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비밀접촉 선상의 미스터리 여인 朴敬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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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기업인들의 방북엔 1등 깃발 꼽겠다는 생각도 있고』
  
  ―중국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사회주의 상품 경제로 나갔고, 그것이 정착되자 사회주의 시장 경제가 됐는데 북한은 지금 어느 정도의 단계입니까.
  
  『통계를 잘 모르니까 자세히 말씀 못 드리지만 상품은 생산합니다. 물건을 시장에서 파는 것이 아니고 배급, 분배하는 방식인 것이 다른 점입니다. 시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북한에서도 앞으로 중국과 흡사한 시장경제가 이루어질 것으로 봅니다』
  
  ―북한의 개혁 개방 전략은 나진·선봉과 금강산 개발인데 다음 단계는 어떻게 됩니까.
  
  『점을 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먹고 씹어서 소화하면 계속 먹고, 독이 되면 뱉는다는 말은 아주 함축적인 의미가 담긴 말로 압니다』
  
  ―북한이 국민들을 먹여 살릴 생각이라면 지역적으로는 나진·선봉을 개방해서 외화 버는 것도 필요하고, 동시에 먹고사는 농업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농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영농으로 갈 수밖에 없고 주체 사상을 수정 비판해야 가능합니다.
  
  『주체 농법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볼 때 땅은 넓어도 4분의3이 산이고 경작 면적 자체가 모자랍니다. 우리는 빵을 먹어도 되고 밥을 먹어도 되고 밥을 안 먹어도 되자만 우리 어머니 세대는 다릅니다. 농법과 식생활의 변화가 있으면 달라질 것이고 종자 개량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북한은 인구 2천3백만의 단일 민족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획기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의 노동력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훈련된 노동력이라는 말을 하는데 사회주의 습성이 목에 배어 굉장히 게으르지는 않습니까.
  
  『저는 그런 사람 보지 못했습니다. 매스 게임을 보면 정말 대단爛求? 그들은 단합도 잘 하고 아주 부지런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북한이 개방하려고 할 때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돈이 아무리 들어가도 과연 희생할 수 있느냐는 데 대해서 의심도 드는데요.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이 악착스럽습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남쪽 사람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고 봅니다』
  
  ―남한의 기업인들이 왜 북한에 가려 한다고 봅니까.
  
  『일등 깃발을 꽂고 싶은 마음도 있고, 기업 구조가 달라질 수도 있고, 돈벌이로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들 민족을 위해서 가겠다고 말합니다』
  
  ―한 번은 갔다 오는데 2, 3차 방북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왜 그런 것인가요.
  
  『한국 정부에서 북한에다 투자를 권장한다는 확고한 정책 수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압니다』
  
  ―남한 정부에서 기업이 무조건 따라갈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북한에 가서 활동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나고야-평양 직항로 성사의 배경
  
  ―나고야-평양간 부정기 전세기를 띄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셨는데 어떻게 성공했습니까
  
  『성공을 한 것보다 제가 처음에 경제를 이끌려면 사람이 왕래해야 되고 관광을 해야 한다고 첵윱求? 배가 왔다갔다 하는데 비행기가 못 갈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 정부를 설득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로 어떤 사람의 도움을 받았습니까.
  
  『정치가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가네마루씨, 하타 선생 등 여러분들의 도움도 받았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조총련하고 사이는 안 좋아졌죠.
  
  『그분들이 일본의 터줏대감이고 저는 미국 교포인데 미국 교포가 와서 비행기 띄우는 것이 어떻게 보면 조총련 체면에 관한 문제죠. 제 생각은 당신들이 할 수 있었으면 진작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것과, 저는 그 일은 나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전부 여러분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가네마루 수상이 金日成 만난 것이 1990년이고 그 뒤에 수교 회담을 하다가 이은혜 사건 때문에 지연되고 있는데 앞으로 일본과 북한과의 수교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의 입장은 명백합니다. 대화는 하되 이은혜 문제가 거론되거나 조건 걸면 북에서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金日成 주석이 해놓은 일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과 일본의 수교에 있어서 북한이 약한 입장인데 일본은 그런 면에서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미국하고 북한하고 외교가 될 때 북에서는 당연히 일본으로부터 청구권 자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도 북한하고 해결하지 않은 아킬레스건이 남아 있습니다. 미국 문제가 끝나면 일본하고의 문제도 곧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미국과 관계 개선이 되면 일본은 미국의 눈치를 보는 입장이니까 일본하고도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고 보는 겁니까.
  
  『지금은 북조선에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시간이 지연될수록 일본이 불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유리의 최태섭 회장 아시죠.
  
