다는 당직자들이 먼저 아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래서 확대당직자회의를 열기 전에 당 4역을 불러 그 내용을 알렸습니다. 그때 내가 대통령께 확인했던 것은 세 가지뿐입니다. 전당대회를 2월 초에 여는 것에 대해 대통령께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는 것, 또 전당대회는 단합을 과시하고 축제적인 성격의 전당대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과, 요즘 언론에 거론되고 있는 기구개편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기구개편 이야기는 崔炯右의원이 「부총재를 경선으로 선출하여 몇 명을 두고 그 중에서 한 명을 대표격으로 하자」는 말을 했는데 그런 건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기구개편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또 중앙상임위원과 당무위원의 수를 줄이자는 말이 많았는데 대통령께서 「선거 때는 그 수를 늘이기도 하는데 무리하게 줄여서 우리의 반대편에 서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셔서 그 수도 줄이지 않는다고 알렸습니다』
  
  ―당시 회동에서 당을 혁명적으로 개혁한다는 말을 金대통력으로부터 없었습니까.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黨名을 바꾸겠다는 것도 몰랐습니까.
  
  『몰랐습니다. 그것은 대통령께서 연두회견에서 말씀하신 것이니까요』
  
  ―많이 섭섭했겠습니다.
  
  『말 않겠습니다』
  
  ―黨名을 바꾸는 것은 선거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
출처 : 월조
[ 2003-07-11, 18: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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