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哲彦, 침묵 깨다 - 金泳三 권력은 피크 지났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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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哲彦, 침묵 깨다 - 金泳三 권력은 피크 지났다. 反민자연합전선 만들 때
  
  슬롯머신업자로부터 뇌물 받았다 하여 유죄를 선고받고 1년4개월간 옥살이를 했던 6공(共)의 실력자 朴哲彦씨는 정치의 계절을 맞아 옛날의 자신만만한 자세를 되찾은 듯 김영삼(金泳三)정부를 직설적으로 비판해갔다.
  
  ● 金泳三대표, 내각제 포기하고 자기를 밀어주면 나를 돕겠다고 회유했다.
  ● 내각제 각서는 하나 더 있다.
  ● 어설픈 세계화는 강대국의 패권논리에 영합, 自主와 국익을 팔아먹는 것
  ● DJ와 JP를 포괄하는 反YS 야권 통합이 이상이나 대구.경북지역에서 우선 反YS 연합 실험해 볼 만
  ● 민자당은 대통령의 파당에 불과
  ● 盧대통령의 우유부단이 김영삼대표의 내각제 약속 파기를 막지 못했다.
  ● YS의 現代史 부정과 국정수행 능력의 무능성에 대한 배신감. 절망감이 TK정서의 본질
  
  <1995년 3월 월간조선>
  
  1년4개월 獄苦 치른 ?共 황태자」
  
  1995년 2월15일 아침 열 시. 50대 초반의 朴哲彦 前 의원은 당당한 모습으로 기자 일행을 맞았다.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두루 경험한 때문이었을까. 1년 4개월간의 囹圄생활로 인한 풍상이 깨끗이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악수하는 손에선 힘찬 氣기 전해져 왔다. 한 시대 國政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엘리트 정치인의 기풍같은 것이 느껴졌다. 金泳三 정권의 개혁 드라이브가 숱한 인생들의 부침을 양산했지만 朴 前 의원만큼 드라마틱한 요소를 갖춘 사례를 찾아보기도 힘들 것이다.
  
  그를 추락시킨 정덕진(鄭德珍), 정덕일(鄭德日) 형제 뇌물 알선 수재혐의 검찰수사와 재판과정에 권력과 돈, 그리고 여자 이야기까지 등장하였다. 이 드라마는 결국 인간 朴哲彦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에 추징금 6억원 판결이 확정됨으로써 의원직 상실과 더불어 차디찬 감방이 그를 〉刮駭? 1994년 9월16일, 그는 만기출소를 두 달 앞두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서울 서초동의 개인 사무실 입구엔 「한국복지통일 연구소」라는 조그마한 명판이 걸려 있었다. 건네주는 명함에도 「국회의원」 직함 대신 이 연구소 이사장 타이틀이 박혀 있었다. 朴 前 의원은 최근의 생활을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고, 변호사 업무도 정지당한 백수건달』로 폄하했지만, 사무실 분위기는 靜中動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 적막의 한 구석을 破格시키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朴 前 의원의 언사(言辭)는 권토중래(捲土重來), 와신상담(臥薪嘗膽)을 연상하듯 거칠 것이 없었다.
  
  TK와 金대통령은 역사관이 달라
  
  ―대구에 자주 다니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대구에 특별한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제가 감옥에 가는 바람에 대구에 계신 老母에게 불효를 했습니다. 요즘이 정치 계절 아닙니까. 지역에서 여러 가지 의견을 묻는 분들도 많고, 최근의 지역정서도 살필 겸 老母에게 인사드릴 겸해서 자주 나들이를 합니다』
  