  『압니다』
  
  ―기관의 평가에 의하면 북한에 가서 가장 의연하게 처신한 분으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갔다 와서 어떻게 됐습니까」하니까 북에서 유리 공장 하자고 하는데 자기는 그런 돈이 없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 앞에 장사 있나요』
  
  ―북한에 연고를 가진 고향 기업인들을 북에서 데리고 가려는 이유가 뭡니까.
  
  『고향이 이북에 있는 사람이 고향에 가고 싶은 심정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조총련 가족 중에 10만명 정도가 북한에 있는데 이 10만명을 인질로 해서 30만의 조총련을 침묵시키고, 또 북한에 연고 있는 남한 기업인들을 데려가니 일종의 인질 작전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망향심을 인질로 잡는 것은 너무 잔인한 짓이 아니냐는 반응이 있는데 朴회장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봅니다』
  
  ―오진우의 건강은 절망적입니까
  
  『나이 앞에 장사 있습니까』
  
  ―군의 제 2인자인 오진우의 건강이 그렇고 金正日의 건강도 좋지 않다고 하는데 북한 사회의 사령탑 건강이 안 좋다면 경제 협력 문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영향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중요한 사안이 결정이 안 된다는가 하는 문제 말입니다.
  
  『북한은 나이 많은 분들이 명예직으로 남아 있고 그 밑에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金日成 사후에 중요 결정이 늦어진다는 느낌은 못 받았습니까.
  
  『한국에서 보는 일의 결정 속도와 북한에서의 일의 결정 속도는 다른 것 아닙니까』
  
  ―국내 신문에 난 기사 많이 보십니까.
  
  『많이 봅니다』
  
  ―朴회장님에 관한 기사 중 오보가 많나요.
  
  『저에 대한 것은 소설이 많고… 저의 권력이 떨어졌네 높아졌네 하는 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포이지 권력가가 아닙니다』
  
  ―과거에 북한이 朴회장을 창구로 하여 한국 기업인 앞으로 초청장을 발급한 것이 지금도 유효한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데 과연 유효하다고 봅니까.
  
  『초청장은 시효가 있는 것이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죠』
  
  ―코트라 무역관을 북한에 개설하기로 했다는 보도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낭설입니다. 그런 제의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고려 상업은행의 소유주는 누굽니까.
  
  『금강산 국제그룹입니다』
  
  ―항간에서는 朴회장이 방북 초청장을 거래해서 파는 것으로 알고 또 금액까지 조정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아닙니다. 한 번도 그런 거래 한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럼 초청장을 파는 다른 사람은 있습니까.
  
  『그건 모르죠. 우리와 관계없는 거간꾼이 많다고는 들었습니다』
  
  『남북한 전세기 구상중』
  
  ―지금 나진·선봉이 부각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금강산 개발 계획이 나중으로 밀린다는 느낌도 받는데요.
  
  『나진·선봉과 금강산 개발은 성격이 전혀 다르고 금강산 개발은 평화산업이므로 오히려 더 빠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 자본을 끌어들일 생각은 있습니까.
  
  『있습니다. 금강산 국제 개발에 세계 누구나 끌어湧?생각
  입니다. 그 일환으로 대대적인 국제설명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금강산 개발 계획에 대한 결정을 북한 당국이 번복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통일을 지향하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일본에서 전세기 편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이 연인원으로 얼마나 됩니까.
  
  『4천명 정도 됩니다. 일본 기자들도 많이 갔고 관광회사측 사람도 많이 모시고 갔습니다. 이런 것은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됩니다』
  
  ―채산성은 맞습니까.
  
  『비행기가 하나 뜨고 빈 것으로 오니 힘들지만 계속해서 왔다갔다 하면 채산성은 맞습니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전세기 구상은 안 하십니까.
  
  『사람을 나르는 것이 제 본업이니까 저는 구상을 하죠. 한국 항공사들과 얘기할 때 우스갯소리로 대만·서울·평양·히바로프스크 노선을 열면 어떠냐고 물으니 그런 노선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사실 대만 사람이 평양을 가려면 북경에서 들어가기가 불편하죠』 ―남북 전세기에 대한 북한의 태도는 있습니까. 『태도는 모르고 제 구상은 반씩 반씩 하는 것입니다. 서울-평양, 서울-원산 왔다갔다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생각은 정치 상황을 떠나서 관광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지난 해 7월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으면 북은 어떻게 했을 것이라고 봅니까.
  
  『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정상회담이라는 것이 실무자들이 문제를 해결해 놓은 다음 정상이 만나서 사인하고 사진 촬영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실무급에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어렵지 않습니까.
  
