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비밀접촉 선상의 미스터리 여인 朴敬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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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비밀접촉 線上의 미스터리 女人 朴敬允 금강산 국제그룹 회장은 누구인가 - 사업가인가, 工作員인가?
  
  對北경협 러시 속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북경의 길목을 누르고 있다는 박경윤(朴敬允) 회장은 요사이 訪北주선을 부탁하러 오는 남한의 기업인·정치인·언론인 등으로 문전성시다. 鄭周永·金宇中·文鮮明 訪北, 남북정상회담 밀사접촉, 남북한간 비밀 쌀 거래, 평양―나고야 전세기 취항, 부산―청진 직항로 개설, 금강산 개발의 투자유치 창구 역할, CNN등 서방언론의 金日成 인터뷰 주선 등 최근 6년간 굵직한 막전 막후 거래를 주도해온 朴회장은 도대체 누구인가. 남한기자와 최초로 본격적인 인터뷰를 가진 朴회장은 활달하고 세련된 태도와 말씨로 자신의 역할을 설명했다.
  
  ● 『金宇中씨는 신사가 아니더군요』
  ● 『한국기업이 북한에 가려는 것은 홍보차원의 계산이 강하다』
  ● 『金日成주석과는 일곱 번 만났다…』정상회담 앞두고 과로했다
  ● 『남한 기업인이 주는 돈은 뇌물이 아니라 조국에의 헌금』
  ● 『금강산 개발엔 文鮮明씨측과 협력관계』
  ● 『金日成이 금강산 개발권을 나에게 위임…』곧 서울 가서 설명회 갖겠다
  ● 『한국언론이 나를 과대 평가한 면도 있다…』
  
  <1995년 3월 월간조선>
  
  9시간에 걸친 인터뷰
  
  對北 접근로의 길목을 누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朴敬允 금강산 국제그룹(61)과의 인터뷰는 두 차례, 9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처음 만난 것은 1월26일 오전 10시 북경 長城호텔 커피숍에서였다. 朴회장은 이날의 만남을 「얼음 깨기」라는 말로 표현했다. 朴회장과의 정식인터뷰는 이튿날인 1월27일 오전 10시부터 북경 시내의 한일관에서 오후 5시까지 7시간 동안 이어졌다.
  
  북경 長城호텔에 장기 투숙하고 있는 朴회장은 『10일째 감기를 앓고 있다』면서도 분주한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에 시달려서인지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인터뷰 도중 그를 찾는 전화가 계속 연결됐고, 인터뷰 장소로 찾아 온 손님들도 더러 있었다. 그 중엔 서울에서 온 중견 정치인도 눈에 띄었다. 朴회장과의 인터뷰에는 趙甲濟 月刊朝鮮 부장, 박승준(朴勝俊) 朝鮮日報 북경 특파원, 金東鉉 月刊朝鮮 기자가 함께 했다. 親北韓 在美교포 사업가로 알려진 朴회장은 『저는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쏠려 있지 않다』고 했지만 인터뷰 중에 『우리 북조선』『우리 평양』이란 말을 자주 써 그의 현재 입장을 짐작케 했다.
  
  인터뷰가 한창이던 1월27일 오후엔 화가이며 소설가인 김순지씨(46)가 朴회장을 「응원」하러 서울에서 날아왔다. 金씨는 지난 89년부터 朴회장과 교우를 맺어 언니·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다. 金씨는 月刊朝鮮 92년 6월호에 朴회장에 관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 朴회장의 답은 길지 않았지만 핵심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한 권력층의 부도덕성, 북한 주민에 대한 金日成 부자의 탄압 등의 화제에 대해선 『저는 모릅니다』라고 잘라 말하거나 대답 없이 넘어가는 「세련된」모습도 보였다. 그는 한국 언론의 그에 대한 최근 보도(주로 北으로부터 신임을 잃었다는 식의 내용)에 대해 자주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좋은 일을 하려다 보니 이상한 여자가 되더라』는 말도 했다.
  
  『2월말에 訪韓 예정』
  
  ―이제부터 저의들은 金日成, 金正日에 대한 존칭은 생략하고 北에 대한 호칭은 「북한」으로 쓰겠습니다.
  
