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김대통령과의 인연은 소중히 간직하고싶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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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공방
  
  대통령중심제의 문제점
  
  ―내각제에 대해서 좀 더 집중적으로 여쭈어 보겠습니다. 내각제를 해야 한다고 金대표께서 일찍부터 생각을 굳히게 된 동기 중의 하나는 한국적인 가부장적 문화풍토에서 헌법상의 막강한 권한이 보장된 대통령제는 가령 순수한 인간도 변질시켜 권력을 전횡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도록 한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내각제를 해야된다고 주장하시는 거지요.
  
  『내각제의 선진국들이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게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제도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어떤 사람은 60년 민주당의 내각제를 부순 사람이 무슨 소리냐 하는데, 그때는 내각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되었습니다. 망하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 제도를 흉내낸 것이지요. 「李承晩 대통령이 독재를 했다. 대통령중심제를 하면 독재하니까 내각책임제로 하자」 그때 아마 대부분이 그런 간단한 생각으로 내각책임제를 채택하려고 했는데, 내각책임제는 배고픈 데에서는 안 되는 겁니다. 내각책임제야말로 어느 정도 토양이 된 연후에 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러니까 그 동안에는 거기에 대해서 얘기를 안 했어요. 개발시대에는 대통령제가 독재성을 가졌지만 효과가 있었어요 이제 적어도 소득이 몇 천불이 되고 우리 의식도 스스로 일해 나갈 수 있는 정도로 고양이 되고 사회도 그 발전에 맞게끔 깊이도 생기고….
  
  이제 국민들이 스스로 엮어 나가는 메카니즘이 생겨서 이렇게 잘 굴러나가는 것이지 정치가 잘 지도해서 이렇게 된 게 아닙니까. 오히려 정치가 그 메카니즘에 짐이 되고 있는 점이 많아요. 국회 같은 경우에 특히 그렇단 말입니다. 대통령중심제가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봉?엄청나게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요. 그래서 이제 내각책임제가 채택되어도 괜찮은 때가 온 것이 아닌가 해요. 어제 대통령제의 우려되는 점을 생각해 봤는데, 한 사람의 국가 원수에게 국민 전체의 최대 위험을 거는, 책임을 송두리째 말기는 제도, 또 위에서부터의 결정의 결과를 어쨌든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피동적인 민주, 또 과다 결정권을 부여받고 있는 단 한 사람의 인간과 대중 사이에 채워지는 관계는 민주적인 것과는 정반대의 관계다. 이건 실제로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래서 金대통령께 대통령중심제는 어떤 경우 독재를 하라고 하는 제도라고까지 얘기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제 가치가 온 인류에 해당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서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인데 단 한 사람 우두머리의 결정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예와 같은 성격, 조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인간과 민주주의와의 결합의 기초가 되는 제 원칙마저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경우가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난 대통령중심제라는 건 우리나라도 민주주의한다면 그만둘 때가 됐다. 그리고 정말 민주주의를 하려면 집권해 본 야당이 있어야 하겠다. 金대통령같은 분도 그래요. 「보안법 없애라, 안기부 없애라」마구 주장하던 분인데, 대통령이 되어서는 「그것을 없애면 국가 기반이 흔들린다. 보안법 그거 손대면 안되겠더라」 이렇게 바뀌더라고요.
  
  야당에 있을 때는 그걸 몰라요. 느낄 수가 없어요. 그러나 집권해 보면 달라집니다. 야당이 집권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고, 또 책임을 지고 교대해 가면서 정치를 하는 제도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제도라고 봅니다. 개발시대는 적은 힘, 짧은 시간, 그리고 뭐든지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욕심에서 위에서 마구 내리는 일종의 톱-다운식(Top-Down) 리더십이 효과가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밑에서 위로 바텀-업(Bottom-Up)으로 잘 조화가 되는 그런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그렇다면 자꾸 내걸지만 말고 실천 가능한 것을 제시하고 알아듣도록 국민들을 설득해야, 그러니까 텔레비전에 자주 나와야 한다 이겁니다』
  
  타협의 문화 만들어야
  
  ―프로 정치인들한테는 내각제가 편하지만 집단 이기주의적인 것을 초월해서 국익을 위해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과연 대통령중심제보다 나으냐 하는 의문이 듭니다만.
  
  『내각책임제의 수상이 대통령보다 기능을 발휘 못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선진국들은 보십시오. 여자 수상이 전쟁까지도 다 지휘하고 있는데…』
  
  ―정파싸움을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몰아가는 타협의 문화가 있어야하는데, 우리에겐 그게 없지 않습니까.
  
