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김대통령과의 인연은 소중히 간직하고싶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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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출연·대중연설 적극 활용
  
  ―교수, 언론인 전문직업인 등 지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지식인이 능력에 비해 과대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金대표께서는 종종 지식인, 특히 언론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진보 발전하려면 상대를 알아야하고 상대가 우리를 알도록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지식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지식의 국제교류에 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지난 30년을 지켜보면 언론이 권력에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특히 우리 언론이 보도(Reporting)와 논평(Commenting)을 구별하지 않는데 대해서는 유감입니다. 지식인도 곡학(曲學)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세(阿世)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식인으로서의 독특한 기능을 나름대로 의지를 갖고 살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金대표는 신당 창당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에 불만이 많은 듯했다. 脫黨하면서 자신이 발표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이 紙面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가십으로 처리된 사실을 두 번이나 지적했다. 언론이 권력에 약하다는 언급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民自黨 대표였을 때와 달리 탈당 후 金대표에 대해 관심의 폭이 적어졌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말에는 「기사를 싣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金대표는 언론이 자신을 제대로 취급해 주지 않는다면 대중과 직접 접촉하는 방법, 예를 들어 텔레비전 출연이나 대중연설 등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잠시 新黨이 지시기반으로 삼는 중산층의 성향에 대해 논쟁이 있은 뒤 얘기는 朴正熙 前 대통령의 「민족적 민주주의」로 옮겨갔다.
  
  ―朴대통령이 주창한 「민족?민주주의」는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반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당시에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최근 싱가포르의 李光耀 前 수상은 「유교적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서구민주주의에 반론을 펴고 있고 여기에 일부 미국인 학자들이 동조하고 있습니다.
  
  『「서구식 민주주의를 여과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전통, 특성에 맞는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생가에서 만들어 낸 말이 민족적 민주주의였습니다. 너무 거창한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몸, 우리 생활에 맞는 민주주의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별별 오해, 압력, 음해가 많았습니다. 李光耀는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고 그의 주장도 타당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상황에는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동해시 후보 매수자금 YS구좌에서 나왔다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 朴대통력은 특히 이순신 장군을 존경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박대통령은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백의종군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특히 백의종군은 중상 모략으로 인한 것이었다며 우리 민족성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말로만 위대한 조상하면서 유적을 보존한 게 없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朴대통령이 이순신 장군의 유적을 복원하고 윤봉길 의사 생가 등을 보존하도록 하셨지요』
  
  ―金대표께서는 우리나라 인물 중 누구를 존경합니까.
  
  『세종대왕을 존경합니다. 다른 업적도 많지만 우리 글을 만든 것은 탁월한 공적이지요. 현재 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상은 제가 헌납한 것입니다. 그리고 태평로, 남산에 선열들의 동상을 세우자는 것도 제가 제안해서 한 것입니다. 미국 다코다州의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새긴 돌산이 있습니다. 이 돌산을 흉내내 부여 백강에 있는 철벽에 世宗大王, 李舜臣, 신사임당(申師任堂), 朴대통령 네 분을 새기려 했었습니다. 보링작업까지 해놓고 80년에 중단됐지요』
  
  ―외국인 중에서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유태인 출신 영국수상 디즈레일리와, 처칠, 드골을 존경합니다. 「불란서의 영광 없이 구라파의 영광은 없다」 「우리에겐 나폴레옹, 빅토르 위고, 잔다르크가 있다」고 외치던 드골은 고집스러운 애국심을 지녔던 인물입니다』
  
  ―李承晩 대통령도 존경하십니까.
  
