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비밀접촉 선상의 미스터리 여인 朴敬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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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에 의해 과대 평가된 면도 있다』
  
  ―91년에 쌀이 간 것에 대해선 제대로 보도된 것이 없는데 한 번 설명 좀 해주십시오.
  
  『사실은 그때 10만t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이루어진 것이 5천t인데 받느니 안 받느니 해서 제가 각서까지 쓴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약속은 5년후에 다른 물건으로 갚는다는 조건인데 5천t이 간 후에는 계속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저한테 물어보면 답답하죠. 한국에서 쌀이 안 갔으니까 이루어지지 않았죠』
  
  ―그때 계약 당사자로 참여했습니까.
  
  『朴鍾根 사장하고 저하고 참여했습니다. 수입 창구가 금강산 그룹이고 남한은 천지 무역이고 쌀은 농협에서 나온 것으로 압니다』
  
  ―한국 정부 내에서 쌀 5천t을 판 뒤 이견이 생겨서 약속이 안 지켜졌다고 봅니까.
  
  『저는 그렇게 봅니다』
  
  ―徐東權씨가 90년 10월 북한에 가서 金日成 부자 만나고 윤기복이 92년 4월에 서울로 와서 盧대통령이 4월15일 평양에 오면 좋겠다고 초청했는데 시기가 안 좋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정상회담 때 항상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이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에 합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전제 조건을 가지고 대화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조건을 풀어야지 하기 전에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을 하면 시작할 수 없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북한과 대화를 했으면 그 문제도 원만히 풀렸을 것입니다. (북한이) 미국하고 교차 승인 안 하겠다고 하면서 했고 유엔에도 동시 가입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도 세상이 바뀌면 그 세계에 따라 바뀐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옛날에 주장했던 것도 세상이 바뀌면 그 세상에 맞춰 바뀐다는 생각을 하면 고려연방제 통일방안도 서로 대화를 하면 폭을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 가서도 이러면 안 된다는 식의 비판적인 얘기를 하십니까.
  
  『나는 비판은 될 수 있으면 안 합니다. 거기서 이뤄진 정책에 대해 비판하면 안 되고 또 한 사람이 비판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러면 어떠냐는 건의는 할 수 있어도 이루어진 것에 대한 비판을 어떻게 합니까. 그것은 처세가 아니죠』
  
  ―혹시 우리 언론에 의해 朴회장님의 역할이 과대 평가되고 있다고 보진 않습니까.
  
  『그런 부분도 많습니다. 한국 언론이 정확성은 없습니다』
  
  ―대기업이 북한으로 들어갈 때 전부 다 朴회장을 통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엔 그런 때가 있었죠. 나진·선봉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전에는 바깥 눈에 보이는 사람이 저흽니다. 초점이 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심부름 할 수밖에 없고 또 기꺼이 했습니다』
  
  ―89년 鄭周永씨가 북한에 갔다 오고부터 많은 사람이 계속 왔다갔다 했지만 성사가 되지 않았고 또 공장이 가동되지 않으니까 사람 소개의 진짜 목적은 성사가 아니라 커미션이고 그 돈을 金日成·金正日의 비자금으로 제공하는 역할이 아닌가 보는 사람도 있는데.
  
  『사정을 모르면 그렇게도 생각하겠지만 저는 포켓머니를 받아 본 적도 없고 돈을 가지고 온 사람을 알지도 못합니다. 왔다갔다 하는 데는 비용이 들고 힘듭니다. 그것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고,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왜 일이 성사가 되지 않았느냐, 북한에 성사시키기 위해 많이 데려갔는데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기업 자체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거나 아니면 한국 정부로부터 허가 받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정부의 원칙은 있죠. 원칙은 있는데 남북간 책임 있는 합의가 있어야 하고 그걸 바탕으로 기업이 들어갈 수 있다고 돼 있는데 북한의 일관된 방침이 우리 정부와 거래 안하고 남한 기업하고 하겠다는 겁니다. 이것은 경제가 목적이 아니라 공작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북한에 가는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북한에 인척이 있다든지 해서 인척을 인질로 잡아 투자하도록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불신이 쌓이니까 안 되는 것인데 그렇게 된 책임을 남한 정부에만 미루는 것은 무리입니다.
  