  『만들어 가야지요. 겪어 가야지요. 자꾸 쌓아가야지요. 그런 게 없다고 해서 언제까지 모순이 있는 것을 지나친단 말입니까. 이제 우리도 스스로 그런 타협의 문화를 개척해야 할 때가 왔어요』
  
  ―통일을 앞두고 그런 실험을 한다는 것은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
  
  『아니요. 통일을 앞두고 해야지요. 나는 우리가 이런 정치실태에 익숙해진다고 하는 것이 앞으로 있을 남북간의 여러 가지 문제해결에 필요하다고 봅니다. 통일을 앞두고 빨리 그런 타협의 생활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선거 때문에 사실 동서로 갈라진 것 아닙니까. 이제 대통령 선거할 때마다 깊숙하게 동서남북 갈라질 겁니다. 이런 짓을 왜 해야 됩니까. 내각책임제하면 국회에서 간접 대통령선거해서 상징적으로 뽑으니까 그런 위험이 없잖아요. 국회의원도 중선거구가 자리를 굳힐 만할 때 소선거구로 바뀌었는데 지금 대표성이 없어졌잖아요. 서울의 경우에는 구의원보다 시원찮은 데도 있잖아요. 이런 것도 뭔가 내일을 내다보고서… 이제 하나씩 하나씩 깊이 생각해서 모든 것을 정리해가야 할 때가 된 거요』
  
  ―중선거구제도도 앞으로 정강정책으로 하실 겁니까.
  
  『난 그래요. 누가 주장해서 이렇게 됐습니까』
  
  ―2백30명이나 되는 시장, 군수, 도지사를 뽑는 지자제 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여기에 내각제까지 같이 몰려가지고서는, 국가 전체의 권력이 구심력이 아닌 원심력쪽으로만 작용한다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다 하는데 우리만 못한다고 자꾸 자학할 이유가 뭡니까. 일본의 경우에 동시에 실시했는데 그때 50년 전 일본의 수준보다 지금의 우리가 못하다는 말입니까. 천만에요. 그 우려스러운 것만 자꾸 얘기하다보면… 지금도 지자제가 걱정스러우니까 일부에서는 연기하자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론 곤란하잖아요. 가장 합리적인 국가운영을 위해서 선진국을 따라가 보자는 건데』
  
  ―제가 지금 제기하는 의문에 대해서 설득을 하셔야….
  
  『그건 아는데, 그런 걱정만 해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것 아닙니까』
  
  점심식사 도중 金대표는 오는 6월의 지자제 선거가 天王山(決戰場이란 뜻의 일본말)이 될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선거 후 金대통령의 권력이 하강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金대표의 표정은 사뭇 비장해 보였다. 화제는 이런저런 얘기 끝에 공화계에 속하는 김동근(金東根)의원이 왜 함께 탈당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金대표의 대답은 『金의원이 미안해하기에 민자당에 남아서 맡은 일 열심히 하고 있으라 했다』는 것이다. 다시 『창당한 뒤, 집을 지어놓고 고구마 줄기를 당기듯이 여러 사람들을 동반 탈당시켜 민자당에 타격을 줄 의도가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金대표는 슬쩍 미소를 지을 뿐 더 이상 대답하지는 않았다.
  
  옛 중앙청 철거 반대
  
  金대통령의 역사관은 왜곡돼 있다
  
  점심식사가 끝난 뒤 오후 인터뷰에 들어가기 앞서 文民의 어원이 잠시 화제가 됐다. 金대표는 文民이라는 말은 징병제가 실시되는 나라 즉, 우리와 같이 국민 전체가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나라에서는 군복을 벗으면 민간인이고 곧 문민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복을 벗고 국민의 직접 선택을 받았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문민이다 아니다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文民을 다지는 것은 아마 군사문화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엄격히 말하면 盧泰愚 대통령도 문민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오후 인터뷰는 오전보다는 다소 느슨한 분위기였다. 점심식사 때 포르투갈 産 포도주를 두어 잔씩 걸친 것이 제 몫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배에서부터 끌어내는 金대표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있었으며 朴正熙 前대통령과 관련한 얘기가 나오면 다소 흥분되는 듯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의원내각제에 대해서 좀 더 여쭈어 보겠습니다. 의원내각제가 이성적으로는 맞다고 해도 정치라는 것은 민족의 감정적, 정서적 요인을 무시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정서와 우리 정치문화풍토를 보면 파당성이 강하고 그럼에도 강력한 지도자가 나오면 잘 뭉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王과 같은 구심점이 없는 상태에서의 의원내각제는 국가의 비생산(非生産), 비효율(非效率)로 귀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 민족에게 그런 성향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해 국가의 구심점으로 만들어놓고 잘해 나가는 선진국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특성을 잘 소화해 참된 민주주의를 해나갈 수 있는 소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권 일각에서는 고려 성종 때 만들어져 1천년간 계속되어온 道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대신 市郡을 경제공동체 단위로 확대 개편하고 그 다음에 지자제를 실시해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행정단위 가운데 특별시 직할시를 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직할시를 道로 편입시키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道를 없애기보다는 강화해 그걸 경제단위로 하면 됩니다. 지적하셨듯이 道라는 것은 오래된 우리 문화인데 쉽사리 없애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93년 金泳三 대통령이 취임하고 난 뒤 金대표와 역사관에서 극단적인 차이가 있음을 보고 동거기간이 오래 지속되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지도자에게는 역사관이 시국관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金泳三 대통령이 5·16을 우리 역사를 후퇴시킨 사건이라고 언급한 직후에 金대표께서는 역사의 기승전결론을 주장하면서 5·16을 높이 평가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두 분의 역사관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십니까.
  
