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김대통령과의 인연은 소중히 간직하고싶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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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대통령과의 마지막 만남
  
  창당 방해가 심하다
  
  ―혹시 창당준비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도청이나 미행, 이런 것을 당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있어요, 실제로. 예를 들어서 대전에서 협의회 의장들이 올라오려고 하니까 막 나와서 못 가게 막고 그러더랍니다. 막으라고 해서 왔다고』
  
  ―누가 막으라고….
  
  『경찰, 안기부 직원. 우리가 뭘 하려고 하면 사업하는 사람의 경우에 죽을 줄 알고 하라고, 이런 짓들을 하고 있어요. 의원한테도 그랬어요. 사업체 가지고 있는 의원한테도. 이게 오늘날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이건 문제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집 전화를 아예 쓰지를 않습니다』
  
  ―이걸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실 수는 없습니까.
  
  『이 정도로 하고요, 내 앞으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적발해서 내어놓을 겁니다』
  
  ―충청도 지역에서 일부 학생들과 일부 재야 단체에서 신당창당에 대해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는데 거기에 대해서….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요. 별로 개의하지 않아요』
  
  ―이번 신당 창당의 이유로서 내각제의 꿈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은 내각제의 꿈이 최근에 사라진 것이 아니고 이미 6共 때 사라졌으므로 그때 탈당해야 했다는 겁니다.
  
  『그건 날 공격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고, 내각책임제 하자는 것이 지금 당장 되리라고 보고 그러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느 날엔가 우리나라도 참된 민주주의를 하려면 내각책임제가 바람직하다 이겁니다. 변치 않는 정치소신이니까…. 그 당시에는 민자당의 정강정책에 들어 있었어요. 그걸 이번에 빼지 않았습니까. 빼고 환골탈태한다면서 당명까지 바꾼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된 거지요. 그리고 내각책임제한다는 것만으로 신당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21세기를 향하는 새로운 담당세력, 정치세력?하나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도 내가 마지막으로 봉사할 수 있은 값어치 있는 것이며, 기회가 됐으니까 하는 것이지 그것 하나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정강정책에서 빼버렸다면 그럼 끝나는 것 아닙니까』
  
  『나도 인간이니까 감정이…』
  
  ―1월10일 金대통령과의 마지막 회담 전후의 태도가 문제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 전에는 굉장히 깍듯이 대통령을 모셨는데 그 이후에는 아주 직설적으로 비판도 하고 폭로성 말씀도 하셨는데, 그런 걸로 봐서 이번 창당도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상당히 감정적인 반응이라는 것이지요.
  
  『나도 인간이니까 전혀 감정적인 것이 없다고는 할 수 없고, 그러나 그런 건 내가 잘 이해합니다. 내가 그 밑에 있을 때는 내 상전이었고 대통령이었고 그래서 깍듯이 모셨어요. 그 대신에 일단 나오면 내 길을 가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1월10일 회동 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한겨레신문에서는 그 자리에서 金대표가 내각제 개헌을 제의하시니까 金대통령께서는 4년 중임제 개헌 이야기를 했다는 보도가 나갔습니다만….
  
  『어떻게 그런 근거 없는 소리를 함부로 합니까? 요새 언론들이 그래요? 우습잖아요. 대통령하고 나하고 둘이 않아서 했는데 양쪽에서 그런 일 없다고 그러는데, 누가 그런 작문을 했느냐 그거에요』
  
  ―金대통령과의 마지막 면담 때 탁자 가운데 꽃바구니가 있어서 녹음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셨다고 했는데….
  
  『나는 그렇게 느꼈는데… 정 뭐하면 누가 녹음한 것이 있을 텐데 공개하라고 했어요. 허튼 소리로 음해성으로 그러지 말라고 했지요. 그러고 나니까 아무 말이 없어요』
  
  ―그 자리에서 두 분이 대화한 내용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자고 약속을 하셨습니까.
  
  『청와대로 들어오는 것도 알리지 말고 들어와 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어… 내 수행원 비서하고 운전사밖에 모릅니다』
  
  ―사실상 그 약속이 깨진 것이라고 온다면 그 안에 서로 오고가던 대화에 있어서도 조금은 말씀해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전에는 관계없는 친구가 하나씩 둘씩 자꾸 떠들어서 음해성이라고 생각하고 내 미국 갔다와서 얘기 다하겠다고 했는데, 그 후에 더 이상 안 하니까 난 지키겠다 이겁니다. 사실 그 자리에서 金대통령이 전당대회 조용하게 치르도록 협력해 달라고 부탁해서 내가 미국 갔다와서도 7일까지 일체 입을 벌리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겁니다. 저쪽에서 어떻게 하든 간에 나는 지킬 것은 지킵니다. 거기서 비밀리에 얘기하자고 그랬어요. 이틀 전에 내가 연락을 받았습니다. 거 뭐 헌정회, 거기서 「갑자기 귀에다 대고 연락이 왔습니다」라고 했는데 그런 거짓말이 어딨습니까. 확인도 안해보고. 그때 「시간이 됐으니 일어나십시오」라고 비서가 와서 얘기한 겁니다. 십 오분 전이라고. 오늘날 뭐 좀 쓰는 사람들이 조금 책임을 갖고 썼으면 좋겠어요』
  
