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첸/박정희 개발 모델을 철저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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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正熙의 개발 모델을 철저하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출신 빅토르 첸 부총리
  
  <1996년 8월 월간조선>
  
  가장 출세한 고려인
  
  우즈베키스탄은 동서양문명의 십자로 中央아시아에서도 中央에 자리잡은 나라로서 실크로드의 가장 유명한 도시 사마르칸트가 있는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지방, 즉 러시아 원동(遠東)지역에서 강제 이주당해온 한국인(고려인)이 가장 많이(약 20만명) 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 나라의 카리모프 대통령은 朴正熙의 自主的·개방적 경제발전 모델을 참고로 하여 강력한 국가주도의 체제전환과 공업화를 추진해 가고 있다. 舊소련과 동구공산권 국가들이 대체로 서구적 정치·경제 철학에 기초한 자본주의化를 추진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민족적·국가적 正體性을 강렬하게 내세우면서 국가주돛?자주적 시장 경제化를 추진하고 있는 카리모프 정부內에서 국가재산 桓?및 사업지원 담당 부총리 빅토르 첸氏는 가장 출세한 고려인으로 꼽힌다. 51세인 첸 부총리와의 인터뷰는 지난 6월4일 오후 그의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국유재산 및 공장의 민영화와 기업 진흥정책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답게 그는 일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피로보다는 보람을 더 느끼고 있는 표정을 하고 나타났으나 서양인의 피가 섞인 동양인의 얼굴이었다. 눈빛이 당돌하고 다부진 몸집을 가진 첸 부총리는 러시아語로써 답변했다. 기자와 동행한 고려인 출신 40代 여성이 한국말로 통역해 주었다.
  
  -우즈벡-한국 사이의 경제 협력에 대해 평가해 주십시오.
  
  『카리모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盧泰愚 대통령과 대기업 회장들을 만난 것이 양국 관계의 시작이었습니다. 정부간 기본관계의 틀을 만드는 여러 문서에 서명했지만 카리모프 대통령과 인간관계가 더 중요했습니다. 金宇中 회장과의 관계는 개인적인 친분관계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관계는 다시 경제협력으로 진전되어 대우 그룹은 우리나라에 큰 투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이 실천에 의하여 그 타당성이 이미 증명된 力動的인 정책으로써 성공한 나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성공사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우즈벡-한국, 한국-우즈벡 경제협력위원회가 있는데 오는 7월에 서울에서 회의를 가질 예정입니다. 제가 맡고 있는 국가 자산 관리위원회는 사유화뿐 아니라 시장구조와 기능을 발전시키는 일도 맡고 있어 우리가 관여하지 않는 國政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사유화 67%
  
  첸 부총리는 우즈베키스탄의 자본주의화 과정을 설명해 갔다. 1991년 9월 1일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했을 때 우즈벡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행정구조를 가진 국가였으나 그 동안의 국가재산 사유화를 통해 1996년의 우즈벡은 시장경제구조를 갖춘 나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국가 소유의 기업 중 85%가 非국가 소유구조로 전환했다. 65%의 경제활동인구가 민간부문에 종사하며 67%의 GNP(국민총생산)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즈벡은 또 시장경제를 뒷받침하는 상업은행, 증권시장, 외환시장, 보험회사들을 만들었다. 해외자본의 유치를 위한 立法을 통해 한국과 같은 여러 나라의 투자기업들을 유치하였다고 첸 부총리는 강조했다.
  
  -저는 朴正熙 대통령에 대한 전기를 쓰고 있습니다만 우즈벡의 자본주의화 정책과 朴正熙의 근대화 정책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나는 朴正熙 대통령이 한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봅니다. 우리는 한국의 발전 경험을 세밀하게, 또 철저하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우리처럼 기반이 약한 조건에서 출발하여 짧은 기간에 성공했으니까요. 우리는 한국처럼 개척자적인 역할을 한 나라의 경험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朴正熙 대통령의 개발전략에 대해 쓰여진 좋은 책들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가 한국인을 싫어할까요』
  
  -朴正熙의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한국이 처음부터 수출주도 정책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처음부터 어렵지만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만들다가 보니까 우리 산업의 기술과 생산관리방법이 발달한 것이지요. 수입대체정책으로써 내수시장만 겨냥하는 상품을 만들자는 이른바 민족주의파도 있었지만 朴대통령은 그들의 관념적 이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우리도 지금 수출능력을 향상시키고 대체기술을 수입하는 두 가지 접근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첸 부총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아나톨리 니콜라예비치氏인데 그는 북한에서 태어나 遠東으로 이민갔다가 우즈벡으로 강제 이주당했다고 말했다. 자신은 티무르 大帝, 그리고 카리모프 대통령의 고향인 사마르칸트에서 출생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머니의 국적을 물었더니 『한국인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우리 동포 출신이 이 어려운 시기에 우즈벡 정부의 핵심 자리에서 활동하시는 것을 보니 자랑스럽습니다.
  