  『역사관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정권을 잡으면 앞의 시대를 폄하함으로써 자신의 입지와 우상을 강화하려는 사례가 동서고금의 역사에 많습니다. 5·16혁명이 처음 일어난 「행동」 그 자체는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5·16은 우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본질적 변화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혁명입니다. 이런 점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면 역사를 왜곡하려는 자세지, 제대로 평가하려는 자세가 아닙니다. 아랫사람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혼선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동안 자제했지만 때가 되면 내 주장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5공화국도 싫건 좋건 우리 역사의 한 기간입니다. 잘 잘못을 가려서 앞으로는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처벌하고 상처주기 위한 것은 곤란합니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사회일각에서 대구 10·1사건, 제주도 폭동사건을 민주화 사건으로 보고 태백산 무장게릴라를 미화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史觀을 편의에 따라 왜곡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작년 朴대통령 15주기 추도식에서도 「인도에 가봤더니 자신들의 지배자였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동상 앞에 꽃이 놓여져 있더라. 인도사람이 어디 빅토리아 여왕을 존경해서 그랬겠느냐. 이건 역사의 한 토막이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또 볼셰비키 혁명이 났을 때 러시아 황제의 馬像도 철거됐다가 70년 후 다시 원위치에 갖다 놓았다고 합니다. 미워도 역사입니다. 밉다고 역사를 흐려버릴 수는 없습니다. 개인의 好不好에 따라 역사가 왜곡돼서도 안됩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金대통령의 사관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옛 중앙청 철거가 그렇게 급한 일인가
  
  ―국립중앙박물관 철거문제도 역사관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金대표께서도 철거에 반대한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옛 중앙청 철거문제에 반대입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나고야(名古屋) 북쪽에 明治村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明治維新 이후 문명개화시대에 들어 온 서양문물을 모두 모아 일본 근대화의 발자취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곳입니다. 이곳에 매년 천 수백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간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남겨두지 않고 부숴 버립니다. 실물을 그대로 옮겨 자손들이 역사를 실감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또 우선 순위에 문제가 있습니다. 해체하는 데만 몇 천억씩 들일 정도로 시급한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에 들일 돈을 지금 가뭄이 한창인 호남지역의 水原이 될 용담댐 건설에 투입하면 이 지역 용수확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폭파해체된 남산 외인아파트만 해도 외국인 건축기술자들은 앞으로도 몇십 년 더 쓸 수 있는 건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1천5백억원을 부수는 데 써야 할 나라입니까. 그 돈을 다른 용도에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남산경관을 훼손하기 때문에 부숴야 한다면 그 시기가 과연 지금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돈을 차라리 서울工大나 대덕 연구단지에 지원해 과학기술개발을 독려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입니다』
  
  ―이런 견해를 金泳三 대통령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까.
  
  『물론 얘기했지요. 옛 중앙청 철거 시기를 좀 늦추면 어떻겠느냐고 말씀 드렸지요. 그러나 그 자리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對北觀, 對北政策에 대해서도 金泳三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현 정권은 북한에 대해 환상을 갖고 조급하게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땅찮은 면이 있습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부산까지 손에 넣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엔 동시 가입 때도 북한은 당초 가입을 반대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정책을 바꾸었습니다. 북한은 지금 상당기간 南北共存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꾼 것 같습니다. 북한의 옆구리를 자꾸 쑤시는 지금 정책은 잘못입니다. 지금은 남북간 동질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남북간에 이질화 된 상태를 동질화하기 위한 남북간 접촉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국민에게도 남북간에 공존하면서 끈기와 인내를 갖고 동질화를 위한 노력을 하자고 설득해야 합니다. 상당기간 평화공존 기간을 갖는 것이 현명하다는 전제하에 통일을 대비해 국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북한의 루마니아식 붕괴 어렵다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사실 金泳三정부의 통일정책과 같지 않습니까.
  