  金대통령과의 마지막 자리엔 결심하고 갔다
  
  ―대통령하고 만났을 때 「물러나 주십시오」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라고는 기대 안하고 갔습니까
  
  『12월 한달 집요하게 날 괴롭히지 않았습니까? 왜 몰라.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하기로 합시다. 이제 음해성 짓거리가 한 번만 더 나오면 얘기하겠어요』
  
  ―그 전에 이미 「난 내 길 간다」는 결심을 하고 청와대로 올라가셨지요.
  
  『이미 다 결심하고 있었어요. 「내가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겠구나」하고 12월 중순경부터 아주 굳게 결심하고 있었어요. 시침 뚝 떼고 있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구나」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런데 지방선거를 앞두고서 金대표님을 밀어내는 것이 득표와 관련된 상식으로 보면 맞지 않는 일인데….
  
  『내가 그 사람들 가슴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아닌데 알 수가 있나. 게다가 추측해서 얘기한다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니까. 난 그것 몰라요. 왜 그랬는지는 몰라요. 다만 끈질기게 나를 내몰기 위해서 아주 계획적으로 12월에 들어오자마자 시작한 것만은 사실이에요.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대표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여기 저기서 음해할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사실을 12월 주례회동 때 대통령에게 해명을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하고서 딱 한번 회동했고 그 다음엔 회동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대통령도 동의한 상태에서 그렇게 했구나 하고…. 왜 내가 몰라요. 그후는 만난 일이 없어요. 그 주에도 주례회동은 뭐가 있어서 안 된다, 그 다음 주에도 뭐가 있어서 곤란하다, 이러니 「아, 이걸로 끝났구나」하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1월10일 들어간 겁니다. 그것도 이틀 전에 「몰래 들어와라, 아무도 모르게 들어와라」하는데, 내가 왜 모르겠습니까. 허허』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요, 하나는 대통령께서 대표께 「여러 가지 당 쇄신을 위해서 2선으로 물러나 주십사」하면 순순히 물러날 것이란 오판, 그리고 중간에 최형우 장관의 발언으로 뜻하지 않게 문제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렀다는 說이 하나 있구요. 또 다른 하나는 대표위원께서 대권의지를 갖고 계셨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지방선거까지 계속 놔두면 그 세력이 굳어져서 선거가 끝난 후엔 대통령으로서 선택할 기회가 없다. 그래서 가장 빠른 시기에 이 문제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해서 전당대회도 2월7일로 최단시일 내에 잡아 처리하는 등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것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거 뭐, 說인지 뭔지… 거 어떻게 남의 속을 다 들여다 본 사람들이 있어요? 몰라요. 난 그런 것. 나는 내가 느낀 것만 지금 얘기하는 거요』
  
  『대표를 그렇게 갈아치울 수 있어요?』
  
  ―그런데 金대통령이나 金대표나 같은 한국말을 쓰는 입장인데 통역도 필요 없고… 이런 상황에서 중차대한 문제를 단 두 분만이 만나서 진지하게 몇 시간 이야기해서 충분히 인간적인 이해까지 도모하면서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까.
  
  『며칠 후에 東亞日報를 보니까 흘렸다고, 이런 식으로… 그래서 내가 발끈했어. 「아, 이제 시작이로구나」하고는 정무수석을 전화로 불렀어요. 「어디서 나온 거냐」라고 했지. 그랬더니 안기부에 의뢰해서 조사를 하겠다고 그래. 그리고 내가 지금은 누구라고 얘기를 안 해. 어떤 대 신문사의 정치부장이 얘기해 주더구먼. 청와대에서 뭐라고 내려왔는가 하면 「어제 오후 세시에 동아일보 李 아무개 기자를 만나 내가 흘렸다」고 자꾸 퍼뜨리고 있다는 거야. 난 그 기자 얼굴도 잘 모르고 이름도 잘 기억 못해. 그래, 누구냐 그랬더니 당 출입하는 캡이라 그러대. 그런데 여간해서는 잘 나오지도 않는다고 하더군. 그런 사람을 내가 어떻게 만나. 그리고 내가 할 일이 없어서 그런 소릴해? 그래「거 무슨 소리야」했지. 그 다음에 (청와대에서)나오는 반응이 뭐냐면 「너는 그만두라고 언도를 내렸기 때문에 앞으로 만날 필요도 없을 거다」 이것은 金대통령이 한 소리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어느 스텝이 기자들한테 그러지 않았어요? 그래? 대표를 그렇게 갈아치울 수 가 있어? 조금 기분이 좋지 않아서 대전 내려갈 때 몇 마디 비판을 좀 했어. 올라올 때도 몇 마디 했고, 그 후엔 일체 입을 다물었습니다』
  
  『맨날 날보고 2인자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평소에 매번 접촉하시면서 대통령은 매사에 지나치게 낙관하고 과신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게 느끼지는 않으셨습니까.
  