  『우즈벡에 사는 고려인은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한 20만명이지만 사회적 수준에 있어서는 그렇게 작지가 않아요. 열심히 일해 업적을 남기겠다는 자세로 하여 우즈벡의 어떤 집단보다도 교육 수준이 높고 고위관리, 과학자, 경제인, 요사이는 사업가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우즈벡에는 민족차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교포가 현지 사람들과 이곳에서처럼 잘 융합하여 살아가는 데가 드물 겁니다.
  
  『카자흐스탄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은 공격적이지 않으면서 부지런한데 누가 그들을 싫어하겠습니까』
  
  국가관계와 인간관계
  
  -체제전환국가의 공통점은 국가지도부는 개혁적 사고방식에 투철하고 보통 사람들은 변하고 있으나 국가기관의 중간 관리층은 사회주의적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고치지요.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체제 전환의 기간은 짧은데 변화는 극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고방식을 바꾸지 못했거나 바꾸더라도 약간 그랬을 뿐입니다. 많은 기업경영湄湧?시장경제속에서 어떻게 조직을 운영해야 될지를 몰라요. 50, 60代 사람들 중에는 이제 세상이 바뀌었고 회사의 주인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실감을 못하는 이들이 있어요. 우리는 그들에게 새로운 경제 상황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교육시키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빠르게 변하는가 하면 지지부진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좌절하는 사람들은 바꿔줄 수 밖에 없습니다. 합작투자회사에서는 부하들이 그런 경영진을 스스로 교체해가고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피해가 적게 개혁을 하려고 합니다만 고통이 전혀 수반되지 않는 개혁은 없는 법입니다』
  
  -우즈벡은 지금 脫러시아 自主노선을 정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이러다가 러시아와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 아닙니까.
  
  『국가관계도 인간관계와 비슷하여 싸울 때도 있고 잘 지낸 때도 있지요. 우리나라의 전략은 이웃 나라와 평화스럽게 지내는 것입니다만 결코 의존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의 정책은 분명히 자주·독립적 성향이 강하여 싫어하는 쪽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이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국가도 사람처럼 상호간에 이해를 하게 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게 될 겁니다』
  
  -朴正熙 대통령은 국민들의 자조(自助) 정신을 강조하여 국가의 도움을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잘 살아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그런 自助의식에 입각하여 수출드라이브로써 自立경제를 이룩하고 여기에 바탕을 둘 自主국방을 달성해야 진정한 독립국가라는 정치 철학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미국과 충돌하게 되었고, 미국은 한국內 인권 문제를 들고 나와서 朴정권을 공격했습니다. 『그런 게 미국 정책의 전형적인 예라고 봅니다』
  
  미운 정, 고운 정
  
  -大宇가 안디잔에 건설한 대규모 자동차 공장은 舊소련권(CIS)에선 가장 선진된 시설이라고 합니다. 이 공장이 우즈벡의 경제에 끼칠 영향은 어떤 것입니까.
  
  『자동차나 항공산업은 한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간판 산업입니다. 우리는 자동차 제작산업의 전통이 전혀 없는데 대우가 과감하게 들어 왔습니다. 이 투자가 다른 생산에도 연쇄 효과를 미치기를 기대합니다. 이미 1천명이 넘는 우즈벡 젊은이들이 한국에 가서 훈련을 받고 왔습니다. 이들은 한국기업과 노동자들의 정신력도 함께 배워왔습니다. 자동차 제작의 기본을 이루는 수백개의 부품 공장들이 우즈벡 全域에서 솟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특수 은행을 만들도록 하는 등 이 공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이 사업은 카리모프 대통령의 訪韓 때와 金泳三 대통령의 방문때 정부간 수준에서 논의된 적도 있습니다』
  
  -한국에는 「미운 정 고운 정」이란 말이 있습니다. 너무 사이가 좋기만 한 것보다는 서로 싸우고 또 풀기도 하면서 지내는 것이 관계가 더 깊어지는 방법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우리 두 나라의 경제 협력 관계가 21세기를 넘어서 오랫동안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귀하의 소개서를 보았는데 동갑나기이더군요』
  
  -한국에선 1945년 출생자를 「해방둥이」라고 불러 저는 나이 50을 넘어도 항상 어린아이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장시간 감사합니다. 헤어질 때 첸 부총리가 선물로 준 「카리모프 著-우즈베키스탄 경제 개혁의 길을 따라서」라는 책을 읽어보니 朴正熙가 1963년에 썼던 조국근대화의 청사진 「국가와 혁명과 나」와 비슷한 소신과 열정을 풍기고 있었다.
출처 : 월조
[ 2003-07-14, 13: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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