  『정책방향은 그렇지만 정부의 구체적인 행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 핵 문제만 해도 우리가 제대로 관여하지도 못하고 부담만 잔뜩 짊어졌습니다. 미국과 협조하여 제대로 해결된 게 없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새로운 남북관계를 정립해야지 관념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신당의 통일정책은 표현은 어떨지 모르지만 사실상 북한체제를 남한체제로 동화시키는 흡수통일을 하자는 것입니까.
  
  『나는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루마니아처럼 갑작스레 무너져 예상 밖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통일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흡수통일이란 말 쓰지 않습니다. 북한도 변한 것입니다.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남북이 동질적으로 변할 수 있도록 꾸준히 접촉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남북간 동질성 회복이 적절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됐을 경우 통합시도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북한이 루마니아처럼 갑자기 붕괴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변화해 나갈 가능성이 많다는 견해인 것 같습니다.
  
  『북한의 붕괴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북한 자체의 특성에서도 기인하지만 중국이 변수입니다. 중국의 對한반도 기본전략은 불통불란(不統不亂)이라고 봅니다. 남북간 통일을 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북간 분쟁도 원치 않습니다. 북한의 변화가 중국에 불리할 때 중국은 북한을 지원할 것입니다』
  
  金正日의 문제는 자질이 아니라 건강 이상
  
  ―月刊朝鮮은 그 동안 북한 인권문제의 심각성을 많이 지적했습니다. 북한판 아우슈비츠라고 할 정치범수용소의 인권침해 상황은 예상보다 처참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수용소 경비원 출신 귀순자의 말에 따르면 완전 통제구역에서는 「3대를 멸하라」는 김일성의 교시에 다라 임신이 금지돼 있고 임산부의 경우 비밀처형한다고 합니다. 그 동안 金泳三정부의 對北시각을 보면 북한인권문제 해결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듯합니다. 점진적 통일론을 펴면서 남한이 손해보지 않는 이기적 통일정책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金대표의 의견도 같은 범주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안게 될 부담을 생각 안할수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북한이 붕괴돼 우리가 더 안을 때 양쪽 다 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은 현재의 북한을 떠 안을 힘이 없습니다. 지금 북한에는 우리 체제에 적응할 수 없는 「훈련 안된 사람」이 수백만 명이 있습니다. 이들은 통일이 되었을 때 우리 반대편에 서서 혼란을 야기할 것입니다. 우리 1인당 국민 소득이 현재 8천 달러 정도인데 지금 통일이 되면 북한사람을 살리기 위해 소득의 반을 떼줘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지금 8천 달러 가지고도 짜증나는 생활인데 반을 떼줘야 한다면 이만저만 힘든 생활이 아닙니다. 이런 사실을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고려하면서 통일에 접근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직 동독을 안을 때의 서독만한 힘이 없습니다』
  
  ―우리 정부의 통일정책이 국가정책으로써 어떤 윤리적 기초에 입각해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혼란 없는 통일을 위해서 점진적 통일론을 펼치는 것 못지 않게 현재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구제 할 것인가 하는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현재 중국내 조선족 교포의 입국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같은 해외교포인데도 잘사는 在美, 在日교포는 환영하면서 못사는 중국교포를 차별대우하는 걸 보면 국가가 國民을 대하는 것이 마치 장사꾼의 입장에서 거래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달리 깊은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중국교포를 다른 해외교포와 같이 취급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재미, 재일교포에 대한 입장은 미국,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 자유왕래 관계가 성립돼 있다는 현실이 반영돼 있고 반면 중국과 한국은 아직 美-日과의 관계수준까지 발전된 상태는 아닙니다. 해외교포에 대한 문제를 인권문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작년 7월 金日成이 죽었을 때 그 동안 金日成이 잡아왔던 남북관계의 주도권이 남쪽으로 넘어오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의 상황은 여전히 주도권이 북한에게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남한의 지도층이 북한을 보는 시각이 철학적으로 정리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金日成사후 金泳三 대통령이 한 유일한 코멘트는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해 아쉽다」라는 단 한 마디였습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민족의 怨讐이자 인류의 共敵인 김일성이 죽어 한반도에서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데 정권담당자가 이에 대한 역사적 해석을 내리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뒤늦게 국무총리의 이름으로 평가를 내리긴 했지만 당시 여당의 대표로서 金대표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당대표로 있는 2년간은 내가 나서서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나의 생각이 있지만 내가 나설 때도 아니고 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면 기대했던 바를 이룰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엉뚱한 문제를 야기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면에서는 김일성의 죽음이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運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출처 : 월조
[ 2003-07-12, 23: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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