  『허허, 저… 대통령 비평하는 얘기는 난 아직 안 해. 내, 거기서도 임기 잘 끝나주기를 바란다고 얘기했어요. 뭐 정책적인 비판이라면 앞으로도 더 신랄하게 할거요. 그렇지만 개인에 대해서는 나에게 음해를 하려고 한다면 몰라도 그러지 않는 이상 인간적으로 어떤 하자를 꼬집어 가지고 공격한다느니 하는 것은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어요』
  
  ―한때 이런 농담을 하신 적이 있지요. 누구라도 청와대에 들어가면 소신이 생기고, 한 일년 지나면 자신이 생기고, 한 삼년쯤 지나면 야심이 생긴다고….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니고, 청와대라는 집이 사람 바꾸더라. 그렇게 얘기했어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르지요. 권력의 속성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사람이 바뀌더라고요』
  
  ―그리고 金대표께서 가끔 제2인자의 철학을 말씀하시던데, 「조연이 잘해야 주연이 빛나는 법」이라는 것이라든지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윤허」라는 표현을 쓰시기도 하고 「대붕의 마음을 연작이 어떻게 알겠는가」라는 말씀도 하셨지요. 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2인자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생각도 달리해 봅니다만, 어쨌든 2인자라고 자임하셨다면….
  
  『아니, 자임을 한 것이라니. 맨날 나보고 2인자라고 하니까. 그런 말을 한 것이지 내가 어디 가서 스스로 2인자라고 한 일도 없고, 그렇게 느껴 보지도 않았어요. 내가 어디 지나친 욕심을 부립디까. 오직 내가 할 일을 묵묵히 해 왔어요. 그리고 못한 것도 없지. 날더러 기백이 없느니 의지가 없느니 날 공격하는 그룹들이 작문을 하면서 그럽디다만, 여당이 뭔지 모르면서 그러기도 하고 알면서 날 모함하기 위해 그러기도 하지만. 대통령 중심제인 여당에서 하는 일이란 그럴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것을 넘어서서 욕심을 부린다면 아주 거 뭐…』
  
  ―주은래나 제갈공명이나 야율초재나 중국에서 유명한 2인자들을 보면, 자기들은 1인자가 될 수 없는 운명에서 가령 모택동이나 유비와 징키스칸같은 1인자들이 가진 굉장한 파워를 어떤 식으로 선도해서 국민들을 위해 쓰도록 하느냐 하는 쪽으로 고민했습니다. 그런 2인자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고 보는데,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직 2인자에게 주은래의 처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나고 보니 김영삼, 김종필 두 분의 깍듯한 예절의 주고받음이 마치 가면무도회 같다고 느껴집니다만….
  
  『허허, 글쎄 느끼셨다면 그렇게 느껴야지요.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할 것이 없어요』
  
  ―그렇다면 대표직에 있으면서도 대권의지를 포기한 적은 없었지요.
  
  『내가 언제 그런 얘기를 합디까?』
  
  『金대통령과의 인연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에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에서 金대통령과 30년간의 政友관계는 계속 유지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진심이십니까.
  
  『진심입니다. 정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영원한 적도 없고 아주 변치 않는 그런 관계도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난 원래 딴 사람하고 달라서 인연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나와서 金泳三 대통령과는 보통 인연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상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건 金대통령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맺었던 그 인연, 비록 지금 와서 길은 서로 갈라섰지만 인간적인 정이란 것은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 내 정서입니다. 그저 그 얘기를 한 겁니다』
  
  ―혹시 90년 3당합당 당시에 내각제나 지도체제에 관한 합의 이외에 다음에는 YS가 하고 그 다음에는 JP가 한다. 어떤 합의가 있지는 않았습니까.
  
  『모르지요. 그런 말이 두 사람 사이에는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하고 사이에서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으니까요』
  
  ―이번 1월10일 마지막으로 회동하셨을 때 「이것은 대통령께서 약속 위반을 하신 겁니다」 라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를 한다니까요』
  
  92년 4·8 비밀약속 4개항
  
  ―1992년 4월8일 하얏트호텔에서 金泳三씨를 만나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 金泳三 후보를 지지해준다는 전제하에서 4가지 합의를 했다고 그 당시 보도됐습니다만, 그 내용은 「내각책임제 개헌 안 하기로 한다. 그 대신에 당을 강화해 가지고 당의 상당한 책임하에서 국정을 운영한다, 정부운영에 있어선 헌법상의 내각책임제적인 요소를 활성화시켜서 한다, 당의 운영에 대해서는 김종필 대표가 권한을 행사한다」고 하는 4개항에 관해서 합의했다고 보도됐습니다만 사실입니까.
  