  『좋습니다. 저는 북조선, 金日成주석, 金正日 비서로 말하겠습니다』
  
  ―고향이 청주입니까.
  
  『아버지는 충청도 청주, 어머니는 대전이고 제가 자란 곳은 서울입니다. 호적에는 청주로 돼 있는데 그 당시만 해도 혼란기여서 그런지 제 생년월일도 다 다릅니다. 원래는 1934년생인데 여권에는 1935년생으로 되어 있습니다. 충청도라고도 할 수 있고 서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한계를 정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별한 남편 박노정9朴魯貞)씨도 고향이 충청도입니까.
  
  『그분도 청주에요. 저와 고향이 같은 것은 우연의 일치입니다. 朴魯貞씨를 처음 만난 곳은 미국이었고 만나고 보니 같은 충청도였습니다.』
  
  ―고향에는 최근 언제 다녀오셨습니까.
  
  『1989년 文益煥 목사가 방북 했을 때 방한하고는 아직 가지 못했습니다. 곧 갔으면 하는 게 제 희망입니다』
  
  ―朴魯貞씨 무덤에 성묘를 못해서 안타깝다는 말을 많이 하신 걸로 아는데 혹시 우리 정부에서 막는 것은 아닙니까.
  
  『정부에서 막는다 안 막는다를 떠나서 제가 지금 미국 시민이고 잘못이 없으니까 막는다고는 할 수 없죠. 다만 제가 평양을 왔다갔다 하니까 그때 상황으로 봐서는 불청객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제가 사양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우리 정부에서 朴회장님을 막아서 못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못 들어온다, 들어온다 별소리 많았습니다. 때가 되면 들어가겠죠. 저한테 못 들어온다고 말 한 것을 들은 적은 없습니다』
  
  ―2월말에 들어오는 걸로 확정이 됐습니까.
  
  『제 자신은 들어가려고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 시민인데 미국과 북한 관계도 완화되었고 제가 북한 왔다갔다하는 것도 법에 저촉되지 않으니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방문하면 스케줄은 어떻게 잡혀 있습니까.
  
  『제가 정말로 들어가고 싶은 이유는 금강산 그룹 사무실을 서울에 설치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보는 시각, 북한에서 보는 시각, 그런 견해 차이로 생기는 부분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1월16일자 신문에 高民發(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 이성록 회장에 대해 뇌물 운운하는 기사가 났는데, 돈을 넘겨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만약에 한국 분이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드렸다면 10대 강령에 호응하는 것뿐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런 뇌물은 아닙니다. 그런 견해 차이를 제가 설명해 드리면 오해가 좀 풀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자리가 마련되면 적극적으로 참석해서 제 나름대로 설명하고 싶습니다』
  
  『저는 통일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朴회장의 역할이 명쾌해야 되겠는데 지금까지 나온 보도에 의하면 국제 무역회사를 경영하면서 북한 쪽 입장에 서서 경제 활동을 한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朴회장이 對南 공작의 한 거점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가 북한에 간 이유부터가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이 공존 공생할 수 있는가, 또 어떻게 하면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본업이 경제인이니까 경제에 참여해서 남·북한을 좀더 가깝게 하는 역할부터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작원 소리는 미국에서 처음 들었는데 공작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저는 官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제가 무슨 공작 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그 리고 누가 필요한 정보를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저는 통일을 앞당기는 촉매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난 8년 동안 금강산 개발을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무수히 노력했고 현재 금강산 개발에 대해 제일 깊이 알고 있습니다. 북한은 가난한 것과는 관계없이 식량이 모자라는 나라입니다. 기후도 좋지 않고 땅도 협소하고 통치하는 방법도 다르고, 또 다른 방법으로 해 보니까 안 되고 그래서 제일 좋은 방법은 금강산을 중심으로 하는 일대를 자유지대로 만들어 세계적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통일을 앞당기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작원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은, 92년 봄에 우리나라 사람도 비자만 발급 받으면 금강산 관광을 할 수 있다고 발표했는데 실제로 그 동안 성사된 것이 없고 가시화된 것이 없으니까, 겉으로는 금강산 개발을 한다고 하고 실제는 남북 관계에 있어 무슨 다른 공작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죠.
  