  ―대구 경북지역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TK 民心이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해 고심하면서 진로를 모색하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제가 출소 후 많은 사람과 대화하며 느낀 사실은 TK의 반발심은 일반의 인식처럼 권력을 계속 장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소외감이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TK정신의 실체는 뚝심이나 의리 인정이 그 바탕입니다. TK가 계속 정권을 담당해야 한다는 옹졸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K세력이 反YS 정서로 돌아선 이유를 朴 前 의원은 두 가지로 해석했다.
  『첫째는 TK 주도했던 현대사에 대한 모욕입니다. 근대화 30년사는 憲政史적 측면에서 볼 때 많은 오점과 얼룩과 아픔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총체적 측면에서 나라가 근대화되었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북방정책을 통해 전방위 자주외교 시대를 열었다는 자긍심도 강했어요. 그런데 YS정권이 들어서면서 마치 지난 30년은 철저히 부패하고 나라를 망쳐먹은 죄인들의 시대인 양 매도하는 데서 모욕감이 싹튼 겁니다. 둘째는 YS가 지난 大選 때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지역 감정을 선동하지 않았습니까. YS도 대구·경북과 한 뿌리인 영남人이란 뜻에서 몰표를 안겼는데, 너무 독선적이고 무능한 국정운영에서 오는 절망감에 마음이 돌아선 게 원인이라고 봅니다』
  
  ―金대통령의 역사관과 대구 경북인들의 역사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朴 前 의원은 최근에 민자당을 탈당한 金鍾泌씨의 「자유민주연합」에는 이견을 가지고 있고, 『반YS연합세력을 창출해 수권(授權)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발언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 이유나 배경은 무엇입니까.
  
  『저는 오늘의 사회 상황이 민주화가 정착되지 못한 혼돈과 진통의 시기라고 봅니다. 현재 우리는 야당이 사분오열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야권이 연대하고 공조해서 후보 단일화와 같은 反民自 전략을 가지고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 특히 TK지역이 그런 연대가 가능한 지역이 아니겠느냐 하는 뜻입니다』
  
  「내각제」로 反民自연합 추진해야
  
  ―反YS연합(이 용어에 대해 朴 前의원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있다며 「反民自연합」이 적당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을 이루려면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손을 잡아야 할 텐데요. DJ와 JP로 상징되는 세력은 역사관이 다르기 때문에 「연합」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DJ와 JP 같은 분이 손잡고 야권대통합을 이룬 다음 일선에서 후퇴해 정계의 大원로로 남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두 분은 새 세대 지도자들이 「내각제」를 바탕으로 나라를 이끌도록 도움을 주고 충고도 해주어야죠. DJ나 JP는 역사관의 차이는 있지만 정책적인 면에서 살핀다면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내각제가 야권통합을 이루는 매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십니까.
  
  『내각제야말로 우리 시대가 숙명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민화합의 염원을 풀어주는 틀이라고 봅니다. 지역감정 해소에 내각제가 좋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또 新舊세력간의 대타협에 있어서도 권력분산 체제인 내각제가 유리합니다. 또 계층간의 화합문제나 복지문제, 분배정의 실천에서도 내각제가 더 적절하다고 봅니다.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도,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제로 남북 어느 한 쪽이 독식한다면 통일체제가 불가능합니다. 내각제야말로 시의에 따라 民意를 적절하게 반영하고, 또 책임행정의 구현이란 측면에서 우리에게 적합한 틀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는 내각제를 가능케 하는 요소로 직업공무원제도의 정착에 주목하고 있었다.
  『직업공무원제도가 정착되지 않으면 사실상 내각제가 어렵습니다. 이제 우리의 직업공무원제도는 충분한 전문의식과 투철한 사명감막?國政 각 분야를 무리 없이 추진할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언론이나 일반 국민은 우리 공무원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을 우려합니다. 문민시대 대통령제下에서 어느 때보다 강력한 칼을 휘두르며 독려하는데도 伏地不動 하는 이유가 뭡니까. 직업공무원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중립적인 입장에서서 신분이 보장되어야 하고, 자율적으로 업무추진이 보장될 때 신명나게 움직입니다. 전문행정가들이 만든 정책을 권력자가 말 한 마디로 뒤바꾸고 칼질하니 누가 신이 나서 일하겠습니까』
  
  ―내각제 반대론자들은 통일을 앞둔 시점에서 국가의 효율성을 유지하고, 특히 안보상의 문제에서 중요한 결정이 요구될 때 구심력이 강한 대통령 중심제가 적당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또 지난 50년간 시행해 온 체제이기 때문에 대통령 중심제를 보완하고 보충해 나가야지, 틀을 완전히 바꿔서 집을 새로 짓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있는데요.
  