  『공화국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그 실상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그 동안 남한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데 제가 본 것은 그것은 아닙니다. 공작 차원이라면 한국 대기업들이 북에 가서 놀아난다고 생각하나 본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세계를 누비고 다니면서 산전 수전 다 겪은 경제인들을 믿고 일을 시키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치상황서 어떻게 세계화합니까』
  
  ―아까 반공교육을 받은 세대의 북한을 보는 시각을 냉전적인 시각이라고 했는데, 그런 시각을 갖지 않은 朴회장이 보는 북한은 어떤 나라입니까.
  
  『남북한이 다 유신론 대 다른 유신론의 다툼이라고 생각합니다. 金日成주석은 영원히 살아 계시는 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북한은 유신론입니다. 남한에도 세계 10대 교회가 여럿 있고 여러 종류의 종교가 있습니다. 이걸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누가 정말로 상대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북에서 金日成 주석은 살아 계실 때 신격화됐고 돌아가셔서는 더 신격화되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요일에 예배 보듯 그들은 토요일날 학습합니다. 종교하고는 다르지만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는 살아있는 神이 강하고 죽은 신인 金日成의 영향력이 점점 쇠퇴하리라고 보는데요.
  
  『제일 무서운 것이 神을 위해서 무조건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걸 극복하고 형제애로 이해하고 사랑할 때 교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사랑하라는 말은 남한 정부가 양보하라는 말입니까.
  
  『저는 남한 정부에만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군데에 다 하는 얘기로 金泳三 대통령이 역사에 단순히 기록되는 대통령이 되지 말고 통일의 대통령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金正日비서한테도 영웅은 시대가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로 양보하면 길이 열립니다. 서로 양보할 때 통일이 앞당겨지는 것이지 대치 상황에서 어떻게 세계화합니까』
  
  ―싸움을 했을 때는 때린 사람과 얻어맞는 사람이 있는데 남북한 관계에서 지나 45년 동안 때린 사람은 누구라고 봅니까.
  
  『그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릅니다』
  
  ―보는 각도에 다라 다른 부분도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6·25 남침,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 아웅산 사건, 핵개발 사건등을 죽 보고도 우리는 보복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이 경제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양보만 해야하는가 생각이 듭니다. 朴회장은 남북 관계를 중간 입장에서 볼 수 있다 생각하는 듯한데요.
  
  『사건 사건의 연관관계는 알 수 없지만 북한 사람은 북한 사람 나름의 변명이 있을 수 있겠죠』
  
  ―제일 중요한 문제인 당국자간의 대화는 안하고 학생들이나 기업인들만 상대하니까 통일전선 전략을 버리지 못했다는 말을 듣는 것 아닙니까. 쉬운 길 있는데 왜 돌아가려 하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북한도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압니다. 대화가 그쳐진 게 왜 그쳐졌나요. 북방 외교 문제도 그렇고 핵 문제와 연계해 핵 문제가 풀릴 때까지 대화 안 하겠다고 한 것은 한국 정부라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 대통령 임기가 5년밖에 안되니까 지속적인 일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남한에서 장기 집권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습니까.
  
  『이것은 제 개인 의견인데 5년은 안 좋은 것 같습니다. 10년을 하든지 내각제로 하든지…. 저는 5년은 짧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도 그런 불평이 있죠.
  
  『대통령만 자주 바뀌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 보좌하는 사람도 너무 자주 바뀐다는 얘기와 함께 대통령이 자주 바뀌니까 대화의 창구가 누구냐 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정치범 수용소를 믿고 안 믿고는 내 일이 아니다』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李仁模)씨를 보낼 때 정치 선전을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환영하면서 그때부터 남쪽에서 북쪽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이걸 어떻게 보십니까.
  
  『그런 맥락에서 따지면 자기가 한일에 대해서는 이해 못하고 다른 사람이 한 일에 대해서만 섭섭해하는 것이죠』
  
  ―북한에선 이인모를 남한에서 살려 준 것을 보고, 어떻게 그 동안 살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은 못 했나요.
  
  『그 질문에 대해 다른 걸로 대답하겠습니다. 文鮮明 총재는 지독한 반공주의자로 그 분 가족이 다 살아 있는 것을 보고 그가 감격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文鮮明 총재도 북쪽에서 볼 때는 정치범 아닙니까』
  
  ―文鮮明씨를 이용하기 위해서 가족을 일부러 수용소에 보내지 않은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보지 않습니다』
  
  ―朴회장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서 어떻게 봅니까.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선 듣지도 않았고 또 누가 저한테 말해 주지도 않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20만명이 잡혀 있고 한 번 들어가면 대부분 못 나오고 거기서는 아우슈비츠보다 더 심한 인종 말살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은 못 들었습니까.
  