  『실제 한 것도 많습니다. 우선 평양에 고려 상업은행이 존재하고 있고 저희 본부가 홍콩·일본·북경·뉴욕·평양에도 있고 곧 로스앤젤레스에도 사무실을 열 것이고 서울에도 내고 싶습니다. 관광을 실제로 처음 시작한 것은 저희입니다. 홍콩에서도 처음 비행기를 평야에 띄운 것, 나고야에서 비행기를 北으로 처음 띄운 사람도 저희입니다. 금강산 개발이라는 큰 기업을 꾸리려면 밑에 수많은 작업이 필요합니다. 북한의 창구가 되려고 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자의도 있었지만 타의도 많았습니다. 여기 나온 분들(북쪽 사람을 지칭)이 대만도 잘 모르고 일본도 잘 모르고 한국 분들과도 교감이 안 되고 하니 제가 그런 촉매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죠』
  
  『金復東씨를 밀사로 추천』
  
  ―朴회장을 공작원으로 보는 시각은 朴회장께서 김복동(金復東)씨를 밀사로 북한에서 데리고 가려고 하는 데 관계한 것과 金允烈 도사 등을 북한으로 데리고 가는 데 중간에서 역할을 했다든지 하는 그런 일 때문이겠죠.
  
  『제가 88년 처음 북한에 갔을 때 그쪽 사람들이 묻는 것이 「어떻게 하면 돈 벌 수 있습니까」에요. 제가 답하기를 「사람이 왔다갔다해야 하니까 관광 회사를 만듭시다」라고 했습니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신용이 약하니까 정말로 장사를 하고 돈 벌려면 은행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운 것이 고려상은입니다. 그리고 무역이나 개발을 해야 하니까 금강산국제무역개발회사가 나온 겁니다. 제가 부탁한 것이고 「한 번 해보십시오」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金復東씨 얘기도 저는 미국식으로, 남북 대화가 제대로 되려면 로비를 해야한다고 말했더니 「로비는 누가 하면 되겠소」 물어와서 로비는 대통령과 언제든 얘기가 가능한 사람으로 공직에 있지 않은 사람이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金復東씨 잘 모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金復東, 금진호(琴震鎬) 두 분이 계셨는데 金復東씨가 좋겠다고 저하고 같이 일하는 朴鍾根 사장에게 추천했습니다』
  
  ―공작원이라는 이야기가 朴鍾根사장 때문에 나온 것은 아닙니까. 朴鍾根씨가 金正日 직속의 對南 공작을 하는 것은 확실한데….
  
  『그건 상상입니다. 저는 교포입니다. 金復東씨가 제일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얘기했고 그 다음에는 金復東씨하고 접촉해 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북한하고 일하는 사람이 불편할 때 아닙니까. 이형래(李炯來)씨가 말하는 것처럼 임철순(任哲淳)씨가 金復東씨를 잘 안다고 해서 金復東씨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별안간 任哲淳씨가 李炯來씨를 데리고 일본에 온 겁니다. 그때 李炯來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옛날에 경향신문사에 있을 때 38선(판문점 출입기자)에서 제일 젊은 기자로 활약했다고 들었고 유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왔다갔다한 것은 사실이고 그 다음에 점치는 金允烈씨가 간 것도 사실입니다』
  
  ―金允烈이라는 사람이 북한에 가게 된 최초의 계기는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李炯來씨가 여러 가지를 믿습니다. 우리는 토정비결도 보고 신수도 보고… 교회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도 없습니다. 李炯來씨가 점보는 것을 좋아해서 점괘 봐주겠다고 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金允烈이라는 사람이 신통력이 있었습니까.
  
  『저는 잘 모르죠. 북한에 가서는 안 따라갔으니까. 제가 하는 사업은 경제 사업입니다. 「이런 사람 왔습니다」하면 제 일은 끝나는 것이고… 북한에서 사회학자나 고고학자가 나왔겠죠』
  
  ―한국인에게 금강산 관광 사증을 내준다고 했는데 이 사업은 왜 안됐습니까.
  