  한국 대통령제는 변태적
  
  『사실 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장단점을 한 마디로 결론내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제가 현 시점에서 내각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나 정당, 그리고 국가의 틀로는 그 시대의 현존하는 과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 그 해결방법에 적합한 憲政체제를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입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은 대통령제보다 내각제를 더 많이 지지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변화라고 보는데요.
  
  『이번 기회에 내각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대오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의 대통령제는 정통 대통령제가 아니라 기형적이고 변태적인 대통령제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권력을 독점해서 권위주의적이고 하향식으로 나라를 통치하게끔 만들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말만 문민정부지 권력의 독점현상이 전보다 심화되었습니다. 오늘과 같은 총체적 위기, 총체적 난국의 원인도 憲政체제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朴 前 의원은 좀더 다른 각도에서 내각제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나라의 비전을 세우기 위해서는 법 집행기관의 엄정성과 비전 있는 교육의 실천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두 가지 문제 해결에도 내각제가 필수라는 것이다. 그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YS 정권 2년 동안 국민이 불안해하고 사회적 동요가 계속되는 원인은 법 집행기관이 권력으로부터 객관성, 중립성, 형평성을 결여한 채 하수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적 대통령제하에서는 법 집행의 중요한 지침이 청와대에서 내려옵니다. 검찰이나 경찰, 사법부가 대부분의 일상적 사건에서는 독립성을 발휘하지만 민감한 정치적 사건에는 여전히 권력의 입김이 미친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각제가 되면 정권이 자주 바뀌고 권력이 분점되기 때문에 법 집행기관이 권력 핵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됩니다. 교육의 중장기 마스터 플랜은 교육전문가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각계각층의 지식층 그룹에 맡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권 담당세력이 집권만 하면 일시적이고 인기영합적 교육개혁을 자꾸 내놓기 때문에 교육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립니다. 참다운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서도 내각제가 필요합니다』
  
  ―이번 金鍾泌씨의 자유민주연합 출범이 내각제가 자연스럽게 공론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내각제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는 국민적 토론과 합의과정을 거쳐야지, 과거 3당 합당 시절처럼 밀실에서 결정되면 실패할 것으로 봅니다.
  
  『3당 합당 뒤의 내각제 합의가 깨진 경험으로 봐서 이 문제는 막후나 분실이 아닌 여론수렵 과정, 토론 과정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봅니다』
  
  ―정치구조면에서 볼 때 내각제개헌 성사 여부의 중요한 키를 쥔 분이 金大中 亞太재단 이사장이라고 보는데요. 94년 가을 출소한 이후 金이사장을 만났을 때 내각제와 관련된 이야기도 오고갔습니까.
  
  『제가 감옥에 있을 때 金이사장이 인편을 통해 위로를 해 주었고, 玄慶子 의원(朴 前 의원 부인)의 대구 補選 출마문제와 관련해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6共시절 與小野大 상황에서 정계재편을 위해 몇 차례 조용히 만난 관계도 있고요. 제가 출소하니까 감옥생황에 대한 위로 겸, 玄의원 당선 축하 겸해서 부부동반으로 식사초대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정치 대 선배가 초대하는 건 기분 좋은 일 아닙니까. 그래서 일산으로 金이사장 부부를 찾아 뵙고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딱딱한 정치얘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金大中 이사장과의 인간관계
  
  ―金大中 이사장도 지금까지 『내각제는 절대 안된다』는 말이 없었고, 『국민이 원한다면 검토해 볼 만하다』고 했습니다. 金이사장이 내각제에 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그건 제가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어렵군요. 저는 공직생활 25년간에 걸쳐 얻은 믿음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와 국민을 걱정하는 분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해보면 합일점을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제가 金이사장과 몇 차례 접촉하면서 「내각제는 결사 반대한다」는 인상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합리적인 이야기는 경청하고, 수용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는 그런 성격입니다』
  
  ―내각제 개헌을 하려면 金大中 이사장, 金鍾泌씨, 민자당 내의 민정계 출신들이 연합, 정치권에서 분위기를 성숙시켜야 한다고 보는데요. 현직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면 대통령제보다 내각제 지지가 더 많으리라고 보십니까.
  