  『일본에서 나오는 잡지에서 읽었습니다. 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쓴 책을 잃었는데 믿고 안 믿고는 내 일이 아닙니다. 그런 걸 정리하지 않으면 일을 못합니다. 남북한이 교류해 같이 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제 사명입니다. 사명감 이외의 것에 간여하면 일 못합니다』
  
  ―북한을 정말 도와주려고 한다면 저는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봐야지 일부러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요.
  
  『일부러 외면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는 한계가 있고 제가 다니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가정집에 가서 북한이 어떠냐고 물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북한에서 행동의 자유는 없죠.
  
  『제가 가려고 하는 데는 다 갑니다. 그러나 제가 북한에 연고가 없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백두산, 금강산, 나진·선봉, 청진 사리원 다 갈 수 있습니다』
  
  ―일본 도쿄 아자부에 건물을 갖고 있습니까.
  
  『집이 있습니다』
  
  ―자산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먹고는 살 정도입니다』
  
  『대만도 나진·선봉에 관심 많아』
  
  ―北을 보고 느낀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제일 처음 가서 본 것은 간판이 없다는 것, 있는 것은 밥집·술집 정도였습니다. 누구를 만나 한 번 연락하겠으니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니 외국인에겐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느낀 것은 요새화입니다. 미국에서 반공 교육도 받지 않고 산 나로서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휴전 상태에서 전쟁 태세에 들어가 있는 나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빨리 평화조약이 맺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볼 때 6·25를 모르는 세대는 요새화 상황에서 살았기 때문에 비정상 상태를 정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제일 처음 가서 「왜 이리 동상이 많습니까」하고 물어 보니까 전쟁 끝나고 폐허가 됐는데 일본엔 천황이 있고 한국엔 미국이 있고 북한에서는 하나로 똘똘 뭉칠 구심점이 필요했고 그래서 동상 세웠고(그것 때문에) 재건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납득이 갔습니다』
  
  ―일반 서민들하고 직접 접촉해 봤습니까.
  
  『서민들 집에 가고 싶어도 솔직히 누구 집에 갈 일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주로 방문 오는 편이었습니다』
  
  ―금강산 그룹에 대한 설명을 좀 해주시죠.
  
  『금강산 관광회사가 있고 무역회사가 있고 평양에 은행이 있고 피복류 등을 취급하는 금강산 상점과 보통강호텔을 경영하고, 삼선해운도 금강산 그룹과의 합작이고 JKI라는 회사와 금강산 주식회사가 있습니다』
  
  ―고용 인원은 얼마나 됩니까.
  
  『총 6백여명 됩니다』
  
  ―朴회장을 지원한다는 광명성 회사는 지금도 있습니까.
  
  『광명성 회사는 지금까지는 금강산에 관한 일을 북한에서 대행해주는 회사입니다』
  
  ―광명성은 북한의 어디 소속입니까.
  
  『정무원 소속입니다』
  
  ―대만에서 경제 사절단을 조직해서 북에 간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시장 개척이 제 목적이니까. 대만에 4년 다녔죠. 양쪽 나라에 투자 분위기가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대만 기업들이 돌아와서 북한의 투자 가치에 대해서 높게 평가하지는 않았습니까.
  
  『작은 규모의 합작을 서너 개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진·선봉에 대만의 큰 돈이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까.
  
  『그쪽에서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대만의 경제 사절단은 중소기업들이었습니까.
  
  『다 중소기업이죠』
  
  ―요새 한국 언론사의 북한의 취재도 朴회장이 주선해 주고 부탁받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북한 입장은 어떻습니까.
  
  『입장을 표명하지 않습니다. 접수했습니다죠. 북은 접수로 끝나고 입장 표명을 안 합니다. 4월 축제에 여러 나라 보도진이 들어가는 것으로 압니다』
  
  『金正日 비서의 건강에 이상 있으면 다른 생각이 있을 것』
  
  ―다른 나라 사람은 받아 주면서 한국 언론인을 받아주지 않는 것도 그렇고 여기 기자들 얘기 들으니 북경에 나와 있는 북한 대사가 외국 기자에겐 친절한데 남한 기자에게는 깡패처럼 대한다던데요.
  