  『사실 북조선에서는 사증을 내주려고 했는데 한국에서 안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이 북한을 여행하려면 반공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법적인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여행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참 무지했습니다. 저는 반공법을 잘 모르는 여자입니다. 저는 59년에 미국에 갔기 때문에 반공이 국시가 된 것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가끔 가다가 한국 사람하고 얘기할 때 제가 민감하지 못한 것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반공법이나 국가 보안법을 모를 리 없는데 금강산 사증 얘기를 던져 본 것은 선전 차원에서 한 얘기 아닙니까. 어차피 한국에서 응하지 않을 것을 알았을 텐데. 혹시 朴회장이 북한에 이용당한 게 아닙니까.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것도 맞을 수 있지만 저는 진실한 믿음으로 했습니다. 믿지 않으면 제가 선전하고 조직하는 데는 돈이 듭니다. 그것도 제 돈이 듭니다』
  
  ―현실적으로 몇 천명이 북한의 금강산으로 구경간다고 하면 그 사람들을 수용할 시설이 있습니까.
  
  『일본의 조총련에서 지은 금강산호텔도 있고 옛날에 지은 휴양소도 있는데 적어도 몇 백명은 수용할 수 있습니다』
  
  ―이 일로 상당히 피해를 보셨죠.
  
  『피해보다 싱거운 여자가 됐죠. 나는 사실 성심 성의껏 일했고 진실이라고 받아들였고, 저더러 그걸 하라고 했던 사람도 진실이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반공법이 어떻게 풀려야 하는지 수속 절차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입국 허가는 대통령 임의로도 풀리는 것 아닙니까』
  
  ―그럼 금강산 관광사업이 안 된 책임은 한국 정부쪽이 더 크다고 봅니까.
  
  『그때 북한에서는 오라고 했는데 거기에 호응을 안 했으니 제 입장이 얼마나 난처했겠습니까』
  
  뇌물인가, 10대 강령 호응인가
  
  ―본론으로 들어가서 1월16일자 신문에도 났는데 訪北 기업인이 북한에 들어갈 때 돈을 주고 들어간다는데 거기에 대해서 기업이 만약 돈을 주었다면 10대 강령에 찬동해서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는데 거기서 말하는 돈의 성격에 대해서 확실하게 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돈을 받고 안 받고는 모릅니다. 여기서 누구를 소개하면 제 일은 끝나는 것이고 일단 평양에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大宇도 그랬고 다른 회사도 그랬고 그 안에서 뭐가 이루어졌는지는 잘 모릅니다. 저는 촉매 역할만 할뿐이고 기업이 저한테 얘기해 주지 않고, 더군다나 북한 사람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북한은 교포나 민족 자본가들이 10대 강령에 따라 북한을 도와주는 것은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뇌물 주었다는 말을 하는데 뇌물이라는 말 자체가 좋지 않고 그 돈을 받아서 자기 호주머니에다 넣어 자신이 썼으면 그것은 뇌물이 되겠지만, 제가 여태껏 본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얘기는 朴鍾根 사장도 포함한 말입니까.
  
  『朴鍾根 사장도 뇌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예가 한 미국 교포가 북한에 들어가서 돈을 준 것 같아 제가 「돈은 어떻게 드렸습니까」하고 물으니까 손으로 이렇게 해서(두 손을 모으는 시늉) 드렸다 해요. 10대 강령에 따라 한 것이니 받은 사람은 公的으로 돈을 쓸 권한이 있는 사람일 테고 자기하고는 관계없다고 말하는 것을 봤습니다. 어떻게 보면 준 사람은 뇌물 주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받은 사람은 소속된 기관에 바쳤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규칙이 그렇습니다』
  
  ―방북 초청장과 돈을 맞바꾸지는 않습니까.
  
  『저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 신문에서만 봤습니다』
  
  ―방북 초청장은 朴회장이 결정해서 내주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제가 추천할 수는 있습니다. 해당 기관에서 나왔을 때 여러 가지에 대해 얘기하고 조건이 맞으면 들어가는 관계입니다. 저는 초청장을 돈과 맞바꾸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또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혹시 그 돈을 주는 것이 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朴회장이 잘 모르는 것 아닙니까.
  