  『당을 떠나서 비밀이 보장되는 가운데 여론조사를 하면 내각제를 훨씬 많이 지지할 걸로 생각합니다』
  
  이원집정부제보다는 순수 내각제로 가야
  
  ―사회 일각에서는 『내각제는 프로 정치인의 권한 강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국가 전체로 보면 프로 정치인들의 힘이 약화되고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할 때 발전하는 것이다. 프로 정치인들이 권한행사를 하고, 돈을 만들고, 이권청탁에 유리하기 때문에 내각제를 원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도 있습니다.
  
  『내각제를 실시하면 이른바 직업정치인들, 多選의원들의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수명이 길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또 행정에서 다소간의 비능률도 예상됩니다. 그러나 내각제下에서는 행정을 직업공무원들이 담당하므로 정치인이 국정 전반을 장악하는 힘이 약화됩니다. 다시 말해 일정한 정치의 영역에서만 정치인들의 활동 무대가 넓어진다는 뜻입니다』
  
  이 대목에서 朴 前 의원은 우리의 정치나 정당 영역은 『전혀 민주화기 되어 있지 않다』고 못을 박았다. 해방 50년 동안 「보수세력들의 권력기생적 체질」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 朴 前의원은 『변태적 대통령제, 한국적 대통령제하에서 권력이 모든 것을 장악하고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이제 사회 각 분야가 전문적으로 성숙한 상황이기 때문에 국가발전에 해가 되지 않으면서 진정한 민주화와 자율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내각제를 통해 정치권력의 독점적 비중을 정치계에 국한시켜야 할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내각제』하면 국민들 머리에 張勉 정부 당시의 무질서하고 무능했던 상황이 강박관념처럼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일본이나 영국식의 순수내각제보다는 내각제의 한국적 변용, 즉 이원집정부제나 대통령의 권한이 보장되는 방향으로의 주체적인 변형도 모색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순수한 내각제로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원집정정부제는 장점도 있지만 대통령과 수상의 권력이 이분화됨으로써 일어나는 갈등의 요소도 많습니다.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고조되고 東北亞가 신냉전체제 상황이라면 외교 안보 분야는 대통령이 장악해서 강하게 끌어나가고, 내각은 행정과 국내정치를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발상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국제정세나 향후 전망은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순수 내각제가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勸力면에서는 대통령이고, 金力면에선 재벌 회장들입니다. 내각제가 되면 프로 정치인들에 대해서 대통령으로부터의 간여는 줄겠지만 재벌들의 영향력은 증대 될 것이다, 즉 부패랄 위험이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법 집행기관의 엄정성이 중요한 겁니다. 법 집행기관의 엄정성을 통해서 가차없이 법을 집행하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나 권력과의 동조에서 오는 독점적 특혜가 차단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앞으로는 대기업의 윤리와 모럴이 강조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될 것입니다. 건전한 시민운동이 활발해지고, 재벌이 권력으로부터 특혜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그들 힘에도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화제를 지방자치 선거로 돌려보겠습니다. JP가 신당을 창당한 상황에서 地自制 선거가 진행되면 단체장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리라고 보십니까.
  
  야당간의 지역별 연대는 가능할 것
  
  『어려운 질문인데요. 정계가 지금 혼돈과 동요, 진통의 과정에 있는데 이것이 어떤 형식으로 재편되느냐의 문제와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 정계는 민주당에서 DJ의 복귀여부, JP 신당의 성공 여부, TK세력의 결집 가능성, 그리고 YS 이후의 권력승계 문제가 큰 변수입니다. 지역별로는 反민자연합의 추진 여부가 승패의 관건이 되겠죠. 지역에 따라 야당 후보 단일화가 가능하면 야당이 유리할 것이고, 야당세력 일부가 연대할 경우엔 백중세, 여당 후보 하나에 야당후보가 난립하면 여당이 어부지리를 얻게 되겠죠』
  
  ―DJ, JP, TK 등 영문자로 상징되는 세력이 연합하면 일종의 3당 연합이 되고, 여기에 在野, 무소속까지 합치면 反民自대연합이 되는데, 연합을 하려면 촉매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朴 前 의원께서 촉매 역할을 자임하고 싶습니까.
  