  『존경합니다. 1년에 두 번씩 꼭 묘소에 갑니다. 지난 설날에는 국립묘지에 가서 6·25전우, 李承晩, 朴正熙 두 전 대통령 등 세 군데 묘소에 참배했습니다』
  
  朴대통령, 李박사 귀국에 반대 안해
  
  金대표는 이 대목에서 5·16후 당시 朴正熙 회고회의의장이 하와이에 있던 이승만대통령을 귀국시키려 했었다는 비화를 소개했다. 지금까지는 朴의장이 李대통령의 귀국을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었다. 62년 10월 訪美길에 나서기 전 朴의장은 金대표에게 李대통령에게 전해 주라며 2만달러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서울로 모셔오도록 했다고 한다. 미국 시카고로 가기 전 金대표는 하와이에 들러 병상에 있는 李대통령을 만났다. 방문하기 바로 전날 李대통령은 「나 서울 가. 왜 여기 있어」하며 쓰러져, 방문하던 날에는 침대에서 신음하며 누워있었다. 金씨는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2만 달러를 전했다. 그러나 현지 미국인 의사들이 「이 몸으로는 서울로 갈 수 없다」고 반대해 서울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는 게 金대표가 들려준 얘기.
  
  ―최근 徐錫宰 총무장관의 회고록을 보면 「동해시 선거 때 후보매수사건은 억울하다. 이미 공화당 후보가 사퇴하기로 했었기 때문에 위로금으로 준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진실은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매수용으로 준 것이 확실합니다. 검찰에서 왜 구속했겠습니까. 매수자금은 金대통령 구좌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3당 합당 때 「다음 집권은 金泳三씨로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었다고 김윤환(金潤煥)씨가 증언하고 있는데 사실입니까.
  
  『난 모르는 얘기입니다. 노태우 대통령과 둘이서 했는지는 모르지만 세 사람이 있을 대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3당 합당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민정당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신민주공화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되는 게 없었습니다. 盧泰愚대통령이 민정당만으로는 안되겠다며 합당을 제의해 좋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민주당도 합당하자고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결국 필요에 의해 盧泰愚대통령이 주도적으로 합당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신민주공화당에 먼저 제의한 것은 사실입니다』
  
  ―合黨 전에 金泳三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하셨는데요.
  
  『盧泰愚대통령한테 金泳三씨도 합당의사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다면 「우리끼리도 친해집시다」 해서 따로 만난 것입니다. 구체적인 합당 작업은 각 당이 2명씩 대표를 보내 하얏트호텔에서 했습니다』
  
  YS, 盧대통령 탈당 때 黨名 바꾸려 했다
  
  ―3당 합당이라는 구조는 일본의 자민당처럼 오래 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습니다. 5년으로 단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 봅니까.
  
  『(金대표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라며 지난 1월10일 金泳三대통령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꺼냈다.) 10일 회동 때 대통령께 黨名을 바꾼다는 것은 민자당을 버린다는 것인데 왜 바꾸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이 「대통령선거가 임박해서 盧泰愚대통령이 사전논의도 없이 탈당했을 때 얼마나 놀랐느냐. 사실은 그 때 黨名을 바꾸려 했는데 선거 때문에 못했다. 이제는 당을 환골탈태하기 위해 黨名, 당기(黨旗), 당가(黨歌) 모두 바꾸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3당통합은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자고 합의해서 이루어졌는데 당명을 바꾼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그것도 일언반구도 나한테 얘기없이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으니 盧泰愚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탈당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당 合黨으로 제일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민자당 조직을 업고 대통령이 된 金泳三씨, 그 다음은 합당을 통해 안정된 집권 후반기를 보낼 수 있었던 盧泰愚대통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金대표가 제일 손해를 본 것 같습니다.
  
  『나는 손해니 이익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나한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조용히 했을 뿐입니다. 한계를 느꼈기 때문에 조용히 떠난 것입니다. 그날 탈당할 때도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누가 내쫓았다고 이야기하지 말라. 나는 더 이상 이 黨에 머무를 수 없게 됐다. 한계를 자각했기 때문에 나오게 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합리화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金대표를 따랐던 다른 국회의원들은 피해를 본 것이 아닙니까.
  