  『저는요, 돈이 왔다갔다한 것을 본 적도 없고 저는 한번 소개하면 물러나는 사람입니다. 기업이 사업하는 것은 저하고는 관계가 없는 것이고 사실 제가 도와도 되고 안 도와도 되는 거에요. 저는 소위 말하는 뚜쟁이가 아닙니다. 이제는 금강산 개발 이외의 일에는 일체 관여를 안 하려 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요. 요새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합니다』
  
  ―朴회장의 신분이 공무원도 아니니 사업장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에 들어갈 수 있도록 주선을 해주고 돈을 받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대가이고 안 받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사업이라면 성공을 시켜놓고 대가를 받아야지 하기 전에 무슨 돈 얘기를 합니까.』
  
  ―그럼 어떤 원칙이 정해져 있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업이 성사돼, 말하자면 합작투자가 확정돼 일이 성사되었을 때 얼마의 대가를 받는다든지, 아니면 그 전에 단순히 사람이 왔다갔다하는 데는 대가를 받지 않는다든지 하는 원칙이 있는지요.
  
  『저는 그런 룰도 없어요. 그런 것 결정한 적도 없고 여태까지 상황이 대치 상황에다 여러 가지 제재도 있었고 그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 잘 끝나면 그 대가가 있는 걸로 생각은 하지만 여태까지 이루어진 것은 없죠』
  
  ―혹시 통일교의 對北진출사업은 성사된 게 아닙니까.
  
  『제가 일하는 금강산 그룹은 세계 평화 연합과 굉장히 끈끈하고 협조적인 관계입니다. 문선명(文鮮明) 총재가 북한에 들어간 것은 통일교로 들어간 것이 아니고 세계 평화 연합 이름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文총재가 북한과 인연을 맺는 과정에서 朴회장의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朴晋熙 선생 만나서 제가 북에 소개했습니다』
  
  『한국인 투자 많을수록 좋아』
  
  ―상당히 궁금하게 생각되는 것이 文鮮明씨가 종교 활동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선전한 것이 반공이었는데, 어떤 심리 변화가 있어 북한에 가게됐는지 거기에 대해서 아시는 대로 설명해주십시오.
  
  『非종교인으로서의 제 느낌은 통일교가 세계화를 빨리 했다고 생각됩니다. 냉전 체제가 다 없어지고 반공이라는 말 자체가 이상해진 것 아닙니까. 북한에 들어감으로써 반공정책이 세계화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文鮮明총재하고 북한하고는 극과 극의 관계였으니 오히려 잘 보합된 것 아닙니까』
  
  ―金日成이 文총재 만났을 때 옆에 있었습니까.
  
  『저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촉매 역할만 하고 빠집니다. 제가 숟갈 들고 밥상까지 받으러 갑니까. 저는 그런 짓 안 좋아합니다』
  
  ―金日成이 文鮮明씨 만난 다음에 文鮮明씨에 대해 들은 적 있습니까.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민족주의에 대해서 생각하는 관점이 다릅니다. 적어도 우리 민족이 세계에 나가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북한도 긍지를 느끼고 형제의 입장에서 돕겠다는 입장입니다』
  
  ―금강산 개발에 있어서 朴회장은 북한으로부터 어느 정도 범위까지 위임을 받았습니까.
  
  『지난 94년 1월29일 정무원에서 전체적인 개발을 하도록 위임을 받았습니다. 기초 보고서에서 마스터플랜으로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북한이 해주어야 할 법적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게 마무리되면 활발히 진행될 것입니다』
  
  ―정무원과 朴회장과는 일종의 계약 관계입니까.
  
  『계약 관계는 아니고 위임장을 받았죠』
  
  ―위임장의 내용은 어떻게 돼 있습니까.
  
  『금강산국제그룹에 전권을 부여한 것으로 돼있습니다』
  
  ―개발에 참여할 회사를 선정할 권한은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자격이 있는 분은 누구든지 좋습니다. 개인도 좋고, 단체도 좋고, 한국분도 좋고, 외국 사람들도 좋고. 저는 민족 공동개발로 한국 사람이 많이 들어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금강산이 워낙 넓어 어느 한 회사가 개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개 회사가 참여한다는 말입니까.
  
  『일의 성격이 다 다르죠. 철도도 놔야 하고 항구, 비행장, 공공시설, 사회 간접자본도 구축해야 합니다. 원산에서 38선까지 동해안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지역을 한 회사가 개발할 수는 없는 일이고 저희는 일종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누구든지 다 오십시오』
출처 : 월조
[ 2003-07-11, 18: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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