  『가네마루가 북한에 갔다 와서 곤욕 치러도 지금 북한·일본간 기본 뼈대가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옛날이 구도를 뛰어넘기 전까지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의 어떤 의견도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일을 풀어보려고 해야지 이것 때문에 안돼, 저것 때문에 안 돼 하면 시작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북한 지배층이 흡수 통일이라는 말에서 느끼는 것이 분노입니까, 공포입니까.
  
  『공포는 없고, 그렇다고 기분 좋을 리는 없겠죠. 통일하자고 노래하면서 감정 건드리는 것은 역효과만 부추길 뿐입니다』
  
  『경제제재 했으면 전쟁했을 것』
  
  ―정상회담 앞두고 金日成이 과로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무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작년 6월에 미국에서 경제 제재와 관련, 문안의 초안을 돌렸는데 단순한 경제 제재가 아니라 의료, 인도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북한을 봉쇄하겠다면서 시작한 것입니다. 이틀 뒤에 카터가 오면서 클린턴이 대화로 풀었는데 어쨌든 위기가 최고조로 달했고 북한은 일방적으로 경제 제재하면 전쟁하겠다고 했습니다. 朴회장은 경제제재 때 전쟁이 난다고 생각했습니까. 아니면 미국에 대해 굴복하리라고 생각했습니까.
  
  『경제 제재하면 북한이 전쟁하겠다는 의지가 곧 전쟁하지 않게 해 달라는 소리죠. 저는 싸우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있다고 보았습니다. 미국이 슬기롭게 넘어갔다고 생각합니다』
  
  ―金正日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건강이나 심리 상태 또는 리더십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저는 잘못된 것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통치 능력이 있는 분으로 다정다감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崔銀姬씨가 녹음해 온 것을 들으니 말이 잘 안 되던데, 논리적입니까.
  
  『그것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습니다』
  
  ―金正日의 두뇌는 어떻다고 봅니까.
  
  『슬기롭다고 봅니다. 김주석도 김정일 비서가 국가 통치자로서의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본 것입니다』
  
  ―金日成을 유일신이라고 했는데 李씨 조선 체제 같은 느낌은 못 받았습니까.
  
  『북한은 고구려와 고려를 좋아하지 李씨 조선은 안 좋아합니다』
  
  ―金日成 사망 후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와 비슷했다고 하는데
  
  『북한은 유니크한 나라로 비교는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朴회장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사셨는데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죽었을 때 국민들이 몇날 며칠 우는 것이 정상이라고 봅니까.
  
  『저는 정상이다, 비정상이다 라고는 말 않겠습니다. 저는 다양한 것을 다 받아들이고 그 식이 좋으면 그대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다 포용하지 않으면 대립 관계밖에 될 수 없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 대신 한국식도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 북한은 그러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이 시점에서 얘기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돌파구를 찾는가 하는 문제 아닙니까』
  
  ―통일된 나라의 정치 체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교류를 하다 보면 나름대로 교감이 생기도 동화가 되면 뭔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라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왈가왈부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북한은 북한의 희망이 있고 남한은 남한의 희망이 있으니 이것을 잘 배합·창출하는 것은 위정자의 몫이죠』
  
  ―金日成 죽음의 이유에 대해 들은 얘기가 있윱歐?
  
  『그전에도 심장에 가끔 통증이 있으셨는데 묘향산서 현지 지도하고 올 때 통증이 있었고 비가 많이 와서 평양에 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고 정상회담 앞두고 너무 무리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북한 파워 엘리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생각이나 능력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씀해 주시죠.
  
  『그 사람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 일에 대해서 역할하고 주어진 일만 합니다』
  
  『북한 주민에게 연민의 정 가지고 있다』
  
  ―저팬 코리아 센터(Japan Korea Center)라고 남북 이산가족들을 일본에서 만나게 하려고 시도한 기구가 있었죠. 만들려다 왜 그만 두었나요.
  
  『한국측 때문에 무산됐습니다. 신문에 내지 않는 조건으로 시도했는데 별안간 다 무산됐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때가 맞지 않고 이해를 잘 못하면 무산될 수 있겠죠』
  
  ―또 우리 정부쪽으로 책임을 전가하시는데 일을 하다 보면 남한의 정보기관 사람과도 접촉합니까.
  
  『커피 한 잔 합시다 하면 만납니다. 접촉이 많은 것은 아니고 안기부 사람인지 모르고 만나는 때도 있습니다』
  
  ―朴회장은 북한쪽에 치우쳐서 사업을 많이 했는데 이제 남한과 접촉을 많이 해 지금의 위치를 중립으로 돌려놓을 생각은 안 하십니까.
  