  『취재하는 방법도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제일 싫어하는 것이 길에서 마이크 들이대면서 취재 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풀리면 쉽게 풀리고, 앞으로는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북한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의 남한 언론에 대한 시각은 어떻습니까.
  
  『좋은 편은 아닙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 두 개를 보고 중간을 따면 정확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보수계의 신문도 있고 진보적인 신문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에서 큰 행사를 할 때 필요한 물건의 수입 대행도 해주십니까.
  
  『저는 그런 것 안 합니다. 제가 그것을 할 입장이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 사업을 뺏는다고 보일 일은 할 입장이 아닙니다』
  
  ―金正日의 비서인 김두룡씨를 압니까.
  
  『만난 적 있습니다』
  
  ―그 사람은 對南공작 전문가인데 북에서의 영향력이 강합니까.
  
  『그 분들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라고 봅니다. 적어도 밖의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보통 다른 사람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金日成이 죽기 전에 당 간부 회의에서 북은 개방 쪽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 탈북자가 생겨도 할 수 없다는 큰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을 유훈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자도 있어 갈등이 있다는데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까.
  
  『그런 얘기가 어디서 나온 얘기인지 모르지만 그 말씀했으면 그대로 가야하고 한 번 원칙이 정해지면 그대로 간다고 믿어도 됩니다. 우리식 사회주의는 세계의 변천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도 하니까 원칙도 변할 수 있겠죠』
  
  ―北의 문제점은 하느님도 아닌 「사람」의 교시를 무조건 따라가는 사회를 만든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에서 생활하신 朴회장 같은 분이 보기에도 이상한 것 아닙니까.
  
  『청바지에 슬리퍼 신고 롤스로이스 타는 사회가 미국 사회입니다. 자기가 편하고 좋으면 그대로 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자유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됩니다. 겨울에만 스웨터 입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여름에도 추우면 스웨터 입는 것입니다』
  
  ―북한의 金正日에게 권력이 넘어갔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습니다. 전환기의 지도자 역할이 중요한데 표면에 나타나지 않으니까 건강이 심각하다고 보는데….
  
  『저는 金正日 비서께서 건강하다고 믿습니다. 북한도 국가이므로 건강이 좋지 않다면 다른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남한 쪽에서 金正日 비서의 건강이 어떻고 하며 너무 초점 맞추는 것이 도리어 이상합니다』
  
  정춘실 운동
  
  ―북한이 진정 개방하려면 유일사상 10대 원칙에 의한 교시를 수정해야 되고 그렇게 되면 아들(金正日)이 아버지를 비판해야 되고, 사유재산 제도도 도입해야 하는데.
  
  『북에선 개방이라는 말을 제일 안 좋아합니다. 그러나 개방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처음 북한에 갔던 88년하고 지금 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처음에는 「한국」소리도 하지 않았습니다. 東歐하고는 교류하고 외국 사람도 많이 들어오고 있었어요』
  
  ―북한은 경제에 대한 기본 생각인 주체 농법, 집단 농장 체제를 개인농으로 바꿀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러면 식량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하보다 땅은 넓어도 자급을 못하니 우리는 북의 개방의도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됩니다. 북한에 투자하려는 러시가 있지만 한편에서는 미심쩍어하는데 朴회장은 이런 회의론자를 설득할 수 있습니까.
  
  『지난 12월 북조선에 들어가서 반갑게 들은 얘기가 정춘실 운동이었어요. 정춘실 운동이 뭐냐 하면 새마을 운동과 같은 것으로 쓰지 않는 불모지를 개량해서 작물을 심고 가축을 길러 생산성 높여 생활 수준 올리는 것을 본받자는 운동입니다. 수익을 올리도록 장려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정춘실 운동은 사회주의 나라의 여러 캠페인 중 하나가 아닙니까.
  
  『그것과는 좀 다르지만 장려하는 것은 좋은 출발이라고 봅니다』
  
  ―북한 고위층에서는 중국식 개방을 어떻게 봅니까.
  
  『북한은 누구 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식대로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국 자본이 북에 들어가면 그 돈을 다룰 인재가 있어야 합니다. 북한에 재화를 낭비하지 않고 운용할 능력이 있다고 봅니까.
  
  『그곳도 계속 무역을 하고 유능한 인재도 많습니다. 계획 경제 아래에서 필요한 것은 사들여왔기에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도 배웁니다. 얼마나 익숙하게 잘 하느냐는 앞으로 배우겠죠』
출처 : 월조
[ 2003-07-11, 18: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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