  『사실이에요. 우리나라 헌법정신대로 내각책임제를 가미한 정체를 존중한다. 그래서 총리도 당원 중에서 임명해야 한다고 내가 얘기를 했고, 당은 당대로 그 의지를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그랬어요. 처음에 황인성 총리를 임명할 때 약속을 이행하는구나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 후는 그렇지 않았지요』
  
  ―그럼 그 당시에 내각책임제를 더 이상 추진하지 않기로 약속하신 겁니까.
  
  『내가 있는 동안은 내각책임제가 불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합디다. 그렇지만 당의 정강정책에 그것이 들어있으니까, 그 실현의지는 당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저는 가타부타 얘기를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 의견이구나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밖에서는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민자당은 엄연히 언젠가 내각책임제를 구현하기 위해서 전진한다고 되어 있는 거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그 후에 「임기중에는 헌법개정을 하지 않겠다」고 명백하게 작년 기자회견 때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임기중에는 헌법개정에 손댈 생각이 없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14대에서는 불가능하겠구나」 그런 정도로 생각했지요. 금방 되리라고 생각해서 내각책임제를 추진한 것은 아닙니다』
  
  『인격 對 인격의 약속이었다』
  
  ―당시에 두 분의 약속은 굉장히 중요한데요. 녹음을 하거나 문서화했습니까.
  
  『盧대통령 밑에서 사인한 것도 다 휴지가 되는 판인데,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고 해서, 「人格 對 人格으로 얘기합시다」식으로 얘기한 거니까. 사인을 받거나 뭐 숨겨서 다니는 것은 난 아주 천하게 생각하니까. 내 평생에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서로 인격을 믿지 못하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지, 아 문서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4개항, 이 약속에 대해서 지금까지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대략 두 가지인데, 총리 제도를 내각제적으로 운영하지 않았다는 것과 당을 金대표께 일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당을 일임한다는 것은 그저 당을 맡아 달라는 그런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당이 당의 뜻이라고 해도 그 전에는 시녀 역할만 했지만… 그런 얘기니까, 그러면 됐지. 시한부라는 것은 내가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지방선거 전후겠구나, 내가 다 예측을 하고 있었지요』
  
  ―예측을 하셨다면 거기에 대한 준비도 하셨을 텐데요.
  
  『그렇게 준비를 하지는 않았어요.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 길을 택한 거지요』
  
  ―나머지 한 길은 계속 당에 잔류하시는 겁니까.
  
  『아니요. 그건 없었어요. 그때 끝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1990년 5월8일에 청와대에서 金泳三 대표, 盧대통령, 金대표 세 분이 모여서 내각제 개헌하기로 약속하고 사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자리의 상황을 좀 설명해 주시지요.
  
  『모여서 사인을 한 것이 아닙니다. 준비위원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사인을 받았어요. 그 원안은 서로 나누어 가진 것이 있으니까 서로 양해를 해 줬어요. 내가 제일 나중에 사인했는데 두 분 사인을 보고 했습니다』
  
  ―거기서 金泳三 대표가 반대의 뜻을 밝히지는 않았습니까.
  
  『그런 얘기는 들어 본 적 없어요. 그러나 그 얼마 후에 사인한 문서가 밖으로 흘러 나왔어요, 그것도 미스터리입니다』
  
  ―박준병 총장 사무실에 있는 것을 기자가 몰래….
  
  『박준병 자신이 말을 하지 않으니까, 죽어도 안 하니까.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빼내 갔더라고만 하니까』
  
  ―그럼 문서로 작성한 것도 안 지켜지는데, 1992년 4월8일의 그 약속은 지켜가리라 믿었다니 이상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러는 것 아닙니까. 사인한 문서도 다 휴지조각으로 되어 버리는데 그런 걸 만들어 두면 뭐해요. 인격과 인격으로 얘기하자고 한 거지요. 지금은 다 없어진 일인데, 그걸 다 미주알 고주알 모두 얘기할 기분이 아니에요. 이 문제는 그 정도로…』
  
  ―지금 이렇게 밀려난 것은 YS를 너무 믿었던 것, 결국 대표께서 방심하셨던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믿고 안 믿고 하는 차원은 아니지요. 3당 합당 때 둘이 만나서 얘기하는 것은 순수성이 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청와대라는 집이 사람을 바꾸더라」는 것도 그런 뜻이 담겨 있는 겁니다』
출처 : 월조
[ 2003-07-12, 23: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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