  『그건 할 수 없지요. 당을 같이 했다고 꼭 진퇴를 같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속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 안 합니다. 그 때 그 때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어제 일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습니다』
  
  ―한 여당 중진의 말에 따르면 지난 92년 4월8일 자신의 주선에 따라 金대표와 金泳三씨가 만나서 金泳三씨를 대통령후보로 내세우기로 했다고 합니다. 사실입니까.
  
  『누가 그런 소리를 합니까. 그건 생판 거짓말입니다. 그날 14대 총선 결과가 좋지 않아서 집에 칩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金泳三 대통령과 만나기 전에 盧泰愚 대통령과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盧泰愚대통령의 의중을 알아보려 했지만 후보에 대해 일체 얘기하지 않기에 내가 「金泳三씨를 밀겠다」고 먼저 말하고 나왔습니다. 그 길로 미리 약속이 돼 있던 하얏트호텔로 가서 金泳三씨를 만나 지지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그 후 결정을 못하고 있던 민정계들이 金泳三씨 지지쪽으로 확 돌아섰지요. 朴泰俊씨도 만나자고 해서 포항제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습니다. 그 때 朴씨가 盧泰愚대통령이 자기를 지지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년간 金泳三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습니까.
  
  『주간에 있었던 중요문제, 黨務 등 극히 업무적인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통령의 코멘트를 받아 나중에 당4역에 전달했습니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30분을 꼭 지켰습니다. 행정, 對北정책 등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한번은 새마을 운동 단체를 관변 단체라 해서 없애려 한다기에 이 단체는 자립기반이 있고 국가발전에 기여한 단체니 없애지 말라고 건의해서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재산공개파동 때 金대표가 할 역할이 없었습니까.
  
  『내가 개입할 스페이스(Space)가 없었습니다. 대법원장, 국회의장이 물러나는 판인데 내가 할 일이 있겠습니까. 당시 「개혁은 人治」라는 말을 처음해서 곤란을 겪기도 했지요. 그랬으니 전혀 할말 안 했다고 할 수도 없지요』
  
  깊은 생각 가지고도 아무 것도 못한 사람?
  
  ―金대표께서 개인적으로 언론자유를 만끽한 시절이 공화당 총재 시절이었다면 요즈음 다시 그 시절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이제 정책적인 문제에 관해서 누구와도 얘기할 것이고 텔레비전에 나가서 국민에게 설명할 것입니다. 보다 어그레시브하게 얘기할 작정입니다』
  
  ―金대표께서는 죽은 뒤 「묘비명」에 어떻게 기록되길 바랍니까.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왕 요셉왕은 묘지에 이렇게 써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 것도 못한 자 이곳에 누웠노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쓸 수도 없고…. 나는 아내와 자식에게 아버지, 어머니의 5남으로 태어나 언제 죽었다고 간단하게 쓰라고 말해두었습니다. 이것만으로 섭섭하거든 뒷면에 출생지, 학력, 경력, 준장예편, 7선 국회의원, 국무총리, 공화당 총재, 신민주공화당 총재 등 정계약력을 기록하라고 했습니다. 자랑할 것도 없고…』
  
  이야기는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서도 계속되었다. 기자가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좌우명을 물었더니, 金鍾泌씨는 잠시 수저를 놓고서 의자에 등을 기대며 대답을 했다.
  
  『나의 좌우명이라면 딱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연을 중시하는 것이지요. 인연을 소홀히 하는 사람을 나는 제일 싫어합니다. 또 하나는 고마움을 표시하며 살자는 겁니다.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 역시 내가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오. 나는 고마움에 관해서 평소에 세 가지 행복론이란 내용으로 당원들에게 자주 얘기하고 있어요』
  
  JP의 세 가지 행복론
  
  그가 말하는 세 가지 행복론은
  첫째로, 「사지가 멀쩡한 정상인으로 태어난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 따라서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아프리카에 태어나지 않고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 그러므로 대한민국에 애국하라」고 했다. 그의 행복론의
  세번째는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체제인 남한에서 태어난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 그러니 더욱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노력하라」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말미에 「자유로운 조국땅에서 겨우 제 살 곳만을 뭉기고 앉아 남만을 해치는 사람이 되지 말라」고 강조했다.
  