  『저는 피선거권도 없고, 옥고를 치르고 나와 어려운 상황입니다. 당분간은 건강도 회복하고 관망하면서 지자제 선거는 지나 놓고 입장을 정리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YS정권이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反民自연합을 분쇄하기 위해 총력전으로 나오는 기미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朴 前 의원께서 89년에는 3당 합당의 핵심이었고, 지금은 反YS연합전선을 구상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대구·경북지역에서 反YS연합전선을 이루려면 다른 지역에서 JP 신당을 도와주거나, 민주당을 도와주는 식의 주고받기가 있어야 하는데요. 다른 지역에서 그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이 있습니까.
  
  『대구·경북지역에서 연합이 가능하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부분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서로 이해관계를 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전국적으로 민주당이나 신민당, JP 간판으로 당선 안정권에 들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각 지역에서 연합전선을 형성한다면 정치 신인들도 쉽게 당선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세대교체 의미에서도 좋은 전략이 될 것으로 봅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金大中씨는 약속을 지켰다
  
  ―JP와의 인간적인 관계는 어떻습니까.
  
  『과거나 지금이나 좋은 사이입니다. 3당통합 이후에 단 둘이서 여러 차례 만나 나라 걱정도 하고 의견도 나누었습니다. 물론 그분이 과거 정치경력에서 憲政중단이라는 오점을 남긴 세력이라는 비판을 받아야겠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朴正熙 대통령과 함께 국가에 기여한 공로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분도 35년간이나 정치일선에 계시다 보니 이제는 후진을 키우는 정치원로로 처신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입니다』
  
  ―金大中 이사장과 朴 前 의원은 인간적인 관계가 유달리 좋아 보이는데 두 분 관계는 어떻게 맺어진 사입니까.
  
  『金이사장과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기회는 없었습니다. 제가 6공 초기 큰 일에 관계할 때 얽힌 매듭을 푸는 과정에서 몇 차례 조용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간평가나 3당 통합 때도 그랬고, 특히 청소년 기본법을 만들 때 많은 대화가 있었습니다. 북방정책에 대한 비판도 거셌는데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金이사장을 만나 「북방정책은 졸속외교가 아니라 전방위 자주외교이자 통일외교를 위한 행보」라고 설명했어요. 제 입장을 잘 이해해 주시더군요. 저와 약속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된 거죠.
  
  야당 인사들이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낮과 밤이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경험한 金이사장은 낮과 밤을 일관되게 민주화에 대한 신념으로 일관하신 분입니다. 또 여러 차례 옥고도 치르고, 대통령 선거에서 몇 번 떨어지는 등 고뇌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원숙해졌고 저와도 신뢰관계가 쌓였다고 봅니다』
  
  ―金泳三 대통령과는 어떤 사이였습니까. 민주계 세력과 많이 격돌하셨는데 그분들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YS를 중심으로 한 민주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집권한 이후, 떠 집권과정에서 보인 행태에는 배신감과 실망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3당 합당 과정에서 물밑에서 1년 반이나 깊숙한 대화를 나눌 때 굳게 약속했던 내각제를 합당한 다음엔 「언제 그런 합의를 했느냐」고 시비를 걸었어요. 합의각서가 공개되자 이번엔 「공작정치」로 몰아붙였습니다. 3당 합당의 이념적 기초는 민주계의 배신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된 겁니다』
  
  당시에 3당 합당의 주역인 盧泰愚 대통령과 金泳三 통일민주당 총재, 金鍾泌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내각재 개헌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한다. 시대의 과제인 「국민 대화합, 지속적인 경제발전, 민주통일을 위해서」가 그 목적이었다. 「14대 총선 전에 내각제 개헌을 완료한다는 전제로」구체적인 합당 절차가 진행되고 있을 때 벌써 金泳三씨 측에서 그 약속을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더란 것이다. 金泳三 당시 대표와 민주계에 대해 朴 前 의원은 『사기당하고 배신당한 우리는 그들의 언론 플레이에 또 다시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다. YS와 민주계는 집권과정에서의진실성과 도덕성을 상실했고, 집권 이후 오만한 권력행사와 무능한 국정 수행에 크게 실망했다』고 자신의 심경을 피력했다. 그러나 金泳三 개인에게는 아무런 감정이나 원한이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말했다.
출처 : 월간조선
[ 2003-07-12, 23:5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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