  『저는 지금도 중앙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으로 북한에 가서 일하는 것으로 발표된 것이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지요. 그러나 저는 한국 사람을 북에 안내하는 등 한국 사람들을 위해 일 많이 했습니다. 저는 중간에 서 있는데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저의 위치는 달라진다고 봅니다』
  
  ―박노정씨가 한국 정부에 대해 피해를 당했다고 생각해 남한 정부에 억하심정이 있어 북한과 가까워진 것은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저는 그것보다 마음이 넓습니다. 지난 일이야 굉장히 섭섭하죠』
  
  ―朴회장의 89년 訪韓 후 6년 사이에 한국도 많이 변해 연 8% 경제 성장과 GNP 12위를 기록하는 나라로 컸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오면 상당히 충격 받을 것 같은데요.
  
  『우리 민족이 잘되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자랑스러운 분들이 좀더 양보할 수 없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金日成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고 있다가 89년 金賢姬 사건 이후 朴대통령이 죽었을 때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아끼기 위해 사용된 벽돌이 한 장 나왔고, 오일 쇼크 때 에어컨을 못 틀게 되자 자기집무실도 냉방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 문을 열고 지내니 파리가 들어와 집무실에서 파리채와 부채를 썼는데 나중에 그게 나왔어요. 하와이 망명 시절 이승만은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한국에 돌아갈 여비를 만들어야 하니 시장에 가서 물건 사오지 말라는 얘기를 할만큼 두 사람 다 자신에게 엄격했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두 거인의 모습과 金부자가 살아온 것을 보면 엄청난 부패상을 느끼게 됩니다. 북쪽의 지배층에 대한 증오심과 북한 주민에 대한 동정심으로 마음이 나눠지는데 朴회장께선 북한 주민에게 연민의 정은 못 느꼈습니까.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하고있는 일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개인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인재는 있지만 경험이 없다』
  
  ―APEC에 북한이 참여하지 않고 베이징, 서울, 도쿄를 연결하자는 베세토(BESETO) 라인이 형성되는데 북한이 자꾸 빠지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그 사람들은 전시 체제에서 평화체제로 가야 평화 사업에 전력할 것으로 봅니다』
  
  ―혹 북한이 서울을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무시당할 한국도 아니고 무시할 수도 없고… 어떻게든 대화를 해서 이해를 증진하는 데 힘써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야당 정치인들의 방북 알선 요구도 있었습니까.
  
  『이기택씨도 가겠다고 했는데 그런 심부름 안 합니다. 저 말고도 북조선 다니는 사람 많고 저는 경제인의 입장입니다』
  
  ―남북 정상회담은 당분간 어렵겠죠.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누가 압니까. 북한은 우선 주석 취임이 돼야하고…』
  
  ―주석 취임은 언제쯤으로 보십니까.
  
  『머지 않아 하게 되겠지요』
  
  ―앞으로는 금강산 개발에 주력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금강산은 개발 정도로 볼 때 어떤 상태입니까.
  
  『아직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입니다. 이제 제대로 시작해야죠』
  
  ―북한 당국이 朴회장에게 금강산 개발 권한을 위임했다는 것을 외부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는데요. 워낙 큰 프로젝트고 또 朴회장이 재벌도 아니지 않습니까.
  
  『금강산 개발은 제 돈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중심이 되어서 많은 사람을 모으는 입장이고 또 제 독점물도 아닙니다』
  
  ―북한에 이 정도 프로젝트를 소화 할 인재는 있습니까.
  
  『인재는 있지만 경험이 없습니다. 국제적으로 투자가와 경험 있는 기술자를 모으는 일에 대해 우리가 위탁받은 겁니다』
  
  ―계획에 참여하겠다는 한국의 7대 기업이란 어느 기업입니까.
  
  『현대도 접촉하는 중이고…』
  
  ―서울에서 설명회 하려면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정부에서 좋다고 해야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설명회가 가능하겠죠』
  
  ―지금 금강산 얘기 많이 나오는데 개발에 참가하지 못한 기업측에서의 모함 같은 것이 걱정되지는 않습니까.
  
  『벌써 모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우리의 진심을 알게 되면 이런 것들이 다 없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들, 딸을 북한에 유학시킬 생각은 없습니까.
  
  『그것도 좋은 생각인데 우리말이 시원치 않습니다』
  
  ―자제분들한테 금강산 개발권을 물려줄 생각입니까.
  
  『낳고 기르는 것이 제 역할이고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장시간 질문에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더 깊은 얘기는 다음에 다시 나눌 기회가 있을 겁니다』
  
  <정리·金東鉉 月刊朝鮮기자>
출처 : 월조
[ 2003-07-11, 18: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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