  식사가 끝나고 다시 거실로 가 앉았을 때 화제가 이쑤시개로 옮겨갔다. 항간에 있었던 이른바 「이쑤시개 파동」이 주제가 되었다. 돼지조차 식성이 고급화되어 사료를 먹고 자라는데도 불구하고 음식점에서 버리는 음식찌꺼기 속의 이쑤시개가 돼지의 입안을 찌른다고 해서 한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의 구강위생을 돼지를 위해 희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야기가 오갔다. 金대표는 의자에 앉아 이쑤시개 이야기를 듣더니 평소에 자신은 언제나 이쑤시개를 쓰고나면 5㎜길이로 특톡 분질러 버린다며 시범을 보였다. 그의 손에서 꺾여진 이쑤시개는 여러개의 관절을 가지 듯하여 더 이상 찌를 수 있는 도구가 되지 못했다.
  
  점점 국제화된 화제는 南美로 넘어갔다. 「남미는 주인을 잘못 만난 대륙」이라고 金鍾泌씨가 서두를 꺼내더니 파라과이에 갔던 이야기를 했다. 『南美가 60년대만 해도 우리보다 잘살던 곳입니다. 내가 혁명 이후에 파라과이 대통령으로부터 反共에 기여했다고 훈장을 받았어요. 그때 그 자리에서 「우리 이민 좀 받아달라」고 그랬지. 이게 남미 이민의 시초가 됩니다. 그런데 남미로 갔던 한국인들이 지금은 거의 없어요. 모두 브라질로 멕시코로 그리고는 다시 미국으로 프로그 점프(frog jump·개구리 점프)해 들어간 거지요』 기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바로 그 파라과이로 이민을 가기 위해 여권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는 파라과이가 어디 붙었는지도 모르고 어떤 나라인지도 모르면서도 그렇게 신이 났었다. 최빈국 대열에 있던 한국땅을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여권이 나오질 않아 주저앉은 것이 오히려 행운이 됐다. 기자는 『하마터면 金대표님 때문에 파라과이에 가서 살 뻔했다』고 이야기해 웃음이 터졌다.
  
  金 前 대표는 자신이 쓰러뜨린 張勉의 민주당 정권은 어차피 넘어갈 운명에 있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5·16거사로 정권을 잡고 보니 美軍측 정보기관이 장도영(張都暎) 당시 육군 참모총장과 연계하여 反민주당 정부 쿠데타를 추진하고 있었음을 적발해 그 美軍정보기관원들을 체포, 추방해 버렸다는 것이다.
  
  한 독서인의 고독
  
  단 미국측과 이 문제를 영원히 덮어두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金씨는 『미군과 정보기관에선 張勉정권으로는 反共전선이 유지되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대체정권을 모색하고 있었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것은 어떤 기록에도 나오지 않고 있으니 진정한 역사는 묻혀버리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저녁 식사 뒤 金 前 대표는 2층에 있는 서재 겸 침실까지 우리 일행에게 공개했다. 1만5천 권의 장서 중엔 일본책과 역사서적이 특히 많았다. 문득 지난 1월14일 인터뷰에서 있었던 金씨의 말이 생각났다. 『정치·권력게임에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적게 읽는 사람에게 지는 경우가 많더라』고 기자가 말하자 金 前 대표는 즉각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무리한 짓은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던 것이다.
  
  5·16군사혁명이란 최대의 무리를 한 金씨의 말이었지만 가슴에 와 닿았다. 그러나 1945년生인 기자의 가슴과 젊은 세대의 가슴은 같지 않을 것이다. 세대별로 가장 큰 지지율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金鍾泌씨. 70고비에 새로운 길을 선택한 그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바로 그러한 가슴과 가슴 사이의 간극일 것이다.
  
  <정리·金然極 月刊朝鮮기자/李東昱 자유기고가>
출처 : 월조
[ 2003-07-